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기쁜 소식
감투는 돌고래도 웃게 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생명처럼 여기던 컵스 구단의 이사직을 맡게 된 여섯 노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눈은 보석처럼 빛났다. 너무 돌고 빛나 회광반조를 의심하던 케이트와 미셸은 곧 두 손 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운이 차고 넘쳐 눈 덮인 뒷마당에서 14회 연장전까지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반갑고 기쁜 소식 또 있었다.
내셔널리그 신인상은 이미 리글리 필드에 들어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맷 더피가 169안타에 12홈런과 0.295의 타율을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상 후보에 올랐지만 154안타 26홈런에 0.275 타율의 주인공이자 컵스의 희망 브라이언트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출루율(OBP)과 장타율(SLG), 따라서 OPS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유일한 경쟁자는 팀 동료 론 마이어였다.
이미 2014년 ‘올해의 마이너리거’로 선정되며 데뷔 때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브라이언트에 비하면 30을 넘긴 나이에 비명단 초청 선수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여 불펜 최하위권에 간신히 이름을 올린 하와이 출신 론의 스타트는 너무나 초라했다. 하지만 빅리그에서는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시범 경기에서부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더니 시즌 끝까지 자신의 가치를 꾸준하고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15승 7패 ERA 2.25
203이닝을 던져 탈삼진 190을 기록하는 동안 WHIP 1.180에 볼넷은 고작 52개를 내준 특급 피칭으로 타고투저 시대였다면 사이 영 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릴 만한 성적이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나온 개표에서 17장의 1위 표를 얻은 론이 12표의 브라이언트를 눌렀다. 모델 뺨치는 외모와 안정된 수비에 과감하게 휘두른 방망이가 올려준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사한 그라도 안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자이언츠의 더피는 고작 한 표를 얻는 데 그쳤다.
초대형 FA 대박을 터뜨리며 컵스에 입성한 레스터가 8승으로 고개를 숙이자 안색이 새파래진 매든 감독을 웃게 한 론, 바다 건너 하와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거둔 그의 15승은 컵스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아내 바보, 아들 바보’에 ‘가정밖에 모르는 모범 투수’라는 별난 타이틀까지 얻은 그가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거머쥐자 ‘하와이를 빛낸 인물 Top 10’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리며 전국구급 대스타로 발돋움했다.
론의 수상 소식에 정작 축하를 받은 이는 따로 있었다.
“이봐, 사이먼 이사. 잘 키운 손자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이 나올 만하구먼. 축하해.”
“부실한 아이를 맡아 키우느라 고생 많았네.”
“그러게 말이야. 처음 여기 뒷마당 들어 올 때는.......“
“다들 왜 이래? 함께 키웠으면서 말이야.”
“그건 그래. 내가 마이클과 놀아주느라 허리가 더 휘었다니까.”
용접공이 아닌 투수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내를 찾아 작업복 차림으로 뒷마당에 성큼 들어선 론의 첫 모습을 어찌 잊을까. 축하인사를 건네는 노인들은 감개무량했다. 밤낮으로 뛰고 달리고 던지는 모습에 저러다 초상이라도 나는 게 아니냐며 걱정할 만큼 땀을 흘린 대가였으니까. 하지만 축하를 받던 사이먼의 얼굴 한편에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나자 노인들의 가슴은 찡했다. 멀리 잿빛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친구가 또다시 소식이 끊긴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된 소식 2탄!
<2015 내셔널리그 포수 부문 롤링스 골드 글러브 상에 시카고 컵스 죤 마이어 선정>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포지션별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골드글러브 포수 상을 죤이 받은 것이다. 각 팀의 감독과 코치들이 수비 능력을 평가하여 선정하는 골드 글러브는 최고의 공격수를 뽑는 실버 슬러거와 함께 기자들이 뽑는 신인상이나 MVP, 사이 영 상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상이다.
죤의 수상이 더욱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있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굳건히 골드 글러브를 지켜온 카디널스의 포수 야디어 몰리나를 제친 것이다. 다른 포지션의 수상자는 해마다 바뀌었지만, 포수는 7년째 요지부동이었다. 포수로서 몰리나의 재량이 그만큼 뛰어났지만 죤에게 물려주면서 카디널스는 컵스에 원한이 겹겹이 쌓이게 되었다.
지난해 주전 포수 카스틸로에 가려 출전 기회가 적었던 그가 K1에 이어 올해 론의 공까지 책임졌고 다른 투수가 오를 때에도 카스틸로에 비해 장타력이 앞서는 죤을 선호한 감독의 배려로 마스크를 쓴 덕분에 규정 타석 503을 간신히 넘겼다.
죤의 수상 소식에 또다시 축하 인사가 쏟아졌고 이번에는 아론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보게 아론 이사. 상 탄 손자 없는 노인은 서러워 살겠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처음 뒷마당에 촌닭처럼 두리번거리며 들어올 때만 해도 볼 배합은커녕 공도 제대로 못 받던 철부지를 저렇게 키운 것이 대단하지.”
특히 미셸은 남편의 수상만큼이나 반가운 죤의 수상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친누나처럼 대해준 듬직하고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 아니었던가. 자신을 위하는 만큼이나 거꾸로 남편에게는 산적이니 뭐니 하며 쌀쌀맞았던 죤이 최근 가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보슈....... 신인상 말이요....... 잘 됐소.”
