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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행성함 M-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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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5 19:26
최근연재일 :
2023.11.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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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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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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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우정+

DUMMY

오리엔테이션이 끝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유라가 페일의 말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려 하기 직전.

“유라 님.”

“왜?”

페일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 덕에 단추를 풀던 유라의 손길이 잠시 늦춰졌고.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예상치 못한 말에 유라의 손이 완전히 멈추었다.

유라의 기억 속에서 이 방에 다른 이가 찾아온 것은 사감이 한번 확인하러 왔을 때 말고는 없었다. 가끔 문밖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지긴 하였지만, 그뿐.

만약 손님이 사감이라면 페일 또한 사감이라고 알려주었을 테니, 손님이라는 말에 감이 오지 않은 유라는 옷 단추를 다시 채우며 문 앞으로 발길을 옮겼고.

“누구세요?”

유라가 페일에게 배운 일반 상식대로 행동하며 문을 연 순간.

“갑작스러운 방문이지만, 실례해도 될까요? 유라 양.”

문 너머에서 품에 무언가를 가득 안은 헬리오가 있었다.

“···어.”

유라가 그 말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잠시 굳은 사이.

“실례할게요.”

헬리오는 유라를 피해 방 안으로 들이닥쳤고.


“자. 이건 13의 회복제 2종. 매일 일어난 직후, 자기 직전에 한 알씩 드세요.”

툭. 툭.

헬리오는 품에 안은 것을 책상 위에 늘어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8에서 만든 영양제. 식후 한 알씩 드시면 될 거예요. 아, 화장실 거울에서 영양 과다라고 나오면 그만 드셔도 돼요.”

툭. 툭. 툭.

“이건 10 특제 트리트먼트와 스킨케어랍니다. 따로 정해진 용법은 없고 씻은 뒤 사용하시면 될 거예요. 신체 내부에는 영향이 없는 일회용 나나이트니까 효과가 탁월하답니다.”

툭. 툭. 툭. 툭.

헬리오의 설명과 함께 유라의 책상 위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물건.

“···.”

“···그리고 이건···.”

무의식적으로 헬리오에 가까워진 유라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최대한 기억하려 하지만, 헬리오가 알려주는 수많은 물건의 사용법은 이미 유라의 기억 한도치를 넘었다.

그렇게 점차 유라의 눈이 몽롱해지던 와중.

“아. 다 기억하기 어려우신가요? 그럼···. 거기 비서?”

유라의 기억력과 집중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을 눈치챈 헬리오는 페일을 불렀고.

“예. 부르셨습니까?”

상황을 관망하던 페일은 헬리오의 호출에 답했다.

“방금 제 말 모두 기억했죠?”

“예. 기억했습니다.”

“좋아요. 그럼 저 대신 유라 양이 제대로 사용하는지 확인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페일의 답이 조금 늦어졌다.

그것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연산을 사용한 탓도 있지만, 헬리오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

그렇지만 헬리오는 페일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기에.


“자. 앉아보세요. 유라 양.”

수많은 약품과 식품, 그리고 화장품에 대한 설명을 끝낸 헬리오는 유라를 의자에 앉도록 지시했고.

“혹시 이런 물건을 사용해 본 적 있나요?”

헬리오는 바로 앞에 놓인 스킨을 집어 들며 유라에게 물었다.

경멸이나, 우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담기지 않은, 순수한 선의로.

“처음이야.”

헬리오의 그런 감정을 민감하게 인지한 유라는 편하게 입을 열었고.

“그럼, 이번엔 제가 해드릴 테니, 잘 기억해주세요.”

헬리오는 미소와 함께 손을 움직였다.

뽁.

통의 뚜껑이 열리고.

툭. 툭

헬리오는 자신의 손에 점성이 있는 화장품을 옮겼다.

“나나이트가 포함된 물건이라 그대로 발라도 되지만, 이물질이 있으면 효과가 떨어지고, 바른 뒤에 얼굴을 씻으면 나나이트가 씻겨나가니 씻은 뒤 곧바로 바르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손가락 끝에 적정량을 옮긴 헬리오는 유라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눈주름이나 코로 인해 굴곡진 안쪽에서, 밖으로.

