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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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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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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피양의 숙취 3

DUMMY

피양의 숙취




좀 떨어져 있던 해군 상사가 뛰어왔다.


“왜 이래. 승전기념일인데. 서로 그러지 말아. 물러서 물러서... 훈장수여자들이라고? 빨리 빨리 들어가. 저기 단상 아래 의자들 있지? 거기 보면 육해공으로 좌석 뒤에 이름 써있어. 아 이 사람들... 그러지 마아. 좋게 해, 좋게. 위병 너도 그러지 말고. 북한군 잔당이 이렇게 위장하고 여기 나타나겠어? 그리고 간부들이 병사를 이해해야지 왜 그래!”


고참 중사가 나섰다.


“단결. 죄송합니다. 위병, 미안해. 기분 풀어. 우리가 민감했어.”


무리는 공손하게 해군상사에게 경례하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무리는 식장으로 들어가면서 알 듯 모를 듯 서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이 이 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하다. 그러자 아까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 주변에 들으라고 시선을 돌려가며 웃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싸~~안다. 시체가 굳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무을 들인다~~~”



없다. 가볍다. 홀가분하다. 군장도 없고, 대검도 총도 특전조끼도 없고, 들고 갈 탄통도 조끼에 담을 식량도 없다. 위장모도 장갑도 고글도 벗었다. 남은 것은 환자복처럼 느껴지는 말끔한 새 군복과 군화 뿐. 이제 전투장비가 몸에서 떠났다. 원래 입던 군복은 저 북쪽 산악 어딘가에 묻었거나 버려져 있다.


그 모든 장비를 다 떼어내고 군화와 군복 정도라면 천 년도 버틸 것 같다. ‘그’ 모든 걸 떼어내지 않으면 군인은 자기 몸무게 정도까지 감당하기도 한다. 전시라면 더욱 무한급수적으로 무거워진다. 그 무거운 것들 없이는 살 수도 없고 군인처럼 행동할 수도 없다. 이제 그 모든 걸 뗐다. 그러나 물리적만 떼었지, 뇌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직 그대로다. 각자 다르지만 벗어낸 장비보다 그게 무겁다. 무게는 없는데 무겁다. 아직도 장비가 몸에 붙어있어 보이고 순간순간 대검과 총을 더듬는다.


우린 모두 또 다른 전장에 있다. 세상. 세상도 전쟁이다. 선진국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둘러보라. 우린 지금 여기에 있다. 당신도 나도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린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조용하나 무서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의 발버둥은 소용없다. 우린 세상을 통솔할 수 없지만 통솔당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사실 마음에 안 든다.


우리 자신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더럽다. 이상. 성장. 욕망. 증오. 사랑. 결혼. 출산. 노쇠. 분노. 자조, 그리고... 이제 승객 여러분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어서 생을 마감하시라요. 왜 알면서도 우린 쳇바퀴에 몸을 던지는 것일까. 우린 누가 세뇌시켰는가. 우린 왜 궁금해야 하는가. 난 왜 당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가. 난 왜 당신에게 내 의견을 동조시키려 발버둥 치는가. 우리는 왜 과거에 머물러 힘들어하는가.


하나의 전쟁은 벗어났지만 다른 전쟁이 기다린다. 그 증거를 봤다. 6.25와 월남전에서 용맹한 용사였던 단칸방의 노인들을. 이제 하루 세 끼. 산 자의 눈물이 시작된다. 용사를 던져라. 용맹했던 과거를 잊어라. 훈장을 강물에 익사시켜라. 안 알아준다.


늙어갈 것이다.


나가서 벌어 먹고 살아라.


고달플 것이다.


젊음의 땀으로 전장을 누비던 때가 그리워질 것이다. 무섭고 울었고 떨었지만 젊음이었다. 젊음은 올림픽 마라토너도 따라잡을 수 없이 멀어질 것이다. 좋게 생각하라. 이제 사소한 행복을 찾아라. 전쟁에 전투에 참가했음을 자랑스러워하지 말고 그냥 잊어라.


