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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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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최근연재일 :
2022.09.01 23:3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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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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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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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공연을 준비해라 -3- (完)

DUMMY

금성은 여전히 햇볕이 따가웠다. 콜린은 선착장에서 내려 공항 터미널로 들어갈 때까지 그것을 여실히 느꼈다. 케빈 레폴카는 항상 이 더위를 즐겼다. 바닷가에서 몰려오는 파도 냄새와 함께 느끼는 이것이 최고의 마약이나 다름없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늙으면 바닷가에서 목조주택을 짓고 살 거라는 말은 그가 늘 하던 말이었다.


데스크에서 수속을 밟고 뒤를 돌아보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남자가 손을 들어 콜린을 부르고 있었다. 짧게 자란 하얀 수염이 여전한 사람이었다. 콜린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그에게 다가갔다.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콜린의 물음에 상대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그냥 전처럼 브렉이라고 하지 뭘 사장까지야.”

“하시는 식당이 잘 되신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유동 인구 많은 곳에서는 자리만 잘 잡고 조금만 맛있어도 다 잘 돼.”


콜린은 요식업에 종사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렉이 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 그의 유산이 필요하다고?”

“그렇습니다.”


브렉이 콧김을 길게 내뿜었다. 방금까지의 반가움을 잊은 듯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군.”


뒤를 돌아 걷는 브렉을 콜린이 따랐다. 터미널 안에 유리창 없이 열린 카페의 구석에 콜린을 앉게 한 브렉이 물었다.


“뭐 마시고 싶은 거라도 있나?”


콜린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냥 물이나 한잔하고 싶군요.”


브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곧 초콜릿 셰이크와 시원한 물 한 잔을 가지고 와서는 콜린의 앞에 앉았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네가 그걸 찾으러 올 줄은 몰랐어.”

“저도 몰랐습니다.”

“왜 마음이 바뀐 건가? 그 잘난 녹색 배를 타고 떠날 때만 해도 그런 흉물들은 필요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게.”


콜린이 쓴웃음을 지었다. 1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 할 것에 엮여버렸거든요.”

“조직인가?”


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렉은 셰이크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들려줄 수 있겠나?”


콜린은 입을 열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산 리와의 만남, 레드 카프 옥새 탈취 작전, 살아남은 후 제임스와의 만남, 많은 조장을 죽이게 된 것, 제임스의 배신까지. 그의 모험담을 들은 브렉의 셰이크는 더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사연을 다 말한 콜린이 물었다.


“이 정도면 케빈의 유산을 찾는다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무거운 표정으로 듣던 브렉은 셰이크를 입에 대었다. 아까보다 얼음이 녹아 조금 묽어진 맛이 썩 좋지 않았다.


“나는 가니메데에 얼씬도 하지 않는 쪽을 추천하지.”

“그 얘긴 떠나기 전에 동료에게도 들었습니다.”

“왜인가? 조직에서 떠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으면서 인제 와서 조직 때문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뭐냐는 말이야?”


콜린은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고 단호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책임감과 복수죠.”


브렉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넌 옛날부터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지. 내가 그 버릇 고치라고 50번은 얘기했을 텐데.”

“그 버릇은 제가 여기 있기도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직에서 저 같지 않은 동료들은 다 죽었죠.”


혀를 차는 브렉을 보게 된 콜린은 시선을 테이블로 돌렸다. 모자를 벗고 얼마 없는 흰 머리를 손으로 넘긴 브렉은 반이나 남은 셰이크를 두고 일어났다.


“그만 가지. 유산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그 말에 콜린 역시 일어났다.


공항 주차장에서 하얀 컨버터블을 끌고 나온 브렉은 기다리고 있던 콜린에게 자리를 권했다. 예를 표하고 조수석에 앉은 콜린을 태우고는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케빈이 그랬어. 넌 언젠가 반드시 자기 유산을 찾으러 올 거라고.”


콜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브렉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 가서는 아무 의심하지 말고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록 두라고 하더군. 하지만 그 친구는 죽은 마당이니 나는 물어야겠어. 네 일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콜린은 앞에서 시야를 떼지 않고 말했다.


“물론이죠.”

“그래.”


케빈은 핸들을 꺾으며 대답했다. 어느새 고가도로 밑에 버려진 허름한 컨테이너까지 도착한 그들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는 그 앞까지 걸었다.


“이런 곳에 있었군요.”


콜린의 말에 브렉이 말했다.


“그래. 그 녀석의 말미처럼 낡고 하찮게 버려진 듯 이런 곳에 있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이야.”


