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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79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1.11.25 23:56
조회
2,484
추천
35
글자
12쪽

15화

DUMMY

[8층에 진입했습니다.]

[목표 : 두 개의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 클리어하십시오.]


8층에 진입했다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8층 또한 6, 7층과 다른 건 없었다. 깜깜한 풍경과 분위기, 왠지 모를 으스스한 오한이 몸을 감싸드는 것이, 꼭 이곳이 지하 미궁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듯했다.


설진은 8층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두 개의 갈림길을 바라보았다.

왼쪽 길과 오른쪽 길.

사실, 어디로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왼쪽이 함정이었고··· 오른쪽이 몬스터였지?”


설진이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의 목소리였다. 그녀 또한 스페이스 온라인의 어엿한 플레이어. 8층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네. 저도 그렇게 기억해요.”

“그렇다면 함정 해체 스킬의 레벨을 올리느냐, 전투 관련 스킬 레벨을 올리느냔데···.”


왼쪽으로 가면 함정 발견과 파훼를 통한 함정 해체 스킬 레벨의 상승, 오른쪽으로 가면 몬스터와의 조우를 통한 전투 관련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원래라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맞았다. 민첩을 베이스로 가져가는 설진은 함정 해체를 얻었지만, 시연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함정에 버텨도 스킬을 안 주는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그거때메 벌써 두 개나 손해 봤어. 학살, 함정 해체···.”


시연에겐 함정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만, 함정 자체를 피할 민첩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함정 해체라는 스킬을 얻지 못했다.


하여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왼쪽은 설진 개인의 이득, 오른쪽은 설진과 시연 둘의 공공적인 이득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따로 가죠. 어차피 8층에서 죽을 일은 없잖아요?”

“어? 아. 그럴까? 하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


-굳이 한 곳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랭킹 1, 2등이 바로 설진과 시연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 스킬의 활용법에 관한 것들을 거의 통달하다시피 한 그들이었다.


서로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이상 굳이 같이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장단점이 분명한 갈림길 앞에서는 더더욱.


“깨고 9층에서 만나요.”

“그러자.”

“아, 방심하지 마요. 그러다 갑옷 내구도 달면 돈 들어요.”

“···어,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시연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 덕에 설진은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만,


“널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안 다칠 것 같다. 응?”


이유 모를, 오한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몸을 떤 설진은 빠르게 왼쪽으로 향해 이동했다.


8층 공략의 시작이었다.


* * *


슈욱-.


화살이 날아들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들리는 장전음은, 꼭 설진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으, 읏차-.”


빠른 몸놀림으로 화살을 피한 설진은 계속해 앞으로 걸었다. 함정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잡생각이 조금 나는지라 화살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땐 집중해야 했다.

원래라면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피할 화살을, 신경을 기울이며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 설진의 뇌를 헤집었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방심했다는 이유로 다치고 싶진 않았다. 다시금 쇄도하는 화살을 점프해서 한 번 흘리고, 뒤이어 다가오는 화살을 벽을 짚고서 이동해 피했다.


“후.”


그러던 중 돌연 숨을 내쉬었다.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만난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 때문에 생긴 복잡함 같은 것이었다.


설진은 늘 혼자였다. 누군가 함께해준다고 한들 그것은 결코 호의에서 오는 행위가 아니었으며, 종래에는 나쁜 결과가 뒤따랐다.


그것마저 자주 오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드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비유하자면 먼지··· 그래, 먼지였다. 주변에 먼지가 있어도, 치우기 귀찮아 그대로 내버려 두는 먼지처럼. 그런 취급이었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살아야 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런 설진의 인생에 이변이 일어났다. 시연의 존재 때문이었다. 게임 닉네임으로는 바니타스, 본명으로는 주시연을 쓰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만은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었다.


‘······.’


처음에는 생각했다. 이건, 거짓된 호의라고.

거짓되고 위조되어 만들어진 가짜 호의라고.

결국 마지막에는,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나쁘게 끝날 것이라고.


툴툴거린 이유도 그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서 떼어놓게끔 하기 위해서.


이미, 오래, 그리고 쓸쓸한 경험을 질리도록 한 설진은 ‘멀어짐’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예 친분을 쌓지 않으려고 했다. 쌓아봤자 좋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의미 없는 행위라 치부했다. 아니, 의미가 없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시연으로 인해 자신이 상처를 더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생각했고, 생각했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모르겠어.’


모르겠다. 최근 들어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정말 가짜인가.

가짜 호의인가.

혹여 진심일 가능성은 없는가.


그것은, 그래왔고 그럴 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믿게 되는 설진 그만의 ‘본성’에서 온 일말의 기대감이었다.


사람을 싫어함에도, 사람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설진은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인간이고 사람이었다.


함정을 피하던 도중 무망중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궁의 천장은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랭킹 1등의 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철컥-.


“읏!”


짧은 신음이 새어나갔다. 한창 함정을 돌파하고 있는 설진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어깨를 스친 화살이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직행했다. 허여멀건 화살촉 부분에 새빨간 피가 묻었다. 잉크가 번진 듯 붉은색이 수채화처럼 퍼져나갔다.


