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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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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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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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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79,291

작성
22.10.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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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5화 송곳니 부족의 전사 (2)

DUMMY

“...클로에, 통역 아이템이 고장 난 거 아니지?”

“응. 아니에요.”


제이드는 통역이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물었지만, 클로에는 짧게 일축했다.

야만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라면 저 말을 있는 그대로의 싸우자고 받아들이겠지만.

제이드는 무스타바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전사의 의식을 하자는 거지?”

“맞다.”


제이드는 야만인을 토벌하면서 그들을 살육하기만 한 건 아니다.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는 전사의 의식도 우연히 접해본 적이 있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제이드는 전사에 의식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결투 방식은 어린애도 알아들을 무척 단순하다.

번갈아가며 서로의 몸을 맨손으로 때리는 것뿐. 별다른 도구없이 몸뚱이만 있으면 충분했다.


“먼저 쳐라.”


무스타바는 무릎을 굽히며 어서 오라는 듯 자세를 취한다.

전사의 의식에서 맞거나 때릴 순서를 정하는 사람은 연장자.

그가 제이드에게 선공을 양보한 것이다.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제이드는 그의 배려를 마다하지 않고 힘껏 후려칠 생각이었다.

무스타바의 앞에서 팔을 뒤로 젖히며 힘을 모았고.

팽팽하게 당겼던 제이드의 주먹이 어깨너머에서 튀어나와 무스아바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쾅!


‘이걸 버텨?’


우뚝 서 있는 무스타바, 쓰러지기는커녕 뒤로 밀려나지도 않았다.

주먹을 거둬들이며 힐끗 쳐다본 야만인의 종아리 근육은 마치 무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퉷-.


“흐흐흐.”


무스타바는 사납게 웃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었고.

그 모습을 보고 백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녀에게 닦으라 명했다.


“크흠. 왜 그렇게 쳐다봐.”


괜히 무안함을 느낀 제이드는 가만히 있는 클로에한테 면박을 주었지만.


“물주먹.”

“...”


차게 식은 눈빛을 보내면서 내뱉은 클로에의 한마디가 제이드의 가슴을 후벼 팠다.

제이드는 애써 태연한 척, 맞을 준비를 했지만.


“쓸만하군.”


제이드의 각오가 무색하게 무스타바는 의식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피노가 위로하듯 제이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제이드는 순간 욱한 감정을 추슬렀다.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자존심을 세워서 질질 끌 이유가 없다.

애초에 제이드는 격투가가 아닌 기사. 초심을 다진 그는 자신의 진정한 힘이 무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이었다면...”


그럼에도 제이드는 아쉬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제이드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한순간 힐끔거리다가 이내 눈길을 거둔다.


‘씁쓸하네.’


혼잣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며 제이드는 살짝 후회했다.

제이드가 허탈한 기분인 와중에도 백작의 중재하에 이야기는 침착하게 이어졌고.


“날 따라와 줄 수 있겠나.”


무스타바는 일행한테 보여줄 것이 있는 듯했다.


*


제이드 일행은 무스타바를 따라 영지의 성벽 밖으로 나섰다.

황폐한 개활지를 걷고 걸어서 지평선 너머에 있는 숲을 발견했고.

도착한 이후 그 안에 헐거벗은 수많은 야만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어림잡아도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에 제이드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렇게 인원이 모여있는 것은 대규모 토벌 당시에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내 부족민들이지.”


클로에한테서 다시 알약을 건네받은 무스타바가 그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이윽고 제이드 일행을 향해 자신을 소개한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나는 현재 송곳니 부족의 족장이자 초원의 전사 무스타바라고 한다.”


훅 불어온 바람에 사자갈기 같은 무스타바의 머리털이 흔들었고. 모든 야만인이 몸을 숙이며 두 손을 받들어 올렸다.

그 웅장한 광경에서 제이드는 무스타바의 위엄을 느끼는 한편, 의문 또한 생겨났다.


