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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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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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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Curtain Call 8

DUMMY

이중령에게 가장 가깝게 붙은 중대장이 대대장 눈을 본다.


“오형묵 중삽니다.”


이중령은 달려간다. 쓰러진 적 열 명, 그 맨 앞에 오중사가 쓰러져 있었다. 마르고 기다란 키, 드러난 손목 위쪽의 연청색 만자(卍字) 문신. 해당 지역대장이 오중사를 붙잡고 있다. 대대장에게 돌린 지역대장의 눈은 가망이 없음을 말하고, 대대장은 몸을 굽혀 오중사의 눈을 본다.


‘이게 진짜야?...’


감정 없는 투명한 그 눈, 그 상태로 오중사는 숨을 거둬 있었다.



대대장이 도착하기 2분 전. 오중사는 후임이었던 대대 상사에게 말했다.


“울지 마라 마... 쪽팔리구로. 니는 인생 모지리나?”


“그만하고 정신 차릴 생각 하십쇼.”


“남쪽 가도 쓰일 데 읍따... 인자 내그튼 사람... 사람 하마 쥐기다 남으로 가면 뭘 하겠노? 후...... 적당하다이가... 인가이 이래 지랄하다 간다.”



모든 대원들이 서거나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일대가 얼음처럼 얼어붙어 긴장감이 사람 압사시킬 것 같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현실. 누구나 죽는다. 강한 자도 죽고 약한 자도 죽는다. 그러나 하필이면 마지막 날. 아, 저 사람...


이중령은 떠올린다.


오형묵이란 젊은이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을...



‘오형묵이! 그 투명한 눈에 지금 뭐가 보이나? 뭐 있어? 있으면 거기서도 하리마오 먹어라. 니 나한테 왜 이러니... 여기서 남이 듣도록 입 열지 않겠다. 그건 너의 격식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서글프다. 어떻게 어떻게 다 왔는데 이게 뭐야... 수고했다 . 오형묵 귀소의 인생!’


이성규 중령은 태어나 처음 사자(死者)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렇게 부드러웠나.'


시선을 드니 대원들이 모두 집중하고 있다. 대대원들은 ‘너무’ 고참인 대대 장군중사를 바라본다. 예전에 진급 못하고 짬밥 높은 하사를 영내의 왕 장군하사라 불렀다. 먼저 진급한 기수후배 중사들이 가장 껄끄럽고 무서워했던 장군하사. 하지만 장기자 장군중사는 대체 어느 여단에 또 있을까. 짬밥이 있는 부사관들은 의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대대장과 오중사 사이에 자신들이 모르는 사연이 있나?... 이중령은 오중사 시신 후송을 준비시키고 일어서 고개를 든다. 사방이 밝아온다. 아직 겨울이 아니라고 태양은 도도하다. 곧 서리들이 녹을 것 같다.


‘하느님. 순서가 너무 안 좋습니다. 내가 빠른데...’



대원 하나가 발로 종이박스를 걷어찬다.


“새끼들아... 결국 보급투쟁이었냐!”


북한군이 트럭을 공격해 들고 올라오던 것, 대원이 종이박스를 걷어차자 그 안의 것들이 종이박스를 뚫고 나왔다. 통조림이었다. 꽁치. 군용 꽁치.


아무도 통조림에 손대지 않았다.



북한군 잔당 소탕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일대에서 작전했던 사람들은 전사자 실종자를 수색했다. 다섯 명이 완전무장하고 사단 영현중대와 함께 섹터 전사/실종자를 찾으러 갔다. 그렇게 상당수 시신을 수습했는데, 실종자는 적에게 추격당하다 은밀한 지형으로 숨어드는 경우가 많아 발견하기 힘들었다.


온 산을 다 뒤질 수는 없다. 시신들은 부패되어 생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고, 어떤 시신들은 북한군복을 입고 있어 아군인지 적군인지 판가름을 못했다. 사단 영현반은 DNA 추출이 가능한 시신 일부를 채취하고 위치를 기록했다. 포격을 받은 은거지는 누가 누군지 어떤 사람 뼈인지 알 수 없어 DNA만 채취하고 매장했다. 동물이 뜯어 먹고 구더기와 벌레가 파먹은 형상은 참혹했다.


그런 시신들을 수습해 들고 내려오는 대원들은 구슬펐다. 시신이 너무 가벼워서... 브레히트의 ‘어머니’라는 시 시구처럼, ‘이렇게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신원확인이 힘들었지만, 더욱 숙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한 시신이 경사면 수풀 속에 쓰러져 있다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혼자였고... 머리 뒷부분이 터져 있었다. 입 주변에 화상과 그으름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지만, 혼자 포위된 상태에서 북한 군사용어로 ‘자총’한 것 같았다.


