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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석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화신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범스톤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2
최근연재일 :
2023.08.23 14:28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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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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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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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8화 - 다시 3년 후

DUMMY

“진.”


진 무라트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정신을 차리는 와중에 그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이샤엔의 것임을 깨달았다.


“흐음.”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


그 아래 사방을 두른 우거진 숲과 드넓은 공터 그리고 중앙에서 작게 장작을 태우는 영원(永遠)의 화톳불.



「“뭔데, 이건?”」

「“영원의 화톳불. 너의 볼품없는 어비스에 온기를 선사할 거다.”」

「“끝이야?”」



진은 화톳불을 흘끔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자 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베이가 섬의 소서리스 지부의 지붕 마룻대 위다.


끼익!


오두막 문이 열리면서 이샤엔이 바깥으로 달려 나와 돌아서서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등장에 대한 기척을 느끼고 나온 것이다.


“왜 거기서 나와?”


“그러게.”


진이 픽 웃음을 흘리면서 지붕에서 뛰어 내려왔다.


이샤엔이 그에게 웃으며 투덜거렸다.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니까 보기 영 어색하잖아.”


진과 걀라혼이 수련에 들어가고 난 이후로 그녀의 말처럼 짧게는 두 달, 길게는 6개월에 이르기까지 정말 뜨문뜨문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약속의 3년.


이샤엔이 딱 이날만을 기다려 그를 부른 것이었다.


옥토룬 혼혈 엘프인 그녀의 용모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반면 진은 더 탄탄한 체격에 구레나룻까지 이어지는 짧은 턱수염을 길렀다.


눈매도 선명하고 날카로워지면서 남성적 느낌이 물씬 풍겼다.


햇볕에 드러나는 적갈색의 머리카락과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함, 선 자세 자체만으로도 느껴지는 기백.


진 무라트의 나이 24세, 다시 태양 아래 격동의 여정을 떠나려는 때.


캐터클력 2026년,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트리시타가 찻잔에 찻물을 따르며 물었다.


“이제 다시 떠날 텐데, 어때? 준비는 된 거 같니?”


진이 씩 웃었다.


“충분히요.”


3년을 황폐의 숲에서 보내고 나서 몇 달 있지도 않고 다시 3년을 어비스에서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아마 고대신인 아수라 마즈다도 몰랐을 일.


하지만, 진에게 걀라혼과 만나서 그의 지도를 3개월간 받았던 경험은 가장 뜻깊은 순간으로 꼽을 정도다.


단순히 검술 실력, 오러 능력만 진보한 게 아니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어비스를 떠난 기간이 한 달이 넘지 않을 정도.


그 안에서 그는 어비스에 대해, 아수라 마즈다에 대해 깨우친 것도 많았다.


“그동안 몇 번 나왔을 때도 일부러 말을 안 하긴 했는데. 더 믿음직스러운 느낌이야. 3년 전엔 햇병아리 느낌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것도 고대신의 힘인가, 아니면 너의 잠재력이 터진 걸까?”


“뭘 거 같으십니까?”


“후후후! 여유 부리는 것 봐? 너무 멋진 척은 하지 마. 이샤엔이 떨어지려 하지 않을 테니까.”


이샤엔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트리시타, 딱 봐도 옛날 맛이 아니잖아요. 뭐 이것도 괜찮을 거 같긴 하지만······.”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트리시타, 그때 전할 말이 있다고 했었죠? 그거부터 얘기해주세요.”


“대족장 오르누스 하켄을 만나러 가자. 그가 네게 줄 게 있다고 했어.”


“······안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번 보려고 했습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아, ······디우프 때문이지?”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다른 얘기도 해주세요. 알아야 할 것들이 있는지.”


진이 어비스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외부 소식은 일절 끊고 살았다.


이제 화신으로서 세상을 여행하고 걀라혼의 족적을 쫓기 위해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트리시타가 입을 열었다.


“제국 얘기를 해볼까? 일단 우리가 보르탁스 해전을 치렀던 그 시기에 제국 황제가 붕어했어. 아래로 아들 셋이 있었는데 둘째인 에미르 클라레우스가 황제로 즉위했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거 같은데. 대외적으로 공표되진 않았지만, 실제로 세간이 보는 제국 상황은 3국으로 분열된 상태야. 남쪽에 에드가 남방왕이, 동북쪽에 아르투로 북평왕이, 그리고 서쪽엔 에미르 황제로 말이야.”


“형제의 난입니까?”


