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비장한 표정의 메흘린 얼굴은 처음 보는 테츠다. 단단히 각오하고 나온 것이다. 그는 마테니 다음으로 테츠의 성격을 잘 안다.
황궁에서 나오게 된 동기나 어떻게 무공을 손에 넣었는지가 가장 큰 불가사의였다. 그와 동시에 황태자의 성격이 전혀 딴사람이 된 것 냥 바뀐 것도 미스터리다.
황태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무려 6년이란 세월 동안 어반마르스에 돌아가지 않고 마교란 단체를 세워놓고 하찮은 교주직에 만족해한다.
그는 무려 차기 황제다. 평상시 같으면 이렇게 얼굴을 맞대면하는 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알현하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최소 상급 귀족인 백작 이상의 신분이어야 예약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위치의 황태자가 솔라리스 시골 변두리에 마교라는 단체를 만들고 희희낙락거리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성황에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르는 것이고 황태자의 꿍꿍이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마교는 갈수록 덩치를 커지고 손대야 할 것도 한둘이 아니다.
"···."
"이 새끼 진심이네."
"진심입니다."
"할 수 없군. 내가 뽑았으니 그만큼 믿어 줘야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마교의 법령은 네가 만들었지? 나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장로들이 이해할 만한 핑곗거리는 만들어야지. 법령을 어겨가며 집행관을 등용하면 나중에 문젯거리가 된다. 미연에 방비할 묘안을 만들어 합당하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받아들이마."
"이미 생각해 놓은 바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배신할 경우 대가는 죽음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도 확실히 해라. 난 뒤통수를 치는 인간을 제일 싫어한다."
"배신하면 교주님이 나서기 전에 제 손에서 먼저 목이 잘릴 겁니다."
"좋아, 그건 좋아."
"교주님, 아크 위자드가 되셨죠? 이전 마족과 싸울 때의 신위를 보고 아리스토틀에 몇 가지 정보를 받았습니다만."
"그래, 그렇지 않아도 아크 위자드에 대해 말하려 했는데 잘됐다."
"현자 아리스토틀의 말에 의하면 모든 마법에 다재다능한 지식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음, 뭐 그렇지. 내가 워낙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보기만 해도 싹 다 기억해."
"대마법 전서, 요람의 언덕 3장 2편, 기억의 장 3단 2페이지에 있는 기술을 아십니까?"
"메모라이즈란 마법이지. 너도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나 보네."
"현자 아리스토틀과 의논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얻은 결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교주님은 성녀를 이용해 내공을 부여하시고 직접 무공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렇지, 무공은 자고로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 법이지."
"효율이 많이 떨어지는 방법입니다. 메모라이즈 마법을 사용하면 쉽게 무공의 모든 초식을 그 사람의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가르치지 않아도 메모라이즈 된 기억을 토대로 무공을 수련할 수 있죠. 효율이 극대화됩니다."
"모르는 건 아니야.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스승이 제자의 얼굴을 보고 직접 가르쳐야 사제 간의 정도 깊어지고 충성심도 높아져. 메모라이즈는 너무 삭막한 방법이야. 야, 야, 인제 보니 그 집행관들에게 메모라이즈를 써 달라는 거냐? 야, 이놈 봐라, 뒤 꿍꿍이를 다 생각하고 날 찾아 왔구나. 지금 너는 황태자를 협박하는 거야? 그 죄가 어떤지 너 알고 있기나 해?"
"성황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 새끼가!"
"해 주시겠습니까? 안 해 주시겠습니까?"
"와, 열심히 애지중지 키워놨더니 이제 주인을 문다. 물어. 무서워라."
"저는 지금 태자 전하 앞에서 목숨을 걸고 하는 말입니다. 성황을 찾아간다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군사직책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성황을 만나 뵙겠습니다."
"제길, 알았다. 알겠으니까. 좋아 그렇게 해 주마. 단! 네가 조건을 걸었듯이 나도 조건을 건다. 내 조건을 충족시키면 네 뜻대로 해 주겠다."
"설마 불가능한 조건을 거시는 건 아니시겠죠?"
"당연하다. 내가 너 같이 잔머리나 굴리는 인간으로 보이냐?"
