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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행성함 M-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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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5 19:26
최근연재일 :
2023.11.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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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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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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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8. 거짓 자연 속에서

DUMMY

자신이 태어난 최초의 요람을 떠나 저 멀리까지 나아간 인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요람을 그리워한다.

흔들려 사락거리는 나뭇잎의 소리를.

바람에 밀려오는 바다의 습기를.

열을 머금은 모래의 따뜻함을.

비와 함께 생겨나는 습지의 불쾌함을.

내려찍는 번개의 놀라움과 폭력성을.

그것이 인류에게 있어, 어떤 감정을 주던 것이건.

그들은, 잃어버린 요람에서 생겨난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한 그리움의 증거가, 훈련병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들의 집이 되어버린 훈련소보다 더욱 행성함 안쪽에 자리한 구역.

행성함은 안쪽으로 갈수록, 기업의 기준으로 더 가치 있는 인간이 사는 것은 그들도 아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훈련병의 대다수는 외곽부의 출신.

모든 것이 오탁에 잠긴, 불결함과 무질서만이 휘몰아치는 장소에서 삶을 보낸 이는 자신의 눈앞에 비치는 광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녹색 나무와 갈색 흙.

그것들이 바위와 대지에 달라붙어 형성한, 거대한 구조물을.

그들은 자신의 감각을 믿지 못한다.

저 멀리, 시선이 닿는 끝에. 처음으로 보는 투명한,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물이 대량으로 흐르고 있음을.

불어오는 바람에 고약한 냄새. 기름과 강철, 피의 냄새가 섞이지 않았음을.

태어나 처음으로 오염 없는 공기를 접한 폐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폐의 주인에게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처음으로 느낀 순수하고 맑은 공기는. 그들에게 공기의 맛을 깨우치게 하였으니.

행성함 내부에 이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극히 일부의 훈련병을 제외한 나머지 훈련병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이런 장소에 왔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자연에 순수한 감탄을 표했다.


‘애들은 애들이야.’

그들을 인솔하는 훈련 담당자 중 한 명은, 애들의 반응을 보고 생각을 이어 나갔다.

‘하긴, 나도 처음에 봤을 땐 그렇게 생각했었나.’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어 마음에 격양을 품었다.

자신이 살아온 무질서한 뒷골목뿐만이 아닌,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는, 그 뒷골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탁 트인 자연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은, 진흙탕에 잠겼던 그의 삶에 있어, 처음으로 겪어본 방대한 사치였으니.

‘물론, 지금은 이조차도 별것 아니란 사실을 알지만.’

그는 기업의 이름으로 삶을 살며, 행성함의 더 깊은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여기처럼 외형만 그럴싸하게 따라 한 것이 아닌, 진정한 자연이 존재한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색색의 식물이 피어난 정원.

그 위에 쏟아지는 맑은 비.

기분 좋은 쏟아짐이 끝난 후, 잎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작은 물방울까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한들, 계속 보면 질릴 수 있건만.

그것을 색다르게 보여주는 날씨나 계절과 같은 변화.

거기서 피어나는 수많은 자극까지.

외곽에서 태어나, 조금씩 행성함의 안쪽까지 태어난 그는 자연이 주는 풍족함을 제 친우들에게 알린 적이 있지만.

그들은, 그가 말하는 내용에 공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의견을 꺼내는 그에게.

이런 자연을 구현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느니, 그런 리소스를 다른데 사용하면 더 삶이 풍족해질 것이라느니 하는 답을 돌려주었을 뿐.

‘분명, 처음부터 그런 자연이 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겠지.’

잃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혹은, 가지지 못한 이가 손에 넣었을 때 알 수 있는 것.

그것을 알고 있는 훈련 담당자는, 잠시 아이들의 감동을 깨는 것을 망설였지만.

그는 곧,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자각했다.


“주목! 자유시간은 거기까지다!”

