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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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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3.19 14:06
최근연재일 :
2023.04.20 09:50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740
추천수 :
7
글자수 :
93,076

작성
23.04.07 18:30
조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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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6쪽

18. Are you pilgrim?(순례자세요?)

DUMMY

운이 좋게도 유럽에 와서 한 번도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았다. 레온(Leon)이란 큰 도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도 큰 위안이 됐다. 여기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에서 성당 찾기는 편의점 찾기보다 쉬웠고, 큰 도시라면 성당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성당을 골라서 미사를 드리면 된다. 게다가 마침 순례길도 대성당(Catedral)을 지나고 있었다. 듣기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당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불안하다. 알베르게 주인이 미사를 위해 아침에 자리에 없을 거라 했는데 어젯밤 세 사람은 덜 마른 빨래를 식당에 널어뒀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예상못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큰 사건은 아니었다. 어차피 미사를 드려야 하니 먼저 출발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목적지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겨두고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다.


길을 찾는 건 늘 자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은 산길도 헤맨 적이 없는데 왜 대도시만 오면 헤매는 걸까? 팜플로냐에서도 그랬고, 로그로뇨(Rogrono),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부르고스에서도 엉뚱한 길로 가더니 이번에도 여지없이 도시 입구에서 헤맸다. 교차로에서 분명 두 개의 화살표를 봤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했는데 그게 실수였는지 아무리 걸어도 더이상 화살표를 만날 수 없었다. 게다가 마침 마라톤 대회 준비로 분주한 도시는 더욱 복잡하게 느껴졌다.


순례자에게 친절한 이들은 낯선 황인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했고 묻고 물어 힘겹게나마 레온 대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문제 하나가 나를 맞이했다. 미사 시간이 9시와 11시다.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으니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만약 레온 입구에서부터 길을 헤매지 않았다면 9시 미사에 참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짜증은 나지만 달리 방법이 있으랴. 기다리자. 미사가 없는 것보단 나으니 느긋하게 성당 구경이나 하며 기다릴 생각으로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하며 천천히 성당을 배회했다.


성당 내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는데 태극기를 알아본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몰려들었다.


“순례길 걷는 중이세요?”


누가 봐도 그런 행색이다. 그런데 그들은 순례자를 처음 본 양 마치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동경의 눈빛과 표현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심지어 단체로 같이 사진을 찍고 서너 명씩 패를 나눠 찍더니 어떤 중년 남성은 꼭 단둘이 찍자고 했다.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이메일 주소까지 받아내더니 바람처럼 휙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데 한 무리의 백인들이 경당(經堂, 기도나 미사를 위해 병원, 학교, 수도원 등에 설치한 건축물을 말하며, 여기선 대성당 내부에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별적 공간을 의미)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슬쩍 보니 약 4~50명의 사람이 앞자리부터 차례로 앉는 모양이 미사를 위한 것처럼 보였다. 잠시 지켜보니 신부님이 제대 뒤쪽 제의실로 들어간다. 확실히 미사다. 중간에 적당히 자릴 잡고 앉았다.


느낌으론 독일어였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사는 세계 공통이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배낭을 짊어 메는데 평화의 인사-미사 끝 무렵 신자들끼리 평화를 빌어주는 인사를 나누는 의식-때 활짝 웃으며 포옹과 악수로 인사를 나눴던 중년 여자와 노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Are you pilgrim?”


조금 전 한국인들에게 받은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여 일의 시간 동안 순례자인 게 당연했고 전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중년 여자와 국적과 이름을 주고받는 사이 노인 여자는 품에 있던 엽서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받아든 엽서엔 순례자로 보이는 두 명과 흐릿한 사람의 형상이 그들과 함께 마른 길을 걷고 있는 그림이었다.


“!@#$#@ ‘for you.’ @$#&#^%&@#%”


옆에 있던 중년 여자가 노인 여자의 말을 통역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던 그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자 순간 울컥했다. 엽서에 대한 소개와 순례길을 응원하는 말이 포함되었을지 모를 앞뒤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고맙다는 말만으론 감사함을 표현할 수 없었다. 서둘러 배낭을 뒤져 여행 중 만나는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가져온 작은 복주머니가 달린 핸드폰 줄을(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유물) 노인 여자에게 건넸다.


“Happy pocket.”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아니한가? 이 이상 설명할 재주도 없다.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 함께 미사를 드렸던 독일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자 중년 여자가 설명했다. 알아들을 순 없어도 아마 한국에서 온 순례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부분 나이가 지긋했던 그들은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두드리며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아마도 젊은 순례자의 앞길을 응원하는 말이었으리라.


한국에서 이 길을 소개했을 때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응원과 부러움을 비췄던 건 단 두 사람뿐이었다. 한 명은 이 길을 소개해준 마리아 누나였고, 또 한 명은 WYD에 함께 했던 다니엘이었다. 그는 행사가 끝난 뒤 순례길을 걸으려 했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어느 길 어느 곳에서 순례자를 보면 이런 느낌일까? 그토록 원하지만 선택하기 쉽지 않은 도전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기분. 동경(憧憬)이란 걸까?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 나를 그런 식으로 바라본 적이 없는데 뭘까 한번도 느껴본 적없는 이 어색하면서도 오묘하게 좋은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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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점점 2011년 사진은 줄고, 2014년 사진만 올리게 되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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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후기라기엔 민망하지만.... 23.04.20 18 0 1쪽
32 30 이번엔 꼭 찾아요. 23.04.19 16 0 4쪽
31 29. 산티아고 23.04.18 14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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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7. 술래잡기 23.04.16 16 0 6쪽
28 26. Now is miracle(기적과 함께) 23.04.15 24 0 9쪽
27 25. 첫 아침 식사 23.04.14 14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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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3. 기적의 성당 23.04.12 13 0 4쪽
24 22. 반갑습니다! 23.04.11 14 0 6쪽
23 21. 슈퍼맨, 태극기 청년 23.04.10 16 0 5쪽
22 20. 이건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 23.04.09 14 0 5쪽
21 19.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23.04.08 16 0 11쪽
» 18. Are you pilgrim?(순례자세요?) 23.04.07 18 0 6쪽
19 17. 분실 23.04.06 15 0 4쪽
18 16. 한국인 자매의 소문 23.04.05 16 0 4쪽
17 15. 저거 바꿔치기할까요? 23.04.04 13 0 6쪽
16 14. 어둠의 자식 23.04.03 22 0 3쪽
15 13. 언니, 언니! 한국사람, 한국 사람이에요! 23.04.02 21 0 8쪽
14 12. 떨칠 수 없는 그림자와 지평선 23.03.31 19 0 7쪽
13 11. 미안해요. 미안해요. 23.03.30 18 0 9쪽
12 10. Why are many Koreans coming here?(한국인은 여길 왜 그렇게 많이 오는 거야 23.03.29 19 0 4쪽
11 9. 이 길처럼 노란색 화살표가 제가 갈 길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23.03.28 18 0 6쪽
10 8. 방금 오빠한테 고백하는 건가요? 23.03.27 20 0 8쪽
9 - 시나브로 23.03.26 22 0 4쪽
8 7. 그냥 오빠한테 시집 올래? 23.03.25 24 0 8쪽
7 6. 오빠 모르셨어요? 23.03.24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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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내 이럴 줄 알았다. 23.03.22 24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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