"말씀하십시오. 불합리한 명령만 아니라면 무조건 해내겠습니다."
"그래? 네 입으로 그리 말했겠다? 좋아, 나는 네가 군사직을 잘 수행하리라 생각하고 네게 다른 장로들을 압도할 수 있는 너만을 위해 가르친 무공이 있다. 천마심법이지. 이 심법은 너 외에는 다른 장로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는 너만의 무공이다. 자, 얼마나 익혔지?"
"···. 제가 업무에 시달려서, 무공은···."
"테드버드가 그러더라 장로들이 다 모여 무공을 토론하고 배움을 가지는 시간에 꼭 한 놈이 바쁘다는 핑계 대고 불참한다고.? 그래서 가 보니 뒤집어 쳐자고 있더라고 하더라.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더군."
"···."
"너, 네 수족이나 다름없는 애시턴이 너 앞질렀다더라? 너보다 늦게 내공을 얻고 막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에미르슨 백작도 너 추월 했다고 테드버드가 꼰지르더라. 아무리 군사지만 너무 한다고."
"···."
"야, 군사란 모름지기 능력이 있어 줘야 말에 힘이 실리는 법이다. 무공을 그렇게 소홀히 해서야···. 다른 장로들이 모두 너를 뛰어넘는데 나중에 네 목소리를 들으려 하겠냐? 지금은 내 눈치 보느라 듣는 시늉이라도 하지. 너 엘빈 후려잡을 수 있냐? 녀석이 말을 안 듣고 개기면 어찌할 거냐?"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할 일이 많이 없잖아? 정보원들도 소식도 못 띄우는 실정인데. 자, 내 조건을 말하지. 천마심법 3성을 달성해서 내게 검사를 받아라. 그럼 네 부탁을 모두 들어주마."
"네? 3성을요?"
"뭐 그렇게 놀라? 로한슨이 가장 먼저 3성을 찍었다. 가장 막내 세렌도 3성이고 이번에 보니 테드버드, 엘빈도 곧 3성을 찍겠더라. 너 아직 2성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아니 당장 해야 할 일이···."
"성황 만나러 가라. 귀찮다. 이제."
"···. 하겠습니다. 해 보이겠습니다."
"좋은 결심이다.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네가 천마심법 3성을 달성하는 순간, 네 부탁을 모두 들어 주겠다."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넌 머리가 똑똑하고 이치의 깨우침도 빠르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내공을 닦을 수 있을 거다. 천마심법은 보통 심법이 아니야. 몰입하면 할수록 배움이 빨라지고 내공도 더 빨리 쌓인다. 그리고 네게는 아직 녹여내지 못한 오우거의 진원진기가 쌓여 있을 터 그것만 제대로 수련해도 생각보다 빨리 완성 시킬 수 있을 거다. 내 얘기는 여기까지다. 나머진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알겠습니다. 확실히 접수했습니다."
"후후, 내공 수련을 위해 세상과 단절 하는걸. 폐관 수련이라고 한다. 좋은 장소가 있는데 추천해 주마 동녘의 마탑에 가서 내 말이라고 전하고 아리스토틀에 부탁해봐라. 수련하기 아주 이상적인 장소를 마련해 줄 거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애시턴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내일부터 폐관 수련이라는 것을 해 보이겠습니다."
"아드리안경이 그리 탐이 나냐? 너 무공을 세상에서 가장 귀찮아했잖아?"
"그는 제게 큰 힘이 되어줄 아니 마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재입니다."
"하하, 좋아, 좋아. 군사가 그렇게 말하니 더 믿음이 가는군. 잘 해 보라고."
다음날 당연히 그 어디에도 메흘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테츠는 메흘린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고 며칠 뒤 집행관 모두를 불렀다.
그리고 그 장소에 모든 장로가 다 모였다. 물론 폐관 수련 중인 메흘린을 제외하고.
테츠는 메흘린이 했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했다.