집안의 모든 군용물품을 쓰레기장에 버려라. 회피했거나 외국에서 안 돌아왔던 놈들이 공직에 오르려 하거든 참지 말고 면전에 침을 뱉고 차별하라. 그런 사람들 꾸역꾸역 반드시 나온다. 그들을 놔두면 또 그들에게 굽실거리게 될 것이다. 그것만 주의하고 이제 해산하라.



강변.

나머지는 모자란 휴식을 취하러 올라가고 다섯만 남았다. 남에서 70년대나 있을 법한 초라한 콘크리트 벤치, 강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운다. 군복에 달린 훈장과 벤치에 던져 놓은 상훈증서.


무리는 상의를 열고 베레모를 어깨 견장에 쑤셔 넣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생각 없이 멍할 때가 행복하다. 아무 심각할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행복하다. 그 시간이 영원처럼 지속되었으면 싶다. 항상 뭔가 터지는 일을 몇 달 겪었다. 그게 또 터질까 무의식이 불안하다. 공원 비슷한 강가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특히나 북한주민으로 추정되는 사복은 별로 없다. 행사에 참여했던 군인이 몇 명 보인다. 한 명이 가슴에 달린 훈장을 내려다보더니 떼어서 벤치에 훅 던진다.


“공원 디자인 한번 차암 단조롭다이...”


그중 두 명은 불편해 보였다. 한 명이 고개 숙이고 한 명이 옆에서 어깨를 잡고 있다. 둘은 행사가 끝나고 한동안 걸어가 어떤 건물 위에 올라갔었다. 옥상까지 올라간 둘은 거기서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시신 둘을 봤다. 같이 간 사람은 당황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건 아군, 여기 섹터 여단 소속이 분명했다. 분명 익숙한 군복이었다. 누가 거기 올라가 볼 틈이 없었던 거다.


의당 있어야할 망원경과 무전기와 저격총은 사라졌다. 그때 그 장소와 연관이 있던 하사는 옥상 끝으로 걸어갔다. 그냥 풍경을 본다고 생각한 동행 중사는 문득 깨달았다. 하사가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옥상은 난간대도 콘크리트나 벽돌 담벼락도 없었다. 하사가 일정한 속도로 그냥 걸어갔다.


‘자살!...’


중사는 달려가 태클을 걸어 쓰러트려 제압해 눌렀다. 물어도 하사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넷은 그 하사가 여기를 때린 여단이란 걸 안다. 급하게 조달한 군복에는 미처 명찰이 없고, 일부러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성만 안다. 하사는 진정하고 건물 모든 층을 훑어본 뒤에 나왔다. 건물을 나온 뒤의 행동도 이상했다.


건물을 나온 하사는 갑자기 정문을 향해 질주하더니 정지해 돌아서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내 쪼그려 앉아 울었다. 남성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넓은 공터에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하사는 중사에게 이제 됐으니 잡지 말라고 표현했고, 하사는 쪼그려 손으로 얼굴을 괴고 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을 보고 있는데, 조금 어려 보이는 군인이 천천히 눈치를 살피며 다가온다. 그 친구도 아까 받은 훈장을 달고 있다.


“저 죄송합니다만, 담배 좀 얻어 필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죄송한 거라고.. 여기.”


“아까 같이 상 받은 친구네.”


병사는 담배를 얻어 물고 불까지 붙였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상병, 여기 앉아서 피워.”


“특진입니다. 저는 일병입니다.”


곁에서 본 상병은 불안해 보였다. 역시 불안해하던 하사는 상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상병의 담배 든 손이 가볍게 떨린다. 옆에 앉은 중사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한 게 아니란 걸 곧 깨달았다. 상병이 단 훈장은 꽤 높은 것이다. 어색한 침묵 속에 중사가 입을 연다.


“상병은 주특기가 뭐야?”


“대전차입니다.”


“편하게 해. 다 형 동생 같은 사이인데 뭐.”


“감사합니다.”


A급 전투복에 훈장을 단 상병은 아주 빠르게 눈을 껌뻑인다.


