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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행성함 M-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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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5 19:26
최근연재일 :
2023.11.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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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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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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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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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5. 금빛 태양

DUMMY

새로운 무리를 만나는 일은 항상 어떠한 감정을 동반한다.

그렇지만, 만남에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는 각자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새로운 만남을 기뻐할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인연에 거부감을 표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며 통일성 없는 개체.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이득과 손해를 가져다줄지는 그 누구도 완벽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유라는 그런 새로운 만남 속에서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다.

입학식이 끝난 뒤 생도들은 연고자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작별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교원들의 인도를 받아 10명씩 32조로 나뉘었다.

유라는 이런 숫자로 나뉜 인원들을 보고, 한 가지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10명으로 나눠, 각 준비실에 배치한 상태.

매우 높은 확률로 이것은 함께 사관학교 생활을 해나갈 분대라고.

이 분대가 4년 동안 그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제발 좋은 분대원이기를.

그리 기도하며, 유라는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렸다.

훈련소 시절을 함께 했던 분대원들에 대한 추억.

첫인상은 최악이었으나, 곧 마음을 터놓은 가족이 된 분대원들.

분대 중 최종 생존자는 여섯뿐이었지만, 모두가 꽤 높은 평가를 받아 각자 취직자리를 찾아간 친구들.

그런 분대원을 유라는 바랬건만.


“자! 당신은 어디 출신이시죠!”

유라는 분대 준비실에 들어온 이후 뇌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일단, 분대 준비실은 상당히 멀쩡한 장소다.

기본적으로 기숙사에 개인실이 있긴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분대 단위로 전우애를 다지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기숙사에 못 돌아갈 정도로 철야할 일이 많을 것이란 의미인지, 분대 준비실에도 침대가 있고 각종 비축품이 쌓여 있으며 중앙에는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상이 마련되어 있다.

고아원과 훈련소를 나온 유라로서는 아무도 없는 개인실보다는 이런 분대원이 모이는 장소가 더 익숙하기에, 유라는 분대 준비실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다.

유라를 고민에 빠트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그럼 이번엔 당신! 당신은 어디 출신이시죠?”

이 분대를 한순간에 휘어잡은 ‘미치광이.’ 유라가 진심을 담아 그리 생각한 여자아이.

휘황찬란한 금빛 머리를 단발로 컷하고, 옆머리만을 비대칭으로 늘어트린 헤어스타일.

본래는 양 머리에 어떤 통통 튀는 기계 부품과 비슷한 머리카락이 달려있었지만, 초등사관학교에 입학하며 잘라냈다.

잘 먹고 잘 자란 것을 증명하듯, 유라보다 조금 더 키가 크며, 입에서 발산되는 단어 하나하나도 발음 실수나 새는 소리 없이 주변을 올린다.

볼륨조절이 조금 잘못된 것 같은 문제가 있지만, 그 또한 자신감 넘치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요소.

유라는 무수히 많은 정보와 처음 보는 상황 덕분에, 뇌에 과부하가 걸려 저런 요소를 거의 잡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흘간 페일에게 나름대로 일반 상식을 배웠다고 자부하던 유라에게, 다시금 절망을 가져다준 존재.


‘페일은 분명 다들 처음은 긴장할 테니 괜찮을 거라 했는데···.’

유라는 머릿속으로 페일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며,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유라는 저게 최대한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하며 평정심을 지켜나갔지만.

“거기 당신? 저 헬리오 식스의 질문이 들리지 않으신가요?”

현실은 결국 유라의 정신세계에 들이닥쳤다.

멀리서 손가락을 겨눈 것으로 만족하지 않은 채, 유라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여는 헬리오.

명백하게 유라를 겨냥하여 질문한 상태임에도, 유라는 잠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입을 살짝 뜨며 둔중하게 반응했다.


“음. 당황하신 모양이군요. 어디 보자···. 유라 양? 다시 한번 여쭤볼게요. 출신이 어떻게 되시죠?”

유라의 귓가에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

그 자극을 통해 각성 상태로 돌아온 유라는 눈앞의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단 사실에 당황했지만, 곧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 부근을 향했다는 것을 인지했고, 옷에 자신의 이름이 쓰여있음을 눈치챘다.

“어···. 출신?”

“아. 혹시, 말 못 할 사정이 있나요? 그럼 사과드리도록 하죠. 말하기 힘드시다면···.”

유라의 얼굴에 생겨난 작은 씁쓸함을 헬리오는 빠르게 잡아내었다.

헬리오가 받은 영재교육은 이런 방면으로도 충실했기에.

