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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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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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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tain Call 4

DUMMY

문화적으로 다른 대대 대대장은 ‘뭐 저런 분이 있지’ 정도로 끈끈한 연대의식을 못 느낀다. 10의 충성도가 있다면 그 중 8은 자기 대대장이며 남의 대대장은 2 정도다. 이중령이 수집소 최고 지휘권자이기는 하나, 다른 대대원들은 전사한 대대장을 여전히 자기 직속상관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 다른 대대장이 끼어드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전사한 자기 대대장에 대한 배신 비슷하게 생각한다. 이걸 해결할 사람은 여단장 밖에 없으나, 과연 대원들이, 이북에 같이 넘어오지 않았던 여단장을 전쟁 전처럼 존중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여단장은 지난 몇 달 동안 번외였다. 평시의 추억보다 전시의 기억이 수십 배는 강했고, 번외자는 전투를 겪지 않은 사람이라는 배타적인 존재가 되었다.


여단장이 올 수 있다는 말에 아무 반응이 없다.


3대대장 이중령은 수집소의 모든 장교들의 소집했다. 부사관과는 달리 장교는 자체로 통솔이 가능했다. 장교들은 따로 그들대로의 임관구분과 여러 갈래로 연결되어 다른 대대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중령은 일단, 생존한 지역대장 1명과 중대장 2명을 데리고 사단본부에 가서 전황과 진행사항을 정확히 물어보고 오기로 했다. 아무런 스케줄 없이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무슨 일 날 것 같다. 대원들은 장교들이 모이는 것에 주목했으며, 어서 남으로 가는 과정이 실행되기를 바랐다.


대원들은 아군과 만나면 곧바로 남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해 들떴다가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다. 그걸 해결하는 건 이중령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결정한 후에 이중령은 이 무리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기 위해 부사관 고참 중에서 유력한 원사 두 명을 불렀다.


“두 원사님, 나랑 얼굴만 마주치고 사실 좀 모르지요? 대충 알겠지만, 내가 사단본부 가서 전황도 알아보고 차후 대책도 알아보고, 사령부와 연락할 방법이 있으면 정확히 묻고 오겠소. 사단통신단 같은데 가면 뭐 사령부에 연락이 안 닿겠소? 우린 우리 일을 할 테니, 두 분은 우릴 믿고 뭐랄까... 약간의 체계 비슷한 것이라도 형성해 주시오.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우린 어떤 면에서... 지금 좀 위험해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갔다 오는 동안 여길 잘 통솔해주십시오. 특히 여기 밖으로 못 나가게. 바로 일이 풀리고 올지 한 이틀 걸릴지 모르겠소만, 남은 장교들은 내가 따로 지시를 해두겠소이다.”


두 원사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네, 대대장님이 직접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대원들이 좀 답답해서 그러는 거 같아요. 뭔가 작더라도 해결책이나 길을 알고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이중령이 한 명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유원사. 우리 대대 박원사와 동기생으로 알고 있는데, 미안하오. 나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을 잃었소. 대대본부 소속으로 말리는 대도 작전에 나섰고, 박원사는 아직도 나에게 자랑스럽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부끄럽소. 그래도 내가 눈을 감겨 주었고, 그 자녀들이 꼭 혜택을 받도록 내 돌아가면 노력하리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우린 우리의 작전을 했을 뿐입니다. 원사가 뭐 훈장입니까? 총알이 계급 구별해서 죽었나요? 가서 일 잘 보고 돌아오십시오. 도로에 잔당들 나타난다는데 조심하시고요.”


다른 원사가 입을 연다.


“아직 여기 위험해요. 하던 대로, 중대장 2명은 소총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대대장님과 지역대장님을 호위해야 합니다. 두 분도 권총 실탄 꼭 챙기시고. 사단본부 가면 적어도 장교들은 잘 보이는 철제 계급장 좀 구해서 달고 오세요. 우리야 면상이 계급이지만, 대대장님 빼고 계급장이 없으니 체계가 안 섭니다. 군대에서 계급은 필요합니다. 특히 대대장님이 계급장을 다셔야 통솔도 편할 겁니다. 여긴 형묵이한테 맡기면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러죠. 아니, 부사관 계급장도 한 포대 긁어 오지요. 장교만 계급입니까.”


이중령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장교 3명과 함께 지프에 올랐고, 두 원사는 경례했다. 중대장 두 명은 소총을 챙기고 수집소 경계병에게 실탄과 수류탄을 빌렸다. 그러자 같이 가는 1대대 지역대장도 자기 소총과 실탄을 챙기고, 권총 실탄을 챙겨 대대장에게 주며 탑승했다.


“평시는 빈 권총이지만, 전시, 실탄 없는 권위는 없습니다.”


모르는 척 행동하지만, 대원들은 대대장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배부르고 잠자리 편한 게 모든 해결책이 아니다. 남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것 역시, 마음에 양면적 갈등을 품고 있었다.


여단에 붙어사는 군인가족들. 그들에게 동료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달할 수 있나. 같은 관사아파트에 살던 가족들은 무척 가깝고 매일 서로를 만나며 불안감을 위로하면서 의지할 게 뻔했다. 일부 전사 실종이 사령부 전문보고로 올라갔지만, 팀장급부터 부사관까지 정확한 보고는 아직 모를 것이다.


