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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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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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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피양의 숙취 2

DUMMY

피양의 숙취




젊은 북한사람이 한 명 지나가는데 인민군복을 입고 있다. 수용시설에서 취조반 면담을 받고 귀향증을 받은 군인 같은데, 마땅히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냥 군복을 입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북한 땅 어디가나 요즘 많이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여긴 평양이다. 어그러져 보인다. 그를 보게 된 것은 여전히 군복에 붙어 있는 것들 때문이다. 무리는 인상을 깊게 찡그리면서 호주머니에서 손을 뺀다.


“뭔데 아직 계급장을 안 떼고 달아!”


“지금이 작전 중이면 쟈는... 안 그래?”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경무나 보위 아니지?”


“륙군. 보직은 몰라도.”


“피양에서 주간에 저러고 대로를 활보해?”


“아군 존나게 죽이고 구라 까서 나온 놈 아냐?”


말을 들었는지 모르나 그 사람은 무리를 힐끗 보더니 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멀어진다.


“잡아다 함 물어봐? 부대랑 보직?”


“관둬라...”


“우리 트라우마에 심각하게 도전하는데 말입니다.”


“내비 둬. 괜한 사람 오해할라. 군인이 전투 안 했겠냐?”


“지금 밤이면...”


“군관 아니라 봐준다...”


“가자, 낮에 조심해. 군법 있다. 이제 군법이.”



"저기 천리마 동상 있거든. 7여단에 세워놓으면 딱이지."



“폭파! 저 동상은 얼마나 들겠냐?”


“재질을 가서 봐야 알지요.”


“뭐가 저렇게 크고 높아.”


“저거 공구리 꽉 채우는 거 아냐.”


“안 채우면, 바람에 넘어가게?”


“저런 건 일정하게 흔들려야 안전한 거라고.”


“그럼 80파운드면 되지 않씀?”


“뭔 80파운드야.”


“생각 좀 해라. 30이면 된다. 저게 뭔 80.”


“위에 날리고 승전기념비로 리모델링해.”


“올라가는 건 니가 해라. 고등산악 교관.”


“저길 뭐 하러 올라. 상 줘?”


“날려야 돼. 저거 보고 주민들 또 헤까닥 한다.”


“맞는 말임. 적의 정신병이 진짜 적이다.”


“세계 5대 종교 안에 들었을 거야.”


“누가 믿겠냐.”


“이제 우리도 6.25 할아버지 되는 거야? 이제 이해가 간다. 늙어서 태극기 박힌 모자 써도 애들이 관심도 없겠지? 그 어르신들 다 돌아가셨겠지만, 불쌍하다.”


“그럼, 전우 죽는 거 무수히 보고 생존한 분들인 거지...”


“그만 해라이 새꺄. 어디서 감상 따위냐.”



이들은 면도도 깔끔한 그저 즐거운 청년들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틈에 다른 사람은 끼어들기 힘들다. 이 무리가 억지로 뭉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서로를 금방 알아봤다. 이들 서로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 감출 수 없는 것은 서로의 눈을 보고 알았고, 악수를 하면서 손으로 정확히 확인했다.


손을 만지면 안다.


이들이 서로 알아본 순간은... 인사와 기수를 묻고 선후배를 구분짓는 통성명이 끝나고 공기 기운이 식을 무렵이었다. 어느 순간 가면은 벗겨지고 이들 특유의


'인사 했으니까 고참 졸병 됐고...'


허례허식 같은 것이 사라지자 갑자기 훅~ 냉기 같은 것이 돌았다. 그중에 덜 물든 사람들은 어정쩡한 기운을 느꼈고, 그때 그 공기를 만든 중심인물들이 서로를 알아봤다. 한둘의 밥숟가락을 놓게 한 죽인 눈이 아니다. 눈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풍긴다.


