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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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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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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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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양의 숙취 4

DUMMY

피양의 숙취




“... 글쎄요. 인간은 착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개는 광견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다 착한 것 같습니다. 둘을 비교하면, 솔직히 말해서 개가 더 착한 것 같습니다. 그냥 착한 것만 보면요.”


“개는 왜 천국에 안 가지? 소는? 풀만 먹는 초식동물은 천국에서 풀 좀 뜯어도 좀 괜찮지 않아? 지능 때문에 못 들어가나? 하느님을 안(못) 믿어서? 내 말이 뭔가 하면 말야. 잘난 체 해도 도살장 소 돼지나 인간이나 차이 본질적으로 없다는 거야. 인간이 더 나빠. 더 잔학해. 사자나 호랑이는 먹을 것만 죽여."


"인간은 미래에 먹을 것까지 가두고 키워서 죽이고 남으면 통조림 만들어. 배부르면 먹다 버리지. 인간은 인간끼리만 잘난 체 하고, 자연과 다른 동물 앞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아냐. 우리 역시 도살장에 걸릴 수 있었어. 상위 포식자가 될 동물들을 다 죽이고 지구 영장류가 된 거야. 인간 원래 잔인해. 잔인할 기회가 없어서 모를 뿐."


"문명사회라 포장되다 보니 우리 본능이 사라졌다고 착각하지. 그거 사라지지 않아. 상병도 살기 위해 칼로 사람 찔러. 우리? 우리 보통사람이야. 자네가 적중시킨 적 탱크 승무원들은 어떻게 죽었을 거 같애. 봐, 우린 일단 아군과 북한군이 죽는 걸 구분하지. 저들은 니미 죽거나 말거나. 전우에게는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 자신의 탐욕 때문이야. 수 천 년 내내 우리 서로 죽이고 죽어왔어. 옛날에는 칼과 활로 죽였고 총이란 얇실한 것도 없었어. 옛날 군인들 단체로 자살했다는 말 들어봤어?"


"자네는 군인으로 할 걸 했어. 자네는 이 나라 교육에서 배운 보편적인 것에서 빗겨나니까 힘든 거야. 난 도살장의 소도 인간 못지않게 불쌍해. 나 채식주의자 될지도 몰라. 소돼지나 개 양 고래 마구 죽여 먹는 인간이란 놈들이 같은 인간 죽였다고 다 산 것처럼 죄책감을 느껴? 우린 이미 원죄처럼 동물과 인간 살해의 죄책감이 있는 동물이야. 현대사회에서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 끔찍하게 생각하지. 전쟁터, 이게 인간 리얼이야. 그리고 사회는!!! 진짜 목숨을 빼앗지는 않아도, 사람 죽고 싶을 정도의 길고 지루한 리얼이 계속 돼."


"그래. 우린 우리가 만든 도덕에서 더러운 놈들이 되었어. 옆에선 잘했다고 박수치고 용사라고 훈장 주고. 우린 이 갭을 견디기 힘든 거야. 훈장, 강물에나 던져버려. 죄책감은 훈장 준 놈들이 느껴야 하는 거고, 우린 아냐. 거슬러 올라가면 이 전쟁이 일어나도록 한 멍청한 놈들이 진짜 죄의식이 있어야 돼. 하지만 안 느낄 걸? 총 들고 싸운 적이 없으니까."


"우리만 왜 죄책감을 받아야 돼? 우리가 죽인 사람도 전사한 전우도 우리조차도 똑같아. 이러다 늙어서 암 투병해봐. 차라리 지금 못 죽은 게 서러울 걸? 탱크포 맞아 전사한 전우나 자네나 별 차이 없는 거라니까. 그냥 그들을 추념하고 받아들여.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 전쟁 때처럼 잔인하게 살 필요도 없어."


"저 아프리카 중동에선 대낮에 사람 칼로 쳐 죽이고 환호성을 질러. 상병이 그런 미개한 곳에서 태어났다면 지금 고민 안 해. 죽고 사는 게 단지 1cm 차이였어. 재미있게 살어. 상병은 실력이 좋아서 탱크 격파했다는 걸 믿어. 대신, 다른 부대원 많이 살렸잖아. 맞지? 그래... 우리가 했던 짓 평시에 했다면 전부 다 사형이야."


