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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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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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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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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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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거기 판문점 2

DUMMY

이 사람과 대화하면 눈 밖에 기억 안 난다. 시선을 돌리면 공격할 것 같다. 동영상 음성을 제거하고 보면 ‘니가 죽어야 할 이유’를 언도하는 것 같다. 상대의 반응은 무시된다. 이유 없이 웃었다가 곧 표정이 굳어진다. 언성이 높아져도 눈동자 크기만 커진다. 신체는 눈을 위해 부수적으로 달린 잉여물 같다. 눈을 안 보려고 딱딱하게 주름진 미간을 보게 된다. 말하면서 손은 거의 안 쓴다. 그가 손을 움직이면 앞 사람이 좀 긴장된다.


수염 덥수룩한 입은 진지하게 중얼거린다. 조용히, 조용히.


“처음엔 없었어. 생각보다 별로네 그랬지. 우릴 몇 번 겪고 나니 머리를 안 들어. 날 쏘려고 위로 드러내면 바로 조준경에 너 거깄냐? 퓨우~~ (무엇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손동작) 걸리니까. 그래서 못 들고 엄폐해. 각개전투, 훈련처럼 하면 다 밥숟가락 놓는 거야. 총알과 마주하면 머리털 한 오라기로 안 삐져나와야 은폐엄폐가 된다. 자기는 분명히 엄폐했다고 생각하는데 총알이 때려. 엄폐물 뒤에 태아처럼 웅크려야지.”


“그런 식으로 숨어 공격을 안 해. 우리가 일어나 뛰길 기다리지. 적당한 거리면 수류탄을 던져. 그게 터지면 몸을 움츠리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려. 그래서 얼굴은 말짱한데 내장만 터지는 경우를 봤어. 그래서 전우가... 아, 전우란 말은 입에 달갑지가 않네. 우린 중대장 빼고 죄다 이름 부르니까.”


“영진이가 수류탄에 죽었을 때는 몰랐어. 순간이었고 우린 뛰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지역대 규합 후에 두 번째로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 비정규전은 순간 버릴 줄 알아야 돼. 아님 죽어. 살려면 식량 장비 탄약 병기 순으로 빨리 버려야 돼. 모든 걸 가지고 가려면 잡히거나 죽어.”


“두 번째, 이름은 말 안 할게. 얼굴이 떠오르니까. 옆 중대 얘야. 훅 터졌어. 정신 얼얼하지. 그런데 또 그거야. 얼굴은 멀쩡한데 옆구리가 터졌어. 얘는 날 쳐다보고 난 방법이 없어. 그때 말야. 내가 알았어. 내가 졸도하는구나. 정신에 필름이 끊겨. 순간 영진이를 다시 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쭉 찢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삼겹살 먹을 때 잘린, 손보다 작은 크기로 너덜너덜 찢어진 상태로 옆구리가 터졌어. 어찌, 내 정신이 끊어지면서 몸이 넘어가더라고. 총알 날아오고 수류탄 막 터지는데, 내가 어찔, 기절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진이 잠깐 보고 뛰었지만 기억이 작지 않았나 봐. 어떻게. 나무를 잡고 버텼어. 정신 차려라. 너도 죽는다... 그런 말은 이제 감이 안 와. 날 자극하는 정확한 말이 필요해. 그때 난 속으로 내 집을 생각했어. 그러자 실감이 와. 내 몸이 살아나고 정신이 돌아와. 담배라도 하나 물려주고 싶었지만 돌아서 뛰었어. 죽을 사람을 포기 안 하면 나도 거기서 죽어.”


“그 뒤로 말야. 계속 옆구리에 통증이 와. 내가 본 것과 똑같은 자리야. 지병이 됐어. 허리가 끊어지듯이 날카로운 거로 찌르는 듯 아파. 한번 아프면 아무리 참아도 억 억 내 속에서 비명이 나와. 처음에는 그 시각, 그걸 본 시간대에 컴컴하면 옆구리가 아파.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맥을 못 춰. 내가 모든 걸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인데, 시계를 보니, 그 시간이야.”


“그 시간이 되면 영진이 터진 자리가 나도 죽을 듯이 아파. 작전 중에도 왔어. 그 아픔은 목표물로 접근하는 공포보다 넘어서. 그냥 적이 날 쏴줬으면 싶어. 아니면 죄다 죽여 버리고 싶어. 비슷한 장소를 지나면 또 아파. 그러다, 그러다, 점차 매일 와. 매시간 와. 지금은 아예 지병처럼 항상 아파. 잊고 싶어도 또 와. 냄새도 있지. 그 냄새가 있어.”


