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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in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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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in
작품등록일 :
2017.11.22 23:01
최근연재일 :
2018.01.16 16:2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958
추천수 :
24
글자수 :
170,839

작성
17.11.30 07:52
조회
165
추천
1
글자
17쪽

1. 골목의 폐인

DUMMY

“하아···! 후우!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색욕에 일을 그르칠뻔 했던 덩치의 남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온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서 천으로 감싼 조그만 물건을 모습을 드러냈으니 바로 마더 카샤가 케이트에게 맡긴 그것이다.


“멍청하긴. 흐흐흐...움직임부터가 ‘나 값진거 들었어요~’ 하고 뛰어다니는데 나 같은 인간이 가만히 두겠냐고- 그런데 정면에서보니 진짜 어마어마한 미인이긴 했단 말이지 그 아가씨.”


남자는 케이트가 던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부터 그녀의 뒤를 밟았다. 대도시 전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지나는 사람들의 물품을 소매치기하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남자. 그 남자의 눈에 케이트처럼 뛰어다니는 소녀가 아무렴 맛있어보이지 않았겠는가.

입맛을 다지며 천으로 감싼 물품의 속살을 열어보려던 남자는 순간 머릿속에 리아나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잠깐. 광견은 꼴에 디스토피아 길드의 길드장이잖아- 그리고 그 아가씨와 광견이랑 아는 사이였고···! 그럼 이건 디스토피아 길드가 의뢰한 물품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잖아!’


소매치기 남자의 얼굴에 혈색이 진하게 돌기 시작했다. 큰 돈을 벌었다는 고조감에 천을 풀어내는 손길은 더욱 거칠어졌고 이내 천 속에 감춰진 모습이 드러났다.


“............”


그리고 남자의 표정은 썩어문드러졌다. 찬란한 아티팩트라던가 금 덩어리, 값을 상사하지 못할만큼의 귀한 액세서리까지 생각했던 남자. 하지만 남자의 손이 벗겨낸 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칙칙한 흑색의 단검이었다. 아니, 단검이라 부르기도 초라하게 그것은 짧았고 검신(劍身)은 우둘투둘 했으며 이가 모조리 빠져 있는 ‘쓰레기’와도 같았다.


“에이 빌어먹을--!!!!”


홱-! 툭!


골목의 구석을 향해 단검을 신경질적으로 내던져버린 남자. 골목에 있는 큼직한 쓰레기 상자에 침을 찍 뱉어내고 골목을 나가버리려던 그는 단검이 낸 소리에 의아함을 품고 다시 뒤를 돌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 가죽 같은 무언가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또 뭐야. ···...시체야?”


그리고 소매치기 남자는 쓰레기 상자 옆에 널브러진 거적때기 차림의 걸인을 발견하고 더욱 인상을 구겼다.


“아닌데...살아있네. 쓰레기장에서 처 자는거냐? 광견에, 헛탕에, 이만한 거지까지 보다니. 오늘 진짜 재수에 옴 붙었나- 빌어먹을!! 제기랄!! 망할!! 개같은!!”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험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남자는 결국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죽더라도 아무도 신경 써 주지도 않는 걸인의 모습. 그것이 자신과 겹쳐보이자 감정 도화선에 불이 붙었고 자신은 이런 걸인보다 낫다는 열등감이 거침없는 발길질을 내지르게 만들었다. 바로 바닥에 누운 걸인을 향해 말이다.


빠악! 퍼억!!

쿵!!퍽퍽--!! 뻐벅!


“하아-! 하아--!! 이, 이 새끼 살아있는거 맞나? 맞아도 맞은 티가 안나네! 아니면 뒤져가는 놈이었나-? 칫, 오늘 살인까지 하면 진짜 기분 개 같을거 같다! 카악- 퉤!!”


그나마 화풀이 대상이 골목에 있어준게 유일한 위안이라 생각하고 골목을 나서려는 남자. 그는 걸인의 머리에 가래침까지 진하게 뱉어준 다음 고개를 돌려 시장 거리를 바라보았지만 무언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붉은 단발 머리에 가려서 말이다.


“......아, 아아아-!! 리, 리아나님 아니십니~”


스릉--!!


리아나의 검은 가차 없이 허리츰에서 미끌어져나와 남자의 목을 압박했다. 그 행위는 결코 경고와 같은 부류가 아니었고 남자의 목에 맺힌 한줄기의 핏방울이 그것을 근거하고 있었다.


“내놔라.”


“무, 무무무무무! 무엇을 마, 마말하시는···!!”


“네놈이 훔쳐간 단검 말이다!!!”


꾸욱- 핏.


리아나의 검이 더욱 강하게 파고들자 남자의 눈은 찢어져라 커졌고 뒤늦게 달려온 은발의 여검사가 리아나를 말렸다.