앉은 자세에서 총구를 입에 물고... 양손은 받들어 총 자세와 같이 굳어 있었다. 총과 장구는 북한군이 벗겨갔는데, 자총하기 전에 이미 다리와 어깨에 총알을 맞은 것 같았다. 입에 총구를 물고 자총했는데 설마 시신에 총을 쏘진 않았을 테니까. 입은 벌어져 마치 해상훈련에서 초과호흡 숨을 참다가 수면으로 올라와 거칠게 첫 호흡을 들이마시는 장면 같았다.


시신 냄새는 오래 간다... 코도 옷도 그 어디에도 오래 달라붙는다. 하지만 이건 약과다. 실내의 사체는 냄새로 산 사람을 반 죽인다.


얼굴 살이 뜯겨 나가고 눈도 무엇이 파먹어 먹물을 들인 듯했다. 처음 발견한 병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서리가 흔들며 지나갔다. 시신은 느낌이나 자세가 결연했다. 포로가 되는 걸 막고 싶었는가? 지역대 얼마나 남았다고, 뭐 대단한 정보가 있다고... 영현반은 신상을 파악할 증거를 물색하다 결국 상의를 열어 살폈고, 좀 막연한 주기를 발견했다. 아마도 별명인 것 같았고, 영현반은 시신 운반백과 태그에 ‘X특전여단 강가딘’이라 적었다. 영현중대 병사가 떠나기 전에 손목의 염주를 풀어 안식의 기도를 올렸다.


‘속세의 아픔과 슬픔을 잊고 극락왕생 하소서. 여기 내가 당신을 애도하나니...’



We come on the Sloop John B.

My grandfather and me,

Around Nassau town we did roam.

Drinking all night,

Got into a fight.

Well I feel so broke up...

I want to go home

I want to go home


[The Beach Boys - Sloop John B. 1966.]



“산 사람 세는 게 빠르네.”


“넘어가서 보름 이상 길어지면 일어날 일이었어.”


“이 전쟁이 왜 이렇게 길어진 걸까요?”


“중국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좀 사는 나라들은 작두 탔지 씨버럴.”


“왜요?”


“우리만 아작 나니까. 세계 경제력 12위가 비었는데, 그 틈에 끼워먹고 팔아먹을 놈들이 어디 한둘이야? 가까운 일본과 중국이 가만히 앉아 가장 많이 받아 쳐! 먹었지. 일본은 한반도 다 부서져서 침략할 꿈꾸고. 중국은 뒤꾸녕으로 보급품 대면서 챙길 거 챙기고. 중재 항복 평화회담 믿는 우린 망한 거야. 시간끌기지."


"정치."


"시작했으면 피도 눈물도 없이 밀고 올라가 압록강에서 중국 겁 한번 줬어야 돼. 물자 제공했다 빌미를 잡아 중국을 쳐들어가겠다 구라를 쳐야 돼. 똑같아. 중국과 일본이 전쟁하면 우리가 돈 버는 거야."


외교적 정치.


"니뽄 이 새끼들은 우리 똥두깐 밑에서 입대고 세 번째 금똥을 받아 처먹었지. 6.25와 월남전 특수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발전도 못했을 걸? 위에서 시체가 쌓이고 사람들이 피눈물을 삼키는데, 더러운 똥두깐 냄새도 친절히 예절바르게 참으며 더러운 아가리를 벌렸지. 천천히 오래 죽어라. 돈 좀 더 벌게. 피도 눈물도 없어... 그렇게 해야 부자가 되는 거라고.”


“그러나 이제 우린 어쩝니까.”


“전쟁이 길어져서 모든 피해는 남한이야. 전비 들어가, 수출 못해, 세워놓은 거 부서져. 충격적인 기하급수적 적자의 시작이야. 이기면 뭐해. 이제 그걸 까 나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북한은 무조건 끄는 거야. 당연히 탁자에 우리가 나올 거라 예상했고. 그 끌기에 북한주민과 북한군 몸뚱아리들이 중간에서 마모제로 사용된 거지.”


“북한주민을 위해서라도 더 빨리 끝내야했습니다.”


“그거 알어? 탈북민 여성들 납치되는 거?”


“납치요?”


“국경에 살던 주민한테 들었어. 전쟁 전에... 국경에 사는 조선족들이 압록강가에서 밤에 기다렸다가 넘어오는 탈북 북한여성들을 잡아 중국인들에게 팔았단다. 조선족이든 누구든 어디 가나 그런 놈들 꼭 있지. 믿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오지로 팔려간 탈북여성이 30만 명이래. 1/3만 해도 10만 명이라는 거 아냐. 브로커들이 속여서 인신매매도 시키고, 남에서 송금한 돈 떼어 먹고. 거기 팔려갔다가 탈출하면 중국남편 온 집안이 나서 일대 도로를 차단해 악랄하게 수색하고 잡히면 발가락을 자른대. 문제는 꼭 아내로만 팔리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거야. 그거 데려올 수 있을까?”