“거기가 열렸을 때 나는 냄새. 화약과 함께 살이 그을려서 나는. 그 냄새 맡으면 간신히 잊으려 했던 게 다시 와. 논리적으로는 뭔지 알겠어. 하지만 못 막아. 또 와. 계속 와. 그러니 그런 컴컴한 시각에 비슷한 지형에서 누가 맞으면 난 참을 수가 없어. 드러누울 정도로 아파. ‘단장’이란 단어가 내장이 끊어진다는 말 아냐. 그거야. 끊어지는 것 같아.”


“누구에게 말할 수 없어. 너도 그런 게 오냐 묻진 않을게. 그걸 넘어선 놈은 눈에 보여. 안 겪는 놈도 있긴 있더라고. 세상은 야수가 좋은 거야. 짐승처럼 사는 게. 나중에 신의 심판에서 개작살이 나더라도 나만 생각하고 남을 가볍게 보고 막사는 게 좋아. 세상 편하지. 그런 놈들이 범죄자가 되는 거겠지만. 전장은 교도소가 없어.”


“아파 죽겠어. 이제 끝내고 싶어. 난 신도 없지 않나 의심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사후를 기약해. 귀신이 있다면 그게 인간이지 신이야? 물리적인 몸만 사라진 인간이 산 사람을 괴롭혀? 그런 거라면 죽는다고 사람이 뭐가 나아져? 계속 병신 놈이지. 차라리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게 좋겠어. 개 같아. 더러워서 못 살겠어. 내가 이 나이에 해봤자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남은 건 하나. 저놈들 다 죽이고 싶어. 살려고 기어가는 놈 쫓아가 더 찌르고 완전히 아작을 내고 싶어. 전쟁이라고 했잖아. 전쟁이라잖아. 잘 죽이는 게 군인, 잔인은 없어. 잔인도 평범해졌어. 우리 모두 야만이야. 상대를 인간이 아니게 보는데 뭐가 또 비인간적이야. 말이...”


“이 찌르고 깨지는 통증이 원래 아팠던 건 줄 알았어. 너라면 알 수 있잖아. 그치? 넌 알지. 시범 말야 시범. 어린이날 국군의 날 부근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연말 전투력측정 끝나고 갑자기 뭐야 그게? 여단에서 대대에다 툭, 대대는 우리 지역대에 툭, 땅이 얼기 시작하는데 교관은 기초훈련이라고 그 연병장 땅바닥에 낙법 계속 때리게 하고. 어차피 시범이 다다미 널빤지 없는 맨땅이라 이해는 하겠는데. 교관은 쌀쌀한 날씨에 시범하다 다친다고 낙법부터 바로잡자 이거지. 사회부터 운동 오래 해서 마이가리 싫어하고 정법 수련 좋아하는 양반.”


“그 언 땅에 측방과 회전은 그런대로 하겠는데 전방과 후방은 죽음이지. 특히 후방. 지역대 교관 김중사님이 공중에 니은 자로 완전히 붕 떠서 후방 오리지널로 때리라고 계속~ 계속~ 후방 앗!! 후방~ 앗! 끝도 없이. 양팔 어깨선 척추 깨지는 줄 알았네. 퍽! 퍽! 퍽! 때리고 뒤로 굴러 일어나면 몸이 병신 좀비에 오슬오슬 죽을 거 같고. 무슨 중화인민공화국 군대 시범이야? 것도, 맨손으로 때리니 손바닥도 아파 터질라 하고. 침낭에 파스 멘소래담 냄새 진동하고, 그렇게 3일을 때리니 드디어 시범 준비에 들어간다네.”


“그 뒤로 척추 중간이 부어오르고 옆구리 통증이 오래도록 왔지. 시범 끝나고 크리스마스가 오는 대도 누울 때 죽어. 참 그래 응? 군대가 시범으로 죽이는 거 같애. 근데 너... 너 얼굴 아오끼 신야 닮았다.“


이유 모르게 더 차가워지는 공기, 남자의 손과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에서 중요한 건, 끊어졌다는 거야. 옆구리 이 지긋지긋한 통증과 난도질 같은 이 찌름이 날 가로막아. 내 앞과 뒤를 잘라. 현재라는 중간밖에 없어. 내가 변했다는 말이 아냐. 흐름에서 한 단락이 끝난 거지. 내가 가졌던 희망, 이상, 성령 그 모든 게 분리됐어. 남의 것인 게야. 분리, 작살났어. 난 내가 아냐, 하지만 나야. 부정할 수가 없어.”


“난 나이면서 내가 아냐. 얼마나 개 같은 줄 알아! 꿈은 원래부터 안 오는 거야. 바라고 바라봤자 모두 환상임을 깨달은 거야. 사람은 깨달으면 안 돼. 그저 모르는 척 죽을 때까지 밀고 가야 돼. 세상은 아는 게 아냐. 세상을 알면 절대로 안 돼. 그냥 살아야 해. 그냥 살아도 비극이야...”