그렇지만, 짧은 삶을 산 헬리오는 모르는 것이 있다.


“고아야. 훈련소를 나왔고.”

“···.”

담담한, 짙은 체념이 섞인 말.

당당한 자세와 어투로, 모두의 정보를 얻어내려 한 헬리오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헬리오가 예상한 시나리오에서 이런 답은 없었다.

초등사관학교에 입학한 이상, 절대다수의 존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름이 있는 자.

헬리오 또한 예외인 극소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경험이 얕은 헬리오는 그러한 일이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날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

“···.”

분대 준비실 전체에 침묵이 깃들었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아직 찾지 못했기에.

사실, 유라 또한 이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꺼낸 말이기에.


이는 두 그룹의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

외곽지대 출신으로서 훈련소를 나온 유라는 고아라는 이야기가 조금 주변을 침울하게 만들 수 있더라도, 자신들 사이에선 일상적인 일이라 생각하고 꺼낸 말이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시거나, 적어도 한쪽은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 기준으로는, 그리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

물론, 그런 인식의 충돌 말고도 다른 이유 또한 존재한다.

고아, 훈련소.

두 단어를 통해 한순간에 유라가 외곽지대 출신임을 눈치챈 이들.

불결하고, 난폭하며, 무능하고, 쓸모없는.

외곽지대 거주민.

비록 같은 초등사관학교 입학생이라고 해도,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

그렇게 난감함과 경멸이 섞인 분위기 속에서.


“우선,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유라 양.”

영특한 헬리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각했다.

자신이 배운 대로 고개를 숙이고, 진심을 담아 상대의 마음에 흙발로 들어간 것을 사과하고.

“저는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막무가내로 질문을 던져, 말하기 괴로운 말을 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린 후, 유라를 똑바로 바라본 채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이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사과를 받아주시겠나요? 유라 양.”

그 말과 함께 헬리오는 손을 뻗었다.

과거의 사과와 미래의 친애를 담은 악수.

이런 예법을 모르는 유라조차 당당함과 고결함이 느껴지는 사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부끄러움을 당당히 내비치고 자신의 부정을 감추지 않았다.

유라는 그런 헬리오의 행동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유라 또한 사과를 받아들이고 손을 맞잡을 생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유라가 손을 뻗은 것은 유라의 생각과 관련 없이 일어난 일. 뇌가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유라는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을 알아차린 유라가 움찔하며 다가가던 손을 멈춘 순간.


탁.

헬리오 측에서 손을 뻗어 유라의 손을 맞잡았다.

“용서해주셔서 감사해요. 유라 양.”

사과를 받아들인 상대를 향해 밝게 웃으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가라앉은 분대 준비실을 빛나는 감정으로 가득 채우며.

동시에 그녀는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주변의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헬리오는 분석해나간다. 주변의 정보를, 상황을.


‘푸석푸석한 피부, 그리 좋지 않은 머릿결.’

헬리오가 그저 앞으로 나아가던 중에는 보지 못했던 단서들.

‘옷에 남은 주름을 보니 예절 교육도 받지 않은 것 같고. 피부나 눈에 희미한 발광이 없는 것을 보아 임플란트도 없군요.’

그리 생각하는 헬리오의 눈이 살짝 빛난다.

최대한 정보를 많이 취합하고, 생각에 깊게 잠기고자.

‘그녀의 말에 거짓은 없어요. 고아, 훈련소. 아마 거의 확실하게 외곽 출신이겠죠.’

헬리오는 이 결론을 통해, 주변에 흐르는 어두운 감정의 정체를 확신했다.

‘과연, 경멸이로군요. 같은 초등사관학교 신입생이지만 뒷배도 없고 연줄도 없는 최하층민. 함께 졸업한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깃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중간에 낙오할 확률이 높은 가치가 낮은 존재.’

헬리오는 그리 판단했다.

눈앞의 상대가 자신의 시간을 소비할만한 가치는 없는 존재라고.

재능을 인정받은 특례 입학생.

다른 모든 요소를 뛰어넘을 만큼 거대한 재능.

그것은 분명 잘 갈고 닦으면 충분한 가치를 지니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죠.’

거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한들, 재능을 능력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특례 입학생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낙오한다.

갑자기 달라진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달리 기본 지식이 부족한 탓에 교육을 따라잡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기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감성을 내비친 탓에.

‘이득에 대한 평가와 중층 이상의 사람들이 가진 외곽에 대한 혐오가 섞인 것이 지금 저들의 반응이로군요.’

헬리오는 사고를 마쳤다.

