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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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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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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urtain Call 6

DUMMY

먹고 마시고 자고 하루가 다르게 몸에 원기가 솟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끄응! 용을 쓰면서 팔뚝과 허벅지에 뼈가 휠 정도로 힘이 진동한다. 몇 달 전까지 아침마다 거품을 물었던 근력이 되살아난다.


지금 이 정도의 힘이 산에서 있었다면 칼도 쓸 필요 없었다. 주먹으로 턱을 부수고 목을 부러트릴 수 있다. 무에타이 클린치 목잡고 니킥으로 늑골 뼈다귀를 가루로 만들 것 같다. 남아도는 힘으로 풋샵을 하고 인민학교 운동장을 달린다. 달린다. 이유 모르게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린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면 말수가 줄어들고 비애에 젖는다.


‘그래도 살아서 호사다...’


밤이면 술이 필요하다. 술이...


태운다

나의 거짓

난 본다

또 날이 저물 때면

우린 하나둘 모여든다



[전망, 전망 주목. 여기 무궁화 둘.]


장독 멀리서 전등을 켠 듯 가느다란 초승달이 뜬 밤, 송수화기를 잡은 이중령은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


[여기 브라보... 분명히 말하는데, 자존심을 지켜라. 이상.]


이성규 중령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앞선 두 번의 작전과는 달리 모든 무전기가 무서울 정도로 침묵. 무전기에 극도의 저기압으로 내리누르는 공기 때문에 송신버튼 누르기도 조심스럽다. 아무도... [완료.] 혹은 스켈치를 누르지 않는다. 이중령은 무섭고 시리다. 부하들이 몰살시키려 한다. 하나도 살려주지 않을 것 같다.


‘안 된다. 이건 아냐.’


이중령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응답 안 해도 좋으니까.] 칙~~


조용하다. 보지 않아도 어둠 속에 슬픔을 간직한 차디 찬 눈들.


[경청하라... 우리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저들은 우리 부상자들을 무식하게 죽였고, 포로를 고문하고 필요가치 없으면 죽였다. 다른 건 뭔가. 브라보장 명령을 엄수하라. 거부하는 자는 사살해도 되지만, 다쳤거나 항복하는 자는 사격을 중단하라. 자존심을 지켜라. 무조건 죽인다고 복수가 아니다. 진정한 복수는 우리가 군인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는 거다. 이상.] 칙~~


송신버튼에서 손가락을 뗐지만 여전히 무전기는 조용했다...


30초 지났을까? 무전기 한 대가


[칙~칙~!]


알았다고 응신 했다. 그러자 거의 모든 무전기가 스켈치로 그러겠다고 응신 해왔다. 마음이 100% 넘어왔다고 중령은 확신할 수 없다. 닥쳐봐야 안다. 부하들의 본능은 첫 방아쇠를 당기고 다시 점화된다. 막상 닥치면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은 이중령도 남김없이 갈겨버리고 싶다. 보다 넓은 교양의 틀을 가지려 공부도 했지만, 막상 자기 부하들이 죽고 실종되자 저 먼 곳의 번쩍이는 번개처럼 코에서 뜨거운 김이 나온다. 대대라고 할 인원도 남지 않았다. 숫자로 말하면 대대가 지역대로 줄었다.


야간매복에 참가하고 있는 대대원과 타 대대 생존자들. 이중령 휘하 지역대는 이 지점을 잘 알고 있다. 일대가 섹터였던 중대장은 이 지점 매복이 성공한다고 장담했다. 반드시 걸려든다 했다. 와서 바라보니, 과연이었다. 내려오는 능선들이 모여 목진지 형태로 흐르고, 산을 내려가건 다른 산으로 가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형이다. 이곳을 우회하려면 험난한 벼랑으로 돌아야 한다.


“여기서 중대원 두 명 전사했어. 오늘밤 설레... 하하하. 넌 어때?”


중사는 웃고 있지만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온다.


“오늘밤 우리 중대원 제사야. 유세차...”


중사는 남이 따라 웃지 못 할 웃음을 웃었다.


“참 재미있어. 상황 역전. 제물이 필요한 거죠.”


옆에서 말을 들은 그 지역대원들이 씨익 웃는데, 자기가 대대장임에도 등골이 서늘하고 오싹했다.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제동을 하지 않으면 선을 넘는다. 어느 때부터 대대원들 표정이 사라졌다. 작전 성공해도 시체를 봐도 드러나는 표정이 없다. 어쩌다 웃을 때 거기 담긴 의미는 얼핏 봐도 무정했다.


