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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 님의 서재입니다.

투수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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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prk
작품등록일 :
2016.04.26 23:3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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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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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DUMMY

백악관이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초청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그렇다고 해서 107년이나 이어온 전통은 아니었다.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초대하는 관례에 따라 2015년도 우승팀 시카고 컵스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것은 2016년 7월이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선수단을 맞이한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넘쳐나는 유머 감각으로 70년 만에 깨진 염소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주제를 재치있고 흥미롭게 이끌어갔다. 만찬장은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을 위해 거금을 들여 양복을 맞춰 입은 매든 감독은 10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는 의미로 등 번호 107을 새기고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컵스 홈 유니폼 두 세트를 오바마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했다. 그 자리에서 선물을 펼쳐 입어보며 환한 미소를 지은 그는 컵스와 함께 시카고를 연고지로 쓰는 화이트삭스의 열성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 바른 대통령답게 컵스 외의 다른 구단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백일 붉은 꽃 없고 천일 좋은 사람 없다지만 이날 잠시 경험한 오바마는 초강대국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고 구수한 입담으로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품성 좋은 이웃집 아저씨였다. TV를 통해 컵스의 우승 축하제를 지켜본 기억을 떠올린 대통령은 연승 기원 케익에 대해 묻고는 이렇게 익살을 떨었다.


“고우 컵스 고우! 컵스의 연승을 기원합니다. 올 시즌 성적도 상당히 좋더군요. 또 이기면 내년에 다시 이곳에 초청받아 올 텐데, 어쩌죠? 난 이곳에 없을 겁니다. 임기가 곧 끝나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여러분을 다시 보기 위해 장기독재를 고려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좀 팍팍 밀어주세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기자들에게 일러바치면 안 돼요. 임기를 못 채우고 내려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다음에 다시 오면 나 대신 우리 민주당의 누군가가 내 자리에 앉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첫 여성 대통령이.......”


그의 장기 집권은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으며 선거 결과 예측 또한 틀렸다. 2016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서 백악관을 다시 방문한 것은 이듬해 6월이었다. 오바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풍채 좋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반갑소. 당시 선거로 마음을 졸이느라 경기를 못 봐서 아쉬웠소.”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 그의 인사말에서 초청이 전통을 따른 것이지 신임 대통령이 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치와 담쌓은 순우와 대니도 느낄 수 있었다. 작년과 같은 양복을 걸친 매든 감독이 등 번호 2016과 사인이 새겨진 유니폼을 건넸으나 야구에 흥미가 없는 트럼프는 정성을 다해 준비한 선물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재테크 관련 베스트셀러 한 권을 선물했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무엄한 말이 모임 후 선수단 사이에 돌았다.


“참, 시카고에서 왔다고 했죠? 요즘 그 동네에 아직도 날 반대하는 데모가 계속되는가요?”


할 말이 그렇게도 없었는지, 애써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건넨 농담이었으나 말투에 불만이 살짝 묻어 나오면서 분위기는 순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여전히 반쪽 대통령이라는 딱지가 붙을 만했다. 자신의 무례를 의식했는지 잠시 책상을 쳐다보던 트럼프는 국면돌파용으로 새로운 화제를 끄집어냈다.


“거기 K1 선수. 올해 연봉 킹이던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 거요? 세금으로 절반이 날아갈 텐데, 내가 절세 방법 좀 알려줄까? 세금 낼 거 다 내고 어떻게 살아, 그렇지 않소? 하하하. 그리고 거기, 티모시라고 했던가. 크리켓 하다가 야구로 업종전환한 뉴질랜드 원주민이라 들었소만. 어때요, 우리 미국 살 만해요? 아무렴, 거기보다는 낫지. 하하하.”


일그러진 티모시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무실에 울려 퍼진 부동산 재벌 대통령의 솔로 웃음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부심과 긍지로 가득 찼지만 이미 얼어붙은 분위기는 장기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당선 직후 연봉을 포기하고 1달러만 받겠다는 뉴스를 보고 막연한 호감을 가졌던 순우의 마음이 닫힌 순간이기도 했다.


‘모르면 잠자코 있던지. 뉴질랜드라니, 무식하게.’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선수단과 상관없이 혼자 실없이 웃다가 명품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보는 대통령의 마음을 읽은 비서는 재빨리 선수단을 전시관으로 안내했다.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작년의 방문에 비해 이번에는 시간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전시관은 백악관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였다. 역대 대통령과 주요 사건을 찍은 큼지막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춘천의 지현 양은 잘 지내고 있나요?”


