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7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1.12.05 21:44
조회
1,277
추천
17
글자
11쪽

27화

DUMMY

죽어버린 남자의 피에 온몸이 뒤덮인 설진이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건 아이 셋.

정말 공교롭게도, 셋 모두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클라임을 거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플레임 왕국 내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전체 인구수를 기준으로 봤을 때 다섯 명 중 하나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플레임 왕국에게 있어 마법이란 일상이 되었고, 널리 실생활에 녹아들어 있으며, 그와 동시에 그 마법을-.


‘범죄에 사용하려는 자가 있다는 거지.’


범죄에 이용하려는 악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설진의 시선이 아이 셋에게 고정되었다. 손과 손에 쥔 검 사이에 묻은 피가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자, 애들아. 너희 감독하는 시험관님도 죽었겠다··· 이제 슬슬 항복하는 건 어때? 최소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뻘건 색에서 갈색의 느낌을 띠게 될 즈음, 시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국에서 25년을 보낸 사람치곤 꽤 거친 언사였다.


설진은 모르고 있었지만, 시연 또한 설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똑같이 상처를 입었고, 세상이 미웠으며 사람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목소리에선 조금의 망설임은커녕 자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


흡사 서리와도 같은 음성이 울려 퍼지자 아이들의 얼굴이 변했다.

당황. 놀람. 공포심.

아이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였던 성인 남자의 죽음과 시연의 고저 없는 목소리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저, 그···.”


아이 중 가장 키가 큰 소년이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성대가 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년은 다른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며 시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항복할게요. 저, 저희가 이런 짓을 하게 된 게··· 절대로 저의 의사가 아니라-.”

“그래, 그래. 잘 선택했어. 나머지는 수도에 가서 들을 테니까 조금 아프더라도 참고 있어. 펜달 씨. 여기 밧줄 좀 가져다 줄래요?”

“아, 예. 여기 있습니다.”


타이르듯 말을 이으며 시연은 밧줄을 받았다.

방패와 검을 허리에 맨 채 아이들에게 다가간 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손 좀 모아줄래. 미안하지만 허튼짓 못하게 묶어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이해 좀 해줘.”

“아, 네···.”


키가 큰 소년은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시연은 받아온 밧줄을 자신의 한쪽 손에 한 번 칭칭 감더니, 이윽고 남은 줄을 이용해 소년의 손을 묶기 시작했다.


먼저 왼손을 감고 이후 오른손까지 이어 붙이려는 찰나,


“지금이야!!”


숲 전부를 울릴 듯이 떠렁떠렁한 함성이 기똥차게 울려 퍼졌다.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나머지 둘의 손에서 자그마한 화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내 영창까지 모두 마친 둘이 시연을 겨냥했다.


“지금 당장 형에게서 손때···.”


퍼어어어억!!!!


아이의 협박과 동시에 시연의 주먹이 소년의 얼굴을 때렸다. 밧줄을 칭칭 감아놓은 상태였기에 그 위력이 가일층 상승했다.

예상치 못한 불시의 기습을 맞은 소년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내 인중 부분에서 뜨뜻한 피가 흘렀다. 진한 피가 코에서 터졌다.


“너, 너 미쳤어!?”


다른 아이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지금 당장이라도 마법을 발사할 기세로 마력을 모이는 것이 보였다.


시연은 두 아이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돌아간 시야 너머에는, 몸을 떨고 있는 펜달이 있었다.

눈동자와 동공마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펜달의 눈앞에는.


촤아악- 촤아악-.


마법을 쏘지도 못한 채, 아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지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목이 베인 두 아이가 있었다.


“후우.”


재차 줄기차게 뿜어져 나온 선혈이 숲을 물들였다.

마치 탑의 1층, 2층, 3층의 고블린과 오크를 상대했을 때 봤던 광경과 똑같아, 설진은 고른 숨을 내쉬며 그때를 떠올렸다.


물론,


“···.”


지금은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가 아닌, 어엿한 사람이었다는 점이 달랐지만.


설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펜달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펜달이 ‘아아’ 몇 번 음을 토해내고선 고삐를 내려쳤다.


“펜달 씨.”


그런 펜달에게 시연이 말을 걸었다.


“예, 예?”

