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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석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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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스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2
최근연재일 :
2023.08.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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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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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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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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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1화 - 바다 위 그리고 아래

DUMMY

진 무라트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이 안개는 어디까지 뻗어있는 것입니까?”


“의식이 닿는 범위까지.”


오르누스 하켄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뒤쪽 갑판에 모여서 작은 종을 흔들며 주술을 외고 있는 드루이드들을 흘끔 보았다.


깊은 밤, 이들과 함께 카락을 타고 출발했다.


드루이드들의 주술도 그때부터 이뤄졌다.


그들의 언령에 어떤 힘이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감지되는 어떤 마력적 요동도 없이 안개를 나타나게 하는 건 무척 신비롭다.


카락에는 트리시타와 이샤엔도 동승하고 있었다.


트리시타가 안개에 대해 놀라워하는 진을 보며 말했다.


“소서리스, 마법사, 드루이드, 마스터 그리고 신의 사제들······. 이들이 다루는 리소스는 모두 다르면서도 같단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소서리스의 카오스. 모든 리소스의 원천적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오직 정신력에만 반응하기에 애초에 타고나지 않으면 이 원천적 상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그만큼 강력하면서도 부작용이 많은 자원이야.”


“부작용?”


이샤엔이 대답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는 것, 노화가 더뎌지면서 수명이 늘어나는 것.”


“아아.”


디몰 아카데미 수업 때 배워서 알고 있는 이야기다.


트리시타는 거기에 이야기를 더 보탰다.


“언뜻 들으면 좋은 게 더 많을 거로 생각하지만. 천만에. 인류와 같은 사회적 동물은 결국 서로 사랑하고 후대를 남기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유대를 쌓아가. 그런데 소서러, 소서리스들은 카오스에 접촉함으로 인해 그것과 닮아가는 것으로 그런 기회를 빼앗겨버린 거야. 하지만, 지식과 감정은 내 친구, 나를 나은 부모와 다를 게 없으니 결국 고통과 고독 속에 죽게 돼버려. 선택권이 없지.”


마법사는 학자 취급받지만, 소서리스는 위치(Witch:마녀)라 부르며 경원하거나 멸시한다.


남자인 소서러도 똑같이 위치라 부르거나 지역에 따라선 미치(Mitch)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법사들이 ‘구체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의 연구적 단계도 없이 마법을 사용하면서 그 질투심에 만든 여론이라고 평가하는 논리도 있었다.


“드루이드의 마법도 그런 식으로 다른 겁니까?


“카오스가 ‘규정할 수 없는 무질서’라면, 자연은 ‘중립적 질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 드루이드는 자연의 수호자들로 그 소명 의식으로 인해 자연과 정령에 접속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말의 힘을 얻게 되었지. 물론 인간이라는 이유로, 이익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다는 이유로 힘이 제한되는 부분도 있지만, 무척 근원적인 힘을 다룬다는 건 변함없지. 자연의 분노가 얼마나 강력한지 상상해본 적 있니?”


“아니요.”


“백년전쟁도 더 전에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드루이드라 평가받는 돌 페이드란 자가 있었어. ‘고모라’라는 작은 도시 왕국이 그의 부족이 관리하던 숲속 자원을 약탈하려 하다가 결국 그의 분노를 샀지. 그 나라가 어떻게 됐는 줄 아니?”


“어떻게 됐습니까?”


“어느 날 큰 지진이 일어나서 도시 전체가 땅속에 파묻혔단다.”


“······놀랍군요.”


진이 오르누스 하칸을 슬쩍 보았다.


그 시선을 느껴졌는지 그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고대신의 힘이다. 백년전쟁 이후, 고대신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이제 그런 능력을 갖춘 드루이드는 없네.”


“드루이드면서 화신체였던 겁니까?”


진의 물음에 오르누스가 그를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드루이드는 화신체가 될 수 없다네. 그저 소통하면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힘을 빌린 것일 뿐. 자연의 힘이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자, 정령이나 고대신의 힘을 탐하는 자, 그게 드루이드라면 응당 지켜야 할 소명을 스스로 깬 것이니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야.”


오르누스의 말을 듣던 진은 문득 그리 멀지 않은 기억 속의 한 적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혹시······.”


진이 생각의 흐름에 따라 그 적에 관해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제국 선단이 보입니다.”


마스트 망루에 있던 선원의 외침.


갑판 위에서 보이는 건 안개뿐이었지만, 잠시 카락선이 좀 더 나아가길 기다리니 안개 너머로 아주 어렴풋한 그림자가 새벽 달빛에 보이는 거 같기도 했다.


오르누스가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크라켄의 잠을 깨우도록 하지. 예정대로 갤리온들을 앞쪽에 배치하게나.”