"꿈에 그런 거 나오거든 겁먹지 말고 그냥 처억 쳐다 봐. 그럼 상병 자신이 알아서 곧 정리해줄 거야. 뛰어난 이성체라는 착각을 버려! 여자친구와 헤어져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아랫도리는 또 딱딱해져. 그냥 먹고 마시고 싸. 완전히 만취했을 때 혼자서 차분하게 자네 모습이 한번 보일 거야. 그때 자신을 낯설어하지 마. 자신을 저주하지 마. 욕하지 마. 칭찬도 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에 애정을 가져. 자책은 받아들이지만 자기혐오는 절대로 인정하지 마. 아직도 살아 ‘생각’하고 있는 것도 축복이야.“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 누구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내 말 다시 생각해 봐.”


“좀 무섭습니다.”


고참 중사가 웃는다. 다른 사람들도 상병을 위로한다.


“우리 모두 무서워. 우리 자신도 무서워. 진짜야.”


“그래 상병. 솔직한 게 회복에 좋아. 그게 좋은 거야.”


“중사님 말씀 잘 기억해. 난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겠지만.”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고참중사가 자기 가슴을 툭툭 친다.


"상병, 난 이미 이 세상을 떴어.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야."


상병은 일어나 네 명과 악수하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중사들은 돌아설 때 경례하지 말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말은 편하게 했지만 다섯 명은 상병이 아주 멀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뒷모습을 바라본다.


고참 중사에게 시선이 돌아와 모였다. 미소. 그 미소는 씁쓸하게도 느껴지지만,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퉁명한 걸 내포하고 있었다.


어느덧 강가의 명도가 기울어진다. 인적은 더욱 줄어들었다. 점심도 안 먹었지만 허기를 못 느낀다. 이곳을 점령은 했지만 밤에는 아직도 돌아다니기 불안하다. 고참 중사가 일어서자, 모두 중사를 중심으로 모인다. 고참 중사가 건빵 주머니에서 묵직한 것을 꺼내며 입을 연다.


“확인해 볼까?”


북한 권총...


“아까 식장 입장할 때 걸릴 뻔했잖슴까.”


“나도.”


“좆되아불뻔 했슴다이.”


“아까 그 위병한테 미안한데...”



고참 중사가 턱을 든다.


“장비 확인.”


원을 그리며 모여든 각자 자기 걸 보여준다. 권총과 대검, 한 명은 AK용 총검. 그 총검을 보자 한 명이 짜증을 낸다.


“모냥 빠지게 이거 뭐야?”


“나 북한 총검 안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이게 더 길고 깊숙이 들어가요이.”


“그건 모양이 좀 그래서 투검 힘들어.”


“스페르나츠는 이걸로 투검 해!”


“무슨... 요즘 세상에 누가 투검을 해.”


한 명이 대검을 들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모두 의심의 눈초리.


“......”


“뭐야! 진짜 할 줄 안다고? 구라야 뭐야.”


중사가 공중에서 180도 돌려 대검 끝을 잡았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나무를 본다.


“그만 하시지. 투검 구라... 봐라, 이제 입으로 할 거야.”


중사가 대검을 손으로 가볍게 동일 주파수로 흔들며 나무 밑을 보더니, 몸을 왼쪽으로 약간 비틀면서 대검을 던졌다. 넷은 침묵했다.


“뭐야......”


“진짜네... 와, 신기하다. 건달들이 하는 거야?”


“너 이거 실전에서 닌겐한테 던져봤어?”


“......”


지켜보던 고참 중사가 고개를 우두둑 꺾는다.


“너 그거 어디서 배웠냐?”


“많이 고참님요.”


“우리 여단 주임원사가 그랬거든. 니네 여단 원사 중에 진짜 칼잡이 있다고.”


“음... 다른 사람일 거라고 봅니다.”


고참 중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모인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고는 씨익 웃는다. 그리고 한 방향을 지시했다.


“가자, 술 털러.”


“해장.”


“간만 보급투쟁?”


“난 선두개척.”


“난 후미 빼고 아무 거나.”


고참중사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어둠이 내린다... 냄새가 난다.”



그들은 산보하듯 저 어두운 피양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고참 중사가 상병에게 자기 것 나머지 하나는 말해주지 않았다. 앞으로의 목표가 상병과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사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날 다섯 명은 피양 여러 곳을 배회하며 걸었고 털어낸 술로 한껏 목을 축이고, 술 깨고 깨질 수 없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할 때는 결코 술에 의존된 눈들이 아니었다. 고참 중사가 상병에게 말해주지 않은 그 ‘나머지’를 다섯 명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전날 위로의 밤에서 술을 마시며 시작된 것이다. 다섯 중 둘은 6개월 이상 있어야 전역이 가능했고 나머지는 언제나 나갈 수 있는 상태. 옥상에 올랐던 하사는 의가사 판정이 났다.