“리, 리아나! 조금 진정해!”


그리고 그 여검사 덕분에 죽음이라는 압박 속에서 조금 빠져나와 혀를 놀릴 여유를 갖게된 범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뭐, 뭔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리아나님!? 과, 광견이라 부른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죄하겠습니다! 저란 남자가 비속어만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말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 단검이라니요! 전 모릅니다!”


“......혀가 잘린다면 길게 갈 것도 없겠지. 알아서 내밀어라. 그렇지 않으면 머리뼈와 함께 잘라줄테니까-!”


“리아나!!”


목에서 검을 거두고 크게 치켜드는 리아나의 행위에 범인은 사색에 질렸고 그녀의 의자매 또한 기겁하여 적극적으로 말렸다.


“제, 제가 어떻게 훔쳤다는 것입니까! 리이나님에게는 걷어차여 날아간 것 밖에 없는데!”


“이 자식이 아직까지···!! 네가 시비를 걸었던 소녀에게 훔쳤잖아!!”


“예, 예?!! 아닙니다!! 절대로!! 그 아가씨 얼굴에 혹해서 구슬려볼까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훔쳤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 아가씨랑 부딪힌게 전부인데!”


“네놈이 소매치기범이란 소리잖나-!!”


“생각해보십시오!! 소매치기범이 물품을 훔친 대상에게 남아 정면으로 헌팅을 시도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전 억울하다고요!!”


울컥.


리아나는 손과 입술이 잠시 멈췄다. 하지만 수 초 뒤 더욱 거칠게 상대를 죽이려드는 그녀의 무기. 반박할 수 없는 상대에게 울컥하여 그냥 휘두르고 보려는 것이다.


“리이나! 그만하래도!!”


팍!!


“큭- 언니!!”


“이 사람 말에 틀린게 없어! 아무런 근거도 없고- 이건 그냥 살인이야.”


분함은 남았지만 의자매의 만류는 언제나 제대로 들었던 리아나. 케이트에게서 단검을 훔쳐간 범인은 속으로 비웃었고 겉으로는 안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가, 감사합니다. 에...그러니까 성함이···”


“몰라도 됩니다. 디스토피아에서도 말단이니까요. ···.단검의 행방을 정말로 모르시는 거죠?”


“모른다니까요~ 그냥 자주 술집에서 여자나 꼬시고 사는 못난 청년입니다~ 단검도, 소매치기도, 저랑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요~ 제 몸을 다 뒤져보십시오! 그런게 어디 있나-”


늦지 않게 쫓아 범인을 잡았음에도 이대로라면 범인을 놓아주게 되는 꼴. 뱀의 움직임과 아주 흡사한 삶을 사는 남자가 그렇게 골목에서 벗어나려할 때였다.


휙-

탱그르르-


큰 쓰레기 상자 너머 공간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여검사의 발치에 떨어져내렸다. 그것을 확인하고 눈에 강렬한 살기를 담은 리아나는 그대로 단검이 날아온 구석으로 걸어갔고 곧 그 바닥에 있는 걸인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린다.


“넌 뭐지? 네가 왜 저걸 갖고 있나.”


하지만 단검을 던져낸 걸인은 리아나의 거친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이 기회를 어떻게든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범인만이 다시 혀를 놀릴 뿐이다.


“버, 범인이 바로 저기 있었네요! 딱 소매치기 할 것 같이 생겼네! 범인도 찾았으니 전 그만 가겠습니다! 가게일 도와야 돈도 벌거든요!”


후다닷---


멀찍이 뒤에서 구경하던 소녀 케이트. 그 옆을 지나며 빠르게 뛰어가는 남자의 모습은 영락 없는 도망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말해!! 네가 훔쳤나!!”


리아나는 무기를 곧게 세워 걸인의 눈을 겨누며 재차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걸인의 눈은 공허하게 정면만을 응시했고 입은 더더욱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 하하!! 오늘 만나는 남자들마다 어쩜 이렇게 배짱들이 좋은지~ 칼이 눈 앞에 있는데 딴데를 보네? ···...단검을 가지고 있던 네가 범인이니, 그냥 죽인다.”


“리이나!!”


쇄하악!!


이번만큼은 의자매의 외침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던 리이나. 하지만 죽인다는 말처럼 검이 찌르고 들어간 부위는 급소가 아니었다. 걸인의 처진 팔뚝의 옆. 검날이 팔뚝의 살을 수 센치 찢어낸 것이 전부였다.


“......역시 아까 그 자식이 범인이야. 검상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폐인이 소매치기는 지랄. 이 거지는 그냥 죽어가는 쓰레기라고.”


휙- 털석.


들어올린 걸인의 멱살을 본래 있던 구석으로 내던지자 걸인의 몸은 맥없이 쓰러져내린다.