“이거, 아직 살아있는데. 데리고 가면 귀찮기만 하겠죠? 이틀 남은 것 같은데 밥 먹이기고 머하고···.”

“아, 예! 그렇지요! 귀, 귀찮아지겠지요!”


촤악-.


커다란 대검을 휘두른 순간, 소년의 목이 끊어졌다.


“최소한 항복이라도 했으면 살아는 있었을 텐데···.”


시연은 중얼거리며 설진과 같이 말 옆에 섰다.

촥! 고삐를 맞은 말들이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히이잉.


피범벅이 된 길을 우회하면서 펜달은 숲을 빠져나왔다.

덜덜-. 자신은 그저 관망만 하였음에도,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 * *


“설진아.”

“네.”

“이거, ‘그쪽’ 범죄자들 맞지?”

“그럴걸요. 어린아이들 위주로 키우면서 이런 일 시키는 건 게네들 밖에 없으니까···.”


그쪽이라 함은, 10층 스토리 모드에서 격퇴했던 범죄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설진은 루이 로반델트로 빙의했을 때 얻은 정보를 되뇌었다.

어린아이들을 이용한 범죄, 꽤 큰 규모.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이쪽 주위에 있나 본데요. 뭐, 네 명이었던 걸로 봐선 그리 크지는 않은 조직이겠지만.”

“으음···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여기 위치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수도에 도착했을 때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의 일은 마차 호위니까. 그 이상으로 갈 필욘 없으니까요.”

“그런가.”


설진이나 시연은 자원봉사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의뢰받은 일 이상으로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이 장소를 기억하고 추후 수도에 도착했을 때 알리는 것 정도는 괜찮다 여겨 시연은 펜달에게 이 장소의 지명을 물었다.


쓱쓱-.


시연은 지명을 메모했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이상 왕녀를 만날 일이 반드시 있으니, 그때쯤 왕녀의 눈에 들기 위해 사용하면 될 정보라고 생각했다.


뭐, 어차피 ‘처음’은 의미 없는 행위이긴 하지만 말이다.


‘으음.’


시연은 돌연 떠오른 생각에 설진을 바라보았다.

그리 대단한 것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그저 알고 있었던 정보를 다시 끄집어내 설진에게 말한 것이었다.


“야, 설진아. 역시 처음은 무조건···.”

“베드 엔딩이에요. 이건 부계정으로 솔플 했을 때도 똑같았어요. 적어도 게임 내에서는 무조건 엔딩을 베드 엔딩으로 만들었어요.”


결말.

정확히 말하면 플레임 왕국 내에서 일어나는 시나리오의 끝.


“왕녀는 절망하고, 사람들 또한 구렁텅이에 빠져요. 아시잖아요. 제가 이거 바꿔보려고 밤 날 새면서까지 한 적 있다고.”

“아··· 그랬지.”


25층까지의 시나리오도.

50층까지의 시나리오도.

75층까지의 시나리오도.


모두 처음에는 베드 엔딩으로 끝난다.

이건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연과 설진이 사람을 죽였을 때 그리 큰 동요를 하지 않은 것도, 아마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어차피 베드 엔딩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어차피 80층 너머부터는···.”


그 베드 엔딩이 해피 엔딩으로 바뀌는, 요컨대 2회차 플레이가 80층에서부터 가능했으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흘리고 있던 펜달이 계속해 말을 움직였다.

다그닥- 다그닥-.

숲을 빠져나온 후 마차를 맞이한 길목은 또다시 황폐한 사막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 이틀이 흘렀다.

곧 있으면 왕국 수도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배경에 점처럼 찍힌 구름이 유영하듯 날아가는 것이, 참으로 맑은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수도의 성문까지 마차가 도착했을 때 설진은 고개를 내렸다.


시연은 가지고 있던 방패를 몇 번 툭툭 치면서 심심함을 달랬다.

제각각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며 의뢰를 완수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윽고 왕국 성문에서 경비병을 마주했을 때, 둘은 모험가 길드에서 지급받은 신문증을 내밀고 수도 내로 들어섰다.


둘은,

설진은,

시연은.


아무리 몬스터와 싸워도.

모험가가 되어 의뢰를 수행해도.


어차피 결말을 알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나쁘게 끝나고, 그걸 되돌릴 기회가 나중에 주어진다. 그리하여서 느끼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알고 있어서.

