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푸른 눈동자
판타지 작품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과 동행하는 즐거운 시간여행이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가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였다. 대형수족관 안에서 낯익은 물고기 한 마리가 가만히 다가와 동그란 입을 쫑긋거리며 파랑 지느러미를 부드러운 물결처럼 흔들어댔다.
그 푸른색 물고기는 앙증맞고 예쁜 하트모양의 반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 물고기의 몸통 위에 그려진 흰색 하트였다. 그래서인지 그 하트는 물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 물고기는 커다란 날개가 달린 긴 드레스를 입은 여신처럼 보이는 베일블루베타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에게 알 수없는 에너지 같은 것이 그 물고기의 눈망울을 통하여 그의 가슴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뭐지? 물고기 귀신인가? 아니면 내가 전생에 물고기였나? 내가 왜?"
그가 눈을 부비면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어느 순간 그 푸른색 물고기가 아름다운 여신으로 변하고 가늘고 긴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의 손에 그녀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이었다. 그는 시공을 초월하여 깊은 물속으로 순간 이동되어, 알 수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루 전으로 시간 이동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사흘 전으로 이동 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그에게 반복되자, 왜 그런 현상이 그에게만 나타나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그것이 그에게만 있는 불치의 정신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실제로 시간이동이 그에게 일어났던 건지 그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수족관에 있는 푸른색 물고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신비한 에너지가 있거나, 시간의 통로를 열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그건 아니다 싶어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내젓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6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푸른색 하트가 붙어있는 유리벽을 한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그 물고기를 다시 주시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물고기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대형수족관 유리벽 면에 붙어있는 푸른 색 하트 모양의 스티커에 시선을 모았다. 손톱만큼 작은 푸른 색 하트 하나가 가져온 행운과 기적을 되새김질 하면서, 그는 6년 전에 순수한 감정으로 처음 그녀를 만났던 순간을 대뇌의 스크린 위에 조심스럽게 떠올렸다.
1.
그는 그날도 대형 수족관 앞에 서있었다. 푸른 수족관 속에서 소리 없이 부드럽게 떠다니고 있는 물고기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건 까맣게 반짝거리는 작은 구슬 같은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는 일이었다.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물고기들 중에서 유독 흰색 하트모양의 반점이 있는 푸른 색 물고기 한 마리가 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동그란 입을 쫑긋거리면서 코앞까지 다가와 날개처럼 큰 지느러미를 활짝 펼쳐서 흔들어댔다. 그 물고기가 상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일부로 제스처를 쓰는 것만 같았다. 가만히 보면 긴 드레스를 입은 모양의 꼬리가 바다의 여신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 녀석의 이름이 뭔지 궁금했는데, 그의 앞쪽에 서있던 아가씨가 ‘아! 내가 키우던 베일블루베타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그 물고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걸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는 그 물고기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베일블루베타! 베일블루베타’ 하고 그 이름을 반복하여 암송했다. 그 후로 그가 그곳에 나타나기만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 물고기는 코앞까지 다가와 그에게 뽀뽀를 하려고 동그랗게 입을 내미는 귀염둥이로 변신했다. ‘유리벽 하나를 두고도 과연 물고기와 교감이 가능한 걸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의문을 품었지만, 그 물고기는 그가 서있는 자리를 기가 막히게 알고 찾아와 주둥이를 뻐끔거렸다. 그는 그 물고기의 모양을 보고 ‘푸른 하트여신’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푸른 색 드레스를 입은 여신을 닮은 물고기라는 뜻이었다. ‘푸른색 물고기야! 나도 너처럼 흰색 하트를 가슴에 담고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멋진 날이 올까? 너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니?’ 하고 그가 그 물고기의 눈동자를 보면서 입모양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시야에 들어온 다른 물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푸른 색 하트였다. 스티커로 만들어진 하트는 엄지손톱만한 사이즈를 갖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시선은 푸른 색 하트에 머물렀다. 푸른 심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얀 손가락들이 덩그마니 창조해놓은 푸른색 하트에 그의 시선이 꽂히고 만 셈이었다.
“뭐지? 나를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는 게?”