“뭐 불안 같은 게 안 떠나?”


“안 떠납니다. 일주일 못 잤습니다.”


“그거... 그거... 안 좋아.”


“술이라도 실컷 먹고 자 봐.”


“아닙니다. 잠이 두렵습니다.”


“..... 우리도 그래. 상병만 그런 거 아냐.”



“땅끄 잡다가 그런 거야?”


“네. 두 포가 나갔다가 저만 살았습니다.”


“무반동총이구나. 허.”


“네. 진짜 구형이죠. 아십니까?”


“우리, 화기 주특기라고 있어. 이거저거 다 해.”


“106 쏴보셨습니까?”


“딱 한 번. 박격포도 쏴보고 전차포도 쏴봤지.”


“아, 그런 주특기가 있습니까?”


“훈장이 높은데? 많이 잡았나봐.”


“몇 대 잡았는지는 전 잘 모르고, 멀리서 다른 포반이 봐서 알았고요. 전 계속 장전하고 쐈습니다. 그보다도, 제 포반 고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거든요. 이게 말이 상병이지, 마음은 여전히 일병입니다. 상병은 제 포반에 둘이나 있었죠. 내가 달 계급장 같지가 않아요. 사수 부사수는 전사하고 탄약수 저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었습니다. 우리를 인지한 탱크가 주포가 쐈는데, 이상하게 저만 별로 다치지도 않고 살았어요.”


“우리도 우리가 왜 살았는지 몰라.”


“그렇습니까?”


“솔직한 말이야.”


“특수전으로 넘어갔으면 더 살벌했을 것 같습니다.”


“전방이 더 무섭지. 우린 주로 도망 다니잖아.”


“편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사님.”


“진심이야. 우리도 전방에서 포 맞는 거 상상 안 가.”


“특수전, 좀 그랬다고 들었는데요.”


“구라야. 걍 다 비슷비슷해.”



"에이, 땅크를 우리 전차가 잡아줘야지 106밀리가?..."


중사가 입을 다물었고, 다른 중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오늘 상 받은 사람 중에 동료 많이 안 죽은 사람 없어. 상병이 더 위험했을 걸. 죽고 사는 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거고. 우리도 죽어. 내일 죽을 수도 있고.”


“그래도 아는 분들이랑 말하니 편합니다.”


“우리 서로 아니면 입 다물어. 못할 말 많아.”


전쟁 전에, 장난처럼 권총을 관자놀이에 대고 칼을 목에 대고 사진을 찍고 그랬었다. 과거 전쟁터, 특히나 월남전 미군 사진에서 유독 권총을 관자놀이에 대고 찍은 사진이 많았다. 상병의 다음 장면은 바로 그 사진처럼 보였다. 그냥 놔두면 안 될 거라는 기분이 무의식중에 맴돈다. 곁에서 듣던 고참 중사가 입을 연다.


“상병.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어?”


“예. 괜찮습니다. 듣고 싶습니다.”


“듣고 참고가 되면 기억하고, 아니면 내 말을 버려.”


“예. 알겠습니다.”


“여기 모두, 자네와 비슷한 걸 겪어. 사람 총 맞고 내장 터지고 그런 거 어떻게 잊어. 그런 생각하면 우리 모두 신 앞에 죄인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어. 하지만 상병. 먹기 위해 개돼지 죽이는 것과 사람 죽이는 게 달라? 우린 동물과 달리 지능과 품격이 있는 건가? 혹시, 인간끼리도 차이 전혀 없다고 생각해? 저 멀리서 온 외국인과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진짜 믿을 수 있어? 정말 속으로 깔보는 거 없이?... 있지. 있는 거야. 개를 죽이는 것과 아프리카 원주민을 죽이는 것과 동료가 죽는 걸 동일하게 볼 수 없어. 우린 차이를 만들지. 다 인간이 구분한 거야. 천국에 인간만 들어간다는 컨셉은 다분히 인간이 꼴리는 대로 한 거야. 상병 개 키워봤어?”



‘네, 집에 있습니다.“


“개가 착해, 인간이 착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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