그리고, 기업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적대나 경멸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요 이상의 시간을 쏟지도 않는다.

리스크도 높고, 수익성이 높지 않은 품목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일.

헬리오는 그리 배웠다.

그것이 행성함을 지배하는 논리이며, 답이기에.

그리고.

‘하지만, 반드시 거기 따를 필요는 없죠.’

“자. 그럼. 유라 양.”

헬리오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의자에 앉은 유라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몇 가지 참견해도 될까요?”

‘친구?’

“아···. 예.”

헬리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라는 당황했지만, 그 당황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감사해요. 그럼. 실례할게요.”

스윽.

헬리오의 손가락이 유라의 얼굴 피부에 닿았다.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맞닿는 손가락.

그렇게 얼굴 위를 따라 올라가던 손은, 머리카락에 맞닿았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군요. 기숙사 방 번호가 어떻게 되시나요?”

“어··· 502호···.”

“그렇군요. 그 방으로 필요한 물건을 보내드릴 테니, 꾸준히 사용해주세요. 아.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드리는 입학 축하 선물이니까요.”

유라의 뇌에 또다시 지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폭풍처럼 날아드는 헬리오의 행동에, 유라는 어디서부터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답을 내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기만 할 뿐.


툭. 툭.

헬리오의 손길이, 얼굴에서 내려가 유라의 옷을 다듬기 시작했다.

유라가 신경 쓰지도 않던 옷의 주름이 헬리오의 손길에 사라져가고.

그렇게 한번 유라의 상태를 다듬은 헬리오는.


“자. 유라 양. 한가지 알려드릴게요.”

천천히 유라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희와 똑같은 사관후보생이에요. 심지어 재능을 인정받은 특례 입학생이죠.”

천천히, 또박또박.

“저희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은 것도, 임플란트나 생체 조작, 나나이트의 힘을 빌린 것도 아니에요.”

유라뿐만이 아닌 주변 다른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볼륨조절이 망가진 목소리로.

“그러니, 어깨를 펴고 자신의 재능을 자랑스러워하세요. 저희가 부모의 힘으로 쌓아 올린 것에 맞먹는, 자신의 능력을.”

그와 동시에, 헬리오는 유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노려보았다.

식스. 제6기업 창업자의 피를 이은 자로서, 유라에 대한 차별은 용서치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유라는 그런 헬리오의 모습을 보진 못했다.

그렇다고, 헬리오의 말에 큰 감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저러한 격려는 이미 경호원 리우와 건우에게 한번 들은 뒤였기에.

그렇지만, 같은 나이의 아이.

밝고 올곧은 아이가 내민 따스한 손은, 유라에게 맞닿았다.

유라에겐 그것이 그 무엇보다 큰 선물.

그 따스함에, 유라는 조금 더 자신을 가졌다.

그녀의 말대로 어깨를 펼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말

아카데미는 드디어 나왔는데.

로봣은 어디 간 거죠.


추석은··· 쉴··· 지도?

쉬면서 일단 써보겠습니다.

플러스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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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7. 동경 +1 23.10.28 28 3 13쪽
26 026. 금속의 대화 +1 23.10.19 27 1 13쪽
25 025. 철의 마음 +1 23.10.18 23 2 13쪽
24 024. 섹터 봉쇄 +1 23.10.16 21 2 13쪽
23 023. 13기업 +1 23.10.12 26 2 12쪽
22 022. 라이터 +1 23.10.11 25 2 14쪽
21 021. 콜로서스 +1 23.10.09 29 2 13쪽
20 020. 코어 +1 23.10.05 27 1 13쪽
19 019. 풀 메탈 하트 +1 23.10.04 30 1 12쪽
18 018. 자유, 평등, 정의 23.10.03 28 1 17쪽
17 017. 우정+ 23.10.01 31 1 12쪽
16 016. 오리엔테이션 23.09.28 34 1 12쪽
» 015. 금빛 태양 +1 23.09.25 47 2 12쪽
14 014. 입학식 23.09.25 38 3 13쪽
13 013. 기숙사 23.09.25 39 2 13쪽
12 012. 승강역 23.09.25 40 2 13쪽
11 011. 다음 장 23.09.25 40 2 13쪽
10 010. 만들어진 무대(2) 23.09.25 40 2 16쪽
9 009. 만들어진 무대(1) 23.09.25 42 2 12쪽
8 008. 거짓 자연 속에서 23.09.25 47 2 12쪽
7 007. 훈련의 단면. 23.09.25 52 2 13쪽
6 006. 어른 23.09.25 64 2 14쪽
5 005. 총 23.09.25 6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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