사방이 뻥 뚫린 자연 속에서 메아리치는 거대한 함성.

그 목소리는 인생 처음으로 자연을 마주하여, 자신들의 본 모습인 아이로 돌아가 작게나마 떠들던 훈련병들의 의식을 다시금 훈련병으로 바꿔버렸다.

동시에, 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차출된 훈련 담당자와 병사들 또한 훈련이 시작됨을 알고 자세를 바로 하였으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됨을 확인한 훈련 담당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소식을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 너희들은 이 장소에서 실전훈련을 수행할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담당자의 뒤쪽에 자리한 병사들은 가져온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덜컹.

금속음을 울리며 열린 컨테이너.

그 안에는 회색 배낭이 가득 담겨있었다.

“우선, 한 명씩 보급품을 받아 가도록, 빠르게 움직여라!”

그 명령에, 훈련병들은 빠르게 줄을 서서 가방을 받아들었다.

훈련이 잘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정체 없이 규칙적으로 배낭을 받아 든 훈련병들은 제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품에 안았다.

그 누구도 명령 없이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살피지 않았고, 가방에 엎드려 몸을 맡기는 훈련병도 없었다.

시키지 않은 행동을 해서 좋은 것이 없음을, 그들은 폭력이 동반된 훈련을 통해 알고 있기에.

그렇게 자기 결정권이 말살된 훈련병들은 착실하게 명령을 완료했다. 확연하게 빠르진 않지만, 느리다는 의견은 튀어나오지 않을 속도로.

오와 열을 흐트러트리지도 않았으며, 돌발행동을 보인 훈련병도 없었다.


‘그래도, 본래라면 호통을 쳐야 한다.’

초등훈련소의 목적, 그것은 병사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사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전투력? 상황파악능력? 임기응변? 생존력?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병사의 능력 평가에는 그 모든 조항에 대해 배점이 존재하니.

그렇지만, 상부에서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다.

무조건적인 충성.

불합리한 명령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판단에서 어긋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명령이 내려온 이상, 반드시 기업의 명령에 따를 수 있는 인재.

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상대를 다그치고, 작은 잘못을 들춰내고, 불합리한 체벌을 가함으로써.

병사 스스로가 무기력을 학습해, 조그만 일탈조차 생각하지 않도록.

‘이번은 봐주도록 하지.’

담당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아이들에게 자그만 호의를 베풀자고.


“주목! 모두 보급품은 챙겼겠지!”

모든 훈련병이 보급품을 챙긴 것을 확인한 담당자가 호통을 쳤고.

침묵이 돌아왔다.

그들이 말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에.

설령 받지 못한 이가 있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기에.

“지금부터 너희는 사흘간 이 장소에서 생존 훈련을 할 것이다.”

그 말은 훈련병들에게 당황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작은 숨소리조차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작은 행동에서 배어 나오는 감정은 숨길 수 없었으니.

“이 훈련은 각 분대로 나뉘어 수행될 예정이며.”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자리에 있는 훈련병들은 담당자의 말에 귀 기울였다.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도록.

“너희의 목표는 두 가지다.”

시선이 모인 것을 느낀 담당자는 손가락을 둘 들어 올렸다.

“하나. 각 분대에 전달될 목표를 제한 시간 내에 달성할 것.”

손가락 하나가 접히고.

“둘. 살아남을 것.”

들어 올려진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은 채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

담당자의 말이 끝났다.

훈련병 모두에 의문이 피어나지만, 그들에게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기에, 그저 그들은 눈을 돌려 같은 분대원들을 바라볼 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다.”


탁.

훈련 담당자는 군홧발 소리를 내며 훈련병들에게서 멀어졌고.

총을 든 감시병들이 그 뒤를 따라 사라짐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가 찾아왔다.

감시하는 존재도, 압박하는 존재도 사라진.

제한된 자유가 훈련병들에게 내렸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훈련병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명령받은 것이 없었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잘려 나간 자기 결정권은 그들을 고장 난 로봇으로 만들었고.

