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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9.06 23:24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12,892
추천수 :
708
글자수 :
1,460,551

작성
24.08.1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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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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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66. 연합전까지 남은 시간

DUMMY

눈 앞에 있던 빨간 머리 여자 아이가 사라지고 새까만 밤이 눈에 들어왔다.

사물의 실루엣도 보이지 않는 짙은 밤처럼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용의 거체였다.


"... 아쉽게 되었네."


자신이 아군의 진지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프라바르도는 바로 직전까지 뿜어대던 증오의 감정을 단번에 거둬들였다.

곱씹어봤자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뿐더러 그녀가 굳이 단신으로 연합군에 쳐들어간 이유는 옛말의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없이 구는 불쌍한 아이를 구하러 가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공간 이동 마법으로 자신을 강제로 옮겨 놓은 이도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프라바의 옆에는 얼어붙은 아이가 놓여있었다.


반쯤 잘린 목에서 흘러 나오는 피가 얼음 위에서 굳어 엉켜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니."


프라바가 얼어붙은 표면을 쓰다듬자 얼음이 사라졌고 이어서 상처를 만지니 상처가 아물었다.


"쿨럭. 프라바르도님..."

"얼른 돌아가서 쉬렴."


이 이름 없는 아이와 프라바르도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은 없었다.

다만 프라바의 몸 속에 남은 데멘스피데의 흔적이 그녀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 아이가 데멘스피데가 유독 아끼던 아이였노라고.


거기에 더해 데멘스의 죽음을 계기로 이 아이가 꽤나 강해졌기에 가능하면 이번 전쟁에서 살려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자. 저 성질 더러운 용이 눈치채기 전에 얼른 제 자리로 돌아가렴."


무단으로 이탈했다는 것을 용이 눈치라도 채면 십중팔구 먹으려 들 것이니 얼른 들여보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일은 프라바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탕녀야. 그렇게 요란하게 등장해놓고도 이 몸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다니. 이제는 머리까지 나빠진 것이냐?"


소리소문 없이 프라바의 뒤로 용의 머리가 다가와 있었다.

커다란 몸뚱이의 용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프라바였다.


아니.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용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이 요동을 치며 난리가 났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용이 이번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프라바르도의 뒤를 잡은 것이다.


"푸하하하! 놀랐나? 내가 누구였는지 알면서도 이런 것 하나 예상하지 못하다니."


과거 절망으로 활동할 때의 그는 용을 작게 줄여 놓은 모양새를 하고 있어 '작은 용'이라 불렸지만 정작 절망의 주된 공격 방식은 용이 내뿜던 숨결이 아니었다.

절망은 인간이 감히 삶을 희망할 수 없도록 압도적인 마법으로 그들을 억압하는 자였다.


절망이 트리아트 셋에 의해 육체를 잃기 전에 보였던 모습이 드높은 해일로 대륙의 일부를 집어삼키려던 것임을 생각하면 절망의 마법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망이 수준급의 마법으로 제 움직임을 숨긴 것이니 프라바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 덕에 프라바르도는 이름 없는 아이의 몸을 집어삼키는 새까만 주둥이를 막는 때를 놓쳤고 말이다.


카드드득


이름 없는 아이의 몸에서 섬뜩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서 괴롭게 몸부림치는 아이를 본 프라바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손 하나가 살포시 얹혔다.

프라바르도는 제 정수리에 얹힌 손의 주인을 돌아보기도 전에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손의 크기도, 무게도, 감촉도 달랐지만 손에서 전달되는 영혼의 느낌은 그녀가 익히 아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만님!"


이름 없는 아이가 어둠으로 이뤄진 주둥이에 먹히든 말든 그게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숨에 날아 기만의 품에 안겨 제 얼굴을 가슴에 파묻었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저리 좀. 떨어져라."

"그츠만. 븐쯕쯔르 그믄늠으 으느르 즈드르 든 그믄늠으즎으으. (그치만 반쪽짜리 기만님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기만님이잖아요.)"


볼이 찌부러질 정도로 밀어내는 데에도 꼼짝도 않는 프라바와 기만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그들의 뒤에서는 이름 없는 아이가 날선 이빨에 몸이 찢겨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쯧."


어쩐지 옛말의 아이를 놓쳤을 때보다 머리가 더 아파오는 기분의 기만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소 거친 방법(이로 인해 프라바는 허리 위로 사라진 몸을 재생해야 했다.)으로 프라바를 떨어뜨렸다.

