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820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1.12.09 21:40
조회
1,197
추천
17
글자
12쪽

29화

DUMMY

이틀이 흘렀다.

플라임의 병사가 설진과 시연을 데리러 오는 것이 보였다.


“설진 님, 시연 님이 맞으신지요.”

“맞아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병사는 둘을 안내했다.

십 분 정도 걷고 있자니 점차 수도의 중앙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평민들도 섞여 사는 외곽 부분이 아닌, 귀족의 혈통만 기거할 수 있는 수도의 중심.

그 중심에 발을 들인 시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왕녀님을 비롯한 귀족들은-.”


어릴 적 자신이 지냈던 공간.

좋은 시설, 좋은 집, 좋은 음식과 좋은 의복.

그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시연은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의미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사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조금 더 첨언해 왕녀님이 말씀하기를, 원래 평민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노르담에서의 신분이 어떻든 두 분을 이곳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런가요.”


왕녀의 휘하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섞인 대답.

시연은 짧게 화답했다.


그것이 거절임을 인지한 병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면서, 계속해 둘을 안내했다. 수도의 중심. 그 옆에 길처럼 나 있는 가게들과 상점들.

그중 현대로 치면 카페로 보이는 듯한 건물에 다가서자, 비로소 병사의 걸음이 멈췄다. 병사는 예스럽게 손을 뻗어 둘을 모시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는 부디 왕녀님과의 대화에 어울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병사님도요. 수고 많으셨어요.”


마지막으로 설진의 손짓까지 확인하고서 병사는 물러갔다.


“들어갈까?”

“들어가죠.”


카페의 간판은 황금색이었다. 카페임을 알리는 간판 글씨는 흰색으로 점철된 채 단어로 화했다.

불과 바람의 휴식처.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이 뺨에 묻어 흩날렸다. 곳곳에서는 대다수가 염화(炎火) 마법을 이용해 수준 높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왕녀 전하를 뵙습니다.”


카페 안. 그리고 그 중앙 자리에 있는 플라임을 제하면 보이는 손님은 없었다. 귀족들이 카페를 싫어할 리는 없으니, 답은 곧장 나왔다.


“저희를 신경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이미 이쪽에서 먼저 우를 범했으니, 그건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지. 예의 없는 왕녀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다.”


플라임이 이 카페 전부를 빌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연이 고개를 숙였다. 왕녀는 왕녀인지, 의자에 착석해 있음에도 항거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굳이 말하자면 아우라(aura) 같았다.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아름답게 조각된 석상처럼, 신이 친히 공들여 만든 듯한 플라임의 외모는 이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앉거라. 모험가는 서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바로 본론부터 말하도록 하지.”


플라임의 손이 앞으로 내밀어지더니, 이내 앉으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 신호에 따라 설진과 시연이 자리에 앉았다.


시연은 조금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또 조금은 앳된 기시감의 감정으로 플라임과 카페를 쳐다보고 있었고, 설진은 여전히 아무런 무표정을 고수했다.

제각각의 반응을 확인한 플라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맡기고 싶은 의뢰는 왕국 내 암암리에 열리고 있는 불법 투기장의 조사 및 급습일세.”


이야기를 들은 설진의 머릿속이 돌아갔다.


플라임이 말한 불법 투기장이란, 10층 스토리 모드에서 겪었던 범죄 조직과 연관된 곳이었다.

그들이 말했던 점조직 중 또다른 조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생사결을 시킨다느니, 사람을 몬스터와 싸우게 시킨다느니.

자극적인 볼거리를 관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굳이 표현하자면 조직의 활동 자금 충당처였다.


플라임이 건수를 잘 물었다 싶었다.

확실히 지금 놈들의 자금 충당을 방해한다면 타격을 입힐 수 있을 테니까.

조직이 완전히 괴멸될 정도의 큰 피해를 아니더라도, 당분간 범죄 조직의 활동에 제한을 걸 수 있을 만한 목줄 정도는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사 과정은 생략해도 되겠군. 사실상 위치는 파악했으니, 그대들은 나의 용병들과 함께 기습에 참여해주기만 하면 된다.”

