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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 님의 서재입니다.

투수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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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prk
작품등록일 :
2016.04.26 23:35
최근연재일 :
2017.10.2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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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09.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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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내 이름은 대니 웡

DUMMY

한 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상황에서도 힘이 남아도는 선발이 완투까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달랐다. 체력과 구위가 떨어진 데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제구력마저 날려 버려 위태위태한 레스터에게 완투를 바랄 수는 없는 일. 매든 감독은 주저 없이 믿을 만한 프라이머리 셋업맨과 스윙맨으로 꾸린 승리조를 투입했다.


시즌 ERA 1.99를 기록한 우완 저스틴 그림과 좌완 트라비스 우드 그리고 페드로 스트롭으로 이어지는 계투진은 컵스가 자랑하는 마무리 헥터 론돈과 함께 든든하고 믿음직했다.


6회 2사에 올라 땅볼로 이닝을 처리하고 7회를 맞은 저스틴이 무리 없이 아웃 카운트 두 개를 잡아낼 때까지는 든든하기 그지없었으나 세 번째 타자 카펜터는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정상급 타자답게 수준급 선구안으로 풀카운트까지 몰고 가더니 3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로 출루하고 다음 타자 헤이워드가 절묘한 내야 안타로 나가자 감독은 바로 좌완 우드를 올렸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할러데이가 유난히 왼손 투수에게 약했기 때문이다.


"승리조는 반드시 우완과 좌완 그리고 사이드암 등 여러 유형의 투수로 배치해야 한다."


시즌 초 일찌감치 승리조의 구성 원칙을 정한 매든 감독의 작전은 정규시즌 162경기를 치르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문제는 그 효과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변수가 생겼을 때는 말이다.


2사에 2루 주자는 보통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다. 실익이 적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2루의 카펜터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3루로 내달려 도루에 성공했다. 좌완의 사각을 노렸고 예상대로 우드의 견제구는 타이밍을 놓쳤다.


"이봐. 도루는 신경꺼. 하나만 잡으면 되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진 우드를 본 카스틸로는 고참답게 마운드로 다가가 어깨를 치며 진정시켰으나 투수는 이미 열이 오른 상태였다. 이를 놓칠 할러데이가 아니었다. 투 스트라이크로 시작한 카운트가 어느새 풀카운트까지 갔고 세 번을 고의로 걷어내자 우드의 얼굴은 이성 잃은 멧돼지로 변했다.


"아니! 저렇게 상대의 도발에 말려들면 안 되는데. 당장 내려 말어?"


평정심을 잃어가는 우드를 지켜본 감독이 망설이는 사이에 우드의 공이 가운데로 쏠렸다.


<따악>


경쾌한 소리만으로 안타를 직감한 관중은 벌떡 일어나 동점타를 터뜨린 할러데이의 이름을 외쳤고 교체 타이밍을 잃은 매든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코에서 바람이 새듯 씩씩거리며 내려간 우드에 이어 컵스의 네 번째 투수 스트롭이 올라 7회를 무사히 마쳤지만, 위기는 8회를 건너뛰지 않았다.


초구를 노리는 적극적인 스윙에 기습 번트와 도루 그리고 더블 스틸까지. 카디널스 특유의 뛰는 야구가 시작되면서 스트롭은 순식간에 만루를 허용했고 다 이긴 경기를 내어줄 수 없는 컵스로서는 꼭꼭 숨겨둔 마무리 론돈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쉽게 무너졌다.


반면 매니스와 브록스톤에 부상에서 회복되어 돌아온 웨인라이트까지 합세한 카디널스의 철벽 계투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카디널스의 가공할 승률의 1등 공신 클로져 트레버 로젠탈이 오르면 뒤집히는 경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1차전 경기에서 5-3으로 카디널스가 먼저 웃는군요."

"오늘의 경기는 불펜 간의 대결이 승패를 갈랐습니다. 카디널스는 불펜진이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며 무력시위를 벌였고 컵스는 4명이 올라 3점을 헌납하면서 주저앉았어요."

"아무래도 컵스는 남은 경기에서 카디널스의 불펜을 흔들지 않고는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수 없겠군요.”