“얼굴 중앙부에 굴곡이 많으니, 신경 쓰지 않으면 그런 장소에 스킨이 뭉치게 된답니다. 나나이트가 자연스레 펴주긴 하지만, 최대한 효과를 끌어올리는 편이 좋잖아요?”

슥. 슥.

차가운 감촉이 유라의 얼굴 표면을 스쳐 지나간다.

처음 느끼는 그런 감각에, 유라는 몸을 맡겼고.

“음. 다음은 로션이랑 쉴드인데, 우선 피부가 나나이트에 적응하도록 두고, 머리부터 하도록 하죠.”

툭.

헬리오의 손가락이 유라의 얼굴에서 멀어지고, 그 대신 손가락으로 단발이라 할 유라의 머릿결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음. 너무 푸석푸석하네요. 영양제부터 잔뜩 뿌려야 하나.”

곱게 자란 헬리오로서는 경험이 없는 미지의 상황.

그에 헬리오는 잠시 고민했으나.

“일단 영양을 팍팍 줘보죠. 영양이 많아서 문제가 생기진 않을 테니까요.”

곧 머리카락용 영양제를 손에 들고 꼼꼼히 바르기 시작했다.

실 하나하나를 코팅하듯 섬세하게.

그렇지만, 평범한 인간의 뛰어넘는 속도로 빠르게.

그 과정을 그저 유라는 멍하니 느끼기만 하였고.

머리카락 손질도 끝나고, 조금은 끈적한 로션과. 그런 밑 작업을 보호하는 쉴드 처리도 끝난 뒤.

“머리카락은···. 잘못 건들면 오히려 상할 것 같네요···. 머리카락 쪽은 나중에 다시 알려드릴게요.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화장인데···.”

헬리오가 손에 들었던 수많은 약물과 화장품을 내려놓고, 책상에 놓인 다른 화장품으로 손을 뻗으려던 순간.

“하나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헬리오 님.”

페일이 헬리오에게 말을 걸었고.

“뭐든지요!”

헬리오는 한낱 인공지능 비서가 자신의 행동을 멈추었음에도 짜증 내는 기색 없이 페일에게 주의를 돌렸다.

“왜 유라님의 호칭이 ‘양’인 겁니까?”

“아, 호칭 말씀이신가요? 높임말이라고는 하나 동격인 동급생에게 붙이기로는 그럭저럭 적절한 명칭 아니겠나요?”

상식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대화 주고받음 속에서, 정작 당사자인 유라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고개를 기울였다.

일반 상식의 부족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의 오류마저 인지하지 못했기에.

페일 또한 주인의 명예를 생각하여 입을 다물었지만, 계속 놔두면 헬리오의 오해와 함께 주인이 잘못된 지식을 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헬리오 님. 유라 님은, 남성이십니다.”

“하? 그럴 리 없잖아요. 보급형 모델이라 고장이라도 난 건가요? 제 분석에 따르면 확실히 여성···.”

“표층 정보 분석에 따른 결과입니까?”

“예, 당연하죠. 타인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랍니다?”

헬리오의 말처럼, 이 행성함에서도 개인정보는 여러 수단으로 보호받기에 일반적 방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헬리오의 어투에서는 강제로 보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자신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가득 묻어나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개인정보를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해당 문제의 발생 원인은, 연령에 맞지 않는 육체 강화 약물 투여와 나나이트 삽입에 따른 부작용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페일의 상식적인 말에, 자신감 넘치던 헬리오의 행동이 잠시 멈추었다.

그것은, 아무리 보급형 개인비서라 판단에 여러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의 특성상 근거 없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헬리오가 보았던 유라의 표층 정보에도 나나이트 이상이라는 탐색 결과가 존재했었다는 결과가 합쳐졌기에.

그렇지만, 헬리오의 그러한 당황은 잠시뿐.

헬리오는 밝은 미소를 띤 채 유라에게 고개를 돌렸고.

“유라 양?”

헬리오는 여전히 그대로인 호칭을 내뱉으며 유라를 불렀다.

목소리가 조금 떨리긴 하지만, 자신이 틀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집을 담아.

“왜···?”