그러고는 열쇠를 하나 꺼내 문에 달린 자물쇠를 풀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름칠이 안 된 쇠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베나도 여기는 모르고 있었네. 이건 오롯이 케빈만의 것이야. 그리고 자네만을 위했던 것이기도 하지.”


브렉이 컨테이너 내부 어딘가에 있던 스위치를 켜자 불이 들어오며 낡고 촌스러운 카펫이 보였다. 곧 브렉이 카펫을 치우자 손잡이가 달린 철판이 드러났다.


“저 손잡이를 잡고 철판을 들어보겠나? 내가 허리가 안 좋아.”


콜린은 브렉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밑으로 향하는 계단이 등장했다. 지하로 향하는 곳임에도 곳곳에 불이 켜진 듯 내부는 환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브렉이 앞장서서 들어가자 콜린은 뒤를 따랐다. 10미터도 채 걷지 않아서 블라인드로 가려진 곳이 나왔다.


“이것들이 케빈 레폴카의 유산이다.”


브렉이 블라인드를 걷으며 콜린을 안으로 들였다. 가로세로 각각 5m는 되어 보이는 방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인간이 만든 거의 모든 종류의 무기들이 가득했다. 권총, 소총, 기관단총, 바주카까지. 플라스틱 폭탄에 수류탄과 연막탄 역시 보였다. 심지어 칼이나 도끼, 단검 같은 냉병기들도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방탄복, 방검복이 마네킹에 걸쳐 있었고, 방탄 헬멧과 방독면까지 있었다. 그 옆에는 군용 노트북과 무전기 같은 것들 역시 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건······.”


바닥에 놓인 그 기계는 콜린도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우주선용 스텔스 머신이었다. 연식이 좀 되어 보이는 것이었지만 스텔스 머신 자체는 따로 업그레이드할 것이 따로 없었으니 홀 토마토 호와 충분히 호환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야말로 테러리스트를 위한 최적의 무기고였다. 달리 표현할 말은 없었다. 콜린은 짐짓 넋이 나가지 않은 척 담담하게 이 살인 기구들을 감상했다. 브렉은 그 뒤에서 말없이 웃으며 콜린을 지켜봤다.


“지난 10년간 주인 없던 물건들이지. 이제는 생기게 되었지만.”

“브렉 씨는 이 물건들 쓰고 싶지 않으셨나요?”


브렉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내가 뭐하러? 난 너랑 다르게 조직이랑 문제도 없고 날 죽이려 들지도 않는걸. 이런 걸 가지고 다니면서 주위 흉흉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아예 폐기해버리고 속 편하게 살고 싶으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쩔 수 없었어. 그 망할 놈이 네가 찾으러 올 때까지 꼭 기다리라고 했거든.”


콜린은 칼의 날을 만지며 생각했다. 너무 충분해서 좋군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을.


“필요한 것 있나?”


콜린이 뒤를 돌아봤다.


“네. 아직 연락하는 조직원들 있죠?”

“있기야 하지.”

“정보가 좀 필요합니다.”

“어떤 정보?”

“본부 청사진이 필요합니다. 또 거기 부회장이 죽었습니다. 새 부회장을 뽑을 선거가 열리는 날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브렉이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콜린은 웃지 않았지만 그가 웃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네답다고나 할까. 그래. 알아봐 주지.”

“안 알려주실 줄 알았습니다.”

“으음? 조직도 떠났고 이미 외부인인데 널 막아서 내가 뭘 하겠냐? 그런 무리보다는 케빈의 당부가 우선이야.”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좋은 친구들이란 조직을 아시는지요?”


브렉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모를 리가 없지. 어설프게 양지로 나가려 한 덕분에 발이 묶여서 자금난에 허덕이는 그 녀석들 말하는 거잖아? 저번에 위조지폐 건이 그 녀석들 작품이었지.”

“그 친구들 정보를 좀 알고 싶습니다.”

“왜 그런가?”


콜린은 잠시 망설이고는 답했다.


“일에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브렉이 신음했다. 이유를 숨기고 있지만 그렇다고 콜린의 부탁을 내칠 생각은 없었다. 있었다면 예전부터 이 유산마저 땅에 묻어버렸을 것이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친구들은 그렇게 신사적인 놈들은 아니야.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한 브렉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명심하도록 해. 완벽한 복수는 세상에 없어.”


콜린은 그를 쳐다보며 답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복수는 있죠.”


브렉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리고는 블라인드를 걷어 가려 하다가 뒤를 돌았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잘 건가? 여기 옆 방에 침대가 있긴 하지만 좀 편안한 곳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나?”

