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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석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화신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범스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2
최근연재일 :
2023.08.23 14:28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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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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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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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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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1화 - 위로의 존재

DUMMY

독수리로 변한 오르누스 하켄은 소서리스들과 진을 믿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옥의 포탈과 우드송 부족과 아우드라 부족의 부락의 안위를 살피는 일을 가장 먼저 선택했다.

다행인 일은 없었다.

모두 웨어베어들을 통제하는 모습들이 보이는 한편 아우드라 부족에선 결국 사망자를 만든 크린브뤼드의 웨어베어를 당장 처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당장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인 탓에 그 주장이 크게 주목받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상황을 확인 후, 다시 북쪽 포탈로 방향을 틀었다.


독수리로 변하면 그 빠른 비행 속도로 각 부락을 순회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차례로 순회하면 부락마다 1분 내로 당도할 수 있고, 지금처럼 반대편으로 가로질러야 해도 2분을 거의 넘기지 않는다.

그런 짧은 순간에도 오르누스는 지옥의 포탈을 보면서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만약 이 사태를 막지 못한다면, 이 섬은 결국 지옥의 거점이 되고야 마는가?


이 무거운 걱정은 다행히 오래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포탈을 베어 소멸시키는 저 눈에 띄는 참격은 분명 진의 것이니,


‘아수라 마즈다······!’


화신의 힘이 작용했음을 직감한다.

이내 하늘에 거대한 포탈이 추가로 열리면서 거대한 악마가 내려왔다가 금방 격퇴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의 사태가 해결되었다 한들 훗날을 우려하게 된다.


그런 대승적인 견지의 고민을 이어가며 북쪽 숲의 하늘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어야 할 한 가지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바로 드루이드 부족들 공통의 안위.

크린브뤼드 부락에 당도한 순간, 그는 절망했다.


“으아아아······!”

“아, 안 돼······, 안 돼!”

“이럴 수가······, 으흐흑!”


에슈칸트의 지배를 피하지 못하는 크린브뤼드 부족의 웨어베어의 폭주로부터 다른 부족 사람들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호받아야 할 건 다른 부족원들만이 아니었다.

크린브뤼드 부족의 여성과 아이들.

지금 살아남아 절규하고 있는 저들의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걸 신경 썼어야만 했다.


만약 이곳에 먼저 당도했더라면 고작 몇 명이라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들만으로 감당하기엔 웨어베어들은 너무 많았고, 또 가족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냉정함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가장 먼저 깨우쳤더라면······.


“그만두게!”


오르누스가 놀라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땅에서 솟아난 뿌리줄기가 한 크린브뤼드 남성 부족원의 손에 든 칼을 낚아챘다.

자기 손으로 가족을 모두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결하려 한 것이다.

남성은 그걸로도 포기하지 않았다.


“전 죽어야 합니다!”


빼앗긴 칼을 뿌리째로 붙잡고는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칼끝에 목을 던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르누스가 마법으로 몸을 묶어버리자 그만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왜 말리십니까? 저보고 어찌 살라구요! 흐어엉엉엉!”

“미안하네, 미안하네.”


오르누스도 눈물을 흘리면서 그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사과하면서 부락의 중앙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가 왔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가족을 모두 잃은 그들에게 누가 왔는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을까?


“우웨에엑!”


그때 한구석에서 토를 하는 한 남자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바로 크린브뤼드 부족의 족장 ‘워베어(War Bear)' 파칼 크린브뤼드였다.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계속 쑤시면서 억지로 토악질하는 파칼의 모습은 다른 이들의 반응과 달라 몹시 이상했다.

오르누스가 서둘러 파칼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으며 말렸다.


“파칼! 파칼! 정신 차리게! 대체 왜 그러는가!?”

“오르누스! 오르누스 히에로팬츠! 어서 내 배를 갈라줘! 어서! 내가, 내가······ 내 아기를 삼켜버렸다고!”

“뭐, 뭐라고?”

“여기 보게! 내 아내 시신만 있고 아이가 없어! 그럼 내가 잡아먹은 게 아니고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말이야! 흐엉엉! ······내가, 내가 내 아이를 잡아먹었단 말일세······!”


오르누스가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툭! 하고 뭔가 발에 걸려 무심결에 시선을 내린 순간, 어째서 파칼이 그렇게 울면서 장탄식하는지 깨달았다.