찾고자하던 단검도 찾았겠다. 다시 선술집으로 돌아가 마저 술을 들이킬 생각으로 몸을 돌리는 리아나. 하지만 의자매를 지나 골목을 나서려는 그녀와는 다르게 의자매는 걸인 쪽으로 걸어갔다.


“...언니? 가자, 뭐해?”


“......혼자 가. 그렇게 술이 좋으면 혼자 가서 먹어.”


“뭐야! 왜 또 심술이 난거야?!”


자신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리아나는 의자매의 태도에 역정을 냈지만 의자매는 그것조차 무시할 정도로 화가 나있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검으로 찔러놓고 가서 술이나 먹자니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게!?”


“....누! 누가 찔러?! 안찔렀어! 살짝 벤 거 가지고 그래! 그리고 던전 마수한테 정신이 먹혀 이렇게 폐인이 되어버린 놈들 하루 이틀 봐?! 죽은 거나 다름 없는···!”


“도와주지 못할 망정 해를 가하면 어쩌자고! 됐어- 난 이 사람 치료라도 조금 해주고 갈거니까 집에서 봐.”


“마음대로 해!”


골목의 입구에 계속 서있던 케이트는 도망간 남자에 이어 씩씩거리는 리아나까지 옆을 지나가자 겨우 걸음을 움직여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저...언니~? 리아나 언니랑 싸웠어어···? 나 때문이야···?”


“응? 아니야~ 물건도 무사히 찾았으니까 걱정할 거 아무것도 없어~”


“정말?! 휴~ 다행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야···?”


“이곳에 쓰러져있던 사람~ 상처에 세균이 들어갈까 그냥은 가고 싶지가 않아서~”


그리고 케이트는 어둑한 골목에서 쓰러진 걸인의 망토색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야 했다.


“이, 이 사람 위험한 사람이래!”


“응? 무슨 소리야~?”


“보초 아저씨가 그랬어! 이 사람 오늘 아침에 도시에 들어온 사람인데, 굉장히 위험하댔어! 냄새난댔어! 무조건 피하래!”


케이트가 전하는 말투로는 그 보초가 정확히 어떤 의미로 이야기한 말인지 알 수 없었던 은발의 여검사.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다른 의문점이 생겨났다.


‘정신을 갉아먹는 던전 마수에게 당해서 폐인이 된 사람이...오늘 아침 대도시로 들어섰다고? 그러고보니 아까 단검을 던져낸 사람도 본인이었고···’


리아나와 자신이 내린 결론은 섣부른 것이었다는 깨달음까지 얻어낸 여검사는 케이트에게 부탁을 한다.


“케이트? 반대쪽을 부축해줄래~? 우리집까지 데려가자-”


“아, 응! 그런데 위험하지 않을까? 보초 아저씨가···”


“케이트가 너무 어려보여서 그런걸거야~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 준다 해도 따라가면 안돼요~’같은 의미였을껄~?”


“에엑-!! 나, 나 그렇게 어리지 않은걸! 여, 열 여덟살인걸!”


“그럼 잘 도와줄 수 있지~?”


케이트는 언제 남자를 꺼렸냐는듯 열성을 다해 남자의 한쪽 몸을 부축하여 선다.


“혼자 서 줄 정도의 힘만 있으면 좋을텐데...꽤 무겁네 이 사람~”


“으, 응~ 그러게~ 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언니 집까지 포기 안할거야!”


스스스-


자신들보다 키가 큰 남자를 양측에서 부축해 움직여야 하기에 걸인의 두 발이 땅을 끈다. 묘하게 중한 무게감에 두 여자가 한마디씩 내뱉은 것은 단 두 걸음 째의 이야기. 하지만 직후 두 여자가 짊어지고 있던 무게는 놀랄만큼 가벼워졌다. 그야 걸인이 스스로 섰으니까 말이다.


툭- 휙.


“꺗-”


“엄마얏-”


자기보다 키가 작은 두 여자의 등을 밀어낸 후 다시 구석으로 돌아와 누워버리는 걸인. 그 어이없는 광경에 등을 밀린 둘은 멍한 표정을 지우는데 애를 먹었다.


“이, 이봐요! 왜 여기 있으려는 거에요! 상처도 치료하고, 많지는 않아도 밥도 제공해줄게요! 그러니까 움직일 수 있으면 따라와주세요!”


허리에 양 손을 얹고 걸인의 앞에서 이야기하는 여검사. 리아나의 검에도 꿈쩍않던 걸인의 눈길이 그 여검사의 눈에 꽂혔다. 탐스럽고 길게 내려온 은빛 머리칼. 그것이 누군가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말을 할 수 없는 모양이군요! 그게 아니라면 귀가 잘 안들리시나요? 둘 다 일지도! 아니면 적어도 이런 쓰레기장만 피해주세요! 상처에 세균이라도 들어가면 큰 일···!”


