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연재수 :
364 회
조회수 :
217,801
추천수 :
6,775
글자수 :
1,993,819

작성
24.03.25 12:00
조회
150
추천
8
글자
12쪽

피양의 숙취 1

DUMMY

피양의 숙취



이제, 마지막 커튼이 내려온다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모든 길을 갈아타며 내 길을 갔어


후회도 할 말도 거의 없어

딱히 헌신하며 산 건 아냐

매번의 길에서 난 조심스러웠지

그렇게 난 내 길을 갔어


생각해 봐. 난 고양이를 죽였어

그러면서 이건 아냐, 말했었지

그렇게 길을 갔다고


이런 개차반 같은 놈...

불가능한 것을 원했고 또 쟁취했어

진심으로 생각하고 말을 해 봐

하지만 말은 말일 뿐이야


느낌보다는 기록이 말해줄 거야

난 알몸으로 태어나 알몸으로...

내 길을 갔어


- Sid Vicious. My Way. 1964



“확실히 여긴 개털모자가 필요해.”


깨질 것 같은 상고머리가 휑한 찬바람과 충돌한다.


몸이 한줌으로 쪼그라든 것 같은 폭음의 여파로 맞은 아침. 술병과 알코올들이 모든 근육을 흡수해 가져가버린 듯하다. 쪼그라든 위장 때문에 버클은 훨씬 더 칸이 남고 허리가 앞으로 굽는다. 몇 시간 자지 못했고 군대 행사는 아침.


이른 아침이 시차에 맞지 않는다. 시차가 다른 곳에 온 것이 아니라 항상 밤에 움직이고 여명에 눈을 감았던 까닭이다. 숙취로 속에 무엇을 넣을 엄두가 나지 않고, 그저 된장 국물 한 컵 정도면 충분하다. 이 시간에 뭘 먹은 것도 오래 전이다. 무거운 얼굴로 몇 술 뜨고 모두 일어섰다. 그래도 아름답다. 그 향이... 그 향은 ‘안전’을 내포했다. 군대 똥국.


전날,


위로의 밤 저녁식탁에서 광적인 음주가 이어졌고, 끊임없는 원샷과 노래와 군가, 몇몇은 만취해 살기를 띄며 폭력적으로 변했다. 주최한 사람들은 놀라 연회장 가장자리로 물러났지만, 그걸 보는 동료들은 말리려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봤다. 본인들 기가 꺾여 끝낼 때까지 무관심하게 놔두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발광하던 사람들은 멍한 눈으로 벽에 기대어 멈춰, 그렇게 새벽, 위로의 밤은 끝났다.


군인 열 명은 호텔도 관공서도 아닌 건물에서 밖으로 나섰고, 곧 동토로 변할 암시처럼 바람은 남쪽보다 날카롭게 불어온다. 큰 사각형 건물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지어져 있고 그 중간 광장들이 죄다 넓어 어디 바람 막을 곳이 없다. 건물을 돌아 나오는 바람이 거세다. 확실히 같은 날짜 이남과 다르다.


상징적이었던 이 곳. 북한이 카메라를 가장 많이 노출시킨 곳. 하전사들이 정사각형으로 어깨를 붙이고 행진하며 턱을 저 높이 들어 경례를 하던 곳. 영상은 이질감이자 공포였고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는 광적인 힘으로 보였다. 그래도 북에서 보여줄 것이 가장 많은 도시였다. 나머지 도시들은 치아가 나도 엄청 난다.


세계는 북한을 이 도시 이미지로 기억한다. 여기에도 족히 50년은 되었을 차량들이 돌아다녔다. 서양인 카메라에 찍혀도 이상함을 몰랐다. 바깥 세계를 모르니 비교도 없어 당당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노동당원을 가부장으로 둔 사람들이라 당당하고 명예롭게 생각했다.


북조선 최고의 영예로운 도시에서 가장 풍족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조선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압록강과 두만강 근처에서 무역과 밀거래를 하는 이른바 ‘돈주’들이었다.


같은 북한이지만 평양사람들은 다른 동네 엄청 차별했다. 특히 평양 아파트나 건물 공사 인부로 끌려온 노동 돌격대들은 차별도 차별이거니와 일이 고통스러워 자해하고 도주했다. 기계를 전혀 쓰지 않고 인력으로 건축하며, 모든 물품을 고층 건축장에 사람이 지어올린다. 고층 내벽은 남한처럼 콘크리트를 붓는 게 아니라 20kg 블로크 벽돌을 주로 썼고, 그 블로크 2개를 하루 종일 수십 층 위로 지어올려야 한다. 비계가 남한보다 허술해 떨어져 죽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북에서 17세 이상 청년들이 그래도 군대를 가려 하는 이유는, 군대를 안 가면 그런 돌격대로 가서 7-10년 노동만 죽도록 하고 입당이 거의 불가하다. 군대 입대해서 입당하고 정치대학이나 군관학교에 가는 것이 북한에서 밑바닥 인생 기본적인 처세의 희망이다.