“어차피 없었던 거야. 오지도 않을 거면서 희망을 품게 만들어. 희망을 품은 만큼 비극이 와. 절대로 끊이지 않아, 수도 없이 새로 일어나서 나에게 계속 투척해. 누구도 못 피해. 세상은 운이야. 운이 좋아야 행복이 생겨. 행복이 올 거라고 맹신하면서 그냥 사는 것도 좋지. 인간이 야망을 품어봤자 트럼프 아니면 시진핑이야.”


“얼마나 웃겨. 독재자 흉내나 내면서 남이 뺏아갈까 봐 좌불안석. 그게 인간 중에 가장 뛰어난 거야? 진정으로 세계 기아 해결과 평화와 지구공동체를 내세우는 놈은 없나? 우리가 바라던 힘과 권력은 죄다 자기 욕망이야. 그러면서 시진핑 그 가진 자의 거만한 면상 봐. 나보다 더 높은 놈 없다며 무척 거만하고 딱딱하지. 뭣도 아니지만 니들보다는 크다 그거야. 어차피 하는 짓은 중국이 최고로 얍실한데, 폼은 공자처럼 연기해. 욕망처럼 얍실한 표정으로 해보라고! 어떤 독재자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했어? 저 나라는 모자란 종족이다, 죽여야 한다, 이런 거. 여기까지 아군이다. 아군끼리만 잘 먹고 살자. 바로 그것으로부터 살인의 단초는 시작되는 거야. 그렇게 내 이 손도 피로 물들고.”


남자는 손을 내린다. 상대의 가슴에 얹는다.


“처음이야? 처음이었어?”


손을 상대의 가슴에 얹는다.


“미안하다. 번호를 줄 수가 없어. 원래 줬거든. 까먹었어. 길어져서.”


“몸에 두 발 쏘고 확인사살처럼 머리에 한 발 넣는 걸 모잠비크 드릴이라고 하지. 요즘은 거의 정석의 개인 전술. 하지만 꼭 가르쳐줄 필요가 없어. 겪어 보면 자동이야. 그렇게 돼. 일부러 훈련 안 시켜도 그렇게 돼...


한 발 쐈어. 몸통에 들어가는 거 봤고 분명히 맞았어! 사실, 더 안 쏴도 돼. 전사자보다 부상자가 적 부대에 더 피해를 입히고 가동성을 떨어트린다는 뜻은 별개야. 그냥 무의식적으로 세 발 쏘게 돼. 대담한 놈은 다가가서 원하는 부위에 딱 한 발 쏘고, 안 그래도 보통은 두 발 정도 쏴. 즉, 내가 사람을 보낸다고 하면 평균적으로 세 발이야. 내가 먼저 쏴서 맞췄을 때를 말하는 거야.


사람이 금방 안 죽기도 하지만, 딱히 그렇게 과학적인 것이 아니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돼. 그러니 내 탄창에 25발이 들어 있으면, 8명을 쓰러트렸으면 탄창을 갈아야 한다는 계산까지 들더라고. 물론, 내가 몇이나 쓰러트렸는지 알 정도 되면 경험 많이 하고 차분한 사람이지. 대게는 몇을 쓰러트렸는지 몇 발 정도 쐈는지 논리회로가 작동이 안 돼. 처음에는 탄창이 뭐 이렇게 빨리 비지? 내가 한 탄창 벌써 다 쐈나? 그 생각만 맨날 들어. 그러다 점차 조절이 되지. 세 발을 넣으면 이제 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몸이 알아서 가. 세 발 이상은 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지!


총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탄창 잠깐 빼서 확인한다는 것도 그렇고. 탄창 교체를 맘속으로 준비하는 것과 갑자기 만나는 건 달라. 다만, 그 어설픈 중간 시간에 내가 맞지 않길 바랄 뿐이야. 능히 그럴 시간이 되거든. 총격전 모든 행동에서 방아쇠 당겨 쏘는 시간이 가장 짧아. 조준과 탄창 교체 및 기타 확인이 더 길어. 쏘는 시간은 사격 행위 중 찰나야. 그 찰나를 위해서 실탄도 재장전하고 쏘는 연습도 하는 거지.


25발에 8명? 30발에 9명?


적이 수량 조절하면 병력 보내나?


그래서 수류탄부터 던지란 거야. 나의 한 탄창으로 감당 못 할 숫자가 나에게 달려들까 봐. 세 발 쐈으면 그건 쳐다보지도 마. 끝난 거야. 오죽하면 병사들이 머리를 조준해 쏘겠냐. 경제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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