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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5.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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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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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For Anarchy in DPRK 2

DUMMY

For Anarchy in DPRK





같은 연병장. 시간은 거꾸로 흘러 10년도 앞으로 간 그 계절 어느 날. 사람들 패션은 다르지만... 또 분주히 부모들은 연병장에 자기 자식을 어렵게 찾아 하사 계급장을 달아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도 오지 않은 임관자들이 있었다. 식순에 의해 계급장 부착이 시작되는 순간 단상의 간부들은 당황했다. 다른 기수에 비해 부모나 가족 안 온 후보생들이 꽤 많았다. 위병소에서 체크해 올린 걸 아무도 안 봤고, 부모 가족 안 온 사람이 적당한 숫자라고 추정했다. 많은 후보생들이 손바닥에 하사 계급장을 들고 여전히 서 있었던 것이다.


“이 기수 왜 이래? 엄청 숨기고 입대했구만.”


시간이 나서 모처럼 참석한 사령관 표정이 야릇하게 어려워지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육대장은 교관 조교 훈육하사, 따라온 사령부 간부들에게 다 내려가서 어떻게 해결하라고 바쁘게 손짓한다. 뛰어. 빨랑 뛰어! 위관과 부사관들까지 급하게 후보생 대열로 뛴다.


홀로 서 있던 한 후보생 앞으로 장교 한 명이 달려왔다.


“후보생은 가족이나 부모가 안 왔는가?”


“안 불렀는데예!”


“......”


후보생이 쓸 말투가 아니었다. 건방지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중위는 급하게 손바닥의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중위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하사 오! 형! 묵!”


“너무 맘 상해하지 마라.”


“마 그런 거 없심다. 안보고 싶어 함미다.”


중위는 이 후보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기쁜 날 뭐라도 위안을 - 이 키 크고 거만한 후보생에게 주고 싶었다.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나중에 술 한 잔 사줄게.”


“진짬미꺼?”


중위는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


이제 오하사가 된 사람은 중위 명찰을 봤다.


중위 이성규.


말이 어설펐다고 이중위는 웃었다. 신임 오하사는 웃지 않았다. 물끄러미 중위 얼굴을 바라만 보더니, 떠날 수 있게 마지막 말을 했다.


“안 사믄 내인데 빚지는 기라예.”


“.... 이 동네 좁다. 나중에 봐.”


“근데 말입니더.”


“왜? 뭐?”


“제가 여기 잘 들어온 겁니까?”


“무슨 말인가?”


“이 부대에 제가 자알 들어온 건가 했슴다.”


“내가, 하하. 처음 봤는데 뭐라고 해!”


“지금 보고있다임미꺼.”


중위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또렷이 하사의 눈을 본다.


“잘 왔다.”


“맞습니까?”


“나 부중 하고 왔는데, 하사관 너 같은 눈 많다. 잘 왔다.”


“마 알았습니다. 가이소. 단결.”



중위는 단상에 도달해 다시 한 번 하사를 되돌아봤다.


“존나게 맞는 거 아니냐?”


“원래 정문에서 그런다기는 하는데 말야.”


“아직 하나도 안 왔나?”


“안 보여. 우리가 일찍 온 거야.”


“휘준아,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피우자.”


“고만 펴. 새끼야... 오소리 잡냐.”


“어디 들어가서 시간 때울 데도 없고.”


“야, 늦는 거보다는 일찍 들어가는 게 나아.”


“저 얼굴 시커먼 거 봐.”


1989년. 가을.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서늘하다. 두 명은 길 건너편을 본다. 다섯 시, 둘은 담배를 세 대나 연거푸 피웠다. 이제 그만하자 눈빛을 주고받는다. 둘은 작심한 듯,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골목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뛴다. 곧 대형 정문 앞에 섰다. 허리총에 하얀 줄을 단 위병 외에, 얼굴 늙은 사람이 손가락을 둘에게 까딱까딱한다. 그 사람 베레모는 물이 하도 빠져 허연색까지 보이고 거구에 얼굴이 시커멓다. 둘은 거역할 수 없이 그 앞에 가서 선다.


