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번 던져봐도 될까?
야구의 투수와 크리켓의 볼러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많이 다르더군.
순우의 투구를 보니 팔을 비스듬히 올려 휘둘러 던지던데 크리켓 볼러들은 팔을 최대한 높이 올려 손목에 스냅을 주면서 던지지. 우리는 한참 뒤에서 도움닫기로 뛰어들어오며 던지고 공은 타자에게 도달하기 전 바운드가 한번 되어야 하는데 야구는 제자리에서 발을 내디디고 바운드 없이 포수에게 던지더라고.
야구도 그렇겠지만, 크리켓의 구종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공을 쥐는 방식, 실밥의 사용, 손안에서의 공의 위치 및 볼러의 전략 등으로 공이 달라져. 야구공보다 조금 작고 단단한 크리켓 공은 붉은색 가죽에 흰색 실 세 줄로 나란히 재봉 되어 있는데 타자들은 손이나 손목, 팔꿈치를 보고 공의 구종이나 궤적을 추측하지. 투구폼에 따라 속구 볼러, 변화구 볼러, 중속 페이스 조절 볼러, 언더암 볼러 등으로 분류하는데 나는 전형적인 변화구 볼러야.
콘트롤은 어떻게 하냐고? 바운드하고 들어가는 공은 컨트롤에 따라 공중에서의 움직임과 바운드 이후의 경로가 달라져. 직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변화구지. 스핀을 많이 줘서 변화를 일으키는 공을 많이 던지는데 방망이를 든 배트맨이 공을 받아쳐서 점수를 만들지.
저 중국인 친구가 던지는 거, 이름이 커터라고 했던가, 볼수록 희한하던데 우리가 던지는 변화구의 종류가 훨씬 더 많을걸. 론의 속구는, 사실 그렇게 무섭게 들어오는 공은 처음 봐. 속도도 그렇고 볼 끝도 무서워. 시속 160km가 넘어가는 것 같덴데. 하지만 땅에 한 번 바운드해야 하는 크리켓은 그런 속구를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대신 땅에 튕기는 순간 바뀌는 공의 방향과 궤적이 생명이야.
난 어릴 때부터 공에 변화를 주는 데에 소질이 있었어. 긴 손가락에 특히 손목 관절이 유연해서 중지가 팔뚝 안쪽에 닿을 정도였지. 내 자랑 같지만, 내 손에서 벗어난 빨간 공을 제대로 받아친 배터가 드물었어. 빨랫방망이와 비슷하게 생겨서 타구 면적이 야구 배트보다 넓어 공을 받아치기 유리해도 내 공은 한마디로 언터처블이었다고. 내 공이 땅을 때리고는 어디로 어떻게 날아들어 올지 아무도 예상을 못 했어.
그래서 나, 티모시 와룽가가 호주를 대표하는 특급 볼러....... 였지. 그래, 과거형이야.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고.
‘크리켓 월드컵’이라고 들어 봤어? 처음이라고? 헐~ 자네들은 여전히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라고 여기는 모양인데, 정신 차려. 야구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나? 미국 일본 한국 대만에 일부 중남미 정도밖에 더 되나? 크리켓은 과거 영연방 50여 국가에서 여전히 최고 인기야. 야구는 그냥 하나의 변방 스포츠지. 흔히 아는 4대 스포츠가 뭐야? 월드컵, 럭비, 올림픽 그리고 크리켓이라고. 야구는 게임도 안 된다고.
아무튼, 크리켓 월드컵은 1975년부터 4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말 그대로 크리켓 최고 국제대회야. 본고장 잉글랜드는 단 한 번도 우승해 본 적이 없기로도 유명한데 최강자는 5회 우승에 3연속 우승을 거둔 호주야.
