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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8,14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4.21 21:30
조회
429
추천
3
글자
12쪽

122화

DUMMY

“···.”


설진의 말을 들은 슌의 입이 다물어졌다.

직접적으로 조건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슌 또한 염원석의 발현 조건을 알고 있는 듯 설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

그리고 그건 곧 긍정이나 다름없는 반응이었다.


“왜 이리도 악랄한 조건이 달린 겁니까.”


답이 없자 설진이 한 번 더 물었다.

에피소드의 여주인공 둘을 희생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염원석이라면, 탑은 사람의 생명과 노력을 하찮게 보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한창 슌에게 따지던 설진의 머릿속 장면이 돌연 전환됐다.

떠오른 것은 바로 염원석을 사용했을 때 생기는 일.

플라임이나, 엘리나나, 연나비의 여주인공이나. 이 셋 중 둘을 죽이고 염원석에 바쳐야 했다. 그래야지만 탑의 클리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


게임일 때는 그러려니 했다.

게임이니까. 새드 엔딩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암울하다 못해 비극적이기 짝이 없는 조건마저 쉬쉬하며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게임이 현실이 되었고, 자신은 현실이 된 새로운 세계에 전이됐다. 적응해야 했으며 탑을 클리어해야만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물론 탑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염원석의 조건 따위는 알고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바쳐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따위는 차고 넘치도록 알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죽음이 구원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염원석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자신 또한 고통 없이 죽게 해 달라 빌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달라졌다. 사고의 폭이 달라졌고 인연을 만났다. 더없이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자 죽음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설진도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랬는데.

분명 그랬을진대.


“슌.”


빌어먹을 상황은 생각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탑이란 건 참··· 감정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잔혹하네요. 아니, 오히려 감정이 없어서 잔혹한 건가.”

“설진 씨···.”


여전히 슌의 입에서는 유의미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열리는 것이라곤 설진의 이름을 부른 것 정도. 그마저 끝말은 흘린 채다.


‘염원석이라···.’


한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연은 염원석에 대해 생각했다.

더불어 조건까지도.


설진이 알고 있듯 시연 또한 알고 있었다. 소원 성취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구원한 세계의 주인공을 죽여야 하는 것을.

다만 아직 탑의 반조차 넘지 못했기에 생각에서 미뤄졌을 뿐. 무의식으론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이 지금 극대화되었다.

39층. 상점 스테이지에서의 슌의 출현으로.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설진이 화두를 거론함으로써.


‘소원···.’


동시에 소원과 관련된 주제가 진탕 머릿속을 헤집었다.

시연도 사람이었다. 이루고 싶은 건 있었고 하고 싶은 건 많았다.

과거에 실패한 일, 후회로 묻어둔 일을 다시 재개하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시연에게도 다를 바 없는 말이었고.


‘생각만 해 봤지···.’


단지 생각으로만 남겨두었기에 집착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음?’


소원에 관해 생각하던 시연은 돌연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앞이 아닌 뒤에서. 슌과 대화하고 있던 설진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던 찬우와 채린의 반응이 이상했다.


슌의 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쫗긋 세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못내 낯설어 보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겠지만, 찬우와 채린은 시연의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이었다.


절박함마저 보이기도 했다. 동시에 시연의 머릿속에 채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채린이 보였던 모습. 활발한 성격인 줄 알았던 그녀가 어느덧 조용해지더니 존재감 하나 없는 인형이 되어버렸던 순간.


그 인형의 되기 전 모습이 지금 잠시나마 드러나고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연이 안 되겠다 싶어 입을 열려고 할 즈음-.



“저는 탑의 관리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지, 탑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설진 씨. 탑을 관리하는 것은 저 슌이지만, 탑에 관한 요소를 만든 것은 다른 이들입니다. 조건 설정도, 시스템도. 모두 그들이 했지요.”

“···.”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해 아쉬우신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괘념치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요.”


차차 천천히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라며, 슌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말이 좋아서 마무리된 이야기지, 결국 이렇다 할 소득은 얻지 못했다.

테이블에서 일어나고 있는 슌을 본 설진의 동공이 복잡해졌다.

왜 염원석에 저런 말조차 안 되는 조건이 붙었는지, 왜 이리 비극적인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는지. 하다못해 왜 여기 불려 왔는지.


제대로 된 궁금증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더불어 상대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슌은 일으킨 몸을 이끌고서 카페의 문을 향했다. 한 손을 뻗은 손이 문고리에 걸리고, 이내 문이 열렸다. 저벅. 슌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진 씨.”

“···.”


그러던 중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간곡한 어조 같기도 했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부정적인 어투는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설진은 슌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더 올라오십시오.”

“···.”

“층을 더 올라 저희가 다시 만날 때, 제가 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답해 드리겠습니다. 클리어한 층이 반절조차 넘지 않은 지금은··· 조금 힘들어서요.”


말투로 보아하니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호소라도 하듯.

슌은 끝말에 의미를 담아 말했다. 오른 층이 낮아 정보를 주기 힘들다는 의미를 담아 설진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러죠.”


설진이 입을 열었다.

슌은 설진 파티에 악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관리자이면서 안내자이기도 했고, 조언을 주기도 했다.