“에드가와 아르투로의 태도는 달라. 에드가는 동생의 황위를 인정하지 않지만, 아르투로는 그렇지 않지. 하지만, 그렇게 첫째가 은근히 대놓고 반기를 드는 상황이다 보니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다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르투로가 자기 영토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는 듯한 움직임이야.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내전은 발생하지 않았어. 아직 3년밖에 흐르지 않았고, 세상엔 이미 악마와 몬스터들이 창궐하는 세상으로 변해버렸거든. 그거 토벌하기도 바쁜 거야.”


“악마와 몬스터라······. 다른 건 없습니까?”


“아, 신성주교회와 에미르 황제 사이가 틀어진 모양이야. 에미르 황제가 즉위하던 날에 베네딕트 교황이 황제의 머리에 관을 씌워주긴 했는데, 이후 세례식을 열지 않았어. 그 때문에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거냐는 말이 돌았는데 양측 모두 그걸 가만히 놔두었지. 게다가 일황자 측으로 사제나 대주교들이 자주 왕래한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중이군요.”


“맞아.”


이번엔 이샤엔이 말을 시작했다.


“라페니슈 왕국은 더 복잡하지. 라시드 로페테기 이왕자가 마커스 튀랑 변경백과 함께 돌아왔거든. 게다가 와쳐스 소드(Watcher's Sword) 용병단도 말이야. 내가 용병단 소개해주겠다고 한 거 기억하지? 그게 바로 와쳐스 소드야.”


진이 그녀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었기에 그녀가 이름을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와쳐스 소드는 하인니스 랜드에서도 가장 유명한 용병단 중 하나였다.


‘블랙 와쳐’ 마스터 레이븐 앤체브.


‘냉혹한 로이아스’ 소서리스 실린 로이아스.


‘헌터’ 발렌.


세 사람은 와쳐스 소드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인물들로 레이븐은 용병단장, 실린은 용병단의 조언자, 발렌은 집행자이자 핸드로 알려져 있었다.


“그랬어? 의외의 인맥이네.”


“의외라니? 그 무슨 섭섭한 소리를. 나 재의 리시안셔스거든. 아무튼 라시드 이왕자가 레이븐과 인연이 닿았나 봐. 라시드가 와쳐스 소드를 끌고 라페니슈 왕국에 진입했으니, 에인테스 후작의 혁명군도 조금씩 계속 밀리는 와중에 기세가 역전된 거지.”


“그럼 왕도에 입성한 건가?”


“아쉽게도 그건 아니야. 악마들이 출몰하는 포탈은 라페니슈 왕국령에도 나타나면서 많은 몬스터가 창궐하게 됐어. 거기다 해적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혁명군은 양쪽으로 공격받는 상황이 돼버렸거든. 마스터가 둘인데도 왕도를 치지 못하는 아이러니지.”


“의아하군. 레이븐 앤체브라면 카심 지하드도 한 수 접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 상황이라는 건가?”


트리시타가 거기에 대신 대답했다.


“나중에 밝혀진 거지만, 신성주교회가 어떤 대악마의 유물을 건드리면서 차원의 경계가 꽤 무너진 모양이야. 불규칙한 포탈이 여기저기 열리면서······ 솔직히 대륙은 아비규환이야. 라페니슈 왕국에 나타난 것도 불과 2년 조금 안 되었으니 아마 언젠가는 앵켈 제도에도 나타날 거 같아.”


“······또 유물이군요.”


“그렇지.”


진이 기억하는 것만 네 차례다.


사피아 호르문드 대주교의 고대신 멜투지의 유물,


노켄스긱스 숲의 고대신 레쉬엔의 유물,


앵켈 제도의 유적섬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유물,


그리고 이젠 대악마의 유물까지.


‘아니, 따지고 보면 황폐의 숲에 나타난······ 걀라혼이나 칼라의 화신체도 비슷한 경우지.’


모두 맥락이 연결된 사건들일 거 같은 느낌이다.


“고대신에 대악마까지······ 신성주교회가 그런 유물들을 찾아 들쑤시고 있었다면 머지않아 조만간 큰 사건이 터질 거 같아 불안해.”


“······아무튼 그런 상태라는 건 레이븐과 변경백 모두 움직이기 까다로운 상황이라는 거군요.”


“······가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태어난 나라인데.”


“생각 좀 해보고.”


“무정하긴.”


진이 툴툴거리는 이샤엔에게서 트리시타로 시선을 돌렸다.


진이 트리시타를 보며 말했다.


“갈까요? 드루이드의 섬으로.”


“그래, 바로 포탈을 열어줄게. 같이 가자.”


