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여기는 행성함 M-1343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퓨전

냥둘러치기
작품등록일 :
2023.09.25 19:26
최근연재일 :
2023.11.08 21:2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639
추천수 :
64
글자수 :
177,069

작성
23.09.25 19:29
조회
335
추천
7
글자
10쪽

001. 프롤로그

DUMMY

어두운 밤하늘. 쏟아지는 별.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표준적인 행성의 하늘은 대기로 인해, 이런 것이 보이지 않아야 할 테지만, 이 구체 위에 사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일상적인 광경이다.

이는 어떤 광원도 없이, 흔해빠진 공업성 먼지도 없을 때 하늘을 보면 볼 수 있는 은하수와도 다른, 아름다운 광경을 이르는 것이다.

어떠한 방해 없이 자유 속에서 자신을 불살라 발하는 별의 수명.

그것이 공허한 검은 하늘을 뒤덮으며, 검음보다 흰이 그 비율을 더 많이 차지하는 하늘.

과거 인류의 발상지. 녹색 별. 지구에 살았던 이들은 본 적이 없던 풍경.


지구에 살았던 과거의 이들은 이 무한한 공간을 바다로 비유했다.

어두운 밤. 모든 것이 사라진 장소에서, 약하기 그지없는 배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표류하는 것이 바다와 비슷하다며.

어쩌면, 그들은 세상의 넓음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고작해야 행성 표면을 차지할 뿐이었던 물웅덩이를 이 광활한 우주와 비교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나.

땅을 기던 이들은 자신이 살던 땅을 파헤치고, 거기서 얻은 것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그로서 인간이라는 종이 닿을 수 있는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한때, 그 수명을 불태우며 모든 삶을 떠돎에 쏟아 넣는다 한들, 자신이 태어났던 행성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은.

저 너머에 빛나는 빛을 좇아.

그 범위를 넓혔다.


영원히 떠나지 못하리라 생각한, 한때 신과도 비유되었던 불덩이의 주박에서 벗어나.

태초부터 달려온 빛이 그들에게 알려주었던 드넓은 땅에 발자취를 남겼으며.

그조차도 만족하지 못한 인류는 한때 결코 붙잡지 못하리라 믿었던, 모든 것의 기준점을 집어삼키고 그 너머로 나아갔다.

그것이 인류가 가진 숙명이었기에.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갔던 인류지만.

그 본질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비록 그 범위가 한낱 물웅덩이에서.

방대한 우주 전체로 바뀌었을 뿐.


목제 배 위에서, 무한한 어둠을 두려워함에 손톱만 한 불꽃 하나에 의지한 채 식초가 되어버린 포도주를 마시었던 옛 이들처럼.

지금의 인류 또한 자신의 시선 밖의 공허함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공포를 잊고자 인공적 합성물을 제 입 혹은 주입구에 털어 넣는다.

그렇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행성의 표면.

풀밭에 앉아 이 빛으로 가득한 어둠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뻗는 한 남자아이를 말이다.


눈을 빛내며, 그 빛으로 어둠을 꿰뚫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퍼 올려지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다.

한때, 인류가 품었던 호기심.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언젠간, 저 장소에 손이 닿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감정이자.

모든 것을 이루어준 욕망.

그것을 품은 아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비록 저 아이의 처지가 안타깝고.

저 아이조차도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을 머리에서 지워내고.

그저, 빛나는 별을 좇는 아이.


‘예뻐.’

그 아이는 어두운 밤이 만드는 차가운 바람이, 제 몸을 감싼 누더기를 뚫고 체온을 뺏어감에도. 그에 신경 쓰지 않고 그리 생각했다.


바람뿐만이 아니다.

지금 아이의 머릿속에는 자상한 고아원 원장님이나,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복지기업의 파견 사원의 말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밤에 홀로 돌아다니다간, 죽은 다음 가공되어 팔릴지 모른다. 그러니, 고아원 밖으로 나가지 마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임이 분명한 문장.

누군가는 고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알려줬을 것이다.