“웃기지? 우리도 저런 몸인데, 밥 먹고 사는 거...”


30명이 매복 깔고 다섯 시간... 엎드린 사람 허리가 뻐근해질 자정, 드디어 나타났다. 매복자들은 알고 있었다. 산에 좀 적응되었다 해도 이 매복 간파는 힘들다. 해 지기 전에 등장해 광고할 일도 없었다. 은밀과 정숙은 습관. 낙엽 하나도 막 밟지 않는다.


이 섹터 중대장 의견대로 멀찌감치 트럭에서 내려, 산 위에서 안 보이는 골에 오후 늦게 조용히 들어가 기다리다가, 해 지고 완벽한 어둠이 내리자 그 중대장과 지역대원들이 앞장 서 들어와 깔았다.


산악에 숨은 북한군 잔당 세 번째 매복작전. 그래도 작전 끝나면 내려가 추레라 밥도 먹고 잠도 편하게 잔다. 수집소 경계병들이 있었지만 대원들은 조를 짜서 야간경계에 동참했다. 못 믿겠다 이거다. 아무 일 없는 낮에도 총 들고 수집소 일대를 면밀하게 수색했다.


전날 밤 작전에서 잔당 30명 사살하고도 점심 밥 먹으러 나타나 웃지 않는다. 족구 한 게임 해도 그 정도로 둔감하지는 않을 거다. 그들의 화는 티끌만큼도 풀리지 않았다. 나태하고 군기 풀린 모습이 사라지고 체계가 생겼다. 모두 알고 있다. 산악에 숨은 적을 완전히 소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잔당의 마지막은 배가 고파서 자기가 내려올 때 잡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리를 깨트리고 조각을 내 의지를 꺾는 것. 무리의 힘을 제거, 삼삼오오 거지로 만드는 것. 그렇게 갈라치면 오래 못 버틴다. 전투보다 생존에 매달리게 하는 것. 산에 먹을 거 없다. 지들이 벌목하고 베어 동물도 없고 초근목피 할 자연도 계절도 아니다.


큰 걸 깨트리면 알아서 산 밑에 내려온다. 본인들이 그러했으니까. 게릴라 최대의 허점은 굶주림을 억지로 해결하려 할 때. 다만 본인들은 적 2선을 교란하고 파괴할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이놈들은 아니다. 전황 잘 모른다. 더욱 잔인해지고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는다.


야간투시경으로 봤을 때, 최소 40명. 야간매복치고는 엄청나다. 이 높은 산중에 아군 보병이 올라와 소탕하는 것부터 피곤하고 시간낭비다. 이런 작전은 수도 없이 허탕을 치고 매일 밤 신중하다 피로가 가중된다.


보병은 박격포라도 지고 올라와야 하고 물자 병력 많아지면서 작전이 커진다. 그러나 비정규전 수행 병력들은 별다른 장비도 없이 빠르게 산으로 들어가 우수한 지점을 선점하고 적을 매복한다. 산중에서 흔적 찾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들이 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하게 흔적을 남기는 북한군을 간파한다. 산 모양으로 안 보이는 길을 본다. 준비된 포병지원도 필요 없다.



둘째 날 주간에 쉬고 있을 때, 상부로부터 헬기가 관측한 산악 잔당 출몰 정보가 떨어졌다. 장교와 고참 부사관들이 달려와 모였고, 적 발견지점과 이동 ‘방향’만 재차 상부에 물어 확답을 받았다.


간부들은 수집소에서부터 거리와 적 행군속도, 자신들 이동속도를 머릿속으로 굴리더니 지도의 한 지점을 찍었다. 의견이 일치했다. 피곤했지만 이중령은 곧바로 트럭 타고 출동시켰다. 근처 도로에 도착하자 대원들은 산을 향해 뛰기 시작했고, 이중령은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해서 그저 속보로 쫓아갔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한 시간 반, 저 앞에서 총소리가 산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수류탄 터지고 맹렬한 사격! 이중령이 도착했을 때 총성은 한참 전에 멎었다. 두 개 능선이 이어지는 곳인데, 완만하게 늘어진 능선에 이상하게 수목이 없었다.


