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컬리의 탄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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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
샌드맨 혹은 슈퍼 마리아노로도 불리는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다.
1969년 파나마 시골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고기잡이배를 타며 노를 젓고 그물질을 하며 팔 근육을 키운 리베라는 2013년에 은퇴할 때까지 뉴욕 양키스에 충성한 프랜차이즈 스타 플레이어로서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와 함께 양키스 핵심 4인방을 이루었다.
2013년 9월 22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거행된 감동적인 그의 은퇴식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었고 당시 뒷마당에 막 입주한 순우와 죤 또한 크리스네 거실 TV 앞에 앉아 노영웅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한 팀에 머물다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지는 않아도 애써 찾아보면 더러 있다. 하지만 그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나 양키스의 영웅을 넘어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라는 함부로 붙일 수 없는 타이틀이 주어진 이유를 그의 성적이 말해 준다.
19시즌 1,115경기에 올라 1,283이닝을 뛰며 기록한 82승 60패를 본다면 어이가 없지만, 다음 스탯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652세이브, ERA 2.21, 조정 ERA 2.05
세 기록 모두 라이브볼 시대 기준으로 역대 1위다. 1,173 탈삼진과 9이닝당 탈삼진율 8.22, 볼넷 비율 2.01 그리고 피홈런율 0.5라는 후덜덜한 스탯은 보너스. 그리고 이 모든 경이로운 기록의 중심에는 리베라 독문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커터가 있었다. 대니의 포심 같은 커터를 본 스컬리 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리아노 리베라를 외친 이유다.
“대니의 커터를 대번에 파악하다니 역시 스컬리답군.”
“몸이 늙었지 눈까지 늙었을까.”
“이봐, 마크 그리고 래리! 자네 둘 수고 많았네. 이번에 밥값을 톡톡히 했구먼”
대니의 커터가 처음으로 선을 보인 순간 스컬리를 비롯하여 공 좀 볼 줄 안다는 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와중에도 TV 앞을 지키고 있던 링컨 뒷마당의 여섯 노인은 덤덤했다. 대니의 커터 연습피칭을 지겹게 봐왔기 때문이다. 뒷마당 입주 이후 처음으로 노인들의 칭찬을 받은 마크와 래리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꽤 뿌듯했다.
덤덤한 노인 중 그나마 흥분한 기색을 끝까지 감추지 못한 에디가 나직이 속삭였다.
‘내 너를 K1급 클로저로 만들어 준다 하지 않았더냐. 이제야 속이 시원하구나.’
지난해 대니를 맡은 에디가 고심 끝에 고른 필살기는 바로 리베라의 커터였다.
“우리 대니가 30을 넘었어도 중지 힘은 여전히 대단하다. 아마 순우보다 셀걸. 포심 그립으로 잡되 중지로 밀어주는 커터가 어울리겠어. 횡적 변화를 많이 주는 커터 말이야. 자네 둘, 이제부터 이거 집중적으로 연구해 봐.”
지난해 초가을 무렵 에디가 마크와 래리를 불러 변형 커터 개발을 요구하고 나서자 둘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어르신, 횡으로 휘려면 슬라이더처럼 공의 실밥이 손가락과 세로로 겹치게 잡아야 하는데 갑자기 포심 그립에 중지를 쓰다니요?”
“포심 그립으로는 손가락이 실밥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팔꿈치와 손목에 준 회전도 효과가 없고요.”
하지만 둘은 곧 입을 닫아야 했다. 에디가 말없이 관절염으로 마디가 튀어나온 손으로 직접 그립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공을 쥐다가 자칫 울퉁불퉁한 손가락이나 앙상한 손목이 부러질까 걱정되었으나 그의 지론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전성기 시절 정상급 파워를 자랑했던 그의 중지로 포심 그립에서 실밥에 걸리지 않아도 충분히 횡 방향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타자 눈에는 완전히 포심 투구 폼이고 팔꿈치와 손목을 돌리지 않고 중지로 횡회전을 만들어 내니까 구속도 포심 못지않지. 무브먼트도 좋아 덜 떨어지고 각도를 조정하면 뜬공이나 땅볼 유도에도 좋고 말이야.”
