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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83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1.12.03 21:45
조회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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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5화

DUMMY

꿈을 꾼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일이 전부 환상인 것 같았다.


멀어지는 의식 속 시연은 생각했다.

탑에서의 일이 거짓이고 현실에서의 일이 진실인지.

현실에서의 일이 거짓이고 탑에서의 일이 진실인지.


‘기왕이면 탑이 좋겠는데··· 그게 조금 더 행복했는데 말이지.’


지어질 리 없는 얼굴에 쓴웃음이 감돌았다.

피로한 육신이 도통 정신을 놓아주질 않았다. 한 번 잠에 빠져버린 몸은, 무서울 정도로 피로를 호소했다.

수면을 바라는 육체는 아직도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중이다.


비몽한 표정을 짓고서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이 있었다. 현실의 모습이었다.


지금, 탑에 들어온 시연의 모습과 가장 닮은 모습.

스물다섯의 나이로 시연이 해왔던 일들.


‘···썅. 꿈이라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공사장이 있었다.

말 그대로 공사장이었다. 아직 완공되지 못한 채 뼈대만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 오 층 정도 높이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안전모와 장갑을 낀 시연은 덤프트럭에 있는 짐을 나르고 있었다. 익숙하다는 듯 포대 자루를 메고, 건물 계단을 오르며 날랐다.

어떨 때는 20kg 가까이하는 철근을 들었다. 더운 공기가 피부에 닿아 땀이 뻘뻘 흘러나왔다. 입고 있던 옷이 비에 젖기라도 한 듯 땀으로 물들었다.


열 시간 정도가 지나 일이 끝나면, 약 십만 원이 담긴 돈 봉투를 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연의 눈이 복잡해졌다.


우웅-.


공사장에서 벗어나 스무 걸음을 걸었을 때, 공간이 일그러졌다.

누가 마법이라도 사용한 듯한 광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연의 모습이 어그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웅-.


시간이 역으로 흘렀다.


스물셋.

편의점이었다.


야간 알바였다. 어두운 밤이었는지 손님이 잘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쉴 순 없었다. 점주 또한 밤에 손님이 잘 오지 않는 것을 아니, 쓰레기 분리수거를 비롯한 청소 업무를 시연에게 배정했다.


어떤 날에는 취한 아저씨가 걸어들어와 시연을 보고선 시비를 걸었다.

추파라고 해야 할까. 다행히 잘 대처해 넘겼지만, 기분이 더러웠다.


스물하나.

햄버거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였다.


처음으로 청소와 설거지를 배웠다.

어릴 적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이라 능숙해지기 어려웠다.


시연의 외모가 예쁜 편이라 사장은 그녀를 카운터에 세웠는데, 그 덕인지 매출이 올랐다. 사장은 기뻐했다. 임금이 오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열아홉.


자신은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망했고.

어머니가 딸을 버린 날이었다.

바야흐로 가출과 독립을 결심한 나이였다.


‘···.’


열일곱.

어린 나이였다.

유명한 회사 사장의 딸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딸이 딸이라 불리지 못하는 관계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사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었다.


‘악몽이네··· 정말로.’


부잣집 아가씨라고 해도 좋았다. 비록 술에 취해, 눈이 멀어 태어난 생명이었지만 나름대로 대접은 받고 있었고, 자신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다른 가족들에게 멸시당하고 무시를 당한 것도 괜찮다 여겼다.


한 번은 다른 회사와의 협업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장의 자식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야, 어차피 걸렌데 한 번 대달라 그러면 대주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때부터,

사람에게 환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 진짜.’


그 과거의 모습을 전부 바라본 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속 응어린 것을 토해내고는 싶은데 마땅히 토해낼 곳이 없었다.

속으로 마음을 삭였다. 삭히면서 나직이 말했다.


‘아.’


크게 분출되지 못한 환멸은, 나직하고도 작은 욕지거리가 되었다.


“시발.”


눈을 떴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연은 물을 찾고자 손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손을 멈추었다.

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옅은 조명이 호롱불처럼 빛을 밝히고 있었다. 처음 보는 천장이었지만, 이곳이 모험가 길드의 여관이라는 사실은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필름이 끊긴 듯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나는 거라곤 그저 자신이 에일 한 잔만을 입에 가져다 댄 것뿐이었다.


그 한 잔을 마시고 난 후의 기억이 없었다.

끙끙거리며 생각해 내보려던 시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한 잔 마시고 쓰러졌었지.’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워낙 빨리 쓰러진 탓에 없는 것처럼 보인 거였다.

몸을 톡톡 두드려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던 시연은 돌연 알 수 없는 의문에 휩싸였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있었다.


“나 왜 여기에 있지?”


자신은 대체 왜 이곳에 누워 있는가.

먼저 떠오른 것은 설진이었지만, 그의 성격상 타인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산도 방 하나를 내달라는 말도 쉬이 할 수 없었을 터인데.


“아니, 설진이가 아니라면 더 이상한데. 그럼 나 눕혀두고 이불까지 덮어줄 만한 사람이 없는데.”


11층에 가자마자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졌는지라 그 누구와도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도움을 받기란 요원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으. 일단 일어나자. 설진이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으읏차-.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이 방을 다시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이불을 개어두고 밖으로 향했다.


철컥-. 문이 열리고, 다른 한쪽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울렸다.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시연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설진 또한 시연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누나?”

“설진아?”


타이밍이 어찌 이렇게 잘 맞는지.

자신과 같이 한숨 자고 나온 듯한 설진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내가 기억이 좀 없어서···.”

“아, 누나 어제 술 마시다가 곯아떨어졌어요.”

