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행성함 M-1343

023. 13기업

초등사관학교에는 군사학과 관련 없는 분야의 여러 수많은 수업이 존재한다.

도덕, 언어, 사회, 산수, 자연, 군사학, 기술 등의 가장 기본적인 학습 과목들.

이는 초등사관학교의 입학생이 너무 나이가 어린 탓에, 저러한 일반상식이나 기본 지식에 관한 교육이 없다면 기업의 일원으로 써먹기 어려우므로 초등 교육기관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물으리라, 기계 심장이 콜로서스의 조종법을 뇌에 주입한 것처럼 저런 지식도 주입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실제 옛 시대의 인류도 그러한 생각을 하였고, 옛 시대의 기술을 활용하여 멋대로 뇌를 주물렀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뇌의 기억 메커니즘 중 그러한 일반상식과 계산식을 기억하는 것은 장기 기억 중에서도 명시적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

물론, 암묵적 기억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뇌는 심오하기에 딱 잘라 무엇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분야.

확실한 것은 그러한 뇌의 기억 방식에 무언가를 명확하게 기억하도록 주입하는 것은, 단기 기억보다 더한 조건과 기술이 필요했다.

본인이 그것을 알고자 하는 깊은 의사와 해당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반복되는 자극.

전자의 조건은 약물과 심상 의도로 어떻게 해낼 수 있다 하더라도, 후자를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 주입이 요구되었다. 뇌의 정보 처리 한계가 있기에, 한꺼번에 대량의 정보를 욱여넣는 것 또한 불가.

즉, 소량의 정보를 반복해 주입해야만 그러한 기본 지식을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며, 거기에 걸리는 시간과 자금은, 평범하게 일반 교육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얻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불가능하단 것은 아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뇌를 외부에서 보조하는 외부장치를 이식하는 것. 이는 현재 행성함에서도 흔하게 행해지는 작업이지만, 뇌가 발달하는 시기인 아이들에게 적용 시 막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지금의 행성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쓰고 버리기 위해 제품의 수명에 연연하지 않는 클론을 생산할 때, 외부 작용을 통해 뇌의 사고능력과 생성 능력을 극도로 가속해 클론의 체감 시간을 늘린 상태에서 위의 정보 주입을 반복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뇌의 과부하로 인한 수명 감소와 인격적 결함이 일어날 확률이 크게 높아지기에 한정된 생산법에서만 사용되었다.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 심장은 무엇인가.

기계 심장은 특수한 물건이다.

한 사람의 유전자를 완전히 복제한 새로운 인간을 만든 뒤, 오직 콜로서스의 지식만을 주입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절제하여 만들어낸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부적합한 물건이 여럿 만들어지기에, 수많은 클론을 생산하여 적합한 하나를 만들어내는, 생산 단가가 매우 높은 물건.

본래 주인과 유전적, 신체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며 이어지는 수많은 문제도 여러 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해결한 제6기업의 걸작.

물론, 기계 심장은 절제하고 남은 뇌 일부와 신경계를 씨앗으로 할 뿐 기기 자체는 수많은 기계가 덧붙여져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기계 심장이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할 순 없다.

이렇듯, 우주를 지배한 옛 시대의 인류도, 자그마한 사람의 뇌를 완전히 정복하진 못하였다.

그렇기에, 유라와 헬리오, 그리고 그 동급생들은 열심히 수업을 받고 있다.

아이들 특유의 지식에 대한 갈망이 없더라도, 이런 수업의 성취도 또한 기업의 평가에 직결된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더더욱 저런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학습실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졸거나 대놓고 다른 짓을 하는 아이는 없지만, 반절 이상의 아이들은 흥미를 잃은 채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이렇듯 행성함의 생산 단가는 옛 인류에게도 부담이 되는 수준이었기에, 각 행성의 개조나 건조를 전담하는 민간 기업을 행성함 별로 따로 두었으며 이것이 지금의 행성함을 유지하는 13기업의 시작···.”

오늘의 수업은, 사회 과목 중에서도 행성함을 유지하는 13기업의 기본 개념에 대한 수업.