껌딱지 같은 프라바를 떼어낸 기만이 이번에는 용에게 말했다.


"너도 그쯤하고 다시 뱉어내라."

"싫은데?"

"짜증나게 하지 말고 뱉어내라. 프라바르도가 애써서 구한 녀석이다."

"애써서 구하긴. 저 음탕한 년은 그저 자기가 아끼던 장난감이 사라지는 것이 싫었던 것 뿐이다."

"하아... 프라바르도가 그 정도 사리분별도 못하지는 않아."


기만의 변호에 프라바가 옆에서 '맞아 맞아.'라고 기세가 등등해서 용에게 시위했다.


프라바르도는 자신이 애정을 준 것들에 대해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호 욕구를 보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을 그르칠 정도는 아니었다.

요컨대 프라바가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이름 없는 쓰레기를 지킨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그건 내가 직접 나서서 구한 것이기도 하다."


프라바와 이름 없는 아이를 공간 이동으로 다시 이곳 용의 군단 본진으로 옮긴 자가 다름 아닌 기만 본인이었다.

이때부터는 프라바의 단독 행동이 단순히 그녀 마음대로 벌인 일이 아니라 기만의 의지가 개입했다는 말이었다.

기만과 같은 거대한 파편인 절망이 기만의 말을 순순히 따를 이유는 없었지만 반대로 기만과 마찰을 빚어서 절망이 얻을 이익이 없었다.


"알아들었으면 뱉어라."

"쯧."


용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제 짧은 손을 휘적이니 새까만 주머니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어서 주머니가 갈라지니 잘게 찢어진 살점 뭉치가 땅에 철퍽하고 쏟아졌다.


"일어나라."


기만의 손짓에 피범벅이 된 덩어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다.


"헉... 허억..."


이름 없는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되살아난 것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살린 기만은 그제야 자신이 이곳으로 온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말해봐라 프라바르도. 이 녀석에게 몇 사람의 영혼을 박아 넣은 거지?"

"구천 이백 세명이요. 데멘스피데를 따르던 아이들의 영혼이에요.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이죠."

"부작용도 없어 보이고. 확실히 네 이식술은 보면 볼수록 탐이 난단 말이지."


모든 파편의 어미라고 불리는 기만이 탐이 난다고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영혼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프라바르도는 기만도 흉내내지 못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유스티티엔이 검에 있어서 독보적인 성취를 낸 것처럼 말이다.


기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파편은 다른 영혼을 억압하고 묶어두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극에 달한 프라바르도는 결국 영혼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응용한 프라바르도는 그녀가 받아들인 영혼을 원하는 곳에 이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식술이 이뤄지려면 영혼의 주인으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했고 심지어 그 영혼의 형태조차 지극히 제한적인 형태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이식된 영혼은 육체의 주인이 이식된 영혼을 제압해야하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영혼의 능력을 십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요컨대 프라바가 제 몸 속에 이식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은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 제 능력을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이 이름 없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제 살에 죽은 자들이 만들어낸 비늘을 이식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의 영혼을 이식한 것이었다.


"아앙. 뭘 얼마나 좋은 밤을 보내려고 저를 이렇게 달아오르게 하시는 거예요?"


몸을 배배 꼬는 프라바를 무시한 기만은 이름 없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떠냐?"

"... 예?"

"이걸 먹는다면 어느 정도나 회복할 거 같아?"

"저기...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름 없는 아이를 바라보며 한 질문이었지만 정작 그녀에게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기만의 물음에 답한 것은 전혀 다른 쪽에서였다.


"먹고 싶지 않습니다만."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백의 기사가 그곳에 서있었다.


"엇! 유스티티엔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지금까지 안 보이길래 어디서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했는데."


프라바가 시비를 걸었고.


"어차피 먹을 거라면 내가 먹게 놔두지. 왜 내 것을 빼앗는 거지?"


용이 기만에게 항의했다.


"조용."


기만은 농밀한 기운을 퍼트려 주변에 떠드는 입을 다물게 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프라바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이고 용이 입을 다문 것은 기만의 눈치를 봐서였지만.


"왜?"


기만은 유스티티엔에게 제 말을 거역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야 제가 정당하게 차지한 힘이 아니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감히 어미인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유스에게 뭐라고 할 법도 했지만 기만은 가타부타 말을 더하는 대신 벌벌 떨고 있는 이름 없는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자신이 변고를 당하리라는 것을 직감한 이름 없는 아이는 최후의 저항으로 저가 가진 비늘을 모조리 꺼냈지만.