입대한다고 모두 입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제대 후에 몇 달 뒤 심사를 거쳐 노동당원이 될 수 있는데, 엘리트부대나 저격 경보 등 특수전부대는 거의 다 입당된다. 북한은 뇌물 천국이었고, 군대에서도 당증 획득에 입김이 큰 정치장교 정훈장교에게 상납은 기본이었다. 군대도 못 가는 돌격대는 북한의 하층민이라는 신분과 같고, 입대 부적격자와 학원(고아원) 구호소 등에서 강제로 차출해 죽도록 일을 시킨다. 이 평양은 그렇게 지어졌다.


이제 이 수도는 부서진 폭격의 현장. 공병장비들이 부산히 큰 것들을 치웠지만, 그래도 깨지고 그을린 화재의 현장이 곳곳에 보인다. 이제 누가 누구 감시하는 것이 사라졌다. 감시할 사람과 체계가 없어졌다.


아무리 봐도 이 도시를 이제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난감하다. 겉은 허울이고 북한 건설의 열악함으로 높게만 지었다. 지구상 이렇게 콘크리트 바닥으로 너른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외에는 이런 도시가 없다. 군사 퍼레이드용 도시. 과시용 도시. 주민들이 신사참배를 하듯이 바라보던 상징적이고 반 종교적 도시.



무리가 광장을 걷는데, 앞서서 비틀비틀 하던 한 명이 북한군 제식 보행을 흉내 내기 시작했고, 따라 가던 사람들은 쿨럭쿨럭 웃었다. 그러자 이제는 대원이 열병식을 흉내 낸다.


“미! 제! 타! 도! 장! 군! 만! 세!”


사람들이 배를 잡고 깔깔거린다.


“마, 머리 삐딱하게 사선으로 들고 경롓!”


“왼팔 완전히 붙여!”


“눈물을 흘리고 감동에 젖어!!!”


“동무! 열렬함이 부족해. 노력이 반혁명적이야!.”


그 군인은 왼팔을 완전히 밀착하고 가슴과 턱을 사선으로 들고 경례를 붙인 다음,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다리를 1자로 완전히 쫙 펴고 발바닥으로 콘크리트를 텅텅텅텅 치며 걸었다. 북한군 제식보행은 허벅지에서 발가락 끝까지 쥐가 날 정도로 완전히 펴야 하고, 그 발로 땅을 파듯이 퍽퍽퍽 찍어야 한다. 시범자는 마치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총폭탄 안면을 시전했다.


“오, 하전사가 드디어 용안을 알현하였다!”


“보라! 리제, 남조선 항공륙전, 이른바 골수부대가 입장하고 있습네다!”


“동무, 더 울어줘,,, 오 제발...”


“음마. 똑같다. 똑같애. 하하하. 또라이 시끼...”


노래까지 부른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싸~~안아. 시체가 굳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파랑기를 지~키리라...”


노래를 부르다 보니, 맨 마지막 ‘비겁한 자여 갈라면 가라.’ 이 문구가 놀던 분위기를 원래 차가운 기온으로 되돌려 놓기 시작했다. 모두 씁쓸한 표정으로 가사를 외면한다.


“하여튼 구호 노래는 요란했어.”



아무런 대열 없이 편하게 걷는 가운데, 동기인 중사 둘이 나란히 걷는다.


“너희 여단 여그 아냐?”


“여기지...”


“넌 워디 때렸어?”


“왜?”


“그냥... 여기서 보여?”


손가락으로 저 멀리 한 건물을 지시한다. 건물이 시커멓다. 어떤 국이나 부였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런 퇴출할 수도 없고 인공물로 빈틈없는 곳에서 맞다이 전투를 벌였다니 동기는 웃지 못했다. 그림이 안 그려진다. 고개를 돌려 동기를 바라보며 한숨짓고 어깨를 쳤다. 위로하고 싶었다.


“쩐다 쩔어.”


“그냥 넓어진 C.Q.B 훈련장이지 뭐.”


“넌 어디라 그랬지?”


“멀어. 피양보다 중국이 가까워.”


“재보급은?”


“응. 북한군 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렇지. 암...”



“마이 돌아왔나?”


“지역대 나 포함 열하나. 누가 또 나타나길 바라지만. 지금 이 날짜에 안 나타나면 뭐 다른 거 있겄어? 설마 만주 넘어간 넘이 있겠냐고.”


"많네.“


“많은 줄 여기 와서 알았다.”