“음··· 알겠습니다. 한데, 습격 날짜는 언제로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지금으로부터 나흘 뒤. 집결지는 추후 전달해 주겠다.”


플라임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진과 시연 둘이서 시행하는 작전이 아닌 플라임이 사적으로 고용한 용병들까지 합류하는 단체 작전.

고용된 용병들의 수준이 높은 편인지라 이번 의뢰는 불법 투기장에 발을 들이기만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쉬운 난이도를 자랑했다.


플라임이 설진과 시연에게 배상하기 위해 만드는 명분.

말 그대로 이번 의뢰는 임무를 가장한 보상 전달에 불과했으니.


“그럼 이제 슬슬 보상 이야기로 넘어갈까 하는데···.”

“경청하겠습니다.”

“모험가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집중력이 상승한단 말이지.”


보상 이야기는 빠르게 넘어갔다.

설진와 시연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래야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조건.

거액의 돈과 함께 왕실 대장장이가 만든 장비 중 하나를 주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인 플라임은 이제 되었다 생각했는지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왕녀 전하.”


하지만 그런 플라임을 다시 자리에 앉게끔 만든 건 다름 아닌 시연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그 일에 대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아이를 선두로 셋, 그 뒤 그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이 하나. 그들이 마차 호위 의뢰를 수행하고 있는 저희를 기습했습니다.”

“···뭐라?”


아이라는 말에 플라임의 귀가 반응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방금의 말을 자세히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틀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저희는 변두리에서 왕국의 수도까지 마차 및 외뢰인을 호송할 것을 의뢰받았고, 의뢰를 수행하던 도중 습격받았습니다.”

“그 위치를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나.”


시연은 펜달에게서 들은 숲의 지명을 읊었다.

원래라면 불법 투기장 하나로 이어지던 인연을, 방금 플라임이 쫓고 있던 범죄 조직을 거론함으로써 더욱 끈끈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인연이 어떻게 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해가 되진 않을 터.

플라임은 시연의 말을 듣고서 한참 동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이내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착석한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소한 정보는 아니었다. 10층에서 겪은 범죄 조직에 대한 이야기, 위프 게이트를 이용한 자금전. 모두 설진과 시연이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


다만 중립국인 노르담의 사람이 플레임 왕국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심각한 표정만을 지은 시연은 고개를 들어 플라임을 바라보았다.


“혹여 왕녀 전하께서 이번 불법 투기장 습격 건을 기획하신 이유가.”

“금전적인 측면에서 압박을 넣으려 한 것이다. 지금 왕실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이 자금을 이용한 장기전이니, 최대한 방해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지요. 아, 물론 여기서 들은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비밀 유지는 모험가의 기본 중 기본이라 들었으니 그대들이 어기진 않을 것이야. 그대들을 신뢰하마.”


친분을 다지듯이 플라임과의 관계를 넓혀 놓은 시연은 내심 만족했다.

게임에서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시연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될 조짐을 보일 때,


“왕녀님.”


별안간 설진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성이었다. 낮은 저음이 귀에 속속히 틀어박히는 듯했다.

플라임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만일 왕녀님께서 상대하고 있는 범죄 조직의 배후에.”


설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여인을 응시했다.

목소리를 낸 것 자체에 놀랄 듯 뜬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시연과.

성대에 이끌려 이쪽에 시선을 둔 플라임에게.


“귀족, 최소한 그 이상의 존재가 배후에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화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이야깃거리를 거침없이 발설했다.


“흐음.”


플라임은 턱을 괸 채로 설진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웃음이 걸리기도 했고, 아리송하다는 듯 괸 턱을 옆으로 내려 고개를 꺾어 시선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 짐을 시험하는 것이냐.”

“···.”

“좋다. 그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지. 과연 신예라 불릴 만한 재목이구나.”


플라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려줄 수 있겠느냐.”

“간단한 자금력 싸움입니다.”

