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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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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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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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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Hand to Mouth 비망록 2

DUMMY

동기 새끼. 죽었나? 진짜...

’의무가 사격 만발이다. 화기는 찌그러져.‘


작전계획은 마지막까지 계속 수정되었고, 일부 통폐합되어 동기 놈 중대와 우리 중대는 같은 DZ에 뛰었다. 딱히 연합하는 팀도 아니었는데, 모르겠다. 나도 그 팀 목표 모르고 그 팀도 우리 중대 목표를 모르니까. 원래는 각 팀 개별 강하였다. 네 군데 이상을 들르며 뿌리고 수송기가 빠져야 하는 것.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두 팀을 묶었나?


생각보다 그리 긴장이 없었던 점프. 사고, 이상 유무 없었다. 원래 야간 무장강하가 해도 해도 안 떨리진 않는다. 불안했던 건 딱 하나, 매산리도 아니고, 내가 대충이라도 아는 우리나라 지역 지형이 아니다. 내륙전술이 칠갑산이라면 대충 지도라도 오고, 아하, 여기구나. 그럴 것 아닌가. 그것 외에는 여기가 남인지 북인지, 젠장, 모르겠다. 항상 컴컴하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었지만, 중대장끼리 그랬는지 아주 잠깐 모여 양 중대는 악수하고 인사하고 사라졌다. 그때 동기 놈을 봤다. 마지막인 것 같았고 마지막일 것 같았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중대장이 무심코 그랬다. 7중대 이상한 것 같다고. 그 말은, 중대장들끼리는 대충 목표를 서로 아는 것 같았다. 마지막 타격이 끝나면 지역대가 모여서 그야말로 ’지역‘, 한 지역의 밤을, 밤들을 우리가 지배해야 하기 때문인가?


동기와 난 그런 와중에도 좀 떨어져 있었다. 군장도 무거워 머리 어깨 무릎 발 뿌러질 것 같은데, 조금 가다가 매몰해야 할 낙하산과 장비까지 군장에 얹고 들고 있었다.


눈만 기억난다. 눈.


교육대에서 그리 친한 것도 아니었고, 주특기도 달라서 특수전은 거의 못 봤으며, 생활관도 끝에서 끝이었다. 서로 몸 어떠냐? 물어본 기억도 없다. 그러다가 문득, 여단이 갈리고, 느그 여단 가는 놈들 이 짝으로... 그때부터 한 무리가 되었다. 25명이나 될까 여단 전입교육에서 좀 신상도 알게 되었고, 엥? 단본부 가니 또 같은 대대. 또? 대대에 가니 같은 지역대. 이런 젠장. 우리 둘 딱 두 명이 왔다. 대대에 여러 명이니 딱 두 명이랄 순 없지만, 역으로, 한 지역대에 혼자만 전입 가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


게다가 봄 임관 기수이니, 바로 앞 겨울 기수와 대단히 차이도 안 나지만, 해가 지나갔다고 확실히 구분하고 군기 잡는 분위기. 그렇게 3개월 동안 내 밑으로 집합! 하면 우리 둘이 갔었다. 야, 두 놈 데려와. 야, 둘이! 철봉 매달려. 30개 넘을 때까지 못 내려온다. 힘들면 다리로 철봉대 조이면서 버티고 팔 풀어도 돼. 다만, 30개 넘기고 내려와. 아니면 철봉 올라가서 취침해. 야, 맞선임, 30개 넘는 거 확인하고 해산한 다음 나한테 보고해. 철봉에 나란히 일명 코알라 되었다. 밤에는 위험하니까 밧줄 시키지 마!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사람을 안다는 것이 진짜 한 10년은 되어야 뭐가 있구나 생각하다. 돌아보면 군대생활에 필요한 것 빼고,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눈. 시커멓게 위장을 해서 표정을 읽긴 힘들고, 무월광의 밤, 눈. 눈은 말하고 있었다. 말하고 있었으나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런 느낌. 눈빛은, 무슨 말인진 모르나 무슨 뜻인 줄은 알았다.


잊히지 않는다. 눈. 7중대가 이상이 있다고? 중대장은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했지. 그러고는 말실수한 것처럼 눈치를 보듯 분위기를 바꾸며 침묵했다. 우리 팀에게 사령부가 옆 중대가 어쨌니 전문으로 알려줄 리도 없고. 지역대 안에서 팀끼리 장거리 무전으로 교신한단 소리는 못 들었다. 우리 각 팀은 오직 사령부하고만 교신한다.


’어떻게 됐냐. 와서 침 좀 놔봐. 너 이 돌팔이.‘


왜 이러지? 내 몸이 왜 이러지?