파칼의 아내 실비아의 시체가 그의 발 옆에 있었다.

곰의 이빨과 발톱에 찢겨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중요한 건 그런 참변의 디테일이 아니었다.


파칼과 실비아 사이엔 태어난 지 고작 8개월짜리 아기가 있었다.

파칼에게 내재한 피의 광기가 폭주하면서 바로 곁에 있던 실비아는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도 피 묻은 면 이불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면 이불이 바로 아기를 쌌던 포대기였음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파칼이 자기가 아기를 삼켰다고 했는지,

그래서 그도 할 말을 잃은 채 넋 빠진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절망 위에 더 큰 절망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오르누스······! 제발 내 배를 갈라서 아기를 꺼내주게. 제발······!”


파칼이 오르누스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통곡한다.

그리고 오르누스는 무릎을 꿇은 채 그를 안아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무슨 말로 위로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 말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토해내는 절망의 늪 속에 얼굴을 파묻고 따라 죽어야 만이 이 원통함을 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흐애애애앵······!”


부락 울타리 너머 북쪽 숲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오르누스도, 파칼도 모두 통곡을 멈춘 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몸을 덜덜 떨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저 숲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차마 그의 아기라고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는데도 대체 무슨 기대감으로 지금 돌아보는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숲속에서부터 진과 트리시타, 이샤엔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애애앵······!”


우는 아기를 트리시타가 달래고 있었다.

파칼이 휘청거리면서 간신히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오르누스도 서둘러 다가가면서 물었다.


“이, 이 아기는 대체······!”


트리시타가 진을 흘끔 보면서 대답했다.


“이 친구가 구했어요. 이 부족에서 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생명이었다고······.”

“그런······!”


오르누스가 진심으로 놀라워하다가 트리시타와 함께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파칼을 보았다.

두 손을 조심스레 뻗은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오르누스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걸 느꼈다.


“아, 아가······.”

“그렇군요. 이 아기가 파칼 크린브뤼드의 아기였군요······.”


대답하는 트리시타도 그리고 진과 이샤엔도 복받치는 감정에 이를 악물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 있었다.

트리시타는 조심스럽게 파칼에게 다가가 아기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를 살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온 파칼은 아기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말했다.


“자헤이라, 자헤이라로구나······! 내가 널 잡아먹지 않은 것이야······!”


절망과 슬픔만이 가득했던 크린브뤼드 부락에 나타난 작은 기쁨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깊은 슬픔에 빠졌던 다른 부족원들도 주위에 둘러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니 이것이 모두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음이다.

그러나 파칼은 아기를 받아 들 듯이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손을 오므렸다. 그리곤 갑자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쥐어뜯기 시작했다.

트리시타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데, 파칼이 우물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어찌, 어찌······ 내 아기만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는, ······나한테 무슨 자격이 있다고······.”


작은 소리였으나 가까이 있어서 들을 수 있었다.

가장 기뻐할 사람이 전혀 반대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니.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던 트리시타로선 생각이 멈춘 채 멍하니 파칼의 정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모두가 죽었는데 너만이 살 자격이 있다는 말이냐······!”


파칼이 순간 갑자기 아기를 낚아채듯이 트리시타의 손에서 빼앗더니 그대로 머리 위로 번쩍 들어 땅바닥으로 내려치는 게 아닌가?


퍽!


그 둔탁한 소리를 듣는 순간, 주위에 있던 드루이드들 사이에서 “안 돼!”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어느새 아기가 진이 뒤로 휘젓는 팔에 안겨있었고 파칼의 몸이 위로 붕 떠 오르다가 나자빠지고 나서야 끔찍한 사고를 피했음을 모두가 깨달았다.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던 순간,

진이 재빨리 움직여 파칼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버리곤 발등으로 아기의 몸을 받쳤다. 그리고 파칼이 손에 힘이 풀리면서 놓친 아기를 발로 던지듯이 띄워 낚아챈 것이었다.


“이리 내놔! 내 아기만 살 수 없단······!”


퍽!


“커헉!”


파칼이 다시 두 손을 뻗으면서 덤비자 진이 아예 명치에 발끝을 꽂아버렸다.

파칼이 뒤로 나뒹굴더니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다시 “으아아아아!” 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덤벼들려 했다.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진에게서 아기를 뺏어 죽이려고 할 태세였다.