고통이, 뜨거움이,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으윽···.”


동시에 설진의 얼굴에 나타났다. 피를 내보낸 어깨에서 짧은 일직선의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다행히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어깨가 조금 까인 정도. 이 정도는 상처 축에도 못들 만큼 가벼운 경상이었다.


그러나 그 경상으로 인해 상념에서 벗어난 설진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은 지금 함정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단숨에 집중력을 되찾은 설진의 발이 능란하게 움직였다. 8층, 왼쪽 갈림길에 있는 것은 화살 함정만이 아니었다. 잘못 밟으면 땅이 꺼져버리는 함정도 있었고, 보이지는 않지만 질긴 실 몇 개가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이제··· 보여.’


파악을 마친 눈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화살 함정을 비롯한 두어 개의 함정이 설진의 길을 가로막았지만, 상념에서 깨니 확실히 보였다.


함정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이.


타다다다!


보인 길이 인도하듯 선을 만들었다. 설진은 그 선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어깨가 저려 왔다. 살짝 튄 피가 방울이 되어 아래로 낙하했다.


핏방울이 아래로 떨어져 자국을 남길 약 1초의 시간 동안, 설진은 다섯 걸음을 움직였다. 한 발 발을 옮길 때마다 돌을 밟는 소리가 무뚝뚝하게 울리더니, 점차 그 음량을 키워나갔다.


“하아. 하아.”


음량이 멎은 것은 다름 아닌 설진의 숨소리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함정을 모두 돌파한 그의 몸이 긴장을 풀었다.


[함정 해체의 레벨이 2로 증가했습니다.]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돌을 등에 맞대고서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몸이 힘든 게 아니라 머리가 힘들었다. 후, 한숨에 가까운 공기가 빠져나갔다.


[8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9층으로 이동하기까지 남은 시간]

[5 : 00]


이어서 못을 박듯 클리어를 선언한 시스템 창이 떠오르는 순간, 설진은 그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9층으로 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오 분. 그때 동안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감은 눈이 암전된 세상을 보여주는 양 검은 흔적만을 비추었다. 그건 눈을 감아도, 떠도 변하지 않았다. 침침한 미궁 속에선 은은한 달빛조차 눈에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두웠다.


피로에 잠긴 듯 보이는 몸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한계까지 몸을 내몰진 않았지만, 어쩐지 힘들었다.

다시는 그런 상념에 잠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할 만큼.


‘일어날 수 있겠지···.’


4층 상점 스테이지에서 오래 자 두었다.

지금은 아주 잠깐의 숙면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정말 딱 오 분만 잠드리라고 생각한 설진의 의식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 * *


[9층에 진입했습니다.]

[목표 : 리자드맨 3 마리를 처치하십시오.]

[남은 리자드맨 수 : 3]


그런 시스템 창이 목소리로 화해 귓속을 파고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분명 커다란 바위를 등지고서 취한 숙면이었건만, 어쩐지 지금은 ’앉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일어선 자세가 앉은 것보다 편할 리는 없고,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누워있음을 자각한 설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놀랄 만큼 피로는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오 분만을 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아.”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설진은, 저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내었다. 그의 눈앞에는 방패를 앞세운 채 앉아있는 시연이 있었다.


소리를 들었는지 앉은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앉아있는 시연과 누워있는 설진이 눈을 마주쳤다.


“어···.”


설진은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잠기운이 아직 덜 쫓긴 까닭이라고, 최대한 내면에서 자신을 변호했다.


“일어났어?”


그러던 도중 시연의 목소리가 내면을 파고들었다. 상념에 빠져들었을 때 들은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이 귀를 스쳤다.


“아··· 네.”

“많이 피곤했나 보네, 9층에 오자마자 쓰러져 있어서 엄청 놀랐어.”


걱정이 스민 시연의 목소리였다.


“아···.”

“아직 잠이 덜 깼나?”

“저··· 몇 시간을 잤는지···.”

“그렇게 오래 자지는 않았어, 한··· 두 시간 정도?”


두 시간이라는 소리를 들은 설진이 몸을 일으켰다. 경직된 근육이 뿌드득- 따끔한 소리를 내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도중 뺨에 천쪼가리같은 것이 스쳤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손수건을 찢어 만든 듯한 천이 설진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화살이 스친 어깨였다.


“······.”

“그렇게 심한 상처는 아닌데, 그래도 번지면 좀 그러니까 일단 막아뒀어. 아, 다쳤다고 부끄러워하지는 마. 나도 같은 처치였으니까. 체력이 높아서 빨리 아문 거야.”

“······.”

“괜히 혼자서도 괜찮다고 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갈걸···.”


호의.


“아으. 나도 이제 좀 일어나자. 한참을 짱박혀 있었더니 몸이 굳었어.”


가짜가 아닌,

진짜 호의.


“어떻게··· 좀 더 쉴래? 아니면 바로 갈래? 난 상관없는데. 체력이 높으니까 회복도 빨리 되나 봐. 쉽게 안 지치네 이거.”

“···워.”


설진은,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응? 방금 뭐라고?”


입이 열렸다.


“고마워요.”


살면서 처음 해 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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