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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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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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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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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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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urtain Call 5

DUMMY

“그래서 난 지금 제안한다. 명령이 아니다. 난 사단장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산으로 올라가서 게릴라로 변한 산중의 잔당 놈들을 앞으로 3일간 최대한 제거하고 남으로 가겠다고. 내가 지휘관이었던 3대대와 5대대 섹터다. 자기 대대 섹터 아니라도 이곳 지형 대충 다 알 거다. 거기 잔당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


"명령 아니다. 자원자만 받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자원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결코 뭐라지 않는다. 소소한 부상 엄청 많다는 거 안다. 자원은 선택이고, 우리 모두는 그 어떤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정신적으로 전투를 감당하기 힘든 경우를 알 것이다. 나도 지쳤고 여러분도 지쳤다. 우린 눈감아도 알 수 있는 우리 섹터에 올라가 숨어 있는 잔당을 제압할 것이고, 단 3일이다. 보병이 산까지 쫓아올라가 소탕할 틈이 없다."


"보병과 기갑은 압록강 물에 발을 적셔야 한다. 사실 다 끝났다. 조금 남았다. 요만큼... 산중 잔당 소탕은 보급품이 지나갈 이 일대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는 거다. 놔두면 우리 보급품이 불타고 지원부대가 죽는다. 지휘관은 나다. 나도 총 들고 산에 올라간다. 이건 소탕만이 아니다. 사단 영현반 협조 아래 우리 전사 실종자 수습하는 걸 병행한다. 여러분 마음속에 빨리 올라가서 수습하거나 찾고 싶은 전우들.”


이중령이 지팡이를 던졌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 있을 거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해도 된다. 이건 내가 제안했으므로 내 책임이다. 나 역시 산에서 적과 교전하다 죽어도 여한 없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에게 죽고 싶지는 않다. 쓰러져간 내 부하들 앞에 사죄하고 싶은 심정일 뿐. 누가 지시하지 않았다. 사단은 도와는 주지만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여러분 대다수가 안 한다고 하면 난 그렇게 보고할 것이고 아무 일 없다. 3일 후에는 내가 북한트럭을 훔쳐서라도 자네들을 태워 평양으로 갈 거다. 내 말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렇다! 난 이대로 못 내려간다! 여단 침투인원 10%도 안 남았다!”


조용했다. 병력들 반응이 없다. 좋아 싫다 표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 실망한 것 같다. 그러나 좀 이상도 했다. 여기저기서 미묘하게 웃기 시작했다. 피식피식 킥 소리가 들린다. 남의 경례도 안 받고 침울하던 5대대 상사가 있었다. 보는 생존자들은 저 사람 왜 저래? 그러다가 그 지역대 얘기를 듣고는 그때부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말은 안 해도, 밥 먹을 때 물이라도 떠서 앞에 놔주곤 했다. 그 상사가 소리쳤다.


“저 산은 우리 거야! 어떤 새끼들이, 우리 지역대가 죽어간 곳에서 더러운 똥을 싸! 담가서 똥을 배로 빼줄라. 전우 시체 찾고 산 비우고 남으로 가자!”


신중한 표정으로 굳어 있던 대원들에게 술렁임이 일었다. 어쩌면, 수집소에서 편하게 먹고 잔 며칠이 그들을 평시로 돌리기는 부족했던 듯싶다. 옆에서 보던 수집소 경계병은 분위기가 이상해서 무의식적으로 총을 잡는다.


한동안 자연에 살았다. 자연을 주안점으로 넓게 보면 한 인간의 죽음이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는다. 광야를 달리는 흉노족들은 자연을 경외시하며 한 인간의 죽음을 요즘 도시 사람처럼 질질 짜지 않았다. 묻고 애도하고 곧바로 다시 질주했다. 그렇게 물불을 안 가리고 유럽까지 도달했다. 그들은 생과 사를 안절부절못하면서 살기 위해 훌쩍이지 않았다. 그 질질 짜는 감성이 강해야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요즘 도시에서.


이중령은 겉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을 속으로 뇌까린다.