그는 그 하얀 손가락을 따라가다가 그 주인의 옆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이 마네킹을 닮았다. 아니 티 없이 맑은 눈동자와 예쁜 코 그리고 긴 목을 덮는 검은색 생머리가 그의 시선을 강하게 낚아챘다.
청바지 스타일에 검은색 티 하나를 걸치고 굽이 높지 않은 자주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화보에서 본 모델처럼 근사하게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시신경을 뜨겁게 달구었다. 볼륨이 있는 가슴 위로 화려하게 그려진 황금색 그림은 분명코 에펠탑이었다. 황금가루가 작은 점이 되어 흩뿌려지고 있는 파리의 에펠탑은 그녀의 가슴 위에서 보란 듯이 황금빛을 발하며 힘차게 솟아있었다. 그 때, 그의 대뇌 안에 존재하는 스크린에 동영상처럼 떠오른 건, 심해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여신이었다.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면서, 그 에펠탑을 풍만한 가슴으로 안고 있는 거룩한 모습이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닉네임을 지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녀를 ‘푸른 하트여신’이라고 가만히 불러봤다. 푸른 물고기와 같은 닉네임이었지만,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호흡을 멈추고, 그는 그녀의 닉네임을 귓속말로 불러봤다. 그리곤 이성적 제어가 안 되는 바보처럼, 혼자 콧바람 소리를 내면서 연거푸 웃었다.
하지만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히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그녀가 누구인지 알 재간이 없었다. 마치 전생의 연인들이 현세에서 다시 만나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어떤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그저 야릇한 감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이었다. ‘푸른 하트여신은 누구일까?’ 하고 그는 주문을 외우듯 혼잣말로 연실 중얼거렸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대형수족관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푸른 색 하트 하나를 유리벽 면에 남기곤 ‘나에게 하트마술을 보여줘! 올 해가 가기 전에 사랑하는 남자를 꼭 만나게 해 줄 거지?’ 하고 같은 말을 두어 번 반복하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갔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혼자 웃음을 삼켰다. 어쩐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바지 호주머니 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어 들고는 그걸 찬찬히 들여다봤다. 필체로 볼 때, 틀림없는 자신이 쓴 글이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그걸 썼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마도 술김에 이성을 잃고 낙서를 해둔 메모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뭐? 시연이가 납치되고, 아버지가 살해되며, 내게 어린 딸이 있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그런데, 시연이는 대체 누구지?’ 하고 그는 머뭇거리다가 그 메모지를 찢어서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 후로 그는 열대어들을 파는 곳에 들어가, 커다란 수족관 앞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에 대형수족관 앞에서 잃어버린 푸른 하트여신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큰 수족관이 있는 곳들을 의도적으로 자주 방문하곤 했었다. 그 열대어들 중에서도 그의 시선을 끄는 물고기는 당연히 베일블루베타였다. 그렇게 그는 그 푸른색 열대어를 찾아 헤매는 일을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두달이 지난 후였다. 그가 늘 해오던 습관대로 시내에 있는 대형수족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심장이 요동치고, 마치 귀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그의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아저씨! 베일블루베타 있어요?”
어떤 아가씨의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쿡 찌르듯이 자극했다.
그가 고개를 가만히 돌려 그녀의 옆모습을 살펴봤다. 틀림없는 푸른 하트 여신이었다. 그는 ‘하아! 드디어 내가 찾아냈다.’ 하고 마음속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 이 수족관 안엔 베일블루베타가 많으니까, 마음에 드는 물고기를 골라 보세요.”
주인아저씨의 안정된 목소리가 차분하게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높지 않은 자주색 구두와 낡은 청바지가 그의 눈에 밟혔다. 이어서 검은색 티셔츠 위에 그려진 황금빛 에펠탑이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어깨를 덮는 생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오고 있는 그녀의 하얀 얼굴이 그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그를 외면했다.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수족관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푸른색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향긋한 꽃냄새가 흘러나왔다.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반짝이는 눈동자가 그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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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운과 복도 많이 받으세요. 끝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다음화도 읽어주실 거죠?
내일도 기다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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