이날 다섯이 어둠 속을 돌아다니면 보인 행위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거였다. 그들은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서슴없이 행동했다. 한 명은 잠시 숙소로 돌아가, 아군을 만날 때 입었던 북한 군복을 입고 다시 나왔다. 군복에 원래 임자의 총알구멍과 핏자국이 여전했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전역하거나 의사가로 부대를 나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라 해도 실제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단들은 국경 근처 임시 주둔지로 들어갔다가, 중국과의 분쟁 소지가 줄어들자 남쪽 주둔지로 내려왔다. 그러나 여단들이 주둔지를 새로 옮겨야하는 것은 현실이었다. 최소 3개 여단이 북으로 가야 했다. 육본은 중국과의 접경지역 2선 세 곳에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가장 먼저 이동할 대상지는 평안북도와 자강도였다. (1차한국전쟁 휴전 전에 없었던 자강도와 양강도의 존폐 여부는 계속 논쟁거리였다.)


생존 귀환한 대원들은 1계급 특진을 조건으로 장기근무를 제시받았다. 여단들은 보충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력이 떨어져 있었고 끌어줄 요원들이 필요했다. 당장 여단 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병와 부사관 현역 중에 자원자를 받아서 특수전교육 후 충당하는 방법도 수용되었고, 북한에 주둔할 여단에 한해 북한군 출신 자원자도 검토하기로 했다.


사회 모병은 미미했고 여단이 줄어든다는 소문도 돌았다. 전체적인 전력이 떨어져 한시적인 여성 대상 강제징집이 국회에 올라갔다. 생존자들은 다시 북으로 올라가 작전지역 일대를 유해발굴단과 함께 누벼야 했다. 이후 기로에 섰을 때 생존자 대부분은 제대를 택했다.


국토는 파괴되었고 민관군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지나간 살육과 비인간적인 것들은 모두 외면하고 싶어 했다. 참전자에 대한 예우는 반복되었다. 전에 비해 현격히 경제가 떨어지고 힘겨운 생활이 시작되자 참전자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새해가 오고 봄이 오고, 교전지역 특정한 곳에 풀이 길에 올라와 유해발굴단이 삽으로 파야 했으며, 북한사람들이 대거 남쪽 노동자로 내려와 과도기적 사회문제도 양산되었으며, 어수선한 분위기와 도처에 널린 병기들 때문에 강력범죄도 최고수위까지 올랐다가 서서히 떨어졌다. 군축이 정부의 관건이 되자 장교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참전자들이 받은 이중의 상처는 눈으로 본 수도권과 서울의 참상이었다. 자신들도 했듯이 수도권도 똑같았다.



그날의 다섯 명...


세 명은 유해 발굴 작전 후에 먼저 제대했다.



나머지 두 명이 전역하는 6개월이 지났을 때,


그들은 다시 서울에서 모였다. 그리고 상병에게


말하지 않은 걸 위해 유럽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그들의 마음을 글로 적는 것...

정확한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 반대의 표현으로는 아주 약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세상의 긍정적인 것,

평화로운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이제

애써 볼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오히려 그것과 멀어져

반대편으로 폭주하는 자신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






평화로울 때는 자식이 부모를 땅에 묻는다.

전쟁이 일어나면 부모가 자식을 땅에 묻는다.


- 헤로도투스


작가의말


에필로그 형식의 두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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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피양의 숙취 3 24.04.08 123 7 11쪽
361 피양의 숙취 2 24.04.01 151 8 11쪽
360 피양의 숙취 1 +1 24.03.25 155 8 12쪽
359 K-7 Deuce 5 24.03.18 144 8 15쪽
358 K-7 Deuce 4 24.03.11 141 3 12쪽
357 K-7 Deuce 3 24.03.04 170 6 12쪽
356 K-7 Deuce 2 24.02.26 278 4 14쪽
355 K-7 Deuce 1 24.02.19 207 6 12쪽
354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2 +2 24.02.05 232 6 15쪽
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91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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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Curtain Call 7 +2 24.01.08 207 8 12쪽
349 Curtain Call 6 23.12.18 33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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