"마교의 율령은 나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마교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저번 세렌을 구한 제럴드 일행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마교인을 구했기에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린 것이고 그에 다른 적절한 법령도 마련했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장로들도 알다시피 마교의 덩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그에 따른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테드버드가 중앙에 서 있는 집행관 일행을 보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을 마교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도 그들이 임무를 수행할 만큼의 힘은 부족할 겁니다. 저희 장로들은 교주님 밑에서 근 육 년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직속 당주들도 오년 넘게 배운 사람도 있고.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할 힘은 당연히 따라야 합니다. 폭도는 폭력으로 제압해야지 말로 제압할 수 없을 테니까요."
"테드버드의 말이 정확하다. 마교의 율법에는 무공을 배우고 성녀에게 내공을 받을 방법은 수련을 통해 단계를 거치고 올라가는 방법과 큰 희생을 통해 모든 장로의 허락이 있을 경우 특별히 선 내공을 먼저 받고 무공을 배울 수 있지. 제럴드 일행처럼···. 하지만 이들은 어느 경우에 속하지 않아."
테드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흘린 군사의 업무는 가혹할 정도입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봐도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애시턴이 있기는 하지만 그도 힘에 부칩니다. 에미르슨 백작은 성주로서의 업무만 해도 벅찰 정도고요. 만약 누군가 메흘린을 보좌할 수 있다면···."
"테드버드 네 말대로 보좌하려면 힘이 필요하지. 엘빈 같이 성격이 괄괄한 당주를 누그러뜨리려면 힘이 있어야겠지."
엘빈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테드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교주님이 저희를 부른 것은 집행관에게 힘을 주고 싶은데 마교의 율법에 벗어나기에 그것을 의논하기 위해서군요."
"뭐, 그렇지. 나도 마교인이다. 마교의 율법은 교주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교주도 마교인이고 율법을 지켜야 하지."
실버팽이 옥이 굴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율법이란 완벽할 수 없죠. 그리고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율법이라 수정과 보안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율법은 새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죠. 제럴드의 일처럼 말이죠."
테츠는 실버팽의 말에 화답하며 말했다.
"그래서 내 생각에 말이야, 마교의 율법을 벗어나는 일에서는 나를 포함한 장로들이 회의를 주관하고 논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조합해서 최종적인 결정은 다수결로 결정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테드버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일 먼저 말한다.
"교주님의 생각에 이이 없습니다."
그러자 모두 찬성을 표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전원이 모두 기립해서 손을 들어 올리니 테츠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집행관의 일을 논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이 때문에 루안과 세렌은 당주직에 머물러 있다. 이 둘을 장로급으로 올리려 한다. 다른 장로들의 생각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손이 올라갔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루안과 세렌을 장로로 승격한다."
"사실 당주라고 부르기에 그렇지 솔직히 루안의 은신전을 제대로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루안은 사신이야, 사신. 마법사들도 기겁하고 다리를 벌벌 떨던데. 나이 때문이 아니었으면 장로 중에서도 최상급이지."
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렌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교주님에게 무공을 배운 자이기도 하고 그녀의 천마수라검은 테드버드도 밀리지 않은가? 그 둘은 이미 장로와 같은 실력을 갖춘 존재들이다."
테드버드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자, 그럼 집행관의 일로 넘어가자. 나는 메흘린 군사의 가혹한 업무를 하루빨리 해소해 주기 위해 마교의 율령을 어기고 이들에게 내공을 전수해 주려 한다. 각자 의견을 말하도록."
테드버드가 가장 먼저 나섰다.
"군사의 일은 찬성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믿는다는 것은 별개입니다. 이들은 우리 장로에게 믿을 만한 신의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츠는 아드리안을 보며 말했다.
"아드리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회의석 가운데 서 있던 아드리안은 테츠를 정면으로 올려 보고 말했다.
"마교와 교주님에 관한 이야기는 메흘린으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마교에 가입하고 말고의 이야기는 일단 접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팬텀 가드너가가 세운 아칸 왕국의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입니다. 저를 채용하시려면 다음의 조건을 지켜 주십시오. 저희에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도록 완벽한 독립적 지위를 주십시오. 저기 장로들도 우리에게는 아칸의 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귀족도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귀족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팬텀 가드너가 정한 법령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법을 집행합니다. 만약 장로 중 하나가 마교의 율령을 어긴다면 단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저런 건방진 놈이!"
엘빈이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테츠는 손을 흔들어 엘빈을 주저앉혔다.
"계속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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