그 오류가 수정되기까진, 수 분이 필요했다.


처음은 웅성거림.

다음은 군집.

누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행동해도 처벌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 훈련병은 익숙한 분대원끼리 모였고.

유라 또한 그중 하나였다.

“목표에 대해 뭐 들은 거 있나?”

모인 분대원들 사이로, 분대장이 그리 질문을 던졌지만.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뿐, 답을 내진 못했고.

“···하는 수 없지. 보급품부터 확인하자.”

부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다음 명령을 내렸다.

그에 명령은 일시 분란하게 수행되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자신의 몸만 한 크기의 배낭에서 유라는 안에 든 것을 확인해나갔다.

비닐에 담긴 물 세 봉지.

음식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상자 셋.

익숙한 총번이 새겨진 자신의 총과 총알 백 발.

유라의 주먹보다 큰 수류탄 둘.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얇은 두께의 침낭.

얼마나 사용된 것인지, 색이 다 벗겨진 야전삽.

색이 바랜 것인지 아니면 본래 이리 인쇄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질 낮은 지도.

그 모든 것을 꺼낸 유라는 배낭 안쪽을 더 자세히 찾아보았지만, 이 이상 나오는 것은 먼지뿐.

보급품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탓하기에 아이들은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었고.

유라는 그저 다른 분대원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물품을 배낭에서 꺼내는 동료들을.


약간의 시간이 지나, 모두의 보급품이 같음을 확인한 분대원들은.

“···이건가.”

들려온 분대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분대장은 배낭 안에서 흰 종이를 꺼내며 분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이게 우리 목표인 것 같다.”

말하는 동안의, 약간의 뜸 들임.

분대장은 그 즉시 종이를 분대원들 사이에 내밀었지만, 분대원들은 그 잠깐의 시간조차 참지 못해 종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덕에, 서로가 머리를 부딪치며 약간의 통증이 일었지만.

아이의 호기심은 그런 통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읽어나갔고.

아이들이 읽은 종이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포인트 A9, E3, J8에 순서대로 도달.’

그렇게 모든 아이가 문구를 읽었을 때쯤, 종이 위로 지도가 내려왔다.

이미 명령을 읽은 분대장이, 분대원들이 궁금해 할 것을 예상하고 내민 지도를.

유라는 곧바로 지도의 해석을 시작했다.

현재 위치는 E6.

도달해야 하는 세 포인트는, 삼각형을 그리는 지도의 끝.

지도에 척도가 나와 있지 않아 얼마만큼 먼 거리일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그리 가깝진 않을 거라고 유라는 짐작했다.

이 훈련소에서, 쉬운 훈련이라곤 없었으니까.


“다들 확인했지?”

모두가 지도를 읽었다고 확신한 분대장은 그리 말하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고.

“그럼, 움직이자.”

분대원 모두가 보급품을 다시 배낭 안에 재빨리 집어넣은 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유라와 똑같이,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으니까.

가장 앞서 나아가는 것은 분대장.

유라의 위치는 정중앙.

유라의 체력이 약한 만큼, 가장 뒤에 놓았다간 낙오할 수 있다는 것을 분대원 모두가 알기에.

분대원들 사이에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비록 처음엔 애물단지였던 유라였지만, 시간은 결국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으니.


그렇게, 유라가 속한 분대는 세 번째로 움직인 분대가 되었다.

아직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한 훈련병들을 남기고 앞서 나가기 시작한 유라는.

‘응?’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그렇지만, 유라의 감각으론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으니.

‘착각인가.’

유라는 다시 분대원들을 따라 걸어 나갔다.

만들어진 자연 속으로.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뒤로하며.


작가의말


아머드코어 하세요

짐머맨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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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9. 만들어진 무대(1) 23.09.25 42 2 12쪽
» 008. 거짓 자연 속에서 23.09.25 4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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