100여 개의 촛불처럼 생긴 노란 전등 아래 전시된 사진들을 보며 일행을 따라 걷던 순우 옆에 언제 붙었는지 검은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넌지시 말을 건네왔는데 그 내용이 문제였다.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쳐다보는 순우를 향해 남자의 입에서 더욱 놀라운 말들이 나직이 튀어나왔다.


“ 놀라지 마십시오. 잠시 얘기 좀 나눌까요. 천천히 걷도록 해요.”


별로 볼 것도 없는 사진에 정신이 팔린 일행의 뒤편으로 쳐지자 관람객으로 위장한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요점만 얘기하겠소. 우리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북한의 지도층이 당신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같은 민족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 모양입니다. 물론, 지현 양이 당신의 애인이고 원산 출신의 탈북자라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고요. 아, 걱정은 마시오. 원산의 가족이 해를 입지는 않을 거요, 그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우리 예상으로는 올 시즌이 마치면 그쪽에서 당신을 초청할 수도 있소. 워낙 예측이 어려운 사람들이긴 하나 우리 쪽 판단이 맞을 거요. 초청을 받아들일지는 당신이 결정할 일이지만, 만약 받아들인다면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어떻겠소? 정확한 정보를 쥐고 있는 우리 측 의견을 고려하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지현의 원산 가족 이야기까지 나오자 순우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쪽은 누굽니까? 내가 결정하는 일에 왜 그쪽 말을 들어야 하나요?”

“흥분하지 마시오. 우리가 분석하기로는 그쪽 내부 사정이 최근 상당히 복잡해요. 당신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글쎄요, 체코의 삼촌과 친한 사이라고나 할까, 지난번 축구 경기 보러 유럽 다녀오는 길에 둘이 만났다는 말도 들리던데, 이건 못 들은 거로 하세요.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 아무튼 우리와 협력하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열한 그가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는 순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다른 관람객 일행에 묻혀 사라졌다. 산속을 헤매다 도깨비 만난 기분이랄까, 얼떨결에 받아든 명함 한가운데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초이 시리(Choy Shirie)


백악관 로고도 직함도 없이 이름과 연락처만 적힌 이상한 명함에 상당히 이국적이고 조금은 촌스러운 이름이 보였다.


‘어떤 사람인지, 맡은 일은 뭔지 밝히지도 않고 협조하자고? 이런 게 말로만 듣던 비밀 라인이라는 건가? 웃기고 있네.’


어이가 없어 명함을 버릴 쓰레기통을 찾으려고 주위를 살피니 마침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역대 대통령의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바로 아래 금박을 씌운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리처드 밀허스 닉슨, 제37대 대통령>


아무리 야구공만 쥐고 살아왔고 남의 나라 정치에 무관심해도 ‘워터게이트’라는 단어 정도는 몇 번 들어본 순우다.


‘아, 이 사람이 바로 탄핵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인물이구나. 생긴 것은 멀쩡한데. 가만, 탄핵이라, 그리 생소한 단어는 아닌데 어디서 들었더라. 최근 많이 들어봤는데.’


은은하게 금박 테두리 사진을 비추는 100여 개의 노란 촛불형 전등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어봤으나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갑자기 춘천의 지현이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괜히 왔군.’


절세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신임 대통령과의 만남도, 한반도 정세 운운하며 무게를 잡다가 사라진 초이 시리라는 정체불명 인물과의 대화도 궂은 고기 먹은 듯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으로 남았다.


두 번째 백악관 방문은 선수단 모두에게도 꺼림칙하고 씁쓰름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을 짓누른 침묵이 이를 대변해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던 죤이 투덜거리며 인용한 속담에 그나마 매든 감독과 몇몇 선수가 소리 내 웃으면서 경직된 분위기가 풀렸다.


“에이, 요강 뚜껑으로 물 떠먹은 셈 치자.”


작가의말

지난 11 컵스가 우승하고 며칠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SNS 통해 임기가 끝나는 1 20 전에 컵스를 초청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권 교체로 바쁜 그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글에서는 다음 대통령이 초청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2016 7월에 백악관을 방문하여 오바마를 만난 팀은 컵스가 아니라 캔자스시티 로열스입니다.

 

미안해요, 로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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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미소로 흥한 투수, 미소로 망하다 +7 16.09.13 10,522 207 9쪽
103 하이브리드 +6 16.09.12 9,851 20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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