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017
제이슨 해멀, 덱스터 파울러, 데이비드 로스, 크리스 코글란, 트레버 카힐, 트라비스 우드, 아롤디스 채프먼, 조 스미스.
2016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으로 풀린 시카고 컵스의 선수 명단이다. 이들 중 코글란과 파울러는 타선의 중심 강타자였고 로스 역시 라인업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리그 최정상급 파이어볼러라는 명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고질적인 제구 문제 또한 함께 안고 있는 채프먼은 엡스타인 사장이 구명줄 붙잡듯 꽉 쥐고 있으니 잔류할 확율이 컸으나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전천후 역할을 해온 해멀과 우드까지 잡아둘 것으로 보는 팬들은 많지 않았다.
“차 떼고 포 떼면 뭐로 두나?”
기다리던 2017시즌이 시작되면서 컵스의 3연승을 바라보던 팬들의 시선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코글란과 파울러는 물론 해멀과 우드마저 놓쳤고 믿었던 채프먼까지 양키스로 떠났다. 이유는 미시간 갈매기도 알아챌 정도로 간단했다.
제이슨 헤이워드, 2023년까지 1억 4,900만 달러
벤 조브리스트, 2019년까지 4,400만 달러
앤서니 리조, 2019년까지 2,700만 달러
미구엘 몬테로, 2017년까지 1,400만 달러
존 래키, 2017년까지 1,250만 달러
구관이 명관이라 맹신한 엡스타인 사장이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기존 우승 멤버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막대한 지출을 감수한 데다 4선발 존 레스터를 4년 더 앉혀놓기 위해 무려 9천만 달러를 날리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을 붙잡을 실탄이 남아나질 않았다. K1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이적할 경우를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었으나 여전히 앞뒤가 맞지 않는 지출에 불만을 가진 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3연속 우승을 보장하기 위해 뒷마당 여섯 이사에 촛불 시위까지 동원해 붙잡은 K1에 쥐여준 4,350만 달러를 놓고 고작 1년 연장에 그런 엄청난 돈을 썼느냐고 비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봐도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었다. 삼천만 달러를 조금 넘는 커 쇼와 잭 그레인키의 연봉과도 큰 차이를 보였는데, 원래 이보다 큰 액수가 에이전트 사장 모리스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나 구단 측에 야구대학 설립을 위한 지급보증을 요청한 K1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신속하고 뒤끝 없이 결정된 액수였다.
K1의 1년 연장이 결정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팬들의 관심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로 옮겨졌다.
<슬러거 전담포수 죤 바그너, 연봉 조정 신청 포기>
<K1을 따르기 위해 저연봉 내세워 옵트 아웃으로 가려는 건가>
K1이 올 시즌을 끝으로 컵스를 떠날 것이 확실시되자 서비스 타임 3년을 채워 연봉조정 자격을 갖게 된 전담포수 죤의 진로 또한 큰 관심을 받았다. 빅리그 최고의 마구로 통하는 K1의 너클볼을 일반 미트로 너끈히 받아낼 수 있는 포수는 태양계에서 죤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가 K1의 3년 연속 0점대 방어율의 1등 공신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쏟아지는 관심을 배가시켰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는 조정 신청을 하지 않은 채 2017년에도 기본 연봉 수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똑같이 조정 자격을 얻은 헥터 론돈이 570만 달러로 무난히 상향조정에 성공한 것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붙박이 주전 포수 카스틸로가 이적한 이후 대부분 경기에서 마스크를 쓰게 된 그가 2년 연속 골드글러브에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슬러거 타이틀을 얻자 팬들은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7년에 1억 5천만 달러 가치는 충분히 되리라 내다봤다. 죤이 아직 25세임을 고려하면 무리한 추측은 아니었다. 실탄을 두둑이 준비한 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를 하던 구단 측은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며 그의 속셈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지난 시즌 19승을 올린 기본 연봉 론 마이어가 커 쇼, 매디슨 범가너, 맥스 슈어저의 계보를 잇나>
K1에 이어 2선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론의 연봉 조정은 3년을 채우게 될 올해 말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데뷔 첫해에 올린 15승과 지난해의 19승은 누가 봐도 특급 에이스급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서비스 타임 5년을 채우고 1,68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아낸 3선발 아리에타가 성적이나 구위에서 론에 비해 손색이 없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정될 그의 연봉이 얼마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에도 ‘무구무언’으로 말이 없던 그의 입은 계약이나 연봉에 대해서는 더욱 굳게 다물었다. 웬만한 일은 숨기지 않고 공개하여 속 시원한 에이전트라는 칭찬을 듣던 모리스 또한 죤과 론에 대해서는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단순히 궁금증의 선을 넘어 밤잠을 설치게 하는 걱정거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봐, 톰 그리고 사장. 뒷마당 이사들이 키운 선수들 말이야. 끝까지 잡아두는 것 잊지 마.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말고.”