“그래? 아으. 어쩐지 머리가 좀 어지럽더라. 그보다 누가 옮겨줬어? 길드 직원이 쓰러진 거 보고 옮겨줬나?”

“아뇨. 제가 했는데요.”

“아아. 어쩐지. 할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하긴 했-.”


말하던 도중 이상함을 느낀 시연의 입이 돌연 멎었다.

설진이 했다고? 계산도? 방을 달라고 한 것도?


시연의 시선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설진의 눈동자로 향했다. 들여다본 설진의 눈동자는 검은 물감마냥 어두웠다.

마치 옛날의 자신과 같이.

세상에 환멸과 고독을 느낀 사람처럼 보였다. 어두운 과거를 가졌었던 시연은 설진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눈동자를 보았다.


사람과 말을 섞기 싫고, 나아가 관계마저 모두 단절해버리고 싶은 기분.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어 죽고자 했으되 그 죽음마저 무서워 결국 살아가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면 가져 마땅한 감정들.


“누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무언가 말하려던 시연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아직 만난 지 한 달조차 못 된 인연이었다. 사사건건 개입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최소한 사람과 대화 정도는 가능했으니.


“그보다 슬슬 내려갈까? 좀 쉬기도 쉬었으니까 이제 슬슬 공략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저도 그 말 하려고 했어요.”

“그럼 내려가자. 아, 너 이제 스텟 포인트 두 개 들어왔을 텐데. 어디 찍을 거냐?”

“민첩에 하나 찍고, 체력에 하나 찍으려고요. 이제 슬슬 장기전 대비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럼 장비에 붙은 옵까지 생각해서 네 체력이 15···.”

“아, 유설진 님!”


계단을 내려오자 설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설진의 고개가 돌아간 곳에는 길드 직원이 있었다. 어제 방 키를 주고, 바쁘다면서 내일 잔금을 달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죄송하지만 어제 말씀드렸던 잔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널널해져서 이제···.”

“아.”

“제가 드릴게요. 설진아 어제 가져갔던 보따리 좀.”


짧게 말을 뱉어댄 설진 대신 시연이 나섰다.

설진에게서 돈이 든 보따리를 받은 시연은 잔금을 치렀다. 연장 여부와 이용해주셔서 고맙다는 말까지 남긴 직원을 떠나보낸 후에야 설진이 입을 열었다.


“···의뢰 게시판이 어디에 있죠?”


의뢰 게시판.

모험가 길드에서 볼 수 있는, 모험가들의 의뢰 수급처였다.

의뢰인이 길드 직원을 통해 의뢰 내용이 적힌 서류를 전달하고, 전달받은 직원이 의뢰 게시판에 의뢰서를 붙여두면, 마지막으로 모험가가 의뢰를 받아들이는 식이었다.


“저기에 있네.”


얼마 안 가 커다란 게시판을 찾은 둘은 그쪽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조금 섞여 있긴 했지만, 게시판이 워낙 큰 탓에 방해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특정 몬스터 퇴치, 혹은 포획부터 시작해 희귀 약초 채집, 정말 작게는 노가다와 비슷한 종류의 일감이 있었다.


한동안 게시판을 살펴보던 둘에게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목표 : 의뢰서 중 하나를 선택해 완수하십시오.]


모험가 길드에서 시작된 11층.

11층의 목표란 바로 의뢰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D급 모험가죠?”

“어, 그럴걸? 시작은 전부 D였어.”


E급인 견습부터 시작해 S급까지.

모험가 길드의 등급은 그렇게 나누었다.


설진과 시연이 11층에서 할당받은 등급은 D급.

엄밀히 말해 낮은 등급이었지만, 견습 딱지는 뗐다고 생각해 마차 호의나 몬스터 퇴치 같은 싸움이 필요한 의뢰를 맡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실제로 보니 많긴 하다. 게임에서는 전부 대충 글씨 써놓고 흐려놨었는데.”

“우리한텐 게임이겠지만, 여기 사람들에겐 여기가 현실이니까요. 아니,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세계도 현실이 맞고요.”

“그렇긴 하지만··· 으음. 하도 많이 붙잡은 게임이라서 인식이 잘 안 바뀌네.”


그럴 수 있죠, 설진은 답하며 의뢰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한참 게시판을 바라보던 설진은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시선을 옮겼다.


옮긴 시선에 손이 뒤따라갔다. 이윽고 호의 관련 의뢰서를 집은 설진이 시연에게 의뢰서를 보여주었다.


“마차 호의? 보수는 적당한데··· 아니, 그보다-.”


마차 호위를 할 때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언가를 지키는 일에는 항상 그 주인이 뒤따르기 때문.


“괜찮아요. 어차피 마차 호의 의뢰를 통해 수도로 가야지 플라임을 다시 만날 수 있잖아요? 그게 스토리 진행에 편하기도 하고.”

“어, 응. 그렇긴 하지.”


시연은 의뢰서를 바라보더니,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이걸로 하자. 너만 괜찮다면야.”


수락의 뜻이었다.

사실 시연도 왕국의 수도로 향하는 마차 호의 의뢰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지 앞으로의 스토리 진행이 매끄럽게 흘러가기 때문.


하지만 필연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어 걱정하고 있었던 건데.

때마침 설진이 먼저 말을 걸어와 준 덕분에 결정할 수 있었다.


“내고 올게.”

“···부탁해요.”


의뢰서를 때 접수처로 가져가는 시연을 보고서 설진은 생각했다.


“···말만 최대한 피하면 되겠지.”


세상에 상처 입은 감정과 마음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저 세상보다 시연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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