그리고 작년 2015년 월드컵에서 우리 호주가 우승했어. 케냐, 스코틀랜드, 남아공, 웨일스 같은 약한 팀을 가볍게 누르고 본선에 올랐는데 여기서 만난 팀이 보통이 아니었어. 특히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잉글랜드는 강했지. 하지만 호주 팀에는 대량 실점의 위기에 올라 급한 불을 끄고 남은 경기를 무실점으로 처리한 투수가 하나 있었어. 그게 누굴까? 맞아 바로 나야, 나 티모시 와룽가!
중요한 경기와 위기의 순간에 올라 퍼펙트로 막은 내 모습에 호주 국민은 물론 원주민들의 환호가 대단했지. 원주민 볼러가 호주를 위험에서 구해냈다며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었고 말이야. 호사다마라 했던가, 나 대신 인터뷰에 응한 우리 아버지가 원주민 만세를 부르고 호주 땅의 임자는 원주민이라고 외친 덕분에 난 결승전에 나가지 못했어. 결승전에 올라온 라이벌 뉴질랜드전에 나를 빼더군. 감독은 경기 내내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이야.
우리가 간신히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신문기사에서 내 이름은 완전히 사라졌어. 아버지의 자극적 외침 때문이었지. 짙은 갈색 피부에 유난히 짙고 긴 눈썹과 툭 튀어나온 이마에 뭉툭한 코를 가진 지극히 못난 혼혈 원주민이 우승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거야.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보상과 화해에 대한 백인 중심사회의 보수적 인식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호주사회의 과제로 남아있거든.
내가 결승전에서 배제되자 원주민들이 들고일어나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 적지 않은 보상금과 원주민 전용 연금을 받아 술과 도박으로 날리고 교육수준도 한없이 낮은 미개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누가 관심을 가질까. 글재주 좋은 형이 여러 언론사에 글을 보냈으나 아무도 실어주지 않았고 얼마 전 변호사가 된 동생이 법적 투쟁을 벌였지만 선수 기용은 감독의 재량이라며 대표팀 손을 들어주더군. 호주 사회에 대한 실망과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아버지의 책상 위로 다시 술병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나 또한 작년부터는 공을 놓고 지냈어.
입을 꽉 다문 볼러가 쏜살같이 달려와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온 힘을 다해 바운드 볼을 던지고 배트맨은 한순간을 노려 공을 치고 달려나가는 스포츠, 경기 내내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 막히는 혈투가 벌어지는 동시에 우직할 정도로 철저하게 스포츠맨십과 룰을 지키는 신사들의 게임, 24살밖에 안 된 나의 삶의 전부였던 크리켓을 난 포기한 거야. 정말로 삶 전부를 내려놓은 거지.
아쉽지 않냐고? 크리켓 안 하면 어떻게 살 거냐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종족에 따라 차별하는 스포츠라면 더 늦기 전에 그만두길 잘했다고 생각해. 룰을 잘 지키면 뭐 하나, 그 근본부터 잘 못 되었는데. 하지만 작년에 벌어진 일인데 아직 분한 마음이 남았는지 요즘도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이젠 딱히 할 일도 없는, 실직 수당으로 연명하는 한심한 실직자 신세야. 집에 있으면 뭐 하나 싶어 나도 모르게 평소에 가던 리버풀 구장에서 뜀박질이나 하며 응어리진 속을 풀다가 말로만 듣던 야구 경기를 보게 된 거고.
그러다가 자네들을 만나게 된 거야.
* * * *
티모시의 자기소개는 여기까지였다.
모리스의 뒷마당 기자회견 며칠 후 죤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순우 일행은 시드니로 향했다. 따로 집을 얻어 신혼을 즐기며 시드니 여름 캠프에 참가한 죤과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온 론 그리고 순우 집에 하숙하게 된 싱글 대니와 티모시는 한여름의 시드니 곳곳을 누비며 몸을 만들었다.
티모시는 리버풀에 집이 있었으나 훈련을 위해 일행과 함께 머물기로 했다. 지난 5월 뒷마당에 합류한 그는 반년 만에 귀국한 셈이다.