“그래, 확실히 어중이떠중이가 왕실 국고와 재력 싸움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 범죄자들을 돕는 뒷배가 있다고?”

“투기장.”

“투기장? 확실히 불법 투기장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꽤 될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이 왕실과의 금전 싸움으로 이어지기란 무리가 큰 법이지. 물론 그 투기장에 왕국 곳곳에 퍼져 있다면 모를 일이긴 하다만.”


설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로 그러는 건가 싶었다.


“왕녀님.”

“음? 무엇이느냐.”

“어떻게 그들이 투기장을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그걸로 끝이었다.

설진은 그 이상으로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플라임은.


“하. 하하! 그래,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대소를 터뜨리며 화답했다.


“그리하여 짐에게 묻고 싶었나? 배후에 귀족, 그 이상의 존재가 있으면 어찌할 것 같냐고?”

“평범한 귀족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혹여 짐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가문이나, 혹여 왕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아니,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더 말하게끔 시키면 네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것 같구나.”


플라임은 잇달아 말을 내뱉었다.

그러던 도중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설진에게 시선을 옮기더니만.


“그 어떤 진실을 마주한다고 해도.”


돌연 진지해진 기색을 내비쳤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아까의 그 웃음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이었다.


흡사 왕국의 왕비를 보는 듯한 모습에 설진의 얼굴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설진은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그를 보던 플라임의 입이 이윽고 열렸다.


“상관없다. 그 누가 범인이 되었든 간에.”


왕녀는 말했다.

상관없다고.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지인이든지 간에.


“미래의 짐이 진실을 알고 망가져버려도, 짐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카페 사이로 빛이 흘러들어왔다.

그 빛이 꼭 왕녀의 뒤를 비추는 위광과도 같은 모양새라, 꼭 고귀한 존재인 천사가 하늘에서 강림한 듯 보였다.


플라임이 입을 열었다.


“그저 책임을 질 뿐이지.”


가족의 잘못이라면 말리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여길 것이고,

친우의 잘못이라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여길 것이며,

결론적으로는,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것이 플라임이었다.

그것이 왕녀라는 인물이었다.


“그래, 경이 보기에 나라는 왕녀는 어떠한 왕녀인가.”


플라임 폰 라반부르크.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32화 21.12.12 1,082 19 12쪽
31 31화 21.12.11 1,123 18 12쪽
30 30화 +1 21.12.10 1,170 18 12쪽
» 29화 21.12.09 1,198 17 12쪽
28 28화 21.12.06 1,248 17 11쪽
27 27화 21.12.05 1,278 17 11쪽
26 26화 21.12.04 1,391 17 11쪽
25 25화 21.12.03 1,473 20 11쪽
24 24화 21.12.02 1,544 21 11쪽
23 23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7) 21.11.29 1,583 23 11쪽
22 22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6) +1 21.11.28 1,600 21 12쪽
21 21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5) 21.11.27 1,685 23 11쪽
20 20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4) 21.11.25 1,917 22 12쪽
19 19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3) 21.11.25 1,953 23 11쪽
18 18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2) 21.11.25 2,160 25 12쪽
17 17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1) +1 21.11.25 2,380 33 12쪽
16 16화 21.11.25 2,432 34 12쪽
15 15화 21.11.25 2,485 35 12쪽
14 14화 +1 21.11.25 2,592 34 11쪽
13 13화 21.11.25 2,668 39 11쪽
12 12화 21.11.25 2,836 39 11쪽
11 11화 +2 21.11.25 3,217 36 12쪽
10 10화 21.11.25 3,613 39 11쪽
9 9화 +2 21.11.25 3,695 40 11쪽
8 8화 +2 21.11.25 3,839 51 11쪽
7 7화 +3 21.11.25 4,200 51 11쪽
6 6화 +3 21.11.25 4,487 49 11쪽
5 5화 +2 21.11.25 4,762 51 11쪽
4 4화 +2 21.11.25 5,024 54 11쪽
3 3화 +1 21.11.25 5,796 6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