“필요 없다.”


두 여자가 처음으로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혀, 혀도 귀도 멀쩡하네요! 말도 할 수 있고! 몸도 멀쩡히 움직이고! 도대체 뭐가 문제에요 그쪽은?! 왜 이런데 있는건데요!”


“어, 언니 목소리 너무 커···!”


“사람이 기껏 선의를 베푸는데 상대가 고의로 이런 태도를 취하면 화날 법도 하잖니!”


아래 위로 들썩이는 상체가 그녀가 흥분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남자에게 알렸다. 남자의 눈길은 여검사의 두 눈을 정확하게 응시했고 잠시 뒤 그 아래에서 중후한 목소가 흘러나왔다.


“선의? 악인(惡人)이 베푸는 선의라니, 웃기는군.”


“아, 아아아, 악인이요?! 누가 악인이에요! 물론 리아나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그건 그쪽이 마수에게 정신을 먹히고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당혹감과 분노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반박하는 은발의 여검사. 하지만 걸인이 이어낸 목소리에는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단검. 기생진화형 룬이 그려진 단검을 동생에게 쥐어보낸 네가 악인이란 이야기다.”


“...그게 무슨 소리죠?”


“몰랐던 모양이군. 룬 단검에 걸린 저주까지 풀어냈으면서 무슨 룬인지도 몰랐다는 말인가.”


“당장 자세하게 설명하세요!! 지, 지금 동생이 위험하다는···!”


“위험하지. 직접 단검을 손에 쥔 인간은 600초에 걸쳐 기생진화형 룬 단검에 생명을 제공한다. 그리고 600초 후, 완전한 형태로 진화한 룬 ‘대검’은 외적으로 숙주와 함께 폭주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하고 내적으로는 서서히 숙주에게 잠식하여 정신을 갉아먹는다. 방금 네가 이야기한 마수에게 정신을 먹힌 폐인. 딱 그 꼴이 되겠군.”


파앗!!


남자는 여검사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 찰나를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감상이 찰나로 끝나야했던 이유는 그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골목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시끄러운 이들이 겨우 사라져준 덕분에 다시 고독함을 되찾게된 남자는 다시 그 자리에 누워버렸고 약 30초 뒤 걸인의 회색 망토가 움직인다. 걸인 스스로가 아닌, 남겨진 소녀 케이트가 망토를 잡아 당긴 것이다.


“도와...주세요.”


“.........”


“600초...10분은 훨씬 지났어요...큰 언니는 리아나 언니보다 약해요···! 도와주세요···!”


“......기생진화형 룬은 폭주 시 숙주의 1000% 능력을 이끌어낸다. 이 도시에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쿠구우웅···.!!!!


남자는 지면에 닿은 등을 통해 고스란히 전투의 여파를 느꼈다.


“뭐든...드릴게요. 제발...요···”


“그렇게 그 여자가 소중하면 네가 직접 가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케이트는 아예 두 손으로 붙잡은 회색 거적때기에 고개를 묻어버렸다. 간절한 의사의 표현. 작은 두 손과 함께 미사하게 떨리는 것이 남자가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나 또한 간절했다. 간절하게 삶을 바랬고, 간절하게 부인과의 미래를 바랬다. 간절하게 가족 모두의 무사를 기원했다. 그리고 지난 17년간 간절하게 일리나의 생존을 기도했다.’


그런데 남자의 앞에, 남자를 향해 그 기도를 올리는 여자가 있었다. 도대체 남자는 어떤 심정일까.






쿠구구구······


또 한 번의 지진이 케이트의 다리를 때렸을 땐 그녀의 고개가 망토에 파묻혀있지 않았다.

남자가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뭐든이라고 했다. 케이트, 그게 네 이름이냐?”


“네, 네···!! 뭐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뿐 아니라 네가 못하는 것도 내가 원하면 해내야한다.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그럴게요!! 그럴테니까···!”


휘우웅----


눈물로 곳곳이 가려진 케이트의 시야. 그런 불완전한 시야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열을 토해내던 상대는 마치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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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년 전 과거의 진상 17.12.04 169 1 11쪽
8 혈괴 (3) 17.12.04 160 1 8쪽
7 혈괴 (2) 17.12.04 149 0 17쪽
6 혈괴 17.12.04 174 1 14쪽
» 1. 골목의 폐인 17.11.30 166 1 17쪽
4 0. 인류도시 「던 그라운드」 17.11.30 202 1 19쪽
3 프롤로그 (3) 17.11.27 237 1 20쪽
2 프롤로그 (2) 17.11.24 27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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