“이번으로 시드니 여름은 네 번째. 40도 더위에 서쪽의 한적한 주택가에서부터 시내와 동쪽 해변을 미친 듯이 온종일 뛰어다니는 한심한 인간이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이젠 눈 감고도 뛰겠어. 이번 기회에 시드니 관광 가이드로 전업할까 봐. 아~ 신혼에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어느덧 서비스 타임 4년 차에 접어든 주전 포수 죤의 여유 있는 표정과는 달리 티모시는 말할 것도 없고 론과 대니는 입을 닫고 체력 단련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컵스의 특급 선발투수에 리베라급 클로저라고 하지만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액티브 로스터에 들고 개막전에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명단 초청선수 자격으로 캠프에 참가할 티모시는 오히려 덤덤했다.
“허허, 순우. 올 때마다 하나씩 새로 달고 오더니 이번엔 없나? 처음엔 죤, 다음 해에는 론, 작년엔 대니를 데려오더니만. 참, 이번엔 호주 토박이니까 데려온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겠군 그래.”
순우가 대학 시절 뛰던 어번 오리올스팀의 레이먼드 감독이 반갑게 일행을 맞이했다. 지난 해 시드니 인터리그에서 조용히 공만 던지던 대니는 더 이상 무명이 아니었다. 비록 야구가 변방 스포츠인 호주라도 야구공을 쥔 사람이라면 메이저리그 신인상에 구원투수 상을 수상한 대륙의 붉은 별을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쓸데없이 너무 유명했다. 시드니 시내를 달릴 때 찜통더위에도 얼굴에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시내 곳곳에 널려있는 중국 관광객 때문이었다. 시내 달리기 첫날 대니를 알아본 팬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도로를 마구 건너와 그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때아닌 교통 마비 현상이 일어난 이후 그는 머리를 깎고 얼굴 전체를 덮는 자전거용 마스크를 써야 했다.
해가 바뀌어 2017년 1월이 되고 호주 야구 인터리그가 시작되자 시내와 동쪽 바닷가 대신 리버풀 구장으로 달리기 코스가 변경되었다. 리버풀 구장은 야구 전용구장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넓은 호주에 야구 전용구장은 전무했다. 다행히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크리켓 구장을 야구장으로 변경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3년 전 LA 다저스가 시드니에서 개막전을 가진 곳도 크리켓 그라운드였다. 그리고 지난해 바로 이맘때 이 장소였다, 티모시를 처음 만난 것이.
정돈이 불가능할 정도로 헝클어진 머리에 짙은 갈색 피부, 여러 색이 섞여 묘사가 힘든 눈동자 위로 휘날리는 짙고 긴 눈썹, 심하게 튀어나온 이마에 약간 비대칭으로 삐져나온 광대뼈 사이로 보이는 주먹만 한 뭉툭한 코.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우람한 어깨와 긴 팔을 덮은 근육에 유난히 길고 두툼한 손가락. 뛰어도 뛰어도 지치지 않는 강철 같은 다리에 마치 부황을 맞은 듯한 발. 그리고 어떤 위치에서도 넘어지지 않을 넓은 발바닥.......
그 당시에도 인터리그를 위해 아침 일찍 구장으로 달려와 캐치볼로 몸을 풀던 순우의 눈에 구장 바깥쪽 잔디를 따라 뛰고 있는 특이한 외모를 지닌 그가 보였다. 몇 차례나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알고 보니 92년생 동갑이었다.
태어나서 야구는 처음 본다는 그가 순우 일행의 피칭을 보더니 상당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며칠 동안 인터리그를 지켜보던 그가 게임과 클리닉 세션까지 마친 후 살며시 다가와 입을 열었다. 투박하고 알아듣기 힘든, 전형적인 원주민 억양의 호주 사투리 영어가 튀어나왔고 순우를 제외한 미국 영어를 쓰는 일행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한번 던져 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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