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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7.05 18:00
연재수 :
2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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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79,404

작성
24.02.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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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51화. 운명(運命) (2)

DUMMY

“무슨 의미요.”


설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서동천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설총을 응시할 뿐 답을 하지 않았다. 설총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의미냐니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겠지만··· 말 그대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이미 알려주지 않았는가? 탐랑과 천검, 삼제진경의 의미를.”

“···!”

“시우십결도 마찬가지지.”


시우십결. 그래, 시우십결. 설총은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아까 시우십결을 한현보에 ‘전해줬다’고 했었지.


“탐랑과··· 시우십결이 관련이 있는 것이오?”


서동천은 씩, 웃었다.


“다시 물어보아라.”

“무엇을 말이오?”

“왜 득구가 아닌 네가 탐랑이어야 하냐고.”

“···.”


설총은 한 차례 머리를 털었다. 자꾸만 휘말려 드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가기만 하는 것은 설총의 방식이 아니다.


이 서동천이란 사내의 언행은 실로 기묘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사내의 언행에는 확고한 목적과 일정한 형식이 존재한다. 목적은 이미 스스로 밝힌 바 있듯이, 설총에게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의 전달’은 질문과 답을 통해 이루어진다. 단, ‘의무’가 있다고 했다. 문 너머의 것은 문 너머에 남아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즉, 발설할 수 없는 정보에 대해서는 ‘암시’만을 준다는 의미다. 그래, 마치 스무고개처럼.


그거면 충분하다.


“시우십결을 한현보에 ‘전해줬다’고 했었지.”

“그렇다.”

“왜 한현보지?”


전혀 의외의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서동천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답했다.


“한현보가 가장 보잘것없었으니까.”

“단지 그것뿐인가?”

“물론 그것만이 이유였던 건 아니지.”

“‘만난’ 거로군. 한현보에 속했던 누군가와.”


서동천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정확하다.”


서동천은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다. 나는 그와 만났고, 그래서 전해줬지.”

“무엇을 기대했던 것이오?”

“무엇을 기대했느냐고···.”


서동천의 낯빛이 일변했다. 아니, 변한 것은 낯빛이 아니라 나이다. 무슨 조화인지 서동천의 얼굴이 나이 든 노인과 소년 사이를 오가며 변해가는 것이다.


“···무슨 조화요?”

“아, 미안하네. 잠시 내부적으로 회의를 할 것이 좀 있어서.”

“회의?”


알다가도 모를 소리지만, 어차피 지금 이 꿈도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설총은 애초에 존재부터 기묘한 남자의 기묘한 행동쯤은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사고가 정말 이 시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유연하군.”

“···됐으니 어서 그 괴이한 ‘회의’나 끝마치시오. 보고 있자니 속이 불편해지는군.”


사람의 얼굴이 앉은 자리에서 나이가 들었다 줄었다 하는 몰골을 보고 있자니, 영 기분이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꿈이라도 말이다. 혹, 그냥 악몽인 건 아닌가?


“결론을 내렸다네, 한설총.”

“···무슨 결론이오?”

“자네에겐 자격이 있다는군.”

“무슨 자격?”

“한현보에 관한 진실을 알 자격.”



* * *



고작 며칠 동안 머리를 밀지 않았을 뿐인데 그 잠깐 사이에 까슬까슬하니 머리가 자라났다. 주규는 푸르스름하니 머리를 뒤덮은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후후. 놀라운 상성(相性)이로군.”

“이 사내를 처음부터 눈여겨보셨던 전하의 안목에 소첩은 심히 감탄할 따름이옵니다.”

“으응? 그 무슨 소린가? 자네도 이자에 대해 놀란 점이 있다지 않았던가?”

“후후후···. 소첩이야 그저 관심을 가지는 데 지나지 않았지요.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내였으니 말이어요.”

“후후, 너무 띄워주는 것 아닌가 모르겠군.”