“공개처형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그때 이후로 많이 늘었지 아마.”


“지역마다 다른데, 처형장에 나오기 전에 무릎을 꺾어서 몸 채로 들고 온 답니다. 뛰지 못하게 무릎 병신을 만들어 데리고 오는 거죠. 손을 뒤로 묶는데, 얼굴은 입만 가리고 눈을 놔둔답니다. 입은 반혁명 언사를 할까봐 재갈을 물리는 거죠. 사격자들이 술 먹고 나와서 쏘는데, 쏘기 전에 집행되는 사람 눈에서 광채와 같은 인광이 나온대요. 그거 보면 사격자들 죽을 때까지 못 잊는 답니다. 그런 총살을 초등학교 애들까지 보여줬다는 겁니다. 머리 터지고 그러는 거를... 어린학생들은 맨 앞줄에 앉힌대요. 10미터 앞에서도 그걸 봐야하는 거죠. 흐...”


“이제... 평화가 오는 거야?”


“정치인과 건설업자들이 오겠죠 뭐.”


“그나저나 여기는...”


“어릴 적 저~기 산골 시골 외할아버지네 같습니다. 어디 가나.”


“이거보다는 잘 살았다.”



I want to go home

I want to go home

I want to go home



어쩌면 우린 육군이면서도 육군을 몰랐다. 우린 우리 상황에 딱히 누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한다. 안 했다. 하지만 육군의 그 어떤 부대라도 1/3 정도가 죽거나 다친다면 그건 지휘관 보직해임이다. 중대 레벨이라면 전술적 국소적으로 봐줄 수 있다고 쳐도, 대대부터는 그런 극심한 피해를 입었을 때 지휘관은 견장을 떼일 수 있다.


우린 아무도 보직해임되지 않는다. 우리는 전사가 반이 넘었지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어떤 부대는 피해를 떠나 생존이 10-20%였지만. 사령관과 여단장들은 현장에 올 수 없었고, 어쩌면 이런 극심한 피해는 예정된 것이었다. 우


리도 알고 여단장도, 사실, 알았다. 사령관과 여단장은 부대원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훈련시키고 장비시켰으며, 전시작계를 어떻게 꼼꼼하게 작성했는가의 책임 밖에 없다. 그렇다. 우린 육군을 알면서도 몰랐다.


“마, 진짜 70년대 기록 필름 보는 거 같다.”


트럭들이 남으로 달린다. 60년 넘게 존재했다 이제 사라져가는 나라의 수도를 향해 바퀴가 구른다. 도로 사정이 엉망이라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개성 서울보다야 가깝다. 도로 곳곳에 폭격 포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드러나 있지만, 그것보다 대원들 눈길을 더 끄는 것은, 평양 북쪽 농촌과 도시를 지나면서 보는 낙후함.


남한은 부서질까 노심초사하는 게 한두 개 아니었지만, 여긴 부숴도 뭐 크게 가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옛날 남쪽의 새마을운동 초기 사진보다 딱히 나아보이지 않는다. 길가에 남한 가로수 같은 나무조차 없고 산도 헐벗었다.


“와, 아직도 화목을 존나게 해다 때나 봐...”


이제 풀들이 초록을 잃고 갈색으로 변해가는 계절. 수목이 없다면 가옥들이 제법 쓸 만하고 조경이 좋아야 하는데, 밭과 풀 밖에 없다. 여기 사람들이 어떤 걸 먹고 싸는지 알겠다. 전술적으로 중요 지역을 지나면 어김없이 북한군 탱크가 그을어 궤도가 이탈하고 뭐에 맞아 서 있고, 시신들은 치워졌지만 얻어맞은 야포와 트럭들이 흉물스럽다. 저런 은폐 엄폐물도 없는 곳에서 보병과 기갑은 어떻게 전투를 치렀는지...


‘폭격이지. 얼굴 보기도 전에 아작이 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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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K-7 Deuce 4 24.03.11 140 3 12쪽
357 K-7 Deuce 3 24.03.04 168 6 12쪽
356 K-7 Deuce 2 24.02.26 276 4 14쪽
355 K-7 Deuce 1 24.02.19 205 6 12쪽
354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2 +2 24.02.05 231 6 15쪽
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89 6 16쪽
352 Curtain Call 9 24.01.22 201 9 16쪽
» Curtain Call 8 24.01.15 201 4 13쪽
350 Curtain Call 7 +2 24.01.08 206 8 12쪽
349 Curtain Call 6 23.12.18 332 7 12쪽
348 Curtain Call 5 23.12.11 23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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