사람을 바라보는 얼굴에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멀리서 총으로 쏴서 여럿을 죽였다고 이런 동공이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기 눈과 같은 눈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벌거벗겨진 기분이 싫었다.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런 눈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뜨거운 붉은 액체의 냄새를 맡고 갈등했다. 그러나 같은 걸 겪은 같은 사령부 기수란 걸 깨닫고는 공들여 기운을 풀었다. 이 무리의 두목처럼 된 사람은... 그러면서 가장 고참인 사람은... 겉치레 미소가 가실 때 동공에서 파르스름한 기운을 뿜는다.


이들은 그것에 잠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웃고 떠든다.


'소리.'


'소리...'


'사람이 당해서 죽을 때 짐승소리 비슷한 걸 내지.'


'그게 그 사람이야.'


'그렇지!'


'푸르륵 푸르륵 입에서 거품 빠지는 소리?'



저 멀리 커다란 건물 앞의 식장으로 향하는데, 높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헌병 완장을 찬 경계병이 검문을 하고 있다. 군악대도 의장대도 있고 행사는 꽤 크게 치러지는 것 같다. 군악대 튜닝하는 소리가 부조리한 분위기를 낸다. 열 명 무리가 오자 위병이 저 쪽 라인으로 차례를 기다려 식장에 입장한다고 알린다.


그렇다. 아직도 어디서 무슨 여파가 터질지, 어떤 또라이가 이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테러를 저지를지 모른다. 그런 일은 북한 땅 여러 군데서 일어났고, 아직도 군용차량들은 실탄 삽탄하고 다닌다.


머리가 잘린 도마뱀 꼬리들이 아직도 꼬리 근육에 의지해 발광한다.


꼭 군발이가 아니더라도, 지역 건달패거리 같은 놈들이 어렵지 않게 습득한 권총 같은 걸로 협박하거나 도둑질하는 일이 벌어진다. 헌병들도 실탄 휴대하고 돌아다니고, 치안을 위해 올라온 경찰들이 소총을 들고 다니는데, 어떤 경찰들은 군용 기관총도 가지고 다녔다. 현재 이 땅에 아군 것이든 여기 것이든 총과 폭발물이 넘친다. 경찰은 잘 모르는 곳에 갈 경우 군에 지원요청을 한다.


10명 무리는 기분 과히 좋지 않았다. 군복 입은 사람을 못 믿는다고 검문 하다니. 씁쓸하다. 무리의 복장은 육군 전투복에 보병 베레모를 썼다. 사령부 원사가 이거는 아니다 싶어 계급장과 사령부 사자 흉장을 가져다 달아주었다. 윙 같은 것도 없으니 마치 부후생들처럼 보인다. 수훈자들은 킥킥거리며 웃고 재미있어했다. 자기 여단 마크 꼭 달아야 한다 그런 거 없다. 없는 걸 어쩌나. 원래 베레모와 여단 마크는 그들이 실제로 했던 것과 꼭 결부되지도 않아 보인다.


계급장도 어떤 마크도 군번줄도 베레모도 없이 전쟁을 버텼다. 계급도 무의미했다. 얼치기 달기는 했으나, 그래도 맨 처음 소속이었던 사자 마크는 뭐랄까 미워할 수 없는 흉장이다. ‘나 사령부 같냐?’ ‘그토록 바라던 교육단 근무가 시작되는 거여?’ 농담도 건넸다.


각 여단에서 전시 개인 후송물품은 아직 올라오지도 않았고, 과연 베레모 포함해 개인물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형 군 지사라 해도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다. 모든 건 전투를 지원으로 돌아갔고, 그 외 잡다한 건 신경 쓰지 않고 무관심하게 처리하곤 했다. 월북 전에 정리했던 개인관물을 각 여단들이 운송한다고 해도 애매하다. 모든 개인관물을 가지고 와봤자 정작 수령할 사람은 제대별로 진짜 많아야 20% 될까 말까 한다. 그걸 생존자만 확인하고 선별해서 가져온다는 것 역시 애매하다. 전사자 것은 유가족에게 전달해야 한다. 생존자가 적으니 그 작업이 더욱 복잡한데다, 전사를 확신할 수 없는 실종자가 많다.