"커헉."


아무런 소용이 없는 저항이었다.

곧 그녀의 육체는 물론이요 그녀를 둘러싼 비늘까지 그 무엇하나 멀쩡한 것을 남기지 않고 녹아내렸다.

그렇게 녹아내린 이름 없는 아이는 한 데 뭉쳐 까만 젤리가 되었다.


"하압."


까만 젤리를 단번에 흡수한 기만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한 번 거치면 힘의 손실이 일어나지만 어쩌겠어. 고집불통 기사님 비위를 맞춰드리려면 어쩔 수 없지."


기만은 애써 흡수한 기운을 그대로 유스티티엔에게 넘겨주었다.

거부했던 힘이 기만에 의해 강제로 제 몸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유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기만 아래에 있는 자인만큼 유스에게는 기만의 행동을 막을 권한이 없었다.


위험도 감수하면서 이름 없는 아이를 구했던 프라바 역시 기만의 이런 행동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저 근육질 사내의 몸을 하고 있는 기만을 보며 침을 흘릴 뿐이었다.


"자. 어떻지?"


기만의 질문에 유스는 잠자코 제 몸의 상태를 점검하더니 곧 답을 내렸다.

이트나와 그가 가진 무척이나 튼튼한 방패를 상대하면 이룬 경지와 비교하면 현재 그는 절반에 달하는 힘을 한 번에 회복한 셈이었다.


"겨우 만 명 조금 안 되는 영혼으로 이 정도의 효율이라면 훌륭하군요."

"그래? 아주 좋군. 그럼 이미 얘기했던 대로 유스티티엔 너는 이곳에서 프라바르도와 함께 싸운다."

"... 예."


기만의 말이 계속되었다.


"프라바르도. 이번에는 네가 먹지 말고 네 이식술로 유스티티엔이 힘을 회복하는 것을 도와주겠나? 내가 이렇게 부탁하지."

"하앙! 네. 네! 기꺼이 할게요! 부족하면 제 힘을 보태서라도 회복시킬게요!"

"아니. 그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유스티티엔이 회복하도록 돕기만 하는 걸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기만은 용을 바라보았다.


"너는..."


"아. 알고 있으니 그쯤하고 꺼져라."

"... 그래. 늦지 말아라."

"흥. 너나 먼저 그 계집한테 죽어버리지 말고 잘 버텨라."


엷은 미소를 지은 기만의 주위로 환한 빛이 일었다.


"그래. 최종 결전은 저곳. 하늘에 닿은 산."


데클락에서.


마지막 말과 함께 기만이 모습을 감췄다.


***


밤이 지나고 큰빛이 높은 산에 걸렸다.

꿉꿉한 빛줄기를 흩뿌리며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연합군까지 남은 것은 사흘 거리.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가시 거리에 이쪽의 모습이 들어갈 터였다.

하지만 기만은 남은 사흘이라는 시간동안 인간이 이쪽의 병력에 익숙해질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모두 아룡에 올라타도록."


유스티티엔의 명령에 6만에 달하는 자들이 나뉘어 아룡의 위에 올라탔다.


"오늘 우리는 인간의 나라를 멸한다."


수만 마리의 아룡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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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265. 이곳과 저곳 24.08.17 10 1 12쪽
264 264. 훈련의 성과 24.08.13 15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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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262. 반석 24.08.04 1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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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260. 증인 24.07.18 16 1 15쪽
259 259. 바다에서 살아남기 24.07.15 12 1 14쪽
258 258. 사랑꾼 24.07.11 20 1 15쪽
257 257. 무지개 24.07.03 15 1 14쪽
256 256.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24.07.01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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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254. 가망 24.06.21 18 1 15쪽
253 253. 산 넘어 산 일 넘어 일 24.06.18 17 1 14쪽
252 252.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24.06.14 18 1 14쪽
251 251. 으누어 24.06.05 19 1 16쪽
250 250. 격 24.05.30 23 1 14쪽
249 249. 짜릿해 늘 새로워 24.05.21 14 1 13쪽
248 248. 꺾이지 않는 신념 24.05.18 2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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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246. 포기를 모르는 남자 24.05.04 21 1 12쪽
245 245. 신념 24.04.30 22 1 13쪽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1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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