트리시타가 오두막 안에 포탈을 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곧장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 * *





세상을 아이룬이라 불렀던 시절에도 ‘사후세계’란 개념이 있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신화와 전승으로 구분하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론 천상과 지옥의 양분된 영역으로 나누어져서


신을 믿는 자라면 천상으로,


악행을 일삼는 자라면 지옥으로,


불신자는 다시 세상의 축생이나 인간 등으로 태어난다는 식의 내용이 바탕을 이루어 전해졌다.


하지만, 차원의 간섭이 일어나는 대격변 시기에 이 관념은 혼동되기 시작했다.


온갖 신이라 스스로 지칭하는 강력한 존재들이 대거 나타났다가 백 년의 전쟁을 치른 후, 12주신 체제로 정립되면서 각각 관장하는 영역들이 분할되고 일부 신들은 그들의 차원을 갖고 있다는 형태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옥’ 자체도 악마들이 지배하는 나락과 12주신 중 하나인 헬거가 지배하는 저승으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하인니스 랜드에서 지옥은 자체로서 ‘악의 나락’이 되었고,


헬거의 저승은 영혼의 죄과에 대해 속죄하는 영역이 되었다.





드루이드는 자연을 해치지 않고 보살핀다.


당연히 짐승들과도 가까워서 마법사의 패밀리어처럼 직접 소통하여 종속으로 다루기도 한다.


아이룬 섬은 상당한 숫자의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드루이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맹수도 당연히 있었다.


곰, 늑대가 대표적이고 맹금류도 물론이다.


사방이 바다로 갇힌 섬 안에서 드루이드들은 직접 맹수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약육강식의 자연적 섭리를 존중하되 포식자와 비포식자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역할도 가졌다.


그 역할이 진정으로 잘 수행되었기에 아이룬 섬의 드루이드는 진정 자연의 수호자였고 당연히 그들의 부락은 언제나 평온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크와아아앙!


그래서 곰의 울부짖음이 들려온 건 의아한 일이었다.


숲에 의해 소리가 필터링되고 기세가 죽은 그런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렇게 분노에 차서 포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오르누스 하켄이 다급하게 자택을 뛰쳐나가 밖을 살피려는 건 그 직전에 어떤 마법적인 섬뜩함을 느끼면서 명상에서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크와아앙!”


다시 한번 곰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자택 모퉁이가 박살이 나면서 거대한 곰이 튀어나왔다.


콰앙!


“으악!”

부서진 통나무들이 뒹굴면서 거기에 엉켜 자빠졌던 드루이드가 곰이 휘두른 앞발에 짓이겨졌다.


빠드득!


뒤늦게 오르누스가 시전한 주문으로 뿌리가 땅에서 솟아오르면서 곰을 붙잡았지만, 이미 피가 흩뿌려진 뒤였다.


오르누스가 곰을 살펴보다가 무심결에 시선이 좀 더 위로 향하고 깜짝 놀랐다.


“설마 므자크인가? ······허억! 저건 대체······?”


두 가지 이질적인 풍경이 그의 눈에 담겼다.


검은 구름 같은 것이 하늘로 퍼져서 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려진 하늘 중앙에는 섬뜩하게 빛나는 누런 달이 있었다.


한낮일 시간에 선명한 달은 맞지 않았다.


그것을 알려주는 듯 아이룬 섬의 북쪽 숲 쪽에 붉은빛을 느끼고 바라본 순간, 오르누스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지옥의 포탈······, 악의 달(Evil's Moon) 마법이로구나······! 에슈칸트야, 틀림없어!”


바로 그때, 부락 한가운데에 또 하나의 포탈이 열렸다.


작가의말

한 번 아프고 나니 컨디션 난조가 또 찾아오네요;;


언제고 주말 중에 보강 연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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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화 - 문글럼 가문 이야기 23.08.11 42 1 14쪽
94 94화 - 무얼 위한 희생이었나? 23.08.07 46 1 15쪽
93 93화 - 고대전서 23.08.03 61 1 14쪽
92 92화 - 칼자루 23.08.01 53 1 13쪽
91 91화 - 위로의 존재 23.07.31 64 2 12쪽
90 90화 - 악마 에슈칸트 23.07.28 58 1 13쪽
89 89화 - 참상 23.07.26 58 1 14쪽
» 88화 - 다시 3년 후 23.07.24 74 1 12쪽
87 87화 - 다음의 길 23.07.21 75 1 13쪽
86 86화 - 제국의 차기 황제 23.07.20 69 1 15쪽
85 85화 - 제국의 세 황자들 23.07.18 6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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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회 - 세계 전황 23.07.12 81 1 14쪽
82 82화 - 아에기르와 란나르 전승 23.07.11 7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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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화 - 1차 보르탁스 해전 23.07.04 8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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