“방이 있습니까?”

“저기 튀어나온 손잡이를 돌리고 밀어 봐.”


콜린이 그렇게 하자 꽤 넓은 방이 나왔다. 수도와 변기, 침대와 책상. 흡사 벙커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이미 지하에 있는 콘크리트 방이니 벙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단 차를 한 대 사야 할 것 같군요.”

“차라니? 무슨 차?”

“브렉 씨가 가면 저는 뭐로 이동합니까? 적당한 중고차 하나를 사서 여기로 돌아와야겠어요.”

“그렇긴 한데. 너 정말 여기서 지낼 거냐?”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해도 안 드는 지하에 처박혀있으면 좋지 않아. 모텔이라도 가는 게 어떤가?”

“일단 차부터 사고 생각해보죠. 가까운 중고차매장으로 가요.”

“으음.”


신음하던 브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컨테이너 밖으로 나왔다. 그를 따라 나온 콜린은 아까처럼 조수석에 앉았다.


“아는 녀석이 중고차 딜러야. 그 녀석한테 안내하지.”


흰색의 컨버터블이 다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40분 정도 달리자 넓은 아스팔트 평야에 차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것이 보였다. 브렉은 운전을 하면서 디바이스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손님을 한 명 데리고 가고 있어. 그래. 차가 필요하다고. 뭐?”


디바이스를 얼굴에서 잠깐 뗀 브렉이 물었다.


“어떤 차를 찾나?”

“2t 이하 트럭이요.”


브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상대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 2t 이하의 트럭. 그래 뭐 너희 쪽에 있기야 하겠지. 금방 도착해. 한 5분? 그래 금방 간다. 끊어.”


디바이스를 넣은 브렉이 물었다.


“웬 트럭인가? 다른 좋은 차 내버려 두고 말이야.”

“제 우주선까지 실을 게 많을 것 같아서요.”


브렉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 다다익선이라고도 하니까.”


콜린과 브렉은 5분도 되지 않아서 중고차매장에 도착했다. 몇 대의 트럭을 본 콜린은 괜찮은 트럭을 고를 수 있었다. 어차피 오래 쓸 차가 아니니 그가 고려하는 사항은 잔 고장이 있는지, 외형이 너무 화려하지는 않은지 정도였다. 연식이나 연비, 옵션 등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덕분에 빠르게 계약하고 트럭에 올라탔다. 브렉은 운전석의 열린 차창으로 콜린을 보며 말했다.


“정말 그 지하에 들어가서 지낼 건가?”

“상관없습니다.”

“고집하고는.”


자신을 안 좋은 환경에 버려두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복수를 앞둔 상황에서도 통용되는 사실인지 브렉은 알 수 없었다. 콜린이 떠난 후 중고차 딜러인 지인이 타준 믹스 커피를 마신 브렉은 그대로 자신의 컨버터블을 타고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행운이 있길 빌자고, 케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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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후기 22.09.01 24 1 15쪽
129 에필로그 -2- (完) 22.09.01 20 1 16쪽
128 에필로그 -1- 22.08.31 22 1 13쪽
127 고독의 습격 -2- (完) 22.08.29 19 1 16쪽
126 고독의 습격 -1- 22.08.29 22 1 12쪽
125 폭풍전야 -3- (完) 22.08.18 22 1 12쪽
124 폭풍전야 -2- 22.08.16 19 1 11쪽
123 폭풍전야 -1- 22.08.16 21 1 13쪽
» 공연을 준비해라 -3- (完) 22.08.16 17 1 12쪽
121 공연을 준비해라 -2- 22.08.12 22 1 11쪽
120 공연을 준비해라 -1- 22.08.12 28 1 14쪽
119 준비 없는 부재 -3- (完) 22.08.11 23 1 14쪽
118 준비 없는 부재 -2- 22.06.19 17 1 13쪽
117 준비 없는 부재 -1- 22.06.16 18 1 13쪽
116 마피아의 사정 -5- (完) 22.06.14 18 2 13쪽
115 마피아의 사정 -4- 22.06.10 18 2 13쪽
114 마피아의 사정 -3- 22.06.04 20 2 12쪽
113 마피아의 사정 -2- 22.05.24 19 2 12쪽
112 마피아의 사정 -1- 22.05.21 20 2 12쪽
111 침입자들의 문제 -3- (完) 22.05.17 24 2 11쪽
110 침입자들의 문제 -2- 22.05.11 19 2 13쪽
109 침입자들의 문제 -1- 22.05.10 20 2 13쪽
108 서로 알아가는 과정 -6- (完) 22.05.04 2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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