구속으로 보면 영락없이 포심인데 들어오던 공이 갑자기 옆으로 빠지거나 몸쪽으로 파고드는 것도 모자라 아래로 푹 꺼지기까지 한다면 타자는 그야말로 가만히 서서 농락당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리베라표 커터였다.
중지를 세게 밀어 변화를 주는 커터는 리베라가 처음이 아니었다. 장점이 많은 탐나는 구종이라 에디 시절에도 연마한 투수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리베라처럼 종횡 변화가 큰 커터는 볼 수 없었다. 이론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중지 하나로 몸을 지탱할 만한 파워가 없으면 익힐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할아버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으로 충분히 승부할 수 있어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그 커터가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강력한 패스트볼과 속도 변화가 가능한 체인지업에 배짱까지 두둑한 대니가 론돈과 채프먼을 밀어내고 시즌 초반부터 컵스의 마무리 자리를 꿰어찼으나 에디는 만족하지 않았다.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고수급 마무리가 아닌 리그를 대표하는 초절정 클로저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래리가 대니의 커터를 피치 에프엑스급 고속 카메라로 찍은 자료를 바탕으로 에디는 마크와 함께 단점을 보완했고 홈 경기가 있는 기간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손수 밤늦게까지 손자의 새 구종을 점검했다. 미트에 꽂히는 묵직한 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뒷마당을 울리자 잠을 설친 다섯 노인이 짜증을 냈지만, 손자 사랑 삼매경에 빠진 에디는 들은 체도 안 했다.
해지기 직전 석양을 벌겋게 물들이려는 듯 혹은 삶의 남은 것을 모조리 태워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워보려는지, 에디는 모든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1년 가까이 갈고 닦은 대니의 포심형 커터가 이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니가 이제껏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투 피치로 끝판왕의 자리에 올랐는데 숨긴 공이 하나 더 있었군요.”
“놀라워요, 놀라워. 내가 60년 넘게 중계를 하며 수많은 마무리를 봐왔지만 투구 폼이나 구위에 있어 그 중 단연 으뜸은 리베라였소. 초기에는 포심에 슬라이더 조합으로 시작하다가 나중에 슬라이더를 버리고 커터를 장착하면서 더 나은 기록을 세웠지. 그의 커터를 제대로 받아친 타자를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조금 전 대니의 커터에서 리베라가 그대로 보였다니까.”
스코어 4-3에서 맞이한 9회 두 번째 타자가 포심의 가면을 쓴 커터에 당황하며 헛방망이질 연속 세 번으로 물러나고 다저스를 대표하는 다니엘 머피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미 올 시즌 150안타와 20홈런을 넘긴 슈퍼 슬러거다.
“보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던진 1구가 또 커터였는데요. 저렇게 횡적 변화가 큰 커터를 익히는 것이 왜 어렵습니까?”
“리베라급 커터를 던지려면 타고난 중지 힘이 필요해요. 그냥 센 정도가 아니라 다섯 손가락의 모든 힘을 중지에 모을 수 있는 정도가 돼야지. 그리고 손가락으로 미는 콘트롤이 아주 민감해요. 제구에 자신이 없으면 저렇게 던질 수가 없거든.”
“저런 공이 제구를 잃으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되긴, 한가운데로 몰려 완벽한 배팅볼이 되는 거지.”
처음 보는 변종 커터에 놀란 걸까 아니면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를 기다린 걸까, 강타자 머피는 방망이 한번 시원하게 휘둘러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경기가 끝났다. 죤과 대니가 껴안으며 짜릿한 1점 차 승리의 기쁨을 나눴고 팬들의 함성과 함께 다시 한 번 오성기가 곳곳에 휘날렸다.