“걸협의 추격을 용인하는 바람에 감히 전하의 일정을 늦춰버렸으니··· 이렇게 아부라도 해야 점수를 좀 따지 않겠어요? 호호···.”


주규는 피식, 웃었다.


“그런 말 마시게. 그런 손으로 모든 시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자네야말로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이 틀림없으니. 그리고 걸협이야 어쨌든 결국엔 잘 따돌리지 않았는가? 애초에 걸협이란 사내는··· 온갖 정보를 틀어쥔 서왕과 행동을 함께한다는 점이 가장 성가셨던 게 아닌가? 그 두 사람을 떼어놓은 것만으로도 자네의 공은 이미 한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일세.”


교랑은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교랑의 소매 끝에는 쇠로 된 집게 비슷한 무언가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나저나, 손이 그렇게 되어버린지라···. 앞으로 역용술을 이용한 교란작전은 어렵겠군그래.”


주규는 쯧쯧, 혀를 찼다.


“그 노비 녀석을 조금쯤은 더 제재해야 했을까?”

“전하. 익히 아시다시피··· 그 미친개는 탐랑이란 저주를 받은 자이지요. 놈이 광야사자의 이목에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은 더 중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그야 그렇지만···.”


교랑은 입가를 가리던 소매를 내리고 말했다.


“지나친 걱정이시어요. 그리고··· 소첩의 역용술이라면 이미 그 정수를 마익수에게 전하지 않았사옵니까?”

“자네와 비교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후후, 욕심이 지나치셔요, 전하.”


사내라면 누구라도 흠뻑 빠질 수밖에 없는 교태 어린 태도와 목소리다. 색기가 흘러넘친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이 여인에게는 깊은 성적 몰입감이 있다. 앞뒤 없이 빠져들게 되는, 그러나 동시에 위험한 향기가 풀풀 풍기는 그런 요부의 마성이 말이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아니 숙명적인 여인이다.


“···하하. 이런, 이런.”


주규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 여인을 알게 된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천하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교랑의 얼굴에는 실금 하나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구정삼과 인연을 맺을 당시 그와 나이 차가 얼마였더라? 아무리 적어도 환갑이 가까울 나이다.


영원한 젊음. 그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자가 탐하는 것이다. 아니, 모든 인간이라 봐도 좋겠다. 어쩌면 이 교랑이란 여인은 바로 그것을 이뤄낸 자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겉으로 봐서 그녀는 결코 젊음을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까. 그래, 심지어 목소리조차도 젊은 여인의 것이니, 어쩌면 그녀의 젊음은 단지 역용술이나 주안술(朱顔術) 따위로 꾸며낸 젊음이 아니라, 그 웅혼한 공력으로 일궈낸 연년익수(延年益壽)의 불로장생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한데, 왜 이리 불안한 마음이 드는지···?”

“어머, 그 정도로 소첩의 빈자리가 아쉬우셨는지요?”


주규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마익수가 참으로 믿음직스럽긴 하네만··· 자네만 하겠는가.”

“오늘따라 과찬이시어요, 전하.”

“하하, 공이 있으니 치사도 있어야 마땅한 것이지.”

“후후후···.”


교랑은 눈을 돌려 한 곳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타오르는 향이 꽂혀 있었다. 향은 이제 뿌리만 남긴 채였다.


“···이제 시간이로군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소리가 벽을 뚫고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쓰와하!!」”


귀음신후의 격공강기가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교랑은 마치 그것이 축포라도 되는 양 얼굴에 홍조를 띠고 웃었다.


“감축드리옵니다, 전하. 이로써 쿤달리의 인을 손에 넣으셨나이다.”


가만히 벌어져 있던 주규의 입술은 차츰 그 꼬리를 들고 달을 그려나갔다. 신월(新月)에서 만월(滿月)까지.


“후후···. 후흐흐흐, 흐하하하핫!”