“이거 특전복 A급 봐라 이거.”


“단결!!!”


“짤러!”


둘은 손을 내렸다.


“하사 위로휴가 복귀자지?”


“네!!!”


“복귀가 아니라 전입이지... 흐.”


“네 그렇습니다.”


“귀성 아냐?”


“네? 무슨...”


“이리로 오는 놈들 가끔 있어. 인천 생판 모르는 놈들이 부천하고 부평 혼동해가지고. 역전에서 택시 타고 공수부대! 했다가 귀성이 여기로 오고 우리 애들이 귀성으로 가고 그래. 처음 오는 너희 같은 놈들이... 뭐 너희는 마크 봤어.”


물 빠진 베레모 중사는 물끄러미 두 하사를 훑는다.


“인수자 오면 단본부로 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네!!! 감사합니다.”


“너희들 복 받은 거야. 동기팀 만들어졌어. 룰루랄라.”


“잘 모르겠습니다.”


“너희가 몇 기생이냐?”


“모병 20기....”


“차수는 까고. 야... 공수부대 20기도 오고...”




“쯩, 줘봐.”


둘은 손에 접어 쥐고 있던 걸 준다. 말상의 중사가 종이를 보더니 위병소 안에 소리친다.


“야, 이름 체크해! 조휘준. 민형식.”


위병근무자 중사는 곧 관심이 사라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양쪽 엄지를 탄띠에 쑤셔 넣고 눈을 부라리며 부대 안과 밖을 쳐다보다 위병소 건물 안에 ‘영감 어딨냐?’ 묻고, 안에서 ‘출타중이심다.’ 인상 찌그러진다.


“다른 사람 안 왔습니까?”


“햐, 전입이 질문도 하네? 너희가 오늘 첫빠따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죄송은 지원서에 도장 찍은 엄마한테 하고 시정은 니들 대대 가서 팬텀기 타면서 하든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둘에게는 농인지 겁박인지 알 수가 없다.


“니들 수영 하냐?”


“둘 다 합니다.”


“크롤? 아니, 자유형 몇 미터 가?”


“50미터 이상은 갑니다.”


“앵카는 아니라니 잘 빠졌다 이~~~ 쌧끼들아.”


“......?”



노란 완장 두른 장교에게 잡혀 여단본부로 올라갔다. 현관 보초까지 눈깔 부라린다. 잠깐 확인하더니 어떤 건물로 데리고 가 들어가 있으란다. 동기들이 잡혀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겁먹은 표정으로 들어와 손만 흔들고 조용히 앉는다. 위로휴가의 호기는 깡그리 사라졌고 다시 애들이다. 바깥 소음에 움찔하면서 속삭이듯 의사만 전달. 몇 대대 어떻다더라, 어디 가면 좆된다, 속삭임도 풍년이다. 그러다 문 밖에 발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침묵하고 삼선에 각을 잡는다.


여단 주번사령이 와서 휴일에는 대대 안 내려간다고 했다.


“곱창 채우러 가자. 나가서 줄 서.”



모든 눈총을 받으며 밥을 귀에다 쳐 넣을 뻔했다. 잽싸게 쑤셔 삼키고 식기 닦고 도망치듯 복귀했다. 그냥 군대 밥에 그냥 군대 국, 그냥 깍두기와 그냥 군대 생선찜 비스무레. 식당에서 놀리고 그럴 줄 알았지만, 상상과 달리 시선들 싸늘했다.


“담배는 나가 피워. 멀리 가지 마. 점호 때 온다.”


“군화 벗고 세면 세족해도 됩니까?”


“그려. 침상 밑에 딸딸이 꺼내 신어.”