트리시타가 마침 갑판 위에 있던 함장에게 말해 뒤따라오던 갤리온 쪽으로 불빛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잠시 기다리자 갤리온 세 척이 카락선을 지나 그 앞을 가로막는 것처럼 일렬로 늘어섰다.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니 갤리온의 선원들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드루이드들이 일으킨 안개가 생각보다 짙어서 긴장감이 제법 덜어진 상황이었다.


오르누스 하켄은 카락선의 선두로 나아갔다.


보르탁스 해의 잔잔한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바닷물이 카락과 갤리온의 흘수선을 살짝씩 때리는 소리만 귓가에 간질일 뿐, 그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긴 침묵이 이어졌다.


십여 분을 그렇게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선원들 사이에선 의문 섞인 불편을 토로하는 소리가 나왔다.


같은 제도 안에 살면서도 도통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드루이드 부족을 향한 의심.


언제나 그런 것들이 농후해질 때, 비로소 모두를 한꺼번에 뒤집는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다.


“음? 뭐, 뭐야?”


한 선원이 당황스러움을 드러낸다.


배가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쿠우우우······!


알 수 없는 진동과 무겁고 낮은 소음이 새벽녘 어둠과 맞물려 두려움에 불을 지피는 순간,


파아아아아아!


일순간 안개 대부분이 거치면서 거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앞쪽 시야를 가린 갤리온의 위로 거대한 촉수들이 바닷물과 함께 솟구쳐 오르는 광경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수면 아래의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어도 확신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저건 분명히 크라켄이었으니.


따다다당, 따다다당······!


갤리온들이 퇴각 종소리를 울리면서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카락의 전방 시야 속에 오르누스 하켄을 포함한 진과 트리시타, 이샤엔 등도 제국 선단을 공격하는 크라켄의 촉수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크라켄의 등장으로 보르탁스 해의 수면이 격렬하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파도가 갑판 위까지 닿기 시작한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휘청거리면서 급히 붙잡을 자리들을 찾아가는데 여전히 선두 쪽의 갑판 위에서 오르누스 하켄이 두 팔을 번쩍 높이 들면서 소리쳤다.


“디우프의 사자, 크라켄이여! 기나긴 세월을 쌓아온 분노를 터뜨려 오만한 침략자들을 징벌하소서······!”


진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분노한 바다와 크라켄을 향해 소리치는 오르누스 하켄으로부터 내면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뭔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뱃머리를 돌려라! 크라켄을 불렀으니 우리는 퇴각한다!”


뒤에선 카락선 함장이 갤리온을 따라서 퇴각을 명령하는 소리가 들린다.


트리시타와 이샤엔 등도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마스트를 동여맨 밧줄이나, 난간 등을 붙잡은 채 몸을 바짝 낮추고 있었다.


그건 드루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오르누스 하켄과 진만이 갑판에 서서 한 사람은 바다를, 한 사람은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샤엔이 진을 보며 소리쳤다.


“진! 그러고 있으면 위험해! 파도에 휩쓸린다고!”


파도의 물살까지 얻어맞으면서 소리치던 이샤엔이 입을 닫고 의아한 시선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진이 오르누스 하켄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


그때 오르누스도 자리에서 뒤돌아섰다.


부서지는 파도가 비처럼 떨어지는 가운데, 오르누스가 전신으로 푸른 광휘를 뿜어내며 진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트리시타가 그걸 보고 당혹스러워했다.


“서, 설마?”


그 순간, 뱃머리를 뛰어넘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더니 오르누스와 진을 동시에 덮쳤다.


촤아아아!


거대한 물줄기가 갑판 위에서 부서지며 사방을 휩쓸어버린다.


그래도 다들 대비하고 있어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은 없었으나 바닷물에 온몸이 흠뻑 젖어야만 했다.


그 와중에 뱃머리 쪽으로 시선을 떼지 않던 트리시타와 이샤엔이 당혹스러운 감정 그대로 중얼거렸다.


“트리시타, 두 사람이 사라졌어요!”


“저, 저건······.”


트리시타가 중얼거리다가 시선을 돌려 드루이드들을 바라본다.


그들 가운데 부족의 장로인 므슈스 우드송이 놀란 눈으로 트리시타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디우프! 디우프가 접촉한 것이오! 트리시타, 대체 저 남자는 누구요? 어느 신의 화신이기에 바다의 신이 노린단 말이오?”


분노마저 느껴지는 성토에 트리시타의 머릿속엔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노린다는 말이란, ······디우프가 노릴 정도의 12주신의 적대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것······. 이샤엔이 제대로 데려왔구나······!’