“실종은?”


“죄다 산이고 그렇잖아. 어디 맞아서 쳐지면 그걸로 아무도 모르게 끝나. 퇴출할 때 대열 놓치면 죽어! 전술종합 같은 은거지는 다 합해야 보름? 맨날 때리고 토끼고. 총 맞고 낙오하면 으슥한 데 숨어 있다가... 고양이처럼 죽어. 어떻게 찾아! 포로로 잡혀서 북한군 기록이 있을지 모르겠어. 취조하면 가만 놔뒀겠어? 망한 나라에 기록이 온전할 리도 없고. 군관들은 전범 피하려고 다 태웠겄지. 그래도 신나게 뛰었다. 여기에 비하믄.”



바람은 차갑고 상부에서 가라고 한 곳은 가깝지 않았다. 전투복은 A급이나, 야전상의도 없는 군인들은 옷깃을 여미고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간다. 널찍한 공간 때문에 더 춥고 외롭다.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 무더기눈(폭설) 내리면? 누가 치워?


“싸그리 밀어버리고, 나무 심어서 공원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때 무리 중 한 명이 옆으로 입을 돌리며 꾸엑~~ 걸어가며 토했다.


“아이 씨 위대하신 광장에 짬뽕 뿜냐?”


그러자 고참으로 보이는 중사가 전달한다.


“어이, 공작조 정지. 일발 삽탄.”


다섯 명이 정지해 모인다. 나머지 사람들은 힐끗 보더니 계속 걸어간다. 토사물은 누렇고 끈적한 액에 불과했다. 토한 사람이 침을 퇘퇘 뱉더니 소매로 입을 닦고 담배를 받는다. 다섯 명이 동그랗게 모여 담배 1발 장전하고 잠시 밀담을 나눈다.


가운데 고참 중사가 이들의 두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여단 출신이 아니다. 피양 와서 만났다. 하사는 열중쉬어 뒷짐에 담배를 들고 빨 때만 앞으로 가져오고 복귀시킨다. 고참이 그냥 대놓고 피라고 손짓을 했다. 하늘로 몽실몽실 오르는 것이 담배연기인지 입김인지 구분이 없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후렴을 연달아 반복한다.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선배님, 제가 가장 열받는 게 뭔 줄 아십니까?"


"해상이지?"


"예. 해안포 때리러 갔다가 보트 통채로 익사하고, 터널 안에서 총 맞고 폭사하고 거의 다 죽었습니다. 헌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말입니다. 근처에 상륙은커녕 우리 해군 함정 얼씬도 안 했고, 해안포 사거리 너머로 북상했습니다. 결국 우린 양동 위장이었어요. 에이 씨."


"특수전이 그런 것이기도 하잖아. 운명이야. 그런 데 많다 너."


"그냥 속이. 속이..."


이 열 명은 저 멀리 보이는 행사장에 구경하러 일부러 온 게 아니다. 훈장수여는 피양의 임시 사령부에서 이미 했고, 승전기념일 행사에 사령부 대표 수령자로 예식에 참가하라고 어제 10명이 선발된 것이다.


다섯은 담배 반 정도 피운 다음 끄고 침을 뱉는다. 다시 앞의 같은 사령부 출신들을 따라간다.


행사장은 저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 중간에 막힌 곳이 없다. 행사장은 점점 크게 다가오고, 무리는 발걸음이 느려진다. 갑자기 눈동자들이 싸늘해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구독자분 필독 21.04.26 1,890 0 -
364 For Anarchy in DPRK 1 24.04.22 76 5 11쪽
363 피양의 숙취 4 24.04.15 114 6 12쪽
362 피양의 숙취 3 24.04.08 117 7 11쪽
361 피양의 숙취 2 24.04.01 147 8 11쪽
» 피양의 숙취 1 +1 24.03.25 151 8 12쪽
359 K-7 Deuce 5 24.03.18 143 8 15쪽
358 K-7 Deuce 4 24.03.11 140 3 12쪽
357 K-7 Deuce 3 24.03.04 168 6 12쪽
356 K-7 Deuce 2 24.02.26 277 4 14쪽
355 K-7 Deuce 1 24.02.19 205 6 12쪽
354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2 +2 24.02.05 231 6 15쪽
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90 6 16쪽
352 Curtain Call 9 24.01.22 201 9 16쪽
351 Curtain Call 8 24.01.15 201 4 13쪽
350 Curtain Call 7 +2 24.01.08 206 8 12쪽
349 Curtain Call 6 23.12.18 332 7 12쪽
348 Curtain Call 5 23.12.11 232 10 12쪽
347 Curtain Call 4 23.12.04 249 9 11쪽
346 Curtain Call 3 23.11.27 254 1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