갑갑했다. 여단 주번부관은 도망갈까봐 감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밖은 컴컴해지고 전입하사들은 텔레비전을 켰다. 말만 알아듣도록 소심하게 볼륨을 줄였다. 조휘준과 민형식은 눈짓으로 담배 들고 나간다. 바깥은 이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뭐가 뭔지 길게 솟은 굴뚝도 무섭고,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무슨 괴성이 들리고 그럴 줄 알았다. 토요일이라 그런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뭔가 탁!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얼마 있다 탁! 소리가 들린다. 나무 패나? 민형식은 바라본다. ‘간부식당인가? 내일 먹을 닭 잘러?’


담배를 다 피웠을 무렵 조휘준이 들어가자 했는데, 약간 남은 민형식이 먼저 들어가라고 한다. 여단이라는 괴물 앞에 잠시 좌절했다가, 작심한 듯 담배 탄두를 손가락으로 튕겨 예광탄으로 날리고 민형식이 천천히 걸어간다. 나무들이 있고 그 안은 작은 숲과 같다. 어두워 눈의 적응이 필요하다. 뭘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 멈춰 딸딸이 발길을 돌린다.


그때 또 탁!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렸을 때 이제 건물로 들어가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형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발이 조용히... 소리 나는 쪽으로 간다.


얼마만큼 갔을까. 한 동안 조용하다. 뭐가 있다가 사라졌나? 잠시 서 있었다. 차갑다. 저녁 공기가.


그때,


갑자기 민형식 오른쪽에서 뭔가 왼쪽으로 휘휘휙 날아가더니 왼쪽에서 퍽 탁! 딩딩딩딩 울렸다. 형식은 발이 얼었다. 나무패는 소리가 아니다. 몇 초 지나자 그게 무엇인가 깨달았다. 그리고, 검은 먹지 오른쪽에서 미세한 명도의 변화가 있다. 움직임의 변화는 일정한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고,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사람. 그림자 하나가 형식에게 다가온다. 형식은 혹시나 자기를 알아챌까 얼굴도 돌리지 않고 눈만 오른쪽을 본다. 헉! 눈동자. 형식은 벗어날 수도 없이 바라봐야 했다. 눈을 돌릴 수도 계속 바라보기도 부담된다. 웃음도 조소도 아닌 눈 동자가 확장된다. 아래서 위로 스캔... 눈에서 못마땅함이 흐른다. 민형식의 소매가 떨렸다. 방해한 것이 저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생각. 두터운 저음이 저 땅 밑에서 올라오듯 작은 숲을 울린다.


“칼을 좋아해?...”


형식은 지고 싶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걸 말하면 안 되는 게 군대라는 걸 알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에 앞서 호기심이 일었다. 군복이 아니라서 병인지 하사관인지도 모른다. 묻고 싶었다. 정말 묻고 싶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그림자는 마음을 읽었다. ‘칼을 좋아해?...’



“투검입니까?”


“투검?”


“아닙니까?”


“내는 명칭이 상이해.”


분위기를 압도하는 컬컬한 경상도 사투리. 그림자가 대검을 눈앞에 들어 보인다. 어둠에 적응된 형식의 눈에 상의 탈의 얼룩무늬 반바지에 탄띠. 거기에 걸린 대검집 여러 개.


“쌔빠(sapper)라 칸다.”


“쌔빠요?”


“밤에 온 몸 진흙 바르고 오는 거.”


“무장공비 말씀이십니까?”


그림자가 어이없어한다.


“마 아이고... 월남.”


형식은 자신에게 놀랐다. 쌔빠요?... ‘요’자를 썼다. 상대는 개의치 않는다.


“투검이 아니라 생사의 순간... 내인데는.”


“여기서 배우는 겁니까?”


“무성무기교육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하시는 겁니까?”


“낸 순간을 기다려. 영원히. 버릇야.”


그림자가 형식을 지나쳐 걸어가더니 꼽힌 것들을 뽑아 대검집에 넣고 돌아선다.


“배울 수 있습니까?”


“걍 짱돌을 쌔리라 마. 미간에 후리.”


“배우고 싶습니다.”


“니 신병하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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