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23,536
추천수 :
92
글자수 :
579,291

작성
22.10.17 11:00
조회
96
추천
0
글자
12쪽

78화 함정 속으로 (3)

DUMMY

“알겠죠? 불리한 건 없습니다.”


조금 전 전투에서 꽁무니 빠지게 도망친 것 쳤음에도 클로에는 자신감 있게 선언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에녹, 적들을 소탕해주세요.”


다름 무엇도 아닌 에녹이었다.

얼핏 들으면 무책임한 부탁이나 다름없었지만.


“알았다.”


에녹은 오히려 마음 편하다는 듯이 승낙했고, 클로에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상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저 고릴라 괴수를 앞장세우고 뒤늦게 등장해서 공격을 할 거에요.”


심플하지만 강력한 수법. 혼란을 일으켜 진형을 붕괴시키는 전형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다시 한번 그런 상황이 되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때 적들을 다 죽이고 돌아오시면 돼요. 할 수 있죠?”

“간단하군.”


고릴라를 지원하기 직전에 본대를 타격하는 섬멸전.

누가 잘 버티는지에 따라 승부가 결판난다.

뭔가 쉽게 말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지독한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제이드가 적의 우두머리의 다리 부상 입혀서 다행이에요.”

“죽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클로에가 진심으로 제이드를 칭찬했다.

제이드는 아쉬워했지만, 대장의 기동성이 낮아진 것만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성과였다.


“난 이제부터 좀 개인적으로 활동하지.”


넉넉하게 쉰 에녹이 그 자리에서 조용하게 사라졌다.

육포로 배를 채우며 앞으로 벌어질 전투를 대비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었다. 원숭이 새끼.”

“발.카.르!”

끼익-.


나무 위에서 거대한 형체의 고릴라가 모습을 드러냈고, 일행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


해가 뜨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시각.

푸슉-.

에녹은 자신의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울창한 숲 속에서 소리 없이 하나의 생명이 소멸한다.


‘이걸로 다섯 명.’


적들은 진지 구축도, 방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

이런 곳은 에녹이 날뛰기 좋은 환경이었다.

인원을 보충했는지 예상했던 수보다 훨씬 많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군.’


에녹에겐 그저 시간문제였으니 말이다.

뒷못에 송곳을 찌르자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고, 로먼은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또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느낀 줄 알았다. 총량에 비하면 정말 미미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계속 이어졌고, 이제는 모를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분대장들 각 인원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네!”


적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에녹의 행동 또한 빨라졌다.

급속도로 줄어드는 기운. 로먼은 믿기 힘들었다.


“말도 안 돼!”


시시각각으로 어둠 속에서 부하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위기상황임을 직감한 로먼은 부하들을 즉시 불러들였다.


“이게 전부라고?”

“...”


명령에 따라 집합한 부하들을 보고 로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사십에 가까웠던 전투원들이 이십에 가까워져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대로 열이 넘는 인원이 죽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엘프들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숲이라 안심했었는데 전혀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로먼은 경각심을 일깨우며 타계할 계책을 생각했다.


‘눈치챈 건가. 엘프들이라서 까다롭군.’


이러한 에녹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로먼은 기겁했을 것이다.

에녹은 질 것 같아서 후퇴를 말했던 게 아니다.

단지 희생을 치르지 않기 위해 도망쳤을 뿐.


‘동료를 아낀다는 소리다...!’


마치 생존본능이 정답을 알려준 느낌. 이런 점을 눈치 챈 로먼이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앞으로 간다.”


그렇지만 로먼의 부상 탓에 고릴라 괴수에게 향하는 길은 더디기만 했다.

합류를 위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에녹은 그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서둘러야겠군.’


에녹은 송곳이 아닌 가늘고 기다란 검, 레이피어를 손에 쥐었다.

순식간에 가장 뒤처지는 엘프의 목 꿰뚫린다.

뒷목이 서늘해지는 공포. 로먼은 떨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 상황을 역전시킬 비장의 카드가 로먼에게 남아있었다.


*


“불카르...”

“저 원숭이 새끼가 진짜...!”


자세한 부분은 달랐지만, 제이드와 쪽의 전투도 에녹의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피노, 조심해!”

끼익-.


클로에의 외침에 그녀를 품에 안은 피노가 날렵하게 가지를 박차고 높이 뛰었고.

방금 서 있던 나무가 뒤늦게 다가온 고릴라의 손에 의해 박살이 났다.


“하압!”

“불카르!”


기합과 함께 제이드와 무스타바가 달려들지만, 고릴라 괴수는 나무를 휘두르며 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돼.”


물론 인간과 괴수의 육체적인 싸움이라 단연 불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보다 싸움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이렇게까지 영리할 줄이야.’