현재 학습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29명 중 반수 이상이 13기업 출신이며, 해당 정보는 어릴 때부터 귀에 총알이 박히도록 수없이 들으며 자랐기에 관심이 생기려야 생길 수 없는 분야.

그것을 알기에 수업을 진행하는 담당 교사도 이번만큼은 아이들의 행동에 경고하지 않은 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13기업의 목록입니다. 설립 초기와 이름과 관장 분야가 크게 달라졌지만, 기업의 뼈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그 말과 함께, 교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던 모니터의 내용이 바뀌었다.

제01기업 중앙 발전(發電) 기업.

제02기업 중앙 채굴(採掘) 기업.

제03기업 중앙 복원(採掘) 기업.

제04기업 중앙 전자(電子) 기업.

제05기업 중앙 치안(治安) 기업.

제06기업 중앙 군사(軍事) 기업.

제07기업 중앙 정치(政治) 기업.

제08기업 중앙 식품(食品) 기업.

제09기업 중앙 건조(建造) 기업.

제10기업 중앙 유흥(遊興) 기업.

제11기업 중앙 의류(衣類) 기업.

제12기업 중앙 통신(通信) 기업.

제13기업 중앙 의학(醫學) 기업.

13기업의 리스트와 함께 교사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해당 기업의 정렬 순서는 행성함 유지를 위한 기업의 중요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7에 가까울수록 중요도가 높은 기업이며, 멀어질수록 중요도가 낮은 기업이죠. 즉. 제7기업이 가장 높은 중요도를 지니며, 제1기업과 제13기업의 중요도가 가장 낮습니다.”

이를 통해 행성함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 리스트.

다만, 해당 리스트의 정렬은 기업의 본질과 함께 행성함의 긴 역사 동안 수없이 바뀌어왔다.

긴 역사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6, 7, 8에 해당하는 정치, 군사, 식품 분야 세 기업뿐.

“그렇지만 여러분. 기억해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제1기업과 제13기업의 중요도가 낮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기업이 다루는 가치의 중요도일 뿐. 중앙 기업인 13기업은 모두 행성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중앙 기업끼리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교사는 이렇게 아이들을 타이르지만, 진상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겉으로만 드러내지 않을 뿐, 마음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기업끼리는 사업상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럭저럭 사이가 괜찮지만, 제7기업의 행패는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

그리고, 어른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서로 자신의 기업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느냐를 꺼내며 다툰다는 사실도.

물론, 제7기업 또한 나머지 기업 중 다수가 분노할만한 문제를 일으키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기업 간의 표면적인 동등함은 유지되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것은 어디까지나 13기업에 속하는 중압 기업 사이의 알력다툼일 뿐.

중앙 기업이 독점하는 정치를 제외하는 가장 높은 가치인 군사와 식품을 다루는 회사라 한들, 중앙 기업이 아니라면 아무리 거대한 회사라 하더라도 제1기업과 제13기업조차 상대하지 못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중앙 기업을 제외하면 가장 거대한 회사로 성장했던 소일렌트 블랙이라는 식품 기업이 있었다.

행성함 외곽과 중간층 반절 가량을 장악했던 해당 회사는 어떤 원재료 생산 특허를 무기로 제13기업인 중앙 의학 기업과 분쟁을 유발하였고. 해당 회사는 분쟁 시작 일주일 만에 파멸하고 말았다.

소일렌트 블랙의 주력 상품이었던 맛이 나는 판자는 이틀 만에 해독 불가능한 독소로 오염되어 식품 유통을 해주었던 제8기업의 판단에 따라 전량 폐기조치가 되었고, 이사진은 원인불명의 전염병에 걸려 닷새 만에 전원 사망하였다.

분쟁을 시작했던 회사 사장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특허권을 무기로 제13기업을 압박하려 하였지만, 곧 외곽 지대에 전염병을 살포하였다는 명목의 죄목으로 인하여 제5기업이 파견한 치안유지부대에 의해 회사원과 본사 건물과 함께 소거 처리되고 말았다.

그것이 행성함을 뒤흔든 소일렌트 블랙이라는 회사의 최후.