한참이나 홍소를 터뜨리며 웃던 주규는 귀음신후의 울림이 사라질 때야 겨우 웃음을 멈추고 천천히 읊조렸다.


“사명을 짊어진 ‘사명자’가 나타나면, 그 ‘대적자’와 ‘중보자’가 일어나더군. 마치 이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후후, 참으로 형편 좋은 세상이지요.”

“운명의 수레바퀴란 것이 그런 것이라면··· 별수 있겠나.”


주규와 교랑 두 사람은 서로를 똑같은 표정으로 쳐다보며 웃었다.


“바퀴를 갈아치우는 수밖에.”


서로의 눈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면서.



* * *



“그럼, 한현보는 역시 오로지 인위적으로 탐랑을 만들어내기 위한 곳이었단 뜻이오?”

“그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목적에 부합했다는 뜻이오?”

“재미난 일이지. 하지만··· 운명이란 항상 그렇더군.”


서동천은 쓴웃음을 짓고 말을 이었다.


“단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군.”


서동천은 말을 이어갔다.


“무공은 어디까지나 ‘문’에 다다르기 위한 도구다. 시우십결 역시 어디까지나 ‘문’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오직 문에 도달하는 것만을 위한 도구 아니오?”


서동천은 씩, 웃었다.


“정확하군.”

“그럼, 한현보의 의미는 뭐란 말이오? 대체 한현보란 문파의 의의는 무엇이냔 말이오?!”

“···그렇지. 너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

“···.”

“이 땅에 암구명촉이 되는 문파를 세울 것이라고.”


설총의 눈썹이 꿈틀, 뒤틀렸다.


“···무의미하다, 그리 말하고 싶은 거요?”

“그렇지는 않다. 이 세상에 무의미한 일은 없지. 온 세상에 해악을 끼치게 될지라도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기 배를 불리려는 밥버러지 같은 놈의 행위조차 결국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민중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래,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 즉,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이 그러할진대 선은 어떠할까?”

“그렇다면 어째서 한현보였던 것이오!”


서동천이 손을 뻗었다. 허공 위로 인체 모형이 그려지고 그 위에 인간의 기경팔맥이 하얀 빛으로 새겨졌다.


“시우십결은 인간의 기경팔맥(奇經八脈), 그 안에 숨겨진 여덟 개의 용문(龍門)을 강제로 개방하는 비상(非常)의 묘리다. 그래, 삼제진경과 같지.”

“당신이 훔쳐 온 것 아니오···!”

“그렇다. 내가 훔쳐 온 것이다. 그토록 비상한 것이 놈들의 손아귀 안에 남아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

“인세(人世)의 운명을 고쳐 새길 수 있는, 운명의 검이 있다고 해보자. 너는 이 검을 누구에게 맡기겠느냐?”


설총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어떤 이에게 맡기겠느냐?”


설총이 대답하지 않자, 서동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그래, 네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 하지만, 네 본능은 이미 알고 있다. 시우십결의 진의를 깨친 너로서는···.”

“당신, 설마···!”

“이미 모든 지식을 전달했다. 그러니 여기서 다시 한번 단언하겠다. 한 세대에 탐랑은 오직 하나. 하나뿐이다. 마치 들판에 익은 곡식 중 떨어지는 첫 밀알이 오직 하나뿐이듯.”


서동천이 양손을 펼치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다시, 처음의 불과 연기의 들판이다. 어딘지 알 것만 같은데, 도무지 기억에 없는 풍경이다.


다만 아직 아까의 운석이 떨어지지 않은 것인지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지금의 탐랑, 그래, 이 소년 득구는 결코 그 운명을··· 의무를 감당할 수 없다.”

“단언치 마시오! 당신이 녀석에 대해 무엇을 안···.”


그때 설총 곁으로 익숙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어?”


득구다. 녀석은 다급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득구의 뒤를 따르기라도 하듯, 한 사내가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사내는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사내의 소매에 새겨진 문양은 익히 잘 아는 것이었다.