"매시니 감독이 평소에도 불펜 투수들이 잘 가동되는 이유로서 뒤에 경험 많은 투수들이 든든히 받쳐주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확실하게 증명한 경기였습니다."


카디널스는 이기는 야구뿐만 아니라 쫓아가 점수를 뒤집고 승기를 지키는 야구에도 능했다.


“우리가 카디널스와 정규 시즌에 19번 붙어 12번 졌다. 그중 6번을 오늘처럼 졌다.”


경기 후 고개 숙인 선수들 앞에 서서 나직한 톤으로 말을 뚝뚝 끊으며 입을 연 감독은 목까지 올라온 성질을 죽이느라 속이 끓었고 컵스의 필승조가 유난히 카디널스에게 약하다는 핑계가 이날은 통하지 않았다.


“순우, 로젠탈을 보니 명불허전이던데. 인상 하나 바꾸지 않고 100마일 강속구를 새총 쏘듯 던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

“그러게. 오늘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포심으로 승부하더군.”


죤과 순우는 로젠탈에게 받은 강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다음날인 2차전 선발로 예고된 론이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는 무미건조한 톤으로 짧게 끼어들었다.


“로젠탈을 보니 대니가 떠오르더군.”


죤이 오랜만에 론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호응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대니랑 비슷한 점이 많았어. 지금쯤 뒷마당에서 뭐 하고 있을까?”


대니 웡.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듯이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올해 30세의 중국인이다. 동양인답지 않은 큰 키에 근육으로 뒤덮인 몸은 누가 봐도 운동 선수였으며 우람한 어깨는 투수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상당히 재능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유리한 하드웨어에다 어깨가 튼튼했기에 그를 탐내는 팀이 많았다. 2004년 고교 졸업 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13라운드에 그를 지명했으나 다른 동양인 부모처럼 대학 진학을 선호한 어머니의 권유를 따라 샌디에이고 대학을 선택했던 그는 2007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가 6라운드에 지명하자 고민 끝에 프로의 길로 들어섰다.


“난 이제 프로 선수다. 야구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던가.


'6라운드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유망주 중 하나였던 그의 루키 리그는 기나긴 고난의 행군 첫걸음에 불과했다. 우선 제구와 구속이 교대로 그를 괴롭혔다. 첫해에는 93마일을 오르내리는 위력적인 공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았고 다음 해에는 미트에 제대로 꽂힌 강속구가 85마일을 넘지 않았다.


폭투는 보너스로 치더라도 볼넷이 피안타와 수치가 비슷해질 무렵 피나는 노력으로 간신히 제구와 구속을 잡아가는가 했는데 부상이 찾아왔다. 휴식과 재활을 거쳤으나 결국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2009시즌 대부분을 통째로 날린 후 후반에 등판의 기회를 몇 번 잡았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예상대로 구단으로부터 방출 결정을 통보받았다.


좌절하고 야구를 접은 후 부모님이 운영하는 세탁소 일을 돕던 대니에게 접근한 팀이 있었다. 독립리그 팀 샌 알젤로가 20대 중반의 어깨 튼튼한 투수가 제구력은 부족해도 90마일의 패스트볼 정도는 우습게 던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야구에 대한 목마름이 가신 적이 없던 차에 비록 시골 팀 소속으로 월급 600달러를 받더라도 공을 잡을 수 있어 좋았던 대니는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독립리그 시즌이 끝나면 다시 세탁소 배달을 다니는 그가 소도시 독립리그에 머물러 있기에는 아깝다고 여긴 샌 알젤로의 감독은 더블A 이스턴 리그의 포틀랜드 씨 도그즈에 그를 소개했고 한눈팔지 않고 야구에만 몰입한 대니는 자그마치 천 달러가 넘는 엄청난(?) 월급을 받으며 트리플 A 퍼시픽 코스트 리그 노스 디비전의 오마하 스톰 체이서스로 올라갔다.


낭중지추라 했던가, 어느덧 28세가 된 강속구 투수의 열정과 재능을 본 감독은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자신 있게 추천했고 그는 꿈에 그리던 빅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을 받았다.