차가운 상태로 몸이 오래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먹고는 싶다. 그리고 시골집 구들장에 등 좀 지지고 싶다. 24시간 추우니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영 풀리지 않는다. 불 피우고 싶다. 동계훈련 묘수처럼 주먹 돌들을 모아다 땅에 묻고, 그 위에 모닥불 확 싸지르고, 불이 꺼지면 불 자리만 치우고 그 자리에 텐트. 달궈진 돌로 지글지글 지지고 싶다. 최고였는데.


몸이 차게 굳은 상태에서 찬 것을 먹고 마셨나?


지금 내가 주체 못 할 감정에 빠지는 건, 이 아픈 속에서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인 건, 중대장에게 말을 들은 이후로 계속 생각나는,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떠오르는, 돌팔이 녀석의 가족사진. 그게 자꾸 스치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친하다고 말할 수 없는 놈이지만, 그놈이 태어나고 자라서 어떻게 살았는지 얼핏 엿보이는 녀석의 부모님과 여동생들 사진. 놈은 내가 닮았냐 물었지만, 정말 똑같이 생긴 여동생 둘. 사진 안에 다섯 명의 인생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놈이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음, 단란한 가정이군, 그렇게 큰 감흥이 있을 수도 없는 것인데, 지금 떠오르는 건 다르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내가 그 집안, 그 가정에 죄를 지은 기분이다. 내가 무슨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대로 같이 온 동기일 뿐인데. 전투하다 내가 버리고 온 것도 아니고, 같은 팀도 아닌데, 나도 죽을 것인데, 그 가정을 파괴하는 데 일조한 죄책감 같은 것이 든다. 10년도 넘어 보이는 무슨 생일날 같은 사진. 그 여동생들의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기억하니, 미치겠다. 돌겠다. 똑같은 눈. 그 눈이 DZ에서 본 눈 같다.


For auld lang syne, my dear

For auld lang syne

For auld lang syne, my dear

For auld lang syne


혼자 낙오된 사람

낙오가 아니라도 혼자 된 사람

나 혼자가 아닐 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엄청 많을 수도 있다

그럼 뭘 하지?


통신은 무전기로 어떻게 할 것이고

폭파는 노획 지뢰나 그런 걸로 뭘 하는 것이고

정보작전은 첩보 보고를 위해 뭐라도 하겠지

의무와 화기는 뭐 하나

의무는 혼자서 자기 몸 말고 뭐 할지 모르겠지만

화기는?

쏴야지. 없으면 쏠 것을 찾아야지

타격은 못 해도 저격은 해야지


화기의 꿈은 따로 있지

적성 포탑에 들어가 탱크 주포 쏘는 거

여기 동무들 포로 동무들 쏘는 거

Hand to Mouth shot a gun?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삶은 잠깐이야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몰라

난 낭만 소설 안 써

난 분명히 죽는다

즉시, 바로, 해야 돼

하나라도 더, 더, 더


오래전 꿈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짜 같다. 어쩌면 여기 서있는 나조차도 묻고 싶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이건 진짜인가. 내가 만든 가상처럼 진짜 일이 아닌 것도 같다. 그 흐름은 너무나도 빠르면서 순간순간 느리고 느리며 인상적이다. 어떤 것은 퀵 모션으로, 어떤 것은 슬로비디오. 어떤 일은 내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데 사람과 일이 빠르게 지나가고, 어떤 건 사람과 세상이 멈춰있고 나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무수한 회의, 무수한 지도와 사진, 무수한 정보 보고서, 사람들은 모이고 많은 물품과 긴장, 멋도 모르고 이가 갈리는 마음의 준비가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준비가 얼마나 대처 가능할까 일말의 의심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일시, 그렇게 깊게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 남쪽에선 퀵 모션, 북에선 슬로비디오.


흐름은 예상한 것처럼 순차적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졌고, 슬로비디오는 충격이었다. 사람이 줄었으며 가지고 있던 것도 없어지기 시작했고, 사람이 준 것은 눈으로 본 게 아니다. 다시 동그랗게 머리가 모이면서, 처음에는 왜 안 오지? 그러다가 정신이 블랙홀로 빠진다. 아, 어떻게 됐구나. 그 사람은 다시 볼 수 없구나... 당황했다. 그 빈자리,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건 명약관화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분명한 것이 있음을 경험했다. 그 확신은 아주 견고하여 신도 아닌 인간이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나도 놀란다. 확증이 아니라 진실 현실이다. 이었다. 맨 처음에는 한 사람의 빈자리를 대신한 공기가 자못 축구장 크기 같았으나, 점차 공기 부피가 줄어들고 내가 받아들이는 시간도 짧아졌다.


모든 것이 줄고 줄어, 영화의 빠른 화면 전개 속에 나 혼자 서있는 물줄기가 되었다. 내가 거기 왜 서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사람도 물건도 나를 떠났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순간이었고 꿈 같다.