황제 리처드가 아들과 애송이 엡스타인 사장을 앞에 두고 다짐을 받아냈다. 이미 K1에 옵트아웃으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둘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바닥만 내려다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대니, 그리고 이번에 올라온 티모시를 포함해서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돼. 아끼지 말고 팍팍 안겨주란 말이야. 엉뚱한데 쓰지 말고! 알았지?”
“예.”
“확실하게 잡겠습니다.”
얼마 전 크리스로부터 티모시를 끝으로 더 이상 뒷마당 신인 선수는 없을 거라는 말을 들은 리처드의 마음은 급해졌다. K1이나 론은 새삼 말할 것도 없고 대니급 마무리만 해도 양대 리그를 통틀어 뒤져봐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런 괴물들을 어디에서 구했고 어떻게 훈련을 시킨 걸까? 크리켓 하던 호주 원주민 티모시까지.......’
컵스의 영광!
목표는 같았지만 달려온 길은 너무나도 달랐던 자신과 여섯 이사. 자신이 자포자기한 채 무심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택지를 공동구매하여 울타리 없는 집을 짓고 뒷마당에 그라운드를 만들어 지팡이를 의지해 걸어야 하는 노년에 이른 어느 날 갑자기 K1과 죤을 배출한 여섯 친구. 그 뒤를 이어 한결같이 리그 최정상급 투수들을 조련하여 보란 듯이 컵스에 보내고는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친구들이 어느 순간 두려워졌다.
’75승에 33 완봉승! 지난 3년의 성적이다. 지겹게 들어온 ‘삼년 연속 0점대 방어율’은 제외하더라도 이런 경이로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투수가 21세기에 존재할 줄이야.’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K1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한없이 답답해졌다. 지난 시즌 직후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눠본 K1은 컵스에 잔류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10연승은 과한 욕심이라 해도 최소한 5연승 달성은 문제없다 여겼건만, 이제 하얀 도면에 새로운 작전을 그려야 하는 황제의 미간을 다시 찌푸리게 한 것은 죤의 연봉조정 신청 포기와 론의 꽉 다문 입이었다.
‘둘이 무슨 꿍꿍이지? 설마 애들처럼 K1을 따라가려는 것은 아닐 테고. 내가 살아있는 한 어림도 없지!’
한편, 2017 정규 시즌이 시작되자 팬들의 우려대로 타선의 중심을 형성했던 코글란과 파울러가 빠진 컵스의 공격력과 해멀과 우드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적한 채프먼의 공백으로 생긴 불펜 약화가 문제로 떠올랐고 우려가 현실이 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발이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고 계투가 실점하면 뭐하나?”
“검증 안 된 신인들로 이뤄진 하위타선은 믿을 수가 없는데.”
4월 2일 막이 오른 카디널스와의 개막 원정 3연전에서 컵스의 부실한 방망이가 허공을 허무하게 날아다녔다. 팀을 대표하는 리조와 조브리스트 그리고 컵스의 희망 브라이언트는 시즌 초반이라 그런지 아니면 팀의 암울한 타선 분위기를 타는지 적시타를 만들어 내지 못했고 3연전 내내 무안타로 침묵한 타자들이 태반이었다.
2014년부터 4년 연속 개막전 선발로 오른 K1의 4연속 개막전 완봉승이라는 진귀한 기록에 힘입어 1-0으로 시즌 첫 승을 신고하긴 했지만 스코어가 말해 주듯 속을 들여다보면 불안하고 한심한 경기였다.
각각 2차전과 3차전에 오른 론 마이어와 제이크 아리에타가 빼어난 피칭으로 6회까지 1실점으로 버티면서 박수를 받으며 내려갔지만, 방망이는 끝까지 수줍은 새색시 모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해멀과 우드가 사라져 힘이 빠진 불펜의 추가 실점까지 겹치면서 2연패를 당했다. 저스틴 그림, 존 래키, 패드로 스트롭을 위시한 계투진의 구위는 바닥을 헤맸고 기회를 얻지 못한 마무리 대니의 개점휴업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어진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원정 3연전은 개막 3연전의 연장전이었다. 4선발 레스터와 5선발 헨드릭스가 나름 역투하며 잘 이끈 경기를 말아먹은 것은 철저히 침묵한 배트와 리드를 지키지 못한 불펜이었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에 오른 K1이 시즌 연속 완봉승을 거두었으나 아슬아슬한 1-0 스코어는 되풀이되었다.
LA 다저스를 시카고로 불러들여 드디어 홈에서 개막전을 가진 컵스가 2년 연속 사이 영 상과 MVP를 빼앗겨 이를 갈던 커 쇼의 신들린 패스트볼-슬라이더 콤비네이션에 노히트를 당하고 주심의 오판으로 운 좋게 건진 볼넷 하나 덕분에 퍼펙트를 간신히 면하자 양쪽 귀에서 피어오르는 분노의 연기를 애써 무시하던 팬들이 결국 들고 일어섰다.
“코글란과 파울러를 붙잡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돈을 낭비한 사장은 물러가라.”
“슈와버와 솔로, 바에즈를 적극 기용하라.”
“시범경기에서 잘 던진 티모시는 왜 안 올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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