아직도 그의 시련은 남았는지, 마지막 시범 경기 도중 팔꿈치에 타자의 공을 맞으며 오랜만에 쓸만한 투수를 건졌다며 신이 난 감독과 코치진을 실망시켰다. 하필이면 전에 수술한 부위를 다쳐 6개월 가까이 병상과 재활센터에서 보내고 오마하 스톰 체이서스로 돌아가 기회를 엿보던 대니는 의사의 처방을 따라 복용한 성장호르몬으로 인해 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기까지 4개월을 추가로 허송세월해야 했다.


1년 가까운 재활과 약물 판정 대기 기간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전성기의 구위를 잃은, 그저 그런 공을 던지는 서른 가까이 된 무명의 동양인 투수에게 더는 관심을 두는 이가 없었다.


"하늘이 나에게 인제 그만 포기하라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어려서부터 유일한 안식처이자 어쩌면 도피처였던 야구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에게 구위 하락과 제구력 난조를 넘어 부상이나 사고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결국, 나이가 많아 독립리그조차 갈 수 없던 그가 마지막으로 눈을 돌린 곳은 리틀야구단의 투수 코치직이었다.


마침 적절한 곳이 눈에 띄었다.


<투수 코치 구함. 시카고 리틀야구 서부리그 힌스데일>


지난 4월 론의 성공적인 데뷔전을 축하하는 뒷마당 파티에 초대받은 힌스데일의 게리 코치가 순우에게 우연히 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순우. 얼마 전 재미있는 친구가 들어왔어. 중국인인데 한눈에 봐도 투수다운 몸을 갖고 있더군. 월급도 박한 리틀야구팀의 코치로 온 이유를 물어보니 처음에는 별말이 없다가 후에 들려준 얘기가 정말 가관이더라고. 그 정도로 쓰러지고 좌절을 맛보았으면 야구공은 보기만 해도 미울 텐데 그 환한 얼굴로 어찌나 아이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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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하우스 투수 4인방 2 +8 16.12.04 7,036 173 11쪽
158 하우스 투수 4인방 1 +7 16.12.02 7,093 16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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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나도 한번 던져봐도 될까? +6 16.11.14 8,109 16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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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모리스의 기자회견 +5 16.11.11 8,505 173 13쪽
145 링컨 파크 촛불 집회 +11 16.11.10 8,658 182 12쪽
144 스컬리의 탄성 3 +8 16.11.08 8,899 18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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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소문으로만 들어온 K1 +11 16.10.24 9,550 190 12쪽
133 리조가 번트를 +9 16.10.23 9,263 189 11쪽
132 할아버지, 고맙고 사랑해요 +8 16.10.21 9,020 204 11쪽
131 무풍지대 +6 16.10.20 9,193 210 13쪽
130 어둠 속에 웅크린 늑대 +6 16.10.18 9,017 19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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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구장 담장에 내 사진을 걸어 놓아라 +8 16.10.07 11,111 212 13쪽
120 1루에서 어디까지 갈 테냐? +10 16.10.05 9,725 211 11쪽
119 여기까지 왔으니 어쩌겠나 +5 16.10.04 9,621 199 11쪽
118 눈에는 눈, 홈스틸은 홈스틸로 +7 16.10.02 9,843 212 12쪽
117 야구는 9회 말부터 +8 16.10.01 9,399 194 11쪽
116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8 16.09.30 9,255 186 10쪽
115 생사가 걸린 5차전 +6 16.09.28 9,446 19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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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계투진 모두 올려 보내더라도 +8 16.09.26 9,547 189 12쪽
112 구속보다는 코스 그리고 콘트롤 +9 16.09.24 9,465 185 10쪽
111 너를 K1급 클로저로 만들어 주마 +4 16.09.23 9,630 196 10쪽
» 내 이름은 대니 웡 +6 16.09.22 9,434 186 10쪽
109 10월의 사나이 +7 16.09.20 9,600 20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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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자네가 받아줘야 든든해 +8 16.09.16 9,451 194 9쪽
105 명성이 실력을 덮는다면 +6 16.09.15 9,467 20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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