‘쉽게 말해, 좆도 아닌 것이지. 사람 죽음이. 너도 나도 좆은 있는데 좆도 아닌 것이여. 어느 스님 말씀처럼 본질에는 특성이 없는 거야. 그 안에 이렇다 할 게 존재하지 않아. 이성규란 무형의 방을 채우고 의미 있게 하는 건 부하들이야. 이런 것이 올 수 있고 저런 것이 올 수 있지만 결코 특별한 거 아냐. 생과 사도 특별난 게 아냐. 내가 지워진다는 자존심보다 더 큰 걸 따른대도 자연스러운 거야. 이 여단 대원 위해 내가 먼저 죽어도 돼. 그냥 그런 거야.’


죽음은 죽는 본인만 그게 이따만해 보인다. 아니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아니면 자기 존재가치가 우스워 보이니까. 영화 ‘친구’에서 mad dogging 담그는 장면을 보며 소름 끼친단다. 여기 모두는 그 비 오는 날 동수를 연장으로 수없이 질렀다. 어떤 종족들은 자기가 죽인 사람 가죽을 벗기며 환호한다. 이겼음을. 흔해진다. 그런 것이... 그런 것이다.


분위기... 고생한 사람들에게 예상치 않은 일을 주어 화가 난 것 같은데, 가벼운 미소만 보인다. 밥과 깍두기면 싸울 수 있다. 싸울 수 있다는 건 죽일 수 있다는 거다. 밥과 된장국이면 운수 좋은 날이다. 밥과 깍두기와 된장국 먹으면 진수성찬이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미쳤는가? 누가 뒈질 놈인가. 누가 죽이는 놈인가. 여기 모인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 왔다. 죽여 봤자 개 뭣도 없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그건 미국말이지. 고구려 장수와 병사들은 다 정신병 앓다 죽었게?


자기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정말 간단한 거지. 고구려 장수들은 눈동자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 쳐 찢여 죽였다. 집단적인 외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면 고구려가 존경스러워? 그들은 생과 사가 자연스러웠던 거야. 가진 게 많지도 않았어. 그들은 버리는 것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기에 벌판을 달렸고 죽였고 그러다 자신도 죽었다. 고대가 멋있는 건 바로 그거다. 지식이 쌓이고 정보가 넘치고 니미 말만 많아졌다.


입으로 접시의 아름다운 것을 우겨넣고 똥을 싼다. 먹고 싸고 죽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총으로 쏘고 칼로 조졌다. 선사시대로 돌아가면 이들이 정상이고 나머지 놈들은 생각하다 뒈질 인간들이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제정신이다. 어떨 때? 총알이 삽탄되고 대검이 빛날 때... 무섭고 양심에 찔려 거부하고 도망가면 비정상이다. 전우란 단어보다 깊다. 죽음으로 결속하여 죽이며 나아가는 일체감. 너는 형제에게 목숨을 담보 할 수 있나? 뭐 그런 상황이 별로 없지. 재산 때문에 형제를 찌르는 일은 있지만.


날 위해 언제라도 다른 놈을 죽여줄 수 있는 팀원 지역대원이라는 존재. 심지어 대신 죽을 수 있는 믿기 힘든 신뢰. 여기 숨이 붙어 서 있는 대원 한 사람보다 그 옆에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작전 끝났다고 이른바 정상이란 것으로 그들을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정상은 무엇인가. 비정상은 얼마나 남다른가. 서 있는 사람들은 냉소하고 있었다. 정상이라 믿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걸 조금 더 하고 싶다. 경계는? 각자 자기 마음이다. 누가 뭐랄 건데?


‘아직 경계를 넘지 않는 너희들이나 정상이란 것으로 돌아가...’



“산은 내 거야. 인민군 새끼들아!”


몇 명이 다가가 상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렇다고 흥분을 가라앉히려 힘을 쓰지도 않았고, 같이 흥분해서 날 뛰거나 하지 않았다. 상사는 계속 소리쳤다.


“산에 있는 것들 싸그리 죽여 버려! 산은 내 거야. 까불면 죽여!”


그때 열중에 있는 누군가 권총을 뽑아 공중에 들었다.


이성규 중령은 제지하지 않았다. 원사들도 바라만 본다.


그리고 권총 든 사람이 빵~~!!! 한 방을 공중에 날렸다.