간부들이 찍은 곳, 그리고 쓰러진 자들. 대원들이 시체들 앞에 무장공비 잡았듯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적 25명 정도 쓰러져 있었고, 사살한 대원들은 조용히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가 대대장을 맞았다.


대원들 눈빛을 보니 그건 분명 ‘복수’였다. 통제를 훨씬 벗어나는 일이 일어날까 불안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순간 대원들이 먼 타인을 보듯이 퉁명하게 바라본다. 어쩌면 대원들 모두 누구를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대장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대위가 차갑게 응시하다, 이러면 안 된다 싶은지 억지 미소를 짓는다.



이제 세 번째 소탕작전. 두 번째 야간매복. 대낮도 아닌데 투항의사를 물을 수도 없다. 물었다간 산개하면서 사방으로 도주한다. 일단 한 차례 쏘고 나서야 물어도 물을 일이다. 이중령은 응신에 대대원들이 최소한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었다.


이중령이 쓰고 있는 야간투시경에 내려오는 적이 보인다. 도로에 숨었다가 차량을 공격해 아군을 죽인 놈들도 있을 거다. 그들 입장에서 여기 남조선부대가 매복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와지선에서 족히 한 시간은 올라야 하는 고도. 이중령은 바라만 본다. 공격개시는 이 지점을 선도한 중대장이 맡았다.


“신호탄 올릴 거야?”


“신호탄 말입니까?”


“그래.”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신호탄만 아깝죠.”


“바로 쏠 거야?”


“제가 1번 사수로 쏘면 됩니다, 대대장님. 저는 신호를 조준사격으로 합니다. 공포로 날리느니 신호 사격도 한 놈 맞춰야죠. 대장님도 하나 고르십쇼. 첫발... 매복은 마약입니다. 마지막에 삼과 팔 광이 딱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화력은 이전에 비해 막강했다. 화기주특기들이 201과 K3를 받았다. 이렇게 또렷이 적을 목도하고 작전하는 일 많지 않았다. 중령은 이런 분위기 조금 낯설다. 이중령은 소위로 전입 와 부중대장을 하다가 사령부로 갔고 다시 팀장으로 복귀했다가 보병으로 가서 근무하고 대대장으로 돌아왔다. 다른 부대처럼 부대원들을 애지중지 보살펴?주지 않아도 부사관 체계로 알아서 잘 굴러간다. 열 명마다 대위가 지휘한다. 이런 편한 대대장이 어디 있나. 그러나 그건 비 전시 남에서의 일. 여기서는 적은 병력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언제 중대장이 첫 탄을 쏠지 모른다. 적 대열이 완벽하게 매복 속에 들어왔다고 중대장이 판단할 때 개시될 것이다. 항상 도망 다니던 부대였는데 이제 잡으러 다닌다. 허가한 사단도 여전히 복잡하고 일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사단은 전후방 수직으로 늘어진다. 거기에 적 잔당 게릴라 등장은 골치 아팠다.


육본에서는 이 (여단이라고 말할 수 없는) 소수 생존자들을 나누어서 남으로 후송시키라고 했지만, 사단장은 자원해서 소탕에 나선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다만 한 명이라도 중상을 입으면 중단하라고 다짐시켰다. 여기는 오로지 산! 산! 산뿐이다. 북진에 목을 거는데 진짜로 산악 소탕에 나서면 한 달도 더 걸린다. 헬기들도 이들을 쫓아다닐 시간이 없다. 헬기들은 동체에 땅크 킬마크 그려 넣는데 혈안이다.


이중령이 생각에 빠진 잠깐의 찰라.


옆에서 중대장의 초탄이 빵!


이어 빠바바방! 타라라라라라....


참고 참았던 흑색화약이 터졌다.


첫 총성이 울리자마자. L-자 매복 모든 총구가 불을 뿜었다. K3까지 포함해 밤의 적막이 1cm 퍼즐 조각처럼 박살난다. 보병학교 초급반 고급반 훈련으로만 했던 게 여기 현실로 재현된다. 모든 조준경들은 사격구역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다. 매복의 핵심은 은익과 사격구역 그리고 차단. 투시경에 적들이 엎어지고 쓰러지고, 부티 나는 크롬 레드 예광탄이 날아가며 땅을 긁는다. 적이 응사를 하지만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다. 대열은 무너지고 살아있는 자들이 도주한다.


“항복하면 살려준다. 항복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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