적어도 나쁜 이는 아니라고 여겼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슌은 악역이 아니었기도 했고.

슌이 떠난 후 설진은 숨을 내뱉었다. 얻은 정보는 없지만 정보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 정도는 잡은 것 같았다.


탑을 오르는 것.

계속해서 오르고 올라 다시 재회할 때까지.


헤임 제국 에피소드 넘어, 연나비의 에피소드까지.

결연한 표정을 지은 설진이 짐짓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


이윽고 찬우가 설진을 보며 입을 열었고,


“형은 어떡할 거에요.”


그건 방금까지의 결심이, 모두 회귀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염원석, 쓸 거에요?”


* * *


찬우의 물음이 설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염원석의 사용 여부.


만약 사용한다면 그건 그동안 만났던 인연들을 전부 죽이자는 말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소원이라는 대가를 포기하고서 탑을 오르자는 말과 진배없는 것이었다.


후자의 방향으로 결정이 날 경우, 탑 등반은 무의미하게 된다.

갖은 고생을 겪고 탑을 올라도 따라오는 보상이 없게 된다.

허무하고 무상하고 무의미한 일. 설진이야 플라임을 구하겠다는 또 다른 목적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소원을 이루고 싶어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것이 탑 등반이라는 노력의 형태로 보상을 바라는 것이라면 욕구는 극대화된다.

힘들게 싸우고 이겼는데 따라오는 것 하나 없다?

화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설진은 찬우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곤란한데.’


다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달랐다.

기실 찬우의 물음에 어떤 답을 하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염원석 사용에 찬성한다면 플라임이나 엘리나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어쩌면 둘 다 죽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건 설진이 바라지 않는 결말이었다. 플라임이 죽는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를 해버린다면?

파티 내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견은 엇갈리고 분열이 생긴다. 신뢰에 금이 가는 건 아군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다.


‘뭘 어떻게···.’


진퇴양난이었다. 무슨 답을 하든지 간에 상황의 악화는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애초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부정적이었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만난 인연을 바쳐야 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원을 포기해야 했다.


뭐 이런 개 같은 상황이 다 있나 싶었다.

동시에 스페이스 온라인의 유저 대부분이 빠져나간 이유가 떠올랐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못해 암울함이 가득한 스토리. 그런 이야기였고 그런 탑이었다. 무겁다 못해 칙칙하기만 한 게임이었다.


그런 게임을 좋아하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그것만 해도 유저는 많지 않을 텐데, 난이도는 또 괴물 같아서 클리어조차 힘들다.

안 그래도 적은 유저가 더 적어진 이유가 그것이었다. 설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찬우를 바라보더니만,


“찬-.”

“찬우야, 지금 우리. 정보가 너무 적어.”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열려고 했었다.


그러나 가로막혔다. 갈등하는 듯한 설진의 표정을 본 시연이 나선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정리하듯 말을 읊었다. 정보가 적은 상황이라는 것과 그 정보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연은 천천히 나열했다.


“왜 염원석의 조건이 그따위인지, 게임이 왜 현실이 되었는지, 아니. 하다못해 왜 우리가 여기 불려 왔는지조차- 아직 확실한 정보가 너무 없어.”

“···.”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을 내리긴 힘들 것 같아. 방금 슌이 말했잖아. 조금 더 높은 층에 오르면 알고 있는 것 모두를 알려주겠다고.”


시연의 목소리에는 알게 모르게 침착함이 감돌아 있었다.

정신을 안정시켜주기라도 하는 느낌.


“일단, 올라가자. 우리.”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아서.”

“괜찮아. 그만큼 민감한 주제였으니까.”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던 찬우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스킬의 영향인지, 목소리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나쁘게 치닫지는 않는 듯했다.


‘일단 이걸로.’


상황이 종료됐다. 종료하기보다는 보류나 유예가 더 알맞은 표현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의구심이 드는 건 탑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찬우와 채린. 이 둘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고 어떤 비극을 겪었는지 모른다.

단지 글을 썼고 방송을 했다는 정보밖에 없었다.


설진은 속으로 숨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아까 슌이 갔던 문고리였다.


스윽-.


똑같이 문고리에 손을 뻗은 설진의 뒤로 셋이 따라왔다. 일단 이것으로 어느 정도 일단락된 모양.


열어젖힌 문 너머 아스라한 빛이 흘러들었다. 저벅. 한 발자국을 내디딘 설진의 몸 사이로 옅은 빛이 감돌았다.


[40층에 진입했습니다.]

[40층은 스토리 모드입니다.]

[플레이어의 상태창이 모드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목표 : 스토리를 끝마치십시오.]


40층, 스토리 모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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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화 22.05.19 391 3 12쪽
141 141화 22.05.16 389 3 11쪽
140 140화 22.05.15 401 3 11쪽
139 139화 22.05.14 404 3 11쪽
138 138화 22.05.13 400 3 11쪽
137 137화 22.05.12 402 3 11쪽
136 136화 22.05.09 411 3 12쪽
135 135화 22.05.08 417 3 11쪽
134 134화 22.05.07 420 3 11쪽
133 133화 22.05.06 411 3 11쪽
132 132화 22.05.05 41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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