실탄이 들어 있었다. 놀라는 사람이 없다. 킥킥댄다.


여기저기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서로 담뱃불을 붙여준다.


“아직 안 끝났어! 난 아직 안 끝났다고!”


상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거의 동시에 저기 트럭에서 스피커가 울린다.

“배식 준비 끄~~~읏!!!”


스피커 소리에 대대장 앞의 대원들이 인상을

찡그렸고, 몇 명이 푹석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아침밥 먹으러 취사차를 향해 속보로 가던 대원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밥. 산 자의 밥. 하루 세 번.


... 하나둘 씩 대원들이 시선을 산으로 돌린다.


“저 놈의 산, 나라시 해버리든가 해야지...”


카메라는 사람 어디가 중요한가? 눈. 눈... 끝났다고 숨겨졌던 눈이 이성규 중령 말에 살기등등해졌다. 눈이 무서운가. 남을 압도하고 공포로 떨게 하는 무서운 눈이 부러운가? 멋있는가?


살벌한 눈은 살벌한 삶을 사는 사람이며 자신도 살벌하게 당할 위험에 처해 사는 사람이다. 모든 존재가 날 죽일 수 있는 걸로 간주하고 그런 눈으로 본다. 칼에 찔릴 위험 속에서 사는 사람은 당신도 그 놈이 아닌가 그렇게 쳐다본다.


그러나 사람이 긴장과 공포를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런 무서운 눈을 가져야 하는 삶이 주는 건 명이 짧아지는 것 밖에 없다. 관련 없는 사람을 감정에 못 이겨 죽임에 이를 위험도 있다. 무서운 눈을 추종하지 마라. 삶이 그러해진다. 삶이 지루해 빨리 지나가길 바라거든 마트에 가서 회칼 사고 불통 튀는 표범의 심장과 눈으로 살아라. 평화롭고 싶거든 평화로운 눈을 되찾으라.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독이 오른 사람과 마찰하지 않는다. 그래야 아름다운 것들과 행복도 느낄 수 있다. 모든 위험 앞에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라. 그것이 언제나 가능해진다면, 당신은 왕이 될 것이다. 가장 무서운 폭력은, 절제되고 냉정하고 필요한 만큼만 공격하며 결코 봐주지 않는 계획된 폭력이다. 가해자 역시 냉정을 잃으면, 이제 자기가 피해자가 된다.


다만,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부처라면 부처란 단어는 없다. 분노하고 발광하고 폭발하고 남을 죽이는 일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살면 그럴듯한 짐승은 된다. 우린 평범하니까...


김중위는 세면장의 금 가고 지저분한 거울을 바라본다. 차가운 물을 양손에 담아 얼굴과 목을 문지른다. 차가워도 좋다. 머리는 여전히 산발이지만 수염을 밀고 나니 무기력해 보이고 저게 자신이라 생각하기 낯설다. 피부가 비닐처럼 얇아지고 광대뼈 튀어나온 얼굴. 멀뚱한 놈이 앞에 등장했다.


물 뚝뚝 떨어지는 자기 얼굴. 물방울이 목으로 타고 흘러내리는 걸 놔두고, 한동안 멍하니 거울 속의 그를 관찰한다. 어떤 놈이 날 쳐다보고 - 그 쳐다보는 게 기분 두러워 더욱 눈을 부라리고 - 상대는 더 험악해지며 지려하지 않고 -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저 놈. 거울 속 그가 김중위를 간파한다.


그 놈이 중위를 발가벗긴다. 꿈. 포부. 사관학교. 생도. 장교. 전쟁. 살인. 사람이란? 담거 빼 문질러. 굶주림. 피를 부르는 적성 빨간 계급장. 어느 새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자신도 무서운 광기. 칼과 총. 더 화끈하게 뭔가 부수고 싶은 충동.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주먹이 깨질 것 같다.


그 눈을 오래 거두어 볼 수가 없다. 갑자기 거울 속 사람을 죽여 버리고 싶다. 몸이 힘을 짜고 눈에는 타인... 이 사람이나 죽인 개자식이...


김중위가 거울에 찬물을 끼얹었다.


“갑자기 내가 싫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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