행성함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기업의 위치에 올라간 회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 중에서도 기업을 흔들 만큼 강대했던 회사가 소수 존재하였으며, 그런 회사 중 일부는 기업을 흡수합병하여 기업의 자리에 올라가곤 하였다.

회사의 능력을 증명하고, 자신들의 가치를 보이며 다른 기업을 잡아먹고 기업에 합류한 유능한 인원들이라면 중앙 기업에 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일렌트 블랙 사건과 같은 악의적인 싸움에서는 중앙 기업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오판한 회사라면.

그 뒤로 교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제1기업. 중앙 발전(發電) 기업.”

“행성함의 전역에 닿는 에너지 유통과 소규모 에너지 저장장치, 행성함 외부에서의 원격 송전을 담당합니다.”

“제2기업 중앙 채굴(採掘) 기업.”

“행성함을 주변의 소행성이나 행성 파괴를 통한 원자재 수급을 담당합니다.”

“제3기업 중앙 복원(採掘) 기업.”

“우주를 지배하던 옛 인류의 소실된 기술 복원과 안정성 검증을 담당합니다.”

“제4기업 중앙 전자(電子) 기업.”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수준의 공학 제품 생산과 전자공학 기술발전을 담당합니다.”

“제5기업 중앙 치안(治安) 기업.”

“행성함의 치안을 유지하고, 법을 위반한 존재를 사살하거나, 포획 후 유통을 담당합니다.”

“제6기업 중앙 군사(軍事) 기업.”

“행성함 외부의 전투를 전담하며, 제5기업이 처리할 수 없는 행성함 내부의 치안을 요청하에 담당합니다.”

“제7기업 중앙 정치(政治) 기업.”

“법률 제정 전체. 법률 적용과 집행 일부. 그리고 섹터의 통치를 담당합니다. 기본적으로 정직원이 존재하나 선출직 인원도 해당 기업에 포함됩니다.”

“제8기업 중앙 식품(食品) 기업.”

“식품과 유기물 원자재 생산, 유통. 식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담당합니다.”

“제9기업 중앙 건조(建造) 기업.”

“건축, 전함 건조, 콜로서스 생산, 행성함 개량 및 수복, 기후 통제 등을 담당합니다.”

“제10기업 중앙 유흥(遊興) 기업.”

“타 기업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희 생활에 관련된 전반적인 영역을 담당합니다. 실제 영역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타 기업과의 마찰이 심한 기업이기도 하죠. 저희 제6기업과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만.”

“제11기업 중앙 의류(衣類) 기업.”

“의류의 생산과 유통, 임플란트의 생산, 전자 섬유의 생산 등을 담당합니다.”

“제12기업 중앙 통신(通信) 기업.”

“행성함 내외부의 통신 안정, 공용 통신망의 전자 보안, 공용탑승물의 관리를 담당합니다.”

“제13기업 중앙 의학(醫學) 기업.”

“의학 기술의 개발과 전파, 클론 생산, 유전자 관리 등을 담당합니다. 의약품을 제외하면 특별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은 드물지만, 타 기업과의 기술 공유가 활발한 기업이기도 하죠.”

그렇게 길게 이어진 교사의 기업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실제로는 해당 기업들은 더 깊고 세밀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서로의 영역이 충돌하는 일도 잦아 흔히 기업분쟁이 흔히 벌어지곤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의 수준에서 그만한 수준의 지식은 없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수업 탓에 많은 아이가 교사의 말을 흘러들었지만, 유라는 조용히 그것을 경청했다.

13기업의 정확한 구분과 성립 사유, 자신이 속한 제6기업이 정확히 어떤 기업인지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유라가 페일에게 해당 내용을 물어본 적도 있지만, 페일은 해당 내용은 곧 수업에서 알려줄 것이며, 당장 배워야 할 상식이 아니라 말하며 알려주지 않았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게 유라는, 모두가 지루해하는 수업을 들으며 오늘도 성장해나갔다.

중앙 기업의 이름 아래에서.

작가의말

기-업.

쮸쀼쮸쀼.

작가는 댓글을 섭취합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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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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