“칠엽화의 매화검수! 화검 도종인?!”


그리고 이어 달리는 이는 두 소녀와 거지였다. 한 소녀는 익히 아는 제갈민이었지만, 다른 한 소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누구인지 짐작할 만한 단서는 없었지만, 득구의 일행이란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마지막으로 달리는 이는 염천호의 패거리에서 본 일이 있는 거지였다. 본명은 잘 모르지만, 아마 득구와 함께 약왕전을 찾으러 갔던 발가락이란 거지가 분명하다.


“대체 어디를···!”

“가보면 알겠지.”


서동천이 한 걸음, 옆으로 발을 옮기자 마치 축지법이라도 쓴 것처럼 땅이 접혔다. 그리고 설총은 다시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득구를 보았다. 이번에는 멀리 달려 나가지 않고 설총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오?!”

“‘벌어졌냐’고?”


서동천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벌어질 것’이다.”

“그게 무슨···!”


설총은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거기엔 자신과 구정삼, 달구와 고무래, 도끼, 홍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설총은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설총과 설총의 일행이 백련교와의 접전에서 매우 큰 위기에 빠졌고, 그 상황을 알게 된 득구가 그의 일행을 이끌고 지원하러 달려온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까 그 운석은···.”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과거 계묘혈사 당시 백련교 호법 중에 화염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힘을 소유한 자가 있다고 들었다.


설총이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하늘에서 다시 운석이 떨어졌고, 모든 것이 빛과 화염에 휩싸였다. 그러나 서동천과 설총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놀랍게도 운석은 지면에 격돌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 조각의 파편이 되어 떨어졌고, 그 여파로 득구와 설총 두 일행은 중상을 입은 채로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흩어져 서로를 수습하고 있는 일행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천중! 그리고··· 사독파파인가?!”


천중은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유쾌한 표정으로 천천히 쓰러진 일행을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그때, 서동천이 설총 앞을 막아섰다.


“이 이상은··· 범위 밖이다.”


그리고 그의 말이 들리자, 설총은 자신이 예의 그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설마 싶지만··· 이것이 다가올 미래라는 거요?”

“그렇다.”

“···피할 수 없는?”

“대비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늦든 빠르든··· 반드시 찾아온다.”


설총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설총이 다시 입을 여는 그때, 서동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모든 것을 어찌 아느냐고 너는 말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어찌···!”


설총이 놀라 입을 다물자, 서동천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알고 싶은가? 그래, 대답해주지. 나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해보아서 알고 있다.”

“경···험?!”

“아카샤에 접속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래, 그런 의미지.”


서동천은 문으로 다가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잠들어 있던 문이 깨어나고, 물이 끓어오르듯 문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탐랑은 타고나는 것. 그러나 그녀는···. 계약의 증표에게는 탐랑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그 소년, 득구가 선택되었다.”

“···그녀?”

“천검과 그가 훔쳐 간 ‘삼제진경’─ 곧 백련성화가 3년하고도 4개월을 품어 낳은 아이, 한성채. 아니, 단설(段雪). 그녀가 바로 천문선골지체다. 곧, 계약의 증표.”


천천히 끓어오르던 문은 이제 팔팔 끓는 쇳물처럼, 혹은 아우성치는 군중의 뻗은 손처럼 갈망으로 가득 찬 기포를 터뜨리며 들끓었다.


“너는 선택해야만 한다. 이 운명이 그대로 흘러가 결국, 이 ‘문’이 열리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설총은 입을 열기 위해 애를 썼으나 점점 의식이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뒤틀린 운명을 거부하고 모든 운명을 본래의 궤도로 돌려놓을 것인지를.”


마침내 설총은 뒷덜미를 잡혀 끌려 나가듯 문 앞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런 설총의 뇌리에는 오로지 서동천의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래, 그 소년, 득구가 죽어야만, 이 모든 운명을 바로잡을 수 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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