아무리 일반 상식이 부족한 유라라 하더라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했다.

헬리오가 자신의 성별을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헬리오가 틀렸다는 사실도.

“잠시 성별 부분의 개인정보를 확인해도 될까요.”

녹음된 소리처럼 규칙적이던 헬리오의 목소리에 균열이 깃들었다.

그녀 또한 완벽한 존재는 아니라는 증거로서.

유라는 헬리오의 그런 모습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냥 자신이 남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렇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눈앞의 상대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이라고.

삶의 경험이 얼마 없는 유라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그러한 성질이 강한 존재.

그렇기에 유라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 그런데, 그건 어떻게···.”

“그 말로 충분해요.”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핏.

헬리오의 동공에 짧은 섬광이 튀고, 두 사람의 대화를 구두계약으로 인정한 개인정보 보안 시스템이 해당 정보를 개방했다.

극도로 짧은 시간,

그리고, 헬리오는 필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눈앞의 존재는 몸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확실히 남성이라고.

이 나이의 아이가 성별이 구분하기 힘들긴 하지만, 여러 문제가 겹쳐 있을 뿐 눈앞의 존재는 유전적 성별이 확실하게 남성이라고.

“···.”

자신이 틀렸음을 인지한 헬리오는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헬리오?”

계속 수동적이었던 유라가 먼저 나서서 걱정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그렇게 헬리오가 굳어있기를 약 20초.

유라는 헬리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맥박을 재기 위해 손을 뻗었고.

유라의 손이 헬리오의 피부에 닿으려는 순간.

“···!”

헬리오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유라의 손을 피했고.

“실례했습니다. 유라··· 씨.”

헬리오는 유라가 보기에도 명백하게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제가 드린 약은 꼭 쓰도록 하세요. 아, 화장품 종류는 빼고···.”

등을 보이지 않은 채 문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헬리오의 움직임은 몸에 새겨진 예의범절 덕에 여전히 절제되고 품격이 흘렀지만, 한번 망가진 얼굴의 미소는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럼. 내일 다시.”

덜컥. 덜컥.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보다 문이 빨리 열리지 않자, 유라에게 보이지 않게 등 뒤로 손을 뻗은 헬리오가 힘으로 문을 여는 소리.

기긱. 기긱.

문의 전자석은 작은 소리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것처럼 울부짖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감추려는 헬리오에겐 그런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푹 쉬시길.”

마지막 인사와 함께,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던 헬리오는 유라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헬리오가 강제로 문을 연 탓에, 문에 약간의 이격이 생겨 덜컹거리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는 방에서,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유라는 무덤덤하게 그의 시점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 입을 열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해? 페일.”

주인인 유라의 질문에 페일은 잠깐 버벅대며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한의 연산을 동원했고.

“내일 만나실 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시면 됩니다. 유라 님.”

가장 합당하며 통계적, 역사적으로 올발랐던 답을 내놓았다.

“···정말 그거면 돼?”

“제 연산 능력으로는 그 이상의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라 님.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신체 검진을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그럴게.”

사실, 둘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오늘은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만 진행하고 수업이 없었기에 이제라도 의무실이나 병원으로 향해도 시간이 넉넉하지만.

유라와 페일, 둘 모두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당황하여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인공지능에 인격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높은 연산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성향과 상황에 따라 선택지는 편향되는 법.

만약 페일의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첫날이라면 페일 또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페일은 유라를 만났고, 주인의 성격에 맞춰 무작위성이 가미된 인격을 형성하도록 제조된 모델 FIAL-8999은 프로토콜에 따라 이틀 만에 기본적인 인격 형성을 끝냈다.

사람을 모방한 지성은, 사람의 실수를 반복한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가 그것을 알려주었음에도 행성함의 거주민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쩌면, 이러한 실수야말로 행성함의 존재들이 스스로를 인류라 정의하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작가의말

이것이 아카데미다(희망편)

로봣과 행성함의 행복한 일상이 나오기 전에.

자, 호흡 한번 돌리고 갑시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내용이긴 하군요.

성전환(TS) 장르는 아닙니다.

그건 이미 전작에서 써먹었어요. 벅벅.

내일은 X-COM풍으로 99%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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