다음날 8월 28일 오후 3시에 시작된 3차전 경기의 9회도 대니의 무대였다. 선발로 오른 아리에타가 7회까지 1실점 호투하고 계투진이 오랜만에 무실점으로 막아주면서 스코어 3-1에 오른 대니가 속구와 체인지업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커터를 절묘하게 섞어 삼 연속 세이브를 챙겼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70년 가까운 방송생활을 접은 스컬리 옹이 은퇴식 인터뷰에서 한 말은 팬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스컬리 씨, 오랜 세월만큼이나 많은 선수를 겪으셨는데 지금 기억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
“음....... 1950년 나의 방송 데뷔전에서 선발로 올랐던 워랜 스판이나 마음을 나눈 친구 스티브 칼튼, 구도자적인 삶을 살았던 존경하는 샌디 쿠팩스....... 모두 자신의 시대를 환히 밝힌 영웅이었소. 그 이후에도 그렉 매덕스나 놀란 라이언, 페드로 마르티네스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야구를 빛내 주었지만, 이전 시대에 비하면 손색이 없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쓸데없이 오래 살아 가끔은 올드 스타들과 함께 사라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들었지.”
순간 목소리를 낮춘 그가 속삭이듯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날까지 산 보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듯하오. 지금의 야구를 한 수준 더 높여줄 선수들을 봤으니 말이요. 눈을 감기 전에 0점대 방어율을 보다니, 그것도 연속으로. 거기에 부활한 리베라급 커터까지. 꽉 다문 입에 맹수 같은 눈으로 타자를 제압하는 신인왕도 그렇고. 완전 무회전 너클볼을 보통 미트로 다 잡아내는 포수까지....... 희한하게도 그들이 시카고 어느 동네에 함께 모여 산다고들 하던데,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는 건지.......”
그의 마지막 말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나지막하여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주름살로 덮인 얼굴에 옅은 무지개 미소가 떴다.
한편 대니가 다저스를 상대로 세 번 연속 세이브를 올리던 날 경기를 지켜본 대륙의 기자들이 본국으로 송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랑스러운 중화인민 대니 웡이 나성 다저스 3연전 박빙의 우세 상황에 모두 올라 승리를 지켜내고 시즌 38번째 세이브를 올리면서 양대리그 최고의 마무리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루키리그에서 방출 통보를 받아 미처 피어보기도 전에 서리를 맞은 들꽃 대니가 세탁소 배달을 다니며 관중도 없는 독립리그에서 야구의 꿈을 키워가던 중 드디어 인정을 받고 빅리그에 입성하기 며칠 전 타자의 공을 맞아 부상으로 다시 주저앉은 좌절 스토리는 이미 널리 퍼져 전혀 새롭지 않다. 의사의 처방을 따라 복용한 성장 호르몬이 약물 시비에 휘말려 체력의 전성기를 판정 대기실에서 날려버린 가슴 아픈 사정을 모르는 팬 또한 없다.
손발을 꽁꽁 묶고는 야구를 그만두라는 매정한 운명을 거부하고 손에서 공을 놓지 않던 그와 연속 0점대 방어율로 24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K1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시카고 링컨 노인들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끊임없이 찾아온 시련과 절망을 환한 웃음으로 맞선 31세 중고 신인에게 야구인생 제2막을 열어준 감동적인 비화 또한 더이상 중화 팬들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미 끝판왕에 오른 이후에도 포심성 변종 커터라는 언터처블 구종을 연마하고 이번 3연전에 선을 보여 강타자들의 혼을 빼놓은 대니 웡의 지사 불굴의 투지와 도전 정신 그리고 자기 계발 투쟁 정신을 담은 혁명적 자세는 우리 당과 인민이 지향하는 모범적인 운동선수로서 비단 야구 팬들뿐만 아니라 시련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앞으로도 꿈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며 열정적 전진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환한 웃음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자랑스러운 웡 동지를 변함없이 응원하며 애정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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