퀵바

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조회수 :
217,828
추천수 :
6,786
글자수 :
1,993,819

작성
23.11.27 12:00
조회
254
추천
10
글자
11쪽

Curtain Call 3

DUMMY

팀은 전력시설을 공격했고 이후 지역대는 댐 수력발전소를 공격했다. 목표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살벌했다. 댐은 출입구가 양쪽 도로 밖에 없다. 아니면 상류에서 급조도하로 물 타고 내려가던가 아래서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당연히 댐-발전소는 1급 경계시설. 지역대장과 중대장들이 직접 목표를 정찰하고 결정했다.


[속도전. 돌격].


당일, 북한군복 입은 경계조가 검문소로 가다 도로에서 적 야간매복에 걸렸다. 어느 군관이 대단히 개념 있었다. 그러자 지역대장은 ‘은밀’을 포기하고 댐 양쪽 2개 중대에 속도전 돌격을 하달했다. 경험 때문이다. 독수리훈련. 평시 군대는 전투를 염두에 두지 않고 경계를 설정한다. 그것이 허(虛)다. 게릴라가 대놓고 돌격하는 거 상상 못한다. 수비대는 완벽한 방어진이 아닌 게릴라를 발견하는 데만 염두가 있었다. 남쪽에서 어떻게 당했을까 걱정도 되었다.


유탄발사기와 저격수 엄호 하에 지역대장 포함 그 댐 도로를 질주했다. 지하로 가는 문은 청테이프를 떡으로 바른 수류탄을 손잡이에 붙여서 격파하고 자동으로 갈기고 진입, 발전시설에 가진 폭약 올인 붙여 날렸다.


그 폭발로 공격조인 옆 중대장 몸에 큰 금속 파편이 박혔다.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 입구까지는 중대장을 끌고 왔지만 더 이상 이동은 불가능했다. 오래 거기서 지체할수록 모두가 위험했다. 옆 중대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수류탄 하나 달라고 했다. 그렇다. 울었다.


감출 필요도 없고 임박한 죽음에 애써 초연할 필요 없었다. 바로 김중위가 수류탄을 주었고, 대위는 수류탄을 쥔 채 지하 출입구에 등을 기대어 앉은 장면이 마지막이었다. 뛰면서 몇 번을 되돌아봤는지 모른다. 싸모. 아이들. 그때, 욕설이나 거친 말을 습관적으로 삼가던 김중위 입에서 터졌다.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그날 이후로 김중위는 방아쇠 당기는 손가락에 어려움이 없었다. 댐 밖에서는 온통 총소리에 수류탄에 불꽃놀이 예광탄이 넉가래질을 하고 있었다. 경계조를 맡았던 김중위가 은거지로 돌아왔을 때, 출발했던 지역대 반이 비었다.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를 사람이 있었다.


팀 작전 시기에 이미 지역대는 열 명 넘게 사라졌다. 혼돈과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며칠 걸렸고, 그때부터 지역대장은 인근 3개 도로에 대한 적 보급로 교란작전과 항폭유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대원들이 예상하던 시기에 저 아래서 포성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북진해 올라오지 않았다. 무전기는 항상 곧! 곧! 만 남발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 한 달이 넘어갔다...


'진짜 이렇게 될 줄 상상만 했었지. 소령도 욕 좀 하자. 니미 씨부랄. 뭐 봉화라도 올려야 돼???!!!'


소주가 들어가자 김중위도 단단하게 버티던 것이 감상적으로 변한다. 좋아서 지원한 부대인데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주목을 받았고 뒷다마도 받았다. 사관학교 전공과 병과도 전혀 달랐다. 동기들은 중대장 때 가지 왜 전방소대장을 포기 하냐고 의아해했다.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특전부사관과 비슷한 심리가 김중위에게 있었다. 어린 시절 본 외가 쪽 삼촌이다.


휴가 나온 이상한 복장의 외삼촌. 그게 무엇인지 내내 궁금하다 수년이 지나 알았다. 4학년이 되어 부임지를 고려할 때, 1지망 2지망 3지망 모두 똑같은 세 글자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맡은 중대장 대리. 팀 작전에서 두 명이 실종되었고, 지역대 타격에서 세 명이 전사/실종되었다. 연이은 보급로 교란작전에서 담당관 서상사 포함 두 명을 잃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적의 대대적인 산악소탕. 지역대도 비슷하게 줄어갔다. 많은 장비를 버려야 했고 산에서 굶주리고 지쳤다.