현재, 여단의 반 이상이 평양 이북과 신의주 압록강 근처로 올라가 임시주둔을 시작했고, 아직 경계태세가 풀린 것도 아니다. 교육단의 교육체계가 정상이 아니라서 완전히 교육을 받지 않은 하사들이 일단 배치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사회에 지원할 사람이 없다... 모병관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으나 열열이 군인이 되고자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고등학생 외에 거의 없다.


세간의 소문은 무서웠다. 어디서 시작되어서 소문이 퍼졌는지, 저기 가면 어떻게 된다더라 말이 돈다. 사령부나 여단본부 어느 입에서 퍼져나갔을 거라 모두 생각한다. 전쟁 직후 제대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막을 수도 없다. 국방부는 모든 부대의 전상현황을 현재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저 멀리 대형 태극기가 날린다. 건물들 크기 때문에 웬만한 깃발을 걸어서는 티도 안 난다. 대책 없이 무조건 크게만 지었고, 깃발도 아주 큰 것을 걸어야 외관과 어울린다. 크게만 지은 이 건물들은 밤에 잘 때 춥다. 스팀 난방도 일부만 되고 낮에는 창가만 따뜻하다. 방마다 난로를 써야 하는 그런 건물들. 하지만 동토가 되었을 때 여긴 바람만 피해도 장땡 같다.


열 명 앞이 줄어들면서 결국 헌병 개찰구 같은 곳을 만났다. 헌병 완장을 차고 있지만 진짜 헌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의 의심대로 키가 별로 크지 않다.


“모두 신분증 보여 주십시오.”


“어? 나 신분증 없는데!”


위병이 막아서고 신분증과 개인별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


“그럼 못 들어가십시다.”


“신분증 있어봤자 임시 쪼가리야 우린.”


“우리 훈장 수여자야. 명단 있을 건데.”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무전기나 관계자 불러서 확인해 봐.”


“제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몸수색까지 해야 돼?”


“그렇게 되어 있는 걸 어쩝니까.”



“그냥 편하게 편하게 하시자고.”


“그래도 몸 수색은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냥 돌아가?”


“안 됩니다. 못 들어갑니다.”


“참모총장한테 훈장 받아야 하는데 책임 질 거야?”


“거 틱틱 그렇게 말하지 마십쇼. 중사면 답니까?”


숙취가 확 달아났다. 시선이 모두, 여태까지 말이 한 마디 없었던 고참 중사에게로 향한다. 고참 역시 인상만 약간 찌푸릴 뿐 방법이 없다.


“반말해서 기분이 상했나? 미안하고. 우리 상 받으러 왔어.”


“상이건 뭐건 누가 누구를 믿습니까, 여기서.”


“아니 그럼 우리더러 어떡하라고. 신분증 남에 두고 왔어.”


완장을 찬 병사는 기분이 상한 것이 역역했다.


“그럼 몸 수색이라도 받으셔야지.”


어색하고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그때 무리 중에 있던 한 명이 정색을 했다.


“어이, 말 맞네. 중사라고 다는 아니지. 헌데 우리가 말야, 살다 보니 어렵게 어렵게 여기 왔고, 일부러 여기 좋아서 온 것도 아니고, 가라 그래서 온 건데, 좀 봐주면 안 되나? 응? 그냥 돌아가도 우리 상관없어. 여기서 군복 입고 사기 치는 사람이 있을까봐? 몸수색까지 하라고? 이건 좀 아니지.”


하지만 검색하는 병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뒤에 있던 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온다.


“협박? 우린 협박 없어. 말이 뭔 필요야.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이셔? 거 정말 불쾌하네. 이 광장에서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내가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거지? 그건 당신 생각이야. 뒤지는 놈은 뒤지고 나서의 일까지 상상할 필요가 없어. 훈장 같은 거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야. 저길 봐. 저 동상이 인생에서 마지막 보는 장면이 될지는 지금 본인이 결정하는 거다. 내 눈 봐. 서로 승부는 거는 거야잉? 총에 총알 들었어? 내 면상에 쏴. 당신 탓 안 할 테니까 쏴. 자, 10초. 안 쏘면 10초 뒤는 내 차례다. 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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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양의 숙취 2 24.04.01 151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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