누군가는 고아의 신변 따위는 알 바 아니지만, 자기 일이 늘어나는 것을 귀찮아했기에 알려줬을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말을 꺼낸 의도도, 어투도, 말하는 방식조차도 전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말을 하여, 아이가 소속된 작은 세계 밖의 위험을 알려주었다.


비록, 아이의 행동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었다.


부스럭.

풀숲이 울리는 작은 소리.

그것이 아이의 귀에 들어감으로써, 아이는 별이 속삭이는 꿈에서 깨어나고.

어른이 알려준 잔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의 내면에서는 어른이 알려준 문장이 떠오른다.

자신이 아는 세계 밖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그와 함께 찬 바람의 현실이. 아이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기에.

아이는 제 모자란 지식으로 끔찍한 미래를 그려냈지만.

현실에는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비율이 나쁜 일에 비하면 낮긴 하지만.

좋은 일도, 평범한 일도 있는 법.

그리고, 아이가 올라간 운명의 시곗바늘은 평범한 일을 가리켰다.


“뭐 해?”

풀숲에서 나타난 새로운 아이는 남자아이에게 아주 익숙한 이였다.

은하수와 같은 빛나는 진한 보랏빛 머리칼에, 빛이 닿지 않는 검정처럼 칠흑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이.

성별이 다르지만, 고아원에 이 아이 이외에 친구가 없는 남자아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이.


“···쫓아온 거야?”

“응.”

“다른 사람들은?”

“안 들켰으니 걱정 마.”

야밤에 뛰쳐나온 것을 들켰다간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여자아이를 쏘아붙인 남자아이지만, 마지막 말을 듣고는 숨을 내쉬며 표정을 풀었다.


“그럼 됐어. 아, 뭘 했냐고 물어봤었지? 별을 보고 있었어.”

“별?”

남자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여자아이 또한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다시 꿈에 빠져들었다.

비록, 둘이 바라보는 방향과 안에 담긴 꿈은 달랐지만.

그리 두 사람의 방향이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꿈은 금세 깨어졌다.


애애애애애애애앵.

이 소리를 듣는 이가 반응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소리에 의해.

그것을 들은 두 아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필 이럴 때.’

남자아이의 머릿속에, 이후 일어날 일들이 빠르게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경보음 때문에 고아원의 모두가 일어나고, 덕분에 자기들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후 일어날 폭력이 동반된 징계까지.

주먹을 떠올린 남자아이는 잠시 고아원에서 도망칠 생각까지도 해보았지만.

곧 고개를 휘저으며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어쩔 수 없지. 빨리 돌아가자.”

주먹이 무섭다고 하지만.

고아원 밖의 인간들이 가진 악의와.

지금부터 쏟아져 내릴 공격은 더욱더 무섭기에.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고아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넌 내가 억지로 끌고 나왔다고 해. 알았지?”

이후 있을 고통을 떠올리면서도, 저리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 안에 있는 천성 때문일까.

그렇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아이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귀를 찌르는 듯한 소음과.

어두운 밤하늘.

빛나는 별뿐.


그런 정적상태 속에서.

수많은 빛이 솟아올랐다.

남자아이가 있던 대지에서 솟아오른 빛들이.

그리고, 반대쪽에서도 빛이 찾아왔다.

남자아이가 바라보던 하늘에서 내려온 빛들이.


그 두 빛은 검은 자리가 남아있던 하늘을 온통 새하얗게 칠했고.

그로서 하늘을 밝게 빛났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빛과 빛이 충돌함으로써, 둘 중 한쪽은. 가끔은 둘 모두 자신의 빛을 꺼트리며 사라졌으니.

그로서 남기는 것은. 금속이 섞인 잠깐의 불꽃뿐.


그것이 본래 자신이 항시 내뿜던 빛보다 밝다고 한들. 폭발과 함께 불꽃으로 화한 이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불꽃이 일어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이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려주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빛은 멈추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리건. 땅에서 솟아오르건.

무의미한 불꽃만을 남기며 사라지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일이라는 듯.