너무나도 빨리 충격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김중위는 감당도 적응도 힘들었지만, 살려면 해야 했고 그러면서 경험이 쌓였다. 무거운 상황 속에서도 장교라는 직분이 힘들다 무섭다 티도 못 내고, 엄격한 품위를 유지하면서 과감해야 했다.


이제는 팀장으로 능력이 충분해졌으나 지휘할 팀원들이 없다. 정확한 김중위 팀원은 윤중사 하나다. 파편에 맞아 중위 품에서 숨을 거둔 하사. 꺼져가는 생명을 체온과 눈망울로 느끼는 것. 죽음 앞에 초라했으며 젊거나 나이가 많거나 ‘불쌍’했다. 산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불쌍하다는 표현은 심리적으로 어폐가 있었다.


안 죽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불쌍하다. 떠날 때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의미했고 맨몸으로 떠난다는 말이 분명 옳아 보였다. 중위에게 울음은 2차적인 문제였다. 감당하기 힘들었다. 사관학교를 나왔지만 역시 20대였고 그걸 대처할 연륜도 경험도 없었다. 지휘관이란 사실이 두려웠다. 그러나 돌아보면 대위도 그렇게 나이 안 많다. 훈련 때는 멋도 나고 힘들어도 재미까지 있었지만, 전시 지휘관이 지침으로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사지로 몰아넣는 건 아주 간단하게 일어난다.



김중위에게, 만약 소대장이라면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 같았다. 30명을 어떻게 관리하고 공격하고 방어하고 사기까지 책임져야 하나. 중대장부터 세 배로 늘어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전장에서는 모든 병사들 본능이 살아나고, 회피하려는 자도 나타나며, 생각보다 과감한 사람도 나타나고, 그 모든 걸 알고 이해하며 완벽히 통솔하는 건 신이나 가능할 것 같았다.


각자 자기 생각을 가진 단독의 인간이라는 걸 평시에는 몰랐다. 신뢰, 간부는 지레짐작 그러려니 하지만, 밑에 사람들 생각이 전혀 다른 건 충분히 조우할 상황이다. 계급이 아래라도 하등으로 보면 뒤통수에 총구가 선다.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병력이 원채 적으니 전장에서 솔선수범하고 각각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과감해야 했다. 주저하고 약한 장교는 부사관과 병사들이 버린다. 방치한다.


빈 병을 바닥에 놓고 잠시 눈을 붙이다 클락션 소리를 들었다. 차량은 인민학교 작은 운동장으로 들어간다. 윤중사가 안쪽 정하사를 불렀고, 트럭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세 사람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사방을 둘러본다. 누가 있어? 누가? 누가 살았지? 다른 지역대는? 대대장? 혹시나 실종 상태인 우리 지역대원이나 팀원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오 제발... 오... 하느님. 부탁합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사람들은 보였지만 곧바로 판단이 안 온다. 먼저 온 사람들도 세 명을 쳐다본다. 여러 명이 전투식량에 숟가락을 후비며 뜨고 있었다. 비슷했다. 머리칼 길고 얼굴 새카맣고 수염이 길다. 몇 명이 뜨던 숟가락을 놓고 역시 세 명을 자세히 바라보고 시작했다. 트럭 뒤에서 내리는데 비슷한 차림 30명 정도가 있었다. 반 이상 북한군복.


뒷모습이나 멀리 보이는 형체로 인식하는 건 같은 지역대이고 좀 더 나가면 대대가 제한선, 그 제한선 너머에 다른 하나는 있다. 각자의 동기들.


“김...두현!”


김중위가 시선을 돌렸다.


어디서 누가 부르는 거지?


소리는 낯익다.


“미친놈아, 어딜 봐.”


“어....”


“눈물 흘리면 죽여 버린다...”



똑같은 중위 대리팀장.


“야이! 포로로 잡혀서 죽었대매?!”


“2대대가 구출해줬어. 유영한 선배님 팀이....”


“유선배? 유선배는 어떻게 됐어?”



“...... 생도의 명예를 영원히 유지하셨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지.

