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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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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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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16
추천수 :
92
글자수 :
579,291

작성
22.09.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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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6화 그들의 최후 (4)

DUMMY

본래 근처의 다른 궁전과는 비교도 못 할 사치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진 여왕궁은.

현재 사방 곳곳에 짐승이 할퀸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엉망이었다.

난장판이 된 방에서 있는 인물은 둘이었으나 그 외관은 참으로 상반되었다.

격렬한 싸움 끝에 몸져누운 여왕의 몰골은 심히 눈뜨고 보기 힘든 상태였다.


“하아, 하아.”


윤기나던 머릿결은 상한 채 산발이 되어 있었고.

맨발로 해진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가문에서 쫓겨난 지 며칠은 지났을 귀족 영애를 연상케 했지만.

물론 아무리 불명예스럽게 가문에서 퇴출당한 영애라도 가슴에 대검이 꽂혀있진 않을 것이다.


‘이게 주마등인가.’


여왕은 기억을 거슬러 오르며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전대 왕이 서거하고 여왕이 된 시점부터 칼을 맞은 지금까지.


‘어디서 잘못됐지?’


지금이야 악독한 독재자 되었지만, 코린느도 위대한 여왕으로 남고 싶었지만.

예언자, 로먼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녀는 정말 세상 물정을 몰랐다.

점점 유명무실해지는 왕의 권력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말을 잘 따르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몰래 찾아온 예언자, 로먼은 전대 어셔 가문의 영주, 체스터 어셔 백작이 왕을 독살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가 전해준 이야기는 그녀가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세했고, 실제로 들어맞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만하지.’


폭정을 휘두르는 왕보다 유순해 보이는 코린느가 빨리 여왕이 되는 편이 다음 대에 훨씬 좋을 테니까.

처음 이 사실을 들었을 때, 분노보다는 덜컥 두려움이 앞섰고 살아남고 싶어서 발버둥쳤다.

로먼의 말을 적극 수용하며 친위대를 결성했다.


‘진정한 의미의 독재국가로 재탄생했어.’


재능이 넘치고 충직한 기사 티모시를 중심으로 결성된 팔라딘은 여왕이 권력을 되찾는 데 일조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설움이 복받쳐 오르며 가슴 속에 묻혀있던 분노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복수를 할 순 없었지.’


복수할 기반을 다지자마자, 체스터 백작은 마차사고로 허무하게 사망했다.

우연한 사고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장작을 넣어 가슴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 결국 어셔 백작가에 화마가 들이닥쳤다.


‘그때 참았다면 달랐을까.’


지금 같은 거짓말에 놀아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것이다.

제이드가 팔라딘이 되어 자신의 밑에서...


‘그래, 너는 내 손에 들어왔어야 했어! 진작에!!!’


코린느는 아직도 제이드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그녀도 조절할 수 없는 감정이었고.

그 감정은 생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도 강하게 그녀를 부추기고 있었다.


“...끝까지 어리석군.”


무덤덤한 베드로의 목소리에 코린느는 생각을 멈추고 현실을 자각한다.

코린느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베드로가 그녀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찰하듯이 쳐다보는군.’


어째서 그가 그녀의 숨통을 끊지 않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곧이어 등장한 인물 덕 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태의 원흉, 제이드가 설렁설렁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저 보라고 저리 전시해둔 겁니까?”


라이언의 거친 한방으로 제정신을 차린 제이드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았지만.

베드로는 그런 의도는 없었는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디아나가 옆구리를 찌르며 노려보고 있었다.


‘농담한 거 아닌데.’


실제로 순수하게 의문을 가지고 질문한 거였지만. 차마 가볍게 질문을 주고받을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의도야 어찌 됐든 여왕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제이드가 환영할 일이었다.


“읏차.”


무겁고 느린 발걸음이 몹시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터덜터덜 다가온 제이드가 코린느의 앞에 주저앉았다. 마침 쓰러진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는 명당자리.


“너만 있었으면...!”


죽어가는 눈빛에서도 독기와 집착이 느껴진다.

제이드는 여왕이 자신보다 한참 전에 망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궁금하지는 않고 그녀를 동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복수를 원할 뿐이니까.’


여왕의 최후를 지켜보러 왔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제이드는 그녀의 생기가 사라지는 보는 것으로도 꽤 만족스러웠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여왕의 표정.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듯했다.


“기분이 어때?”


문득 여왕의 감상을 듣고 싶었다.

말을 할수록 그녀의 수명이 단축되겠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제이드, 아직 늦지 않았다. 이 정도는 회복할 수 있어. 네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티모시와 같이...!”


티모시가 제이드의 손에 쓰러졌다는 소식은 못들은 모양.

완전히 맛이 간 상태.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았다.

제이드는 그녀의 성토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아그네스, 네 약혼자마저 죽일 생각이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그네스를 입에 올리자, 제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기회라 여긴 여왕이 간절하게 외친다.


“나에게 와. 용서해 줄게. 아그네스를 원해? 강해지고 싶어? 보물...! 꺄아아아아아아!!!!”


열변을 토해내던 여왕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말이 많군. 네가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대검이 손잡이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베드로가 손을 쓴 것처럼 보였다.