어차피 알고 있기에, 둘은.


이곳에 게임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 * *


“여기까지 오면 끝인 건가요?”

“네. 맞습니다. 시연 씨. 그동안 정말 신세 많았습니다.”


의뢰 완료 보수를 받은 셋은 그렇게 헤어졌다.

펜달은 수도에 있는 상단을 향해 움직였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이 일을 놓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꽤 높은 직위에 올라선 사람 같았다.

점점 멀어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설진과 시연이 움직일 준비를 했다.


물론 그 전에,


“누나.”

“응?”

“수고했어요.”


[11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11층이 클리어되었다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12층으로 전이된다는 말은 없었다. 항상 존재했던 오 분 타이머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공유 스테이지.

11층에서 14층까지는 스테이지를 공유한다. 하나의 층을 클리어했다고 해서 몸이 전이되지 않는다.


예컨대 11층의 목표였던 모험가 길드의 의뢰 해결이 클리어 조건이고 그것을 성공시켰다면, 이동하지 않고 12층 또한 이곳에서 진행된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해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이 곧 한 층을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14층까지.


그것이 모험가의 직위를 얻은 둘의 스토리 개입이었다.

이것이 25층까지 쭉 이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설진과 시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12층에 진입했습니다.]


모험가 길드 게시판에 가야지만 클리어 조건이 활성화되었던 11층처럼, 12층 또한 어느 특정한 조건을 달성해야지만 클리어 조건이 열린다.

그리고 그 클리어 조건 또한, 둘은 알고 있었다.


떠오르는 시스템 창, 그리고 이 시스템에 대한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는 탑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설진은 걸음을 옮겼다. 시연 또한 그를 따랐다.


자신은 알지만 남은 모른다고 해서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12층의 클리어를 향해 장소를 옮길 뿐이었다.


사람을 죽여 묻은 피는 이제 완전히 굳어 얼룩처럼 되었고, 숲과 사막을 밟았던 옷은 먼지가 묻어 꾀죄죄한 몽골로 변했다.

전혀 개의치 않으며 이동했다.

애초에 12층 클리어 조건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런 몰골이 훨씬 유리했다.


왜냐면 그 조건이 바로,


“으으, 저기서 이상한 냄새 난다.”

“뭐야 더러워!”


잘 먹고 귀하게 자란 귀족 자제들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것이었으므로.

여전히 감정 없는 눈빛으로, 설진은 귀족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12층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32화 21.12.12 1,082 19 12쪽
31 31화 21.12.11 1,122 18 12쪽
30 30화 +1 21.12.10 1,170 18 12쪽
29 29화 21.12.09 1,197 17 12쪽
28 28화 21.12.06 1,247 17 11쪽
» 27화 21.12.05 1,278 17 11쪽
26 26화 21.12.04 1,391 17 11쪽
25 25화 21.12.03 1,473 20 11쪽
24 24화 21.12.02 1,543 21 11쪽
23 23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7) 21.11.29 1,583 23 11쪽
22 22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6) +1 21.11.28 1,599 21 12쪽
21 21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5) 21.11.27 1,685 23 11쪽
20 20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4) 21.11.25 1,917 22 12쪽
19 19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3) 21.11.25 1,953 23 11쪽
18 18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2) 21.11.25 2,159 25 12쪽
17 17화 - 선언과 책임(責任)의 장(1) +1 21.11.25 2,380 33 12쪽
16 16화 21.11.25 2,432 34 12쪽
15 15화 21.11.25 2,484 35 12쪽
14 14화 +1 21.11.25 2,591 34 11쪽
13 13화 21.11.25 2,668 39 11쪽
12 12화 21.11.25 2,835 39 11쪽
11 11화 +2 21.11.25 3,217 36 12쪽
10 10화 21.11.25 3,612 39 11쪽
9 9화 +2 21.11.25 3,694 40 11쪽
8 8화 +2 21.11.25 3,838 51 11쪽
7 7화 +3 21.11.25 4,200 51 11쪽
6 6화 +3 21.11.25 4,486 49 11쪽
5 5화 +2 21.11.25 4,761 51 11쪽
4 4화 +2 21.11.25 5,023 54 11쪽
3 3화 +1 21.11.25 5,795 6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