”죽을 때는 시간이 빨리 흘러? 죽음이 가까울수록 빨리 흘러?“


절차는 훈련과 비슷했다. 끝도 없이 산을 타고 걷는 것. 땅을 파고 경계하고 다시 이동하고, 그 중간에 한여름 밤의 폭풍은 잠시였다. 기도비닉 접근, 무릎과 허리가 끊어져라 침투만 네 시간, 이어지는 소리, 섬광, 진동, 그리고 우리가 성공으로 삼을 목표 건물 안쪽에서의 폭파! 목표 연구시간에는 모른 건지 모른 척한 건지, 폭약은 절대 다수량이 모자라다. 우리가 휴대한 것으로 택도 없었다. 첫 정찰에서 쌍안경으로 보고 알았다.


”저걸 80파운드로 부순다고? 저걸?“


”RDX 80파운드란 소릴 내가 잘못 들었나?“


”완파는 불가능해. 저걸 어떻게 해서 오랫동안 못 쓰게 하는가, 그거야.“


독수리훈련. ‘내려. 여기부터 걸어가라.’ 행군. 행군. 은밀 행군. 도로를 피하라. 목표 근처 민가에서 개가 짖으면 안 된다. 길을 피하고 모든 불빛을 피하라. 산의 7~8부를 타라. 은거지 획득 – 무선 보고 - 산속에 조용히 말하고 조용히 움직이는 수상한 아저씨들 – 목표 정찰 – 정찰조 근접 정찰 – 추가 작전 토의 – 실행의 날 – 위장과 점검, 마지막 숙지 – 출발... 여기에 모든 것을 같이 하는 다른 여단 팀장 부팀장인 하얀 완장 통제관.


그래도, 독수리훈련보단 적이 덜했다. 경계는 쉬웠다. 독수리훈련은 울타리에서 손에 손잡고 지킨다. 취사병까지 나와서 어색한 총 들고 방공포 비행장 건물 등등 울타리를 패널티킥 골대처럼 지킨다.


우린 그랬지. 여기 철조망에 도달한 자체가 이미 이긴 거라고. 전시라면? 수류탄 투척하고 돌격이지. 철조망 넘을 필요 없어. 철조망에 솔방울로 조지고 뚫은 다음 뛰는 거야. 그 뒤론 우린 저들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그 전에 몇 놈 조지고 북한군으로 갈아입으면 구별 못 해. 독수리훈련 아군 비행장에서도 어둠 속에 서로 구별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만 구별했지. 우린 몇 명 안되니까. 그냥 이 안에 사는 사람들처럼 행동하며 뛰었다. 피하는 행위를 하면 오히려 의심받는다. 당당하게 가면 거기 사람들이 그냥 지나간다.


오히려 여긴 반대. 뚫기는 쉬우나, 들어가면 대항군이 아니라 적이 우리에게 진짜 총을 쏜다. 이상한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도 철저히 숨었다.


독수리 최악의 목표. 듣기만 들었던 난공불락의 독수리훈련 목표는, 그런 식으로 안 지킨다. 울타리에 사람이 드문드문, 여기 다 퍼졌나? 착각까지 든단다. 그런데 난공불락... 주한미군 기지. 은밀 침투와 타격 성공 거의 불가능하다. 기지가 하나의 전자제품이다. 교도소보다 뚫기 힘들다. EMP를 터트리기 전에는 공락 불가. 대인 레이더와 적외선, CCTV와 열영상 징비가 수도 없이 깔리고, 철조망에도 센서들이 우수수... 기본 초소 무시 철조망에 손에 손잡고는 없고, 기지 중간에 기동타격대가 대기하고 있다. 다른 무장 기동조가 철조망 바깥을 장갑차로 돈다. 적이 유탄발사기 발사 거리까지 오면 위험하다고. 통제센터 작전센터에서 모두 영상으로 보며 우릴 기다린다.


‘방송을 하더라고. 영어? 아니, 한국말로. 존나 어눌한 한국말로. 카투사가 아니라 교포 2 3세 그런 가봐. 그 철조망 진짜로 고압 흐른다고. 거기 붙으면 다친다고. 커기! 철초망 찹흐면 전키가 흘러서 죽커요. 한국군 붙지 마세요, 이런... 누구 죽일라고 씨발 전기를 진짜로 틀어놓은 거야. 사람은 안 보이는데 우릴 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철조망에 붙기조차 힘들었어. 당연하지. 우리 생각도 그래. 전시에 철조망까지 우리가 붙으면 이미 뚫린 거다. 근데 미군이 그 개념이 있어. 걔들이 뭐래는 줄 알아? 외곽에 자동 기관총이 있대. 무인 기관총, 그거로 조준하고 있었는데, 공포탄이 없어서 조준만 했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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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피양의 숙취 1 +1 24.03.25 158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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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고양이는 숨어서 죽는다 1 24.01.29 193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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