초기 이후로는 통신도 힘들고 그런 걸 보고할 여유도 없었다. 또한 명목상 실종이 많았다. 정보사 취조관에게 상황정보 면담을 하고, 사단 인사부에서는 특전사령부에 전달한다고 기본적인 여단 피해와 생존자에 관한 조사를 했다. 그게 언제까지 육본에서 공인이 나고 전사 실종으로 분류되어 가족들에게 전달될지는 알 수 없다. 동료의 가족을 만날 것이 가장 불안했다. 부대를 뻔히 아는 군인가족들의 궁금증은 지당하고,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준단 말인가.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시간 되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자고. 답답한 시간이 흘러간다.


대대장 일행은 다음 날 돌아왔다. 수집소가 순간 경직된다. 이중령은 즉각 모든 장교와 상원사들을 모이라고 했다. 한 교실에서 모인 이 회의는 상당히 길었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는 대원들은 더 불안했다. 시간이 길어지는 걸 보니, 상부는 자신들에게 명료하게 대책을 세워놓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무슨 회의가 한 시간이나 필요한가.


대원들이 기다리던 회의기 파했다. 점심 먹기 직전. 지시가 전파되었다.


“모든 대원은 모이라.”


그냥 말하려고 했으나, 유원사가 나무 박스 하나를 가져다 단상처럼 놓았다. 어색했으나, 그래도 모두의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은 생각에 이 중령은 박스 위에 올라섰다. 대원들의 또렷한 시선이 날아온다. 부담스러웠다. 편한 표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차가운 눈으로 주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전투를 겪은 대대장에 기본적인 예의는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중령은 다른 이유로 지극히 당황했다. 점호처럼 대열로 서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으나, 밀착해 모이자 정말 병력이 적어보였다.


이중령이 터득한 게 있다. 어쩌면 저 남쪽에서는 추정만 했던 것. 비정규전 게릴라는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 조금만 놔두면 규칙을 어기고 사건들이 터진다. 만약 명령불복종을 하는 부하가 있다면 즉결처형을 결행할 정도로 산중 무리의 통제는 강력해야 한다. 그 상태는 불침번의 경계부터 나타난다. 틀린 생각 아니었다. 부대 안처럼 통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민감하게 컨트롤해야 한다. 묵시적인 이해였다.


그러나 이중령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과거 지리산 빨치산은 이데올로기에 명확하지 않은 농민 같은 사람들도 많았다.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의지도 박약했다. 그러므로 즉결처형 같은 방법으로 겁을 주어야 통제력이 강해졌다. 이중령 앞의 대원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반 이상이 3년에서 그리고 그걸 넘어 7년 10년 20년 부대에서 훈련한 사람들이다. 논리로 설득해야 지휘관의 몫이며 그게 무식한 지리산 빨치산과 다른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 비정규전 게릴라들을 무식하게 다루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것. 부하들은 이제 사람 하나가 얼마나 손쉽게 죽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 심기를 건드리는 그 어떤 사람도 그렇게 간단한 물리적 대상으로 보일 수 있다. 욕 한마디에 대검 뽑는다.


중령은 차려 경례 모든 과정을 생략했다.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다. 모두의 눈을 한 번 둘러 지나친 이성규 중령이 입을 연다.


“모두 궁금하리라 생각한다. 난 3대대장 이성규다. 내 얼굴 대충 다 알지? 체육대회 때 내가 오바해서 다른 대대 나 밉지 않았나!...... 다른 대대원들까지 이렇게 모여 줘서 반갑다. 그리고... 전사한 대대장들에게 빚을 진 무거운 마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여단장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말을 하려 한다. 그래. 나와 지휘관들은 사단본부에 갔다 왔다. 사령부와 연락도 했다. 아쉽게도 지금 사령부는 평시의 어떤 동원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알다시피 우리 군의 주 관심사는 보병과 기갑과 포병이고 공군 해군이고, 그 보급도 벅차다. 우린 소수다. 사령부가 트럭 한 30대 보내서 평양에 전 여단을 수집하고 그런 거 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여단이 수집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싸우는 여단도 있다.”


병력이 동요했다. 표정이 굳는다. 전황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었다. 아직 싸우고 있는 여단이 있다니... 대원들은 어느 여단인지 감이 온다. 압록강을 떠올린다.


“전선은 북상했지만 일대는 아직도 위험하다. 우리도 가다가 사격을 받아서 중대장들이 내려 응사하고 그런 일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북한군 잔당이 한둘이 아닌 것은 아리라 믿는다. 이 사단의 현재 상황도 정확히 들었다. 지금 난 여러분들과 타협을 해야 한다. 내가 직접 사단장님과 이야기한 걸 말하겠다.”


분위기 차가워졌다. 서로를 바라보며 대체 이건 뭐지? 주고받는다. 이중령의 말은 언성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사단은 일주일 정도는 지나야 다른 여력이 생길 거라고 한다. 우린 여기서 길면 일주일 더 기다려야 한다. 우릴 위한 퇴출작계도 없었지만 남으로 가는 후송계획도 사실상 없다. 기회가 되면 운송수단을 잡아 우리가 알아서 내려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난 제안한다. 우리가 사단본부에 도착한 어제, 사단 군수참모가 노상에서 적 잔당에게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난 사단본부에 가다가 현장 직접 봤다. 유혈이 낭자하고,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냄새가 풍기는 불에 타고 박살이 난 지프를... 안 봐도 그림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거친 숨을 잡으려 입 다무는 모습들이 보인다.


“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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