이샤엔과 트리시타가 각각 어처구니가 없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자기 아기를 죽이려고 할 수가 있어? 진이 어떻게 살린 아기인데.”

“다른 부족원들이 가족을 모두 잃었는데 자기 아기만 살게 된 상황이 족장으로서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까? 하아, 나도 납득하기 어렵구나.”


난감한 일이다.

이대로 넘겨주면 파칼이 정말 자기 아기를 죽일 것만 같았다.

오르누스도 다급하게 말리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진정하게, 파칼!”

“으아아아!”


파칼의 발작에 가까운 몸부림은 더욱 격렬해졌다.

급기야 온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웨어베어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그를 붙들고 말리는 사람들도 크게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에슈칸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건만, 비틀린 책임감에 자신을 다시 광기로 몰아넣고 있는 꼴이라니.”


진이 싸늘한 말을 던지면서 성큼성큼 다가오자 모두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이젠 파칼의 모습은 80% 이상 웨어베어로 변해 있었다.

몸부림만으로 말리는 자들을 반쯤 떨쳐내면서 그 큰 머리와 주둥이를 벌리며 진을 덮치려 했다.

그 순간 진이 화신체로 현현하여 그 붉은 손으로 파칼의 곰 머리를 한 손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벌어진 아가리 앞으로 아기를 가까이 가져가며 외쳤다.


“그렇게 아기를 죽여야겠다면 네가 다시 물어 죽이도록 해라!”


화신의 목소리가 크린브뤼드 부락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자리의 모두보다 큰 모습에 우러러보게 되면서도 그 피로 점철된 듯한 모습이 가진 압도적인 위용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었다.

그 위세에 눌린 것인지 웨어베어로 변한 파칼이 입을 다물려 하고 있었다.

진이 힘으로 억지로 벌리고 있었기에 쉽게 닫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기를 물지 않으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했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을 자책했던 자였다.

설령 자기 손으로 죽이려고 했어도 자신이 물어뜯어 아기의 피를 삼키게 될 수 있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진도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파칼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진도 화신의 현현을 해제하여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

진이 말했다.


“널 말리고 있는 사람들을 봐라. 그들이 네가 아기를 죽이길 바라는지.”


파칼이 떨리는 눈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그를 붙잡고, 또 그에게 내동댕이쳐져서도 다시 돌아와 그를 붙잡는 크린브뤼드 부족의 남자들.

그리고 한 남자가 말한다.


“자헤이라가 어찌 족장만의 딸이오? 이 불쌍한 아이가 없으면 우린 누구에게 위로받을 수 있단 말이오? 부디······ 그러지 마시오, 파칼 족장······.”


그 말을 듣고 파칼이 무너지듯 무릎을 꿇으며 엉엉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울음소리 사이사이엔 오직 “미안하네”라는 말만이 애처롭게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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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97화 - 코메르치아 23.08.23 65 2 13쪽
96 96화 - 블랙툼(Blacktomb) 23.08.14 46 1 13쪽
95 95화 - 문글럼 가문 이야기 23.08.11 42 1 14쪽
94 94화 - 무얼 위한 희생이었나? 23.08.07 46 1 15쪽
93 93화 - 고대전서 23.08.03 61 1 14쪽
92 92화 - 칼자루 23.08.01 52 1 13쪽
» 91화 - 위로의 존재 23.07.31 63 2 12쪽
90 90화 - 악마 에슈칸트 23.07.28 58 1 13쪽
89 89화 - 참상 23.07.26 58 1 14쪽
88 88화 - 다시 3년 후 23.07.24 73 1 12쪽
87 87화 - 다음의 길 23.07.21 75 1 13쪽
86 86화 - 제국의 차기 황제 23.07.20 68 1 15쪽
85 85화 - 제국의 세 황자들 23.07.18 67 1 14쪽
84 84화 - 제국의 중추들 23.07.13 76 1 14쪽
83 83회 - 세계 전황 23.07.12 80 1 14쪽
82 82화 - 아에기르와 란나르 전승 23.07.11 76 1 13쪽
81 81화 - 바다 위 그리고 아래 23.07.10 85 1 12쪽
80 80화 - 드루이드 오르누스 하켄 23.07.08 87 1 14쪽
79 79화 - 발두르 오디누스 남작 23.07.07 79 1 12쪽
78 78화 - 제국의 마스터들 23.07.06 8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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