정면으로 붙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조금 접근할라치면 멀찍이 도망쳤고, 이후 땅을 엎거나 숲을 망가뜨려서 접근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계속 붙어있어야 했는데...!’


바위를 던지거나 숨었다가 기습하는 등 클로에를 집요하게 노리더니, 조금 떨어진 틈을 타 사이를 갈라버렸었다.

덕분에 이렇게 서로를 쫓고 쫓는 레이스를 하고 있었다.


“좀 멈춰라!”


제이드가 괴수의 등 뒤를 노려 창을 던져보았지만, 고릴라는 가볍게 회피.

벌써 몇 번이나 봐온 장면이었다.


“불카르!”

“하아...”


목이 상하지도 않는지 지치지도 않고 고함을 지르며 달리는 무스타바.

그런 그를 보며 제이드는 한숨을 내쉰다. 무스타바가 어떻게 졌는지 눈에 훤히 그려졌고.


‘끝이 없네.’


자신도 그런 결말을 맞이할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언제 끝날까 싶었던 추격은 절벽의 등장으로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절벽 길과 동굴 그리고 낭떠러지가 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피노, 멈춰요. 절벽 길로 가는 건 좋지 않아요.”


절벽 앞에 멈춰선 피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 망설였고.

이를 결정해줄 클로에는 뒤따라온 고릴라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멈췄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두리번거릴 뿐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클로에는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불카...!”

“잠깐 멈춰봐.”


처음 보여주었던 위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바로 달려들려는 무스타바를 멈춰 세우고, 제이드는 기묘한 대치를 지켜보았다.


“옆으로 돌아가서 합류하자.”


자신들의 역할은 에녹의 처리할 때까지 버티는 것.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저리 대치만 한다면 이쪽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클로에, 괜찮아?”


제이드가 고릴라를 흘겨보며 클로에의 안부를 물었고.

클로에는 피노의 품에서 내려온 후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을 길지 않았다.


“작전이 실패했나.”


숲이 들썩이며 사람의 기척이 저 멀리서 다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스타바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성공 여부를 따졌고.


“병력을 잃을 걸 무릅쓰고 이곳까지 온 것 같아요.”


클로에는 정황을 생각하여 대략적인 판단을 마쳤다.

열 댓 명도 남지 않았을 적의 숫자. 저번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많은 게 다르다.

일단 기습공격이 아닌 정면대결로 바뀌었으며.


“힘든가 보네.”


뛰어다니느라 지친 제이드 일행과는 명백히 그 모습이 달랐다.

백퍼센트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승기는 굳어진 상황.

그럼에도 클로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어째서 여기로 온 거지?’


당장의 상황이 나아지긴 커녕, 패배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차라리 고릴라를 그쪽으로 불러들이고 안전을 확보한 다음, 후퇴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공격해!”


로먼의 외침이 고릴라에게 닿았다. 제이드가 방패를 만들어 맞서서 자세를 잡을 때.

그것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무스타바였다.


그르르르-

울음에서 느껴지는 포악함.

잊을 리가 없다. 송곳니 부족의 마을을 짓밟고, 자신의 부인을 잡아먹은 붉은 곰.

녀석이 옆에 있는 동굴에서 나오고 있었다.


“죽여!”


다시 한번 멀리서 들려오는 로먼의 목소리에 붉은 곰은 앞발을 들어 올렸고.

무스타바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구해야 한다...!’


딱히 겁을 먹은 건 아니다. 그저 불곰과의 사투에서 죽어간 얼굴들이 눈앞에 맴돌아서.

하필이면 이때 당장 도끼를 쥐고 달려나가는 것이 아닌 클로에를 안고 물러서고 말았다.


“피노!”


끼익-. 쾅!

클로에의 다급한 비명에도 그 자리에 서 있던 피노는 피하지 못했다.

곰의 앞발에 가려서 피노가 무사한지는 알 수 없었다.


“젠장, 지금 뭐하는 거야!!”


존댓말로 일관했던 클로에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피노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걸 보면 클로에를 챙긴 것은, 얼핏 좋은 선택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붙어...!”


흥분한 짐승은 상대가 보이지않으면 다음 타겟을 노리기 마련이었고.

마침 가까운 곳에 등을 돌린 채, 고릴라와 맞대결을 하는 제이드가 있었다.


“부,불카르!”

“안 돼!”


뒤늦게 투지를 불태우며 무스타바가 달려들었지만, 붉은 곰은 이미 제이드의 등 뒤에 도달해 있었다.


“아니 이게 뭔 날벼락이야?”


오른손의 검을 앞으로 쭉 내밀어 고릴라를 견제하는 한편, 왼손으로 방패를 생성해 불곰의 공격을 방어하려 했다.

콰아아아앙-!


“크헉!”