줄기에 사랑의 말 새겨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왔지

이 깊은 밤에도 난 이곳을 서성이네

어둠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고...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아

"친구여 이리와, 내 곁에서 안식을 취하련."


찬바람 세차게 불어와 내 뺨을 스쳐도

모자가 날아가도 나는 돌아보지 않았네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 있었건만

내 귀에는 아직도 속삭임이 들리네

"이곳에서 안식을 찾으라."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보리수’




수집소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대원들은 3일 동안, 아무리 군대 밥이라고 해도 정말 맛있게 배불리 먹고 잠도 편하게 잤다. 그러자 몸에 온갖 아픈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참았던 것들이 몸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자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실토하기 시작했다. 총은 한 곳에 모아 놓았지만, 모두 대검은 생존의 증표처럼 휴대하고 다닌다. 루머도 돌았다. 다시 압록강으로 올라가 중국군 정찰감시가 떨어질 거라는 둥. 적 잔당 소탕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둥.


식당 밥과 편한 잠자리와 담배와 종종 주는 술로 인해 대원들은 긴장이 풀려갔다. 그러나 모두가 원하는 남으로 이동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서로 이발도 해주고 면도도 했다. 같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은, 이발 면도를 하고 만나자 서로 낯설었다. 전우들이 머리칼 잘린 삼손처럼 바보가 되어 나타난다.


가끔 언쟁도 벌어지다 칼을 뽑는 일도 벌어졌고, 전쟁 전에는 없었던 잔인한 농담도 오고간다.


“5초야. 길어야 10초.”


“저 함 담가뿌까. 쌧끼가 아래위를 몰라.”


약간은 무분별한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상부는 평양 근처에 있는 여단장과 참모들이 빨리 올라와 병력을 장악하고 통제하기를 바랐다. 두발 정리하고 면도하고 목욕도 해서 외관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밤이면 악몽을 꾸거나 수면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에 점호하는데 충혈된 눈이 살벌하다.


가면이 습관이 되어 사소한 소리에도 사람들이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후~ 한숨을 쉬고 다시 눕는 것이 밤새 교대로 일어난다. 잘 때 대검을 몸에 지니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이 수집소를 도와주기 위해 온 연대본부 장교와 병사들은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가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은 여단 수집소의 가장 높은 계급인 3대대장 이성규 중령이었다. 여단원 모두에 이중령은 알려져 있었다. 투병 중에 여단으로 복귀해 재보급 수송기로 점프해 들어온 대대장. 통솔에 힘든 문제는 하나다.


여단 대원들은 그래도 대대장 중령이라 존대하고 깍듯하지만, 진심으로 따르는 건 휘하 3대대원들 뿐이다. 심리적으로 갈라진 선이 있었다. 고립되어 작전하다보니 지역대가 하나의 단위가 되었고, 타 대대는 몇 달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이질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 조폭이었다. 대대로 구분되어 원래 있던 것이지만 자기를 직접 지휘한 사람이 아니면 쉣이올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구독자분 필독 21.04.26 1,890 0 -
364 For Anarchy in DPRK 1 24.04.22 77 5 11쪽
363 피양의 숙취 4 24.04.15 114 6 12쪽
362 피양의 숙취 3 24.04.08 117 7 11쪽
361 피양의 숙취 2 24.04.01 147 8 11쪽
360 피양의 숙취 1 +1 24.03.25 151 8 12쪽
359 K-7 Deuce 5 24.03.18 143 8 15쪽
358 K-7 Deuce 4 24.03.11 140 3 12쪽
357 K-7 Deuce 3 24.03.04 168 6 12쪽
356 K-7 Deuce 2 24.02.26 277 4 14쪽
355 K-7 Deuce 1 24.02.19 205 6 12쪽
354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2 +2 24.02.05 231 6 15쪽
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90 6 16쪽
352 Curtain Call 9 24.01.22 202 9 16쪽
351 Curtain Call 8 24.01.15 201 4 13쪽
350 Curtain Call 7 +2 24.01.08 206 8 12쪽
349 Curtain Call 6 23.12.18 332 7 12쪽
348 Curtain Call 5 23.12.11 232 10 12쪽
347 Curtain Call 4 23.12.04 249 9 11쪽
» Curtain Call 3 23.11.27 255 1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