그렇게 무한하게 이어질 것 같은 빛의 향연은.

어떠한 것이 나타남으로써, 그 끝을 열었다.

대지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빛기둥.

붉으면서도 흰 빛기둥은.

대지에서 솟아난 빛이건,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건 구별 없이 모두를 삼켰고.

몇 초 동안 이어지던 빛기둥이 사라진 후.

남겨진 어두운 밤하늘에는 그 어떤 빛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빛은, 본디 하늘을 비추던.

저 멀리 떨어진 빛들 뿐.

빛무리들의 향연이 끝남으로써.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던 날카로운 소음도 잦아들었고.

오늘 밤은 이 이상의 공격 없이 끝났다.


그렇게, 이 별에서의 하루가. 끝을 맞이했다.

오늘도 함락당하지 않은 채.


그럼, 하루의 종막을 알아보았으니.

이 별의 이야기를 해보자.


티가든급 행성함 M-1343.

인류의 황금기. 인류를 지키는 함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던, 중(中)형 전함.

비록, 더 거대한 크기와 화력을 지닌 초거대함들이 존재했기에.

한때는 그저 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제 함명조차 받지 못하고 생산번호로 불린 전함이었지만.

지금은 인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도 많은 가치를 담고 있다.


이 단 하나의 행성함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행성급 병기이기에.

이 단 하나의 행성함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에너지원이기에.

이 단 하나의 행성함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병참기지이기에.


그리고.

이 금속의 대지가.

인류에게 남은 최후의 땅이기에.


터져나가는 불꽃 하나하나에 인간 하나의 인생을 담더라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닌.

금속 구체이기에.


여기는 행성함 M-1343.


빛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류가 손에 쥐고 있는 마지막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의말

댓글! 추천! 선작!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여기는 행성함 M-1343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행성함 연재에 대한 중요 공지사항(연중은 아닙니다.) +1 23.11.29 68 0 -
공지 금일(2023/10/23) 휴재. 허리이슈. 주말 보충. 23.10.23 4 0 -
공지 2023/09/27~2023/09/28 연재분량은 주말에 보충하겠습니다. 23.09.27 18 0 -
공지 연재주기는 월,수,목입니다. 23.09.25 17 0 -
30 030. 사관학교의 일상 +2 23.11.08 34 2 11쪽
29 029. 가지 않은 길 +1 23.11.03 21 3 13쪽
28 028. 걸음마 +1 23.10.30 19 3 12쪽
27 027. 동경 +1 23.10.28 29 3 13쪽
26 026. 금속의 대화 +1 23.10.19 27 1 13쪽
25 025. 철의 마음 +1 23.10.18 24 2 13쪽
24 024. 섹터 봉쇄 +1 23.10.16 22 2 13쪽
23 023. 13기업 +1 23.10.12 26 2 12쪽
22 022. 라이터 +1 23.10.11 26 2 14쪽
21 021. 콜로서스 +1 23.10.09 29 2 13쪽
20 020. 코어 +1 23.10.05 27 1 13쪽
19 019. 풀 메탈 하트 +1 23.10.04 31 1 12쪽
18 018. 자유, 평등, 정의 23.10.03 29 1 17쪽
17 017. 우정+ 23.10.01 31 1 12쪽
16 016. 오리엔테이션 23.09.28 35 1 12쪽
15 015. 금빛 태양 +1 23.09.25 47 2 12쪽
14 014. 입학식 23.09.25 39 3 13쪽
13 013. 기숙사 23.09.25 40 2 13쪽
12 012. 승강역 23.09.25 41 2 13쪽
11 011. 다음 장 23.09.25 40 2 13쪽
10 010. 만들어진 무대(2) 23.09.25 41 2 16쪽
9 009. 만들어진 무대(1) 23.09.25 42 2 12쪽
8 008. 거짓 자연 속에서 23.09.25 48 2 12쪽
7 007. 훈련의 단면. 23.09.25 53 2 13쪽
6 006. 어른 23.09.25 64 2 14쪽
5 005. 총 23.09.25 70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