‘이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무스타바는 제이드의 의문을 이해한 듯, 초원의 지배자였던 그들이 어째서 여기까지 왔는지 그 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네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 고향은 정글과 초원으로 나뉘어 있다.”


온갖 짐승들이 넘쳐나는 정글과 이들과 같은 야만인들이 부족을 이룬 초원.

초원에서 자라나는 곡식들은 이들의 주식량이었고, 자원이 풍부한 정글 덕분에 송곳니 부족은 타 부족민들보다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짐승 놈들이 날뛰기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지.”


낯빛이 어두워지면서도 무스타파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부터 멀리서 들려오던 짐승의 울음소리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송곳니 부족은 대부족답게 뛰어난 전사들을 보유했고. 쏟아져 나오는 짐승들을 사냥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조상의 격언을 믿으며 버티고 버텼지”


하지만 한 괴물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을에서 설치한 돌담을 가볍게 부수고 지나다니는 비대한 몸집과 무지막지한 괴력.

붉은 털을 가진 불곰의 포효가 지천을 울렸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건 나뿐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인 셈이었다.

홀로 살아남은 무스타바는 이 사실을 다른 부족들에게 알려주었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지.”


아무리 대비하더라도 그 괴물을 막아낼 수 없었다. 죽을 각오로 싸워도 소용이 없었다.

몇 번 전투 끝에 전사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마침내 초원 끝자락까지 밀려났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녀석과 죽을 때까지 싸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은 또다시 족장이 되어있었다.

조금이나마 살아있는 이들이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다시 그 불곰과 맞붙는다면 전사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확실히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난 졌다.”


무스타바는 패배를 인정하며 그들의 고향 초원을 버리고 베르티오 백작령에 오게 되었다.

이제 그 짐승을 사냥할 전사도 부족하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우릴 도와줄 수 있겠나.”


이미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은 영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부탁한다.”


무스타바의 목적은 단지 야만인들의 구원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을 복구하고, 종국에는 송곳니 부족을 멸족시킨 붉은 곰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거 좀 놀라운 소식이네.”


에녹은 말 그대로 꽤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남부를 조사하면서 야만인과 소통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정글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동물은 본 적이 없었어.’


그 이유는 쉽게 짐작 가능했다.


‘나를 발견해서 피해 다녔다면... 말이 되겠지.’


의도적으로 도망쳐다니지 않는 이상. 에녹이 그 커다란 동물을 발견 못 할 리가 없다.

짐승들은 매우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충분히 에녹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았다.


‘지능이 높은 것일까? 아니면...’


남쪽에 자리 잡았던 놈들이 뭔가 수작을 부렸을 지도 몰랐다.

여튼 에녹이 생각하기에 무스타바의 목표와 일행의 목적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고.


“좋네요. 실력도 괜찮아 보이고.”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결국 일행 전원이 선뜻 승낙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고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맡겨라.”


무스타바는 그 이후 일행에게 적극적이었다. 조금 곤란할 정도로 말이다.


“기운 없어 보이는군. 이걸 먹고 기운 차려라.”


갑자기 피노의 머리에 찬물을 뿌리는가 하면.


“전사의 의식을 하자.”


에녹을 자주 귀찮게 했다.

클로에는 가장 큰 부족의 족장이라는 사실에 혹시나 싶어서 기대를 품었지만.


“천운초? 집에 몇 뿌리 있긴 했는데, 지금쯤이면 썩었겠구나.”


자랑아닌 자랑과 함께 헛된 희망이 되었다.

제이드 또한 야만인 부족의 주술사에 대해 물었지만.


“주술사? 내 아내가 뛰어난 주술사였지...”


무스타바는 울적한 분위기가 되더니 슬픈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시간이 빠르게 흘러 정글을 가기 위한 채비를 단단히 마치게 되었다.


“준비됐다. 우리의 고향을 되찾자!”

“와아아아아!”


무스타바의 외침을 들으며, 제이드 일행은 야만인 전사들과 함께 선발대가 되어 초원으로 여정을 떠났다.


*


으르렁-. 그르르-.

각기 다른 울음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진다.