“자네 덕분이야. 골드글러브, 축하하네.”
시비를 거는 건지 축하 인사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죤의 퉁명한 말에 론의 자물쇠 달린 입이 열리며 간만에 언어다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자네 덕분’이라는 말에 죤의 기분은 묘했다. 자신이 규정타석을 채우게 된 일등공신이 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도 ‘당신 덕분이요’라고 해야 하나....... 안 해도 알아듣겠지.’
가까이하기엔 여전히 먼 두 남자에 얽힌 상 말고 진정한 경사는 따로 있었다.
사이 영 상!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각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는, 투수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상이다.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투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기도 하지만 최고의 대열에 들지 않고는 후보에 오를 수 없다.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후보는 4파전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게릿 콜, 잭 그레인키, 커 쇼 그리고 권순우.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에이스 콜은 상반기까지 다승 경쟁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 들어 페이스가 떨어지며 19승 8패로 시즌을 마쳤다. 빼어난 성적임은 틀림없으나 2.60의 평균자책점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저스의 팬들은 사이 영 상이 이미 LA에 입성했다고 믿었다. 19승 3패를 기록한 2선발 그레인키의 평균자책점 1.66은 정확히 20년 전 1.63의 주인공 그렉 매덕스와 지난해 0점대 방어율로 모두를 경악시킨 K1을 제외하면 최저다.
그레인키의 경쟁자는 1선발 커 쇼. 16승 7패라는 예년과 비교하면 초라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를 강력한 후보로 올린 것은 301탈삼진이었다. 지난해 K1의 피칭에 자극을 받아 시도한 투구 패턴 변화의 시행착오로 전반기에 실점이 많았으나 그후 자리를 잡은 투구폼에 힘입어 후반기 평균자책점을 1점대 초반까지 끌어내려 1점대 ERA와 300탈삼진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세울 뻔했다. 결국 2.13으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2002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원투 펀치였던 랜디 존슨의 334탈삼진과 커트 실링의 316탈삼진 이후 13년 만에 300탈삼진 시대를 열었다.
권순우의 245탈삼진은 분명 커쇼에 뒤졌다. 하지만 그의 스탯을 마저 보고 얘기를 해야 한다.
239이닝을 던져 기록한 25승 3패 ERA 0.92, WHIP 0.605.
투수의 능력을 저울질하는 주요 지표인 다승, 승률, 평균자책점과 출루 허용률 부문에서 2위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빅리그 선발투수 전체에서 선두를 달렸다. 이쯤 되면 흔히 듣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또은 ‘수상자 예측이 어렵다’와 같은 관례적 멘트는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을 결정하는 기자단의 투표가 정규 시즌이 종료된 직후 실시되기에 월드시리즈 7차전을 퍼펙트게임으로 장식한 K1의 길이 남을 기록은 고려되지 않았겠지만,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투수 개인의 활약과 성적에 초점을 맞춘 사이 영 상에 비해 최우수 선수상(MVP Award)은 정규시즌 162경기를 치르는 동안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선수를 표창하는 상이다. 두드러진 활약은 자연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은 ‘팀의 기여도’ 또한 포함된다고 보는 팬들이 많았다. 지난해 K1의 MVP 수상 실패의 원인을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두는 팬들이 올해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MVP에 도전장을 내민 선수는 3명의 타자와 2명의 투수.
172안타에 42홈런을 쏘아 올린 워싱턴 내셔널스의 브라이스 하퍼, 182안타에 33홈런의 주인공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폴 골드슈미트 그리고 171안타를 쳐낸 신시내티 레즈의 조이 보토. 투수는 다저스의 잭 그레인키와 권순우였다.
11월 중순에 공개된 MVP 1위 표 득표 결과는 싱거웠다.
권순우: 22
브라이스 하퍼: 5
폴 골드슈미트: 3
사이 영 상 결과는 더욱 싱거웠다. 1위 표 30장 중에서 권순우가 27표를 얻으며 거의 독식했기 때문이다.
“구정한 위원, 지난해 K1이 신인왕과 사이 영 상을 동시에 받더니 이번에는 사이 영 상과 MVP를 거머쥐는군요.”
“신인왕과 사이 영 상 동시 수상은 매우 진귀한 기록입니다. 1981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이후 처음이죠.”
“그럼 사이 영 상과 MVP 동시 수상은 어떻습니까?”
“기록을 보면 1963년 샌디 쿠팩스르 시작으로 가장 최근이었던 2011년 저스틴 벌랜더까지 몇 번 있었습니다.”
“투표한 기자들이 권순우 선수의 어떤 점을 고려했을까요?”
“아무래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방어율이 1을 넘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구정한의 추측대로 K1의 2관왕 관련 기사 대부분은 그의 평균자책점을 먼저 꼽았다. 미시간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사 역시 그중 하나다.
<K1이 32경기에 선발로 올라 9회까지 던져 평균 한 점을 채 내주지 않은 것을 데드볼 시대가 아닌 라이브볼 시대에 그것도 2년 연속 목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2015년을 주시한 야구 팬들은 가치와 보람을 느낄 것이다. 239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은 단 17개를 허용하고 11번의 완봉승을 거둔 K1이 올해 마지막 경기이자 팀의 107년 만의 우승을 퍼펙트게임으로 거둔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 아쉽게 놓친 MVP 수상을 이번에 성공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 하겠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