“단지 골칫거리일 뿐, 넌 아무것도 아니야.”


베드로는 앞으로의 다가올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남과 북으로 쫓아냈다고 여긴 녀석들이 동쪽에서 발견된 것도 문제인데.


‘이곳에서 서로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다니.’


이러면 나머지 존재들도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이드, 너는 아그네스, 네 가문, 조국을 멸망시키는 거야!”


코린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는데 정말 독종이 따로 없었다.


“끝까지 내 탓만 하다가 죽을 거야?”


제이드는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조금 더 괜찮은 발악을 보여줄 줄 알았건만, 너무 싱거웠다.

애초에 자신이 고작 저런 회유에 넘어갈 리도 없는 데다가.


‘베드로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곁눈질로 베드로를 쳐다본 후, 제이드는 다시 여왕에게 고개를 돌려 비웃었다.


“별로 억울한 죽음은 아닌데 말이야.”


한껏 조롱하고 있지만,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편안하게 죽어간다니.

어떻게 코린느에게 어울리는 최후를 선사할지 고민하는 와중에도 남은 시간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헛소리나 지껄이면서 죽을 것이 틀림없다.


“베드로,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래서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그냥 이 순간을 잊어버리기로 정했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라이언이 글쎄...”


제이드는 베드로에게 잡담을 하며 밖으로 향하고, 제이드의 유도에 따라 디아나와 베드로는 코린느를 냅두고 떠났다.


“어디 가는 거야!”


눈이 뒤집힌 채 소리를 지르던 코린느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린다.

홀로 남은 그녀가 발악하는 것을 끝으로.


...

...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돌아온 제이드는.


“뭐야, 언제 죽었어.”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죽어있는 여왕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 시체는 종적을 감추면서, 뒤늦게 도착온 쾰른의 군대에는 여왕이 행방불명 되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복수는 허무하다고 들었는데.’


복수의 끝은 파멸이라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적어도 복수에 성공한 자신은 남았으니까 말이다.


*


“죽었네?”


싸늘한 여왕의 시체를 바라보며 별 감흥 없이 파몬드가 중얼거린다.


“아쉽지 않아? 삼십 년 동안 지켜봤는데.”

“별로.”


처음 여왕에게 기대를 품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

로먼은 끝나버린 상황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너도 익숙해진 모양이네.”


파몬드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로먼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파몬드에게 물었다.


“그보다 왜 불렀어.”


어차피 둘의 앞으로의 협력은 이야기를 마친 상태.

굳이 불러서 나눌 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내가 용건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고.”


뺨을 긁적이는 그의 등 뒤로 빨간색의 별 모양 귀걸이를 착용한.

짐승 이빨이 그려진 마스크와 독특한 차림새의 여인, 메리가 등장한다.


“뭐가 그리 바빠. 깍쟁이.”

“네가 왜 여기 있지?”


친근하게 인사를 하지만, 나타나자마자 한껏 일그러지는 로먼의 얼굴을 보면.

그리 친근한 사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워워, 내가 불렀어. 진정해.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당장 몸을 돌려 나가려는 로먼을 파몬드가 앞길을 막았다.


“알았다. 알았어. 빠르게 이야기 마치고 갈게. 듣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걸?”


그렇게까지 말하자 들어보기는 하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기다린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가볍게 꺼낸 이야기는 로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대륙 남부 지방에서 작업하고 있다면서?”

“...그거 어디서 들었어.”


그녀의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깃거리가 아니었기에 무심코 날카롭게 되묻고 말았다.

그 기세가 제법 매서웠기에 근처에 있었던 파몬드는 한 발짝 물러섰지만.

메리는 되려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눈깔아. 뽑아버리기 전에.”


으득-.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했지만, 한순간에 확 밀려오는 기운에 로먼은 눈을 슬쩍 내렸다.


“되지도 않으면서 까부는 게 귀엽다니까. 큭큭.”


로먼은 비웃음을 인내하면서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이제 거의 마무리 작업에 가까워진 구역은 앞으로 중요하게 쓰일 지점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 건 제쳐두라고.”

“...알았으니까. 어서 본론이나 말해.”


말투와 달리 공손해진 로먼의 태도. 메리는 흡족해하며 입을 열었다.


“제국이 눈치챘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빙긋 웃으며 던진 발언은 가볍게 흘러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로먼이 무엇하러 쾰른까지 가서 고생했는가.

꼬리를 말끔히 자르면서 그곳으로 제국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말도 안 돼! 제국 녀석들이 대륙 최남단 부근까지 신경 쓸 수는 없을 텐데?”

“흐히, 안타깝지만 확실하게 들켰어.”


메리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만약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지금 여유롭게 굴 때가 아니었다.


“왜 그런 헛짓거리를 하나 모르겠단 말이지.”


메리가 분위기를 바꾸며 로먼을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성공한다면 이득이지만 들키면 바로 소멸되는 도박수에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붓는 게 참 바보 같았다.


“아차, 내가 말하기엔 좀 그런 주제일라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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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화 그들의 최후 (2) 22.09.27 121 0 11쪽
64 63화 그들의 최후 (1) 22.09.26 1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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