* * * *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격류의 흐름과 기포가 터지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댔지만, 그 울음소리를 가리진 못하고 있었다.


우울한 울음소리였다.


우울함의 감정은 천정이 아닌 바닥에 있을 터.


그것을 보이고 싶은지 소용돌이치는 격류가 계속해서 그를 심해 속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파아아아아!


어느 순간에 진이 바닷물을 뚫고 공기로 가득 찬 공간 속에 떨어졌다.


용케도 숨 참고 정신을 잃지 않았기에 다급히 공중제비를 돌면서 간신히 두 발이 아래로 향하도록 중심을 잡았다.


촤악!


두 발이 바닥에 닿고서야 바닷물이 고여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니 자신이 심상치 않은 곳에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푸르름을 잃어버린 시커먼 심해의 한가운데.


천장이 뚫려 있는 반면에 지면과 사방 벽면은 소용돌이와 같이 물결친 드넓은 대지가 있었다.


바닷물이 금방 안으로 몰아칠 것처럼 공간의 표면을 따라 물결치고 있는데, 공기가 차 있는 것이 신기하고 또한 의아하다.


그리하여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 입을 열려는 찰나,


【“그대, ‘아수라 마즈다’의 화신이여. 내가 올바르게 부를 수 있는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공간을 울리는 여성의 깊고 미려한 목소리.


진이 물음에 대답했다.


“내 이름은 진 무라트. 나도 묻고 싶다. 내가 아수라 마즈다의 화신인 걸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앞서 당신은 어떤 존재이기에 나를 이곳으로 끌어내린 것인지를.”


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촤아아아······!


천정의 바다가 뚫리면서 물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르누스 하켄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음에도 두 발로 바닥에 선다.


마법으로 인도된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오르누스가 뒤돌아 한쪽을 향해 느린 움직임으로 납작 엎드려 절을 올렸다.


누구에게 절을 하는 것인가?


【“나의 디바인 네임, 그것은 디우프.”】


12주신 중 하나, 바다의 신 디우프.


【“묻겠다. 아수라 마즈다여, 어째서 다시 돌아온 것이냐?”】


그 순간.


【“후후후! ······디우프여, 두려운가?”】


공간 속에 울려 퍼지는 아수라 마즈다의 목소리.


동시에 진은 자신의 의식이 뒤로 밀려나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는 볼 수 있었다.


마치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만 같은 감각 속에서 그의 앞으로 벽 한쪽이 움직이는 듯하더니 거대한 용의 머리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 그 위에 앉은 해초를 엮은 듯한 드레스와 트라이던트를 거머쥔 푸른 머리카락 여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일순간 의식이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그녀의 비취색 동공이 확대되어 보였다.


그 속에 비친 모습이란,


붉은 기운을 흘리는 아수라 마즈다의 화신체,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이날에 관한 진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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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 23.05.10 146 0 -
97 97화 - 코메르치아 23.08.23 65 2 13쪽
96 96화 - 블랙툼(Blacktomb) 23.08.14 46 1 13쪽
95 95화 - 문글럼 가문 이야기 23.08.11 42 1 14쪽
94 94화 - 무얼 위한 희생이었나? 23.08.07 46 1 15쪽
93 93화 - 고대전서 23.08.03 61 1 14쪽
92 92화 - 칼자루 23.08.01 52 1 13쪽
91 91화 - 위로의 존재 23.07.31 62 2 12쪽
90 90화 - 악마 에슈칸트 23.07.28 58 1 13쪽
89 89화 - 참상 23.07.26 58 1 14쪽
88 88화 - 다시 3년 후 23.07.24 73 1 12쪽
87 87화 - 다음의 길 23.07.21 75 1 13쪽
86 86화 - 제국의 차기 황제 23.07.20 68 1 15쪽
85 85화 - 제국의 세 황자들 23.07.18 67 1 14쪽
84 84화 - 제국의 중추들 23.07.13 76 1 14쪽
83 83회 - 세계 전황 23.07.12 80 1 14쪽
82 82화 - 아에기르와 란나르 전승 23.07.11 76 1 13쪽
» 81화 - 바다 위 그리고 아래 23.07.10 85 1 12쪽
80 80화 - 드루이드 오르누스 하켄 23.07.08 87 1 14쪽
79 79화 - 발두르 오디누스 남작 23.07.07 79 1 12쪽
78 78화 - 제국의 마스터들 23.07.06 86 1 13쪽
77 77화 - 1차 보르탁스 해전 23.07.04 81 1 14쪽
76 76화 - 전력 분석 회의 23.07.02 85 1 13쪽
75 75화 - 앵켈 제도 연합 회의장 23.07.01 90 1 15쪽
74 74화 - 캄 위크(Calm week) 23.06.30 9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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