휘청거리는 나무에 두꺼운 몸과 두툼한 손가락을 가진 고릴라가 매달려있으며.

나무 아래에는 붉은 털을 지닌 곰이 네발로 서성거렸다.


“휘유. 참 살벌하군.”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직관하던 로먼은 휘파람을 불며 감탄한다.

무심한 척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사실 둘은 서로를 의식하고는 있었다.

그래도 싸움으로 번질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로먼은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나가 빠졌지만, 이 둘로도 괜찮겠지.”


이곳에서 영역을 가진 짐승은 저 둘을 포함해서 셋으로.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이곳의 주인 고릴라와 깊숙한 동굴에 머무는 붉은 곰.

마지막으로 절벽 아래 늪지대에 사는 악어가 이에 해당했다.


“전부 모였다면 확실했을 텐데.”


아쉽게도 늪지대에 있는 악어는 포섭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로먼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다.


‘조종할 수 없다면 없는 대로 잘 활용해야지’


운이 좋게 잘 맞아떨어진다면 그 짐승도 매우 강력한 비밀병기였다.

이곳에 오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함정이 어떻게 될지 그 결과가 몹시 궁금했다.

삐익-.

툭.

하늘 저편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무언가가 로먼 근처에 떨어졌다.


“이걸로 다 뿌리 뽑았나.”


새가 가져온 이 식물은 제이드가 애타게 찾고 있는 천운초였다.

동물들을 이용해 전 계곡을 뒤져서 자생지를 다 망가뜨렸으니, 로먼의 예상대로라면 이게 마지막일 터.


“만에 하나 함정을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너희의 목적은 이룰 수 없을 거다.”


마지막 남은 천운초가 로먼의 발에 으깨진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짓뭉게진 약초를 내버려 둔 채, 로먼은 숲 속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했다.


“크윽...”


그러자 어둠 속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 두 명이 나타나 한 여성을 밀어 넣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검은색 머리와 신비한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야만인.

로먼은 싱글벙글 웃으며 여인에게 다가왔다.


“상당히 기대되지 않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즐거운 표정이었지만 로먼의 말에는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왔다.


“너한테도 그걸 보여주고 싶지만, 살려둬서 좋을 게 없지.”


살해 선언에도 여인은 의연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어줘야겠어.”


모든 변수를 차단하고 싶었기에 로먼은 이 야만인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기로 결정했다.

로먼의 두 손이 여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고.


“꺼억, 꺽!”


얼마 지나지 않아 단말마를 내지르며 호흡이 끊어졌다. 죽은 자의 눈을 로먼이 감겨주며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주었다.


“어서 와라. 제이드.”


빛 한 점 들어오기 힘든 숲속 사이로 보이는 둥근 달을 보며. 로먼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달빛에 심취해 있을 때.

방금 전 목이 졸려 죽었던 송곳니 부족의 주술사, 이르카의 보랏빛 눈을 달빛이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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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7화 함정 속으로 (2) 22.10.14 98 0 11쪽
77 76화 함정 속으로 (1) 22.10.13 105 0 10쪽
» 75화 송곳니 부족의 전사 (2) 22.10.12 109 0 12쪽
75 74화 송곳니 부족의 전사 (1) 22.10.11 10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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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일주일 (2) 22.10.07 107 0 12쪽
72 71화 일주일 (1) 22.10.06 1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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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9화 뒷수습 (3) 22.10.04 112 0 12쪽
69 68화 뒷수습 (2) 22.10.03 1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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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화 그들의 최후 (2) 22.09.27 122 0 11쪽
64 63화 그들의 최후 (1) 22.09.26 114 0 11쪽
63 62화 침공 (5) 22.09.23 126 0 12쪽
62 61화 침공 (4) 22.09.22 122 0 12쪽
61 60화 침공 (3) 22.09.21 125 0 11쪽
60 59화 침공 (2) 22.09.20 118 0 12쪽
59 58화 침공 (1) 22.09.19 1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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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화 어셔 백작가 (5) 22.09.15 1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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