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첫 아침 식사
“Corea(꼬레아, 한국)!”
북적거리는 식당에 들어가자 누군가의 외침이 귀를 찌른다. 며칠 전 두 번째 일행을 다시 만난 알베르게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던 마드리드에서 온 젊은 부부였다. 그들은 대번에 날 알아보고 이름도 모르는 이방인의 국적만 크게 외쳤다. 나 역시 그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와! 예!”
마드리드라고 할 수도 없고 이름도 모르니 그냥 감탄사만 크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했다. 이제 두 번째 만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부부와 번갈아 와락 껴안았다. 연인이 아닌 관계의 사람과 이렇게 뜨거운 포옹을 한 적이 있었던가? 가족이나 친구와도 없던 경험이다. 그런데 고작 두 번째 만난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영어를 못하는 그들과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입에 나오는 말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고 다시 만날 다음을 기약했다. 민아만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나도 된다. 낯선 사람과 손잡는 것조차 싫어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 또한 싫다. 심지어 얼굴에 미소 짓는 것조차 어색할 정도로 웃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곱씹을수록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게 식당 이용은 사치다. 남들은 다 할 수 있어도 나는 할 수 없다. 기회가 될 때 빵 한 조각 사 먹으면 되지 몇 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고 식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창연이 아침 식사를 주문했을 때도 자판기에서 뽑은 콜라 한 병만 마실 생각이었다.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어야 했는데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회가 동하는데 이젠 돈도 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같은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형이 여기 와서 거의 한 달 가까이 걸으면서 처음 사 먹는 아침이야. 아니지. 유럽 와서 여행한 지 벌써 2달이 넘었는데 그동안 처음 사 먹은 거지. 아무튼 내가 이걸 어떻게 사 먹을 수 있는지 얘기해 줄까?”
자랑하고 싶었다. 난 이렇게 복도 많고 운도 좋은 놈이다 자랑하고 싶었다. 일행을 만들고 이따금 맥주나 와인도 한 잔씩 하기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던 돈으로 산티아고까지 가는 것을 포기했다. 쥐꼬리만큼도 되지 않는 퇴직금에 손대고 싶지 않아 아등바등 발버둥 쳤지만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다.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현실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아꼈고 최소한의 지출만 허용했다. 그 덕에 다른 일행의 반도 안 되는 지출로 걸어왔지만 결국 한계는 다가왔다. 그래서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계좌번호를 올렸다. 아직 스마트 폰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싸이월드에도 올릴까 생각했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터라 거기까진 시도하지 못했다. 상태 메시지를 본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왔고, 계좌번호 공개보다 더 당당히 친구들에게 통보했다.
“돈으로 갚을 생각 없다. 그냥 보내라. 한국 돌아가면 경험담으로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갚으리라.”
딱 예상한 친구들의 돈이 적절한 시기에 입금이 됐다. 석현과 원혁이 각 10만 원, 기명이 15만 원, 그리고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국이 16만 원을 후원했다. 합이 51만 원이다. 이 돈이면 산티아고는 물론이고 기념품도 살 수 있으면 계획이 틀어져 산티아고에 일찍 도착하게 된 마당에 다른 여행도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덕에 너하고 포르투갈도 같이 갈 수 있게 된 거야. 아니었으면 퇴직금 조금 더 찾고 나도 피스테라까지 걸어갔을 거야.”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 몇 푼으로 삶의 질과 여유, 미래가 바뀌었다. 물론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걸었을 테고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과 아름다움 또한 존재했을 것이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인연의 친구들 마음이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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