방패는 단번에 구겨지더니 연기로 흩어지고, 제이드는 힘을 버티지 못해 숲 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제이드가 날아간 숲으로 고릴라 괴수가 두 손을 불끈 쥐고서 들이닥쳤고.

파바바바박-!

섬뜩한 연타 소리가 건너편에서 울려 퍼졌다.


“이 개새끼가!!!!”


불카르라는 야만신의 함성도 잊은 채, 무스타바가 그곳을 향하려 했지만 불곰에게 가로막히고 만다.


“비켜!!”


파팍...

연이어지던 구타 소리가 멈추고, 클로에와 무스타바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가득할 때.


우어어어엉!!


고릴라가 울부짖으며 튀어나왔다. 그 뒤를 이어 에녹이 레이피어를 든 채 나타났다.

팔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고릴라는 상처를 부여잡으며 에녹을 노려보았다.


“클로에. 제이드부터 봐 줘.”


에녹은 항시 동료의 위험을 확인하고 있었기에 다행히 제때에 맞춰서 등장할 수 있었다.

클로에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


클로에는 바로 앞에 파묻혀 있는 제이드를 볼 수 있었다.

최우선 조치를 마친 직후 클로에는 제이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의식을 확인했다.


“제이드. 정신이 들어요?”

“으,응, 나 멀쩡, 하다.”


아직 골이 울리는지 어눌한 발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제이드, 클로에는 그의 어깨를 짓눌러 눕혔다.


“일어서지 않아도 됩니다. 대답만 하세요.”

“...뭔데?”


뭔가 각오를 한듯한 굳은 얼굴.

제이드는 일어서려는 동작을 멈추고 클로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이드. 잠시 힘 좀 빌려줄래요.”

“그거야 당연하지.”


싱거운 이야기. 제이드는 피식 웃으며 움직이려 했지만.


‘어?’


손하나 깜짝할 수 없었다. 온몸이 나른해지며 정신이 점점 멀어져갔다.


“이제 그대로 기절해도 돼.”


클로에가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제이드는 그 차분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지만, 이 상황에서 기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 빨리 좀 기절하라고.”


신경질적인 말투에서조차 제이드를 걱정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한편 엄청난 졸음이 쏟아졌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웠지만, 에녹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별의별 헛생각이 떠오르고.


“기절했어?”


아까부터 계속 반말을 하는 클로에가 거슬렸기 때문일까. 제이드는 마지막 힘으로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웬 반말... 누구세요?”


의문 섞인 말을 끝으로 제이드는 수마에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6 85화 재대결 (3) 22.10.26 97 0 11쪽
85 84화 재대결 (2) 22.10.25 97 0 11쪽
84 83화 재대결 (1) 22.10.24 89 0 12쪽
83 82화 소강상태 (3) 22.10.21 103 0 10쪽
82 81화 소강상태 (2) 22.10.20 102 0 11쪽
81 80화 소강상태 (1) 22.10.19 102 0 12쪽
80 79화 함정 속으로 (4) 22.10.18 108 0 11쪽
» 78화 함정 속으로 (3) 22.10.17 97 0 12쪽
78 77화 함정 속으로 (2) 22.10.14 98 0 11쪽
77 76화 함정 속으로 (1) 22.10.13 105 0 10쪽
76 75화 송곳니 부족의 전사 (2) 22.10.12 108 0 12쪽
75 74화 송곳니 부족의 전사 (1) 22.10.11 104 0 11쪽
74 73화 일주일 (3) 22.10.10 103 0 12쪽
73 72화 일주일 (2) 22.10.07 106 0 12쪽
72 71화 일주일 (1) 22.10.06 110 0 12쪽
71 70화 뒷수습 (4) 22.10.05 109 0 11쪽
70 69화 뒷수습 (3) 22.10.04 112 0 12쪽
69 68화 뒷수습 (2) 22.10.03 117 0 11쪽
68 67화 뒷수습 (1) 22.09.30 135 0 11쪽
67 66화 그들의 최후 (4) 22.09.29 124 0 11쪽
66 65화 그들의 최후 (3) 22.09.28 114 0 11쪽
65 64화 그들의 최후 (2) 22.09.27 122 0 11쪽
64 63화 그들의 최후 (1) 22.09.26 114 0 11쪽
63 62화 침공 (5) 22.09.23 126 0 12쪽
62 61화 침공 (4) 22.09.22 122 0 12쪽
61 60화 침공 (3) 22.09.21 124 0 11쪽
60 59화 침공 (2) 22.09.20 118 0 12쪽
59 58화 침공 (1) 22.09.19 122 0 11쪽
58 57화 어셔 백작가 (6) 22.09.16 133 0 12쪽
57 56화 어셔 백작가 (5) 22.09.15 119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