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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 님의 서재입니다.

투수 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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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prk
작품등록일 :
2016.04.26 23:35
최근연재일 :
2017.10.2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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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09.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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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미소로 흥한 투수, 미소로 망하다

DUMMY

지난해 4월 뒷마당 파티에 초대받아 놀러 왔다가 래리의 영상과 마크의 분석을 본 이후 각성하여 더욱 정교한 타격술을 가다듬어온 그는 타자의 본능으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정신을 집중하며 원하는 구종을 기다렸다.


‘높은 패스트볼에 승부를 건다.’


1, 2루에 있는 주자는 신경 쓰지 않고 초구와 2구를 몸쪽 깊숙이 찔러 넣으며 ‘딴생각 말고 조용히 서 있다 들어가라’는 메시지를 보낸 콜 또한 투수의 예감으로 7회가 끝나면 계투로 교체될 것을 느끼고는 환상적인 삼진으로 이닝을 종료하여 팬들의 환호를 받아낼 욕심이 저 밑에서 꿈틀대며 올라와 그의 이성을 건드렸다.


3구 사인을 받고 와인드업을 하기 직전 투수는 습관처럼 타자에게 그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보냈다. 배트를 흔들거리며 미소를 건네받은 타자는 고개를 약간 좌우로 흔들며 받은 만큼 돌려줬다. 5회에 K1이 지었던 묘한 미소를 최대한 흉내 내본 것인데 콜은 순간 기분이 상했다.


“어쭈, 이젠 개나 소나 다 웃어!”


부동심을 유지하며 본신의 모든 힘을 한순간에 쥐어짜 던져도 모자를 판에 리듬이 깨진 감정을 싣고 와인드업에 들어간 투수의 손에서 빠져나온 공이 정상적인 구위를 보이며 원하는 곳으로 들어갈 리가 없었다. 바깥쪽으로 빼라는 포수의 사인과는 달리 포수 마스크 정면을 향해 직선으로 들어오는 공, 바로 리조가 애타게 기다리던 바로 그 코스였다. 보름달처럼 크고 선명하게 보인 공을 끝까지 노려보다가 방망이가 나갔다.


<따악!>


1루수 뒤편에 떨어진 공.


시원한 타구는 아니었어도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올 여유는 충분했다.


스코어 1-0


컵스 타선은 이렇게 단 한 번의 천금 같은 적시타로 이날 K1에 필요한 점수를 충분히 뽑았다. 리조의 1타점은 이날 컵스가 올린 처음이자 마지막 득점이 되었지만, 타자들은 자기 몫을 충분히 했다고 믿었다. 벤치에서 안절부절 서성이던 매든 감독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리조 만세’를 부르며 승리를 확신했고 코치진 누구도 그의 때 이른 확신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관중석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K1을 상대하며 잃은 한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모를까.


앞이 캄캄해진 허들 감독이 비틀거리며 창백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갔고 콜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숙이고 내려왔다.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그를 향해 ‘K1을 상대하여 7회까지 버티고 1실점이 어디냐’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소수의 팬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한 점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고 일부는 일찌감치 결과를 예상하며 얼어붙었다.


반면, 컵스의 팬들은 표정관리에 들어가며 더이상 응원을 펼치지 않았다. 오래된 영화관에서 이미 몇 번이나 본 비 내리는 삼류 영화를 다시 보며 시간을 때우는 노인들처럼 긴장을 풀고 팔짱을 끼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을 뿐.


“아, 아. 이렇게 7회에 들어와 드디어 스코어에 균형이 깨지는군요.”

“파이리츠의 1실점입니다. 파이리츠가 실점했습니다. 콜은 아쉽게도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컵스는 투수를 바꿀 리가 없겠죠.”


중계석의 마이크는 해설진의 침으로 뒤덮였고 기자석 사람들의 손가락은 노트북 키보드를 신들린 듯 두드렸다.


곧이어 필승 계투 마크 멜란콘이 올라와 뜬공을 유도하여 이닝을 마쳤으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계투임에는 분명하되 평소처럼 필승을 연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5회의 그 미소 말이야. 처음 보던 건데.”

“무슨 미소? 아, 그거? 아니 그걸 어떻게 봤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파란 하늘이 멋있어서......."


5회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갈 때 물어보려다가 집중력을 해칠까 봐 이제까지 참아낸 죤의 인내심이 실로 대단했지만, 멜란콘으로 투수교체 되는 틈을 타 결국 질문을 던졌다. 햇볕에 알맞게 그을린 자신의 구릿빛 얼굴 전체에 번진 미소가 전광판 가득히 잡혀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준 것을 아직 모르는 친구의 모호한 대답은 빨개진 얼굴과 더불어 명백한 추측을 가능케 했다.


“흐흐흐. 알았어, 친구.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어 주지. 아~ 근데 나는 왜 갑자기 앨리스가 보고 싶어질까?”


대망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한 첫 관문 와일드카드 단판전 운명을 코앞에 둔 배터리가 나눌 대화는 아니었으나 둘은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 죤은 친구의 능력을 믿었고 투수는 포수의 리드를 신뢰했다.


7회 말 파이리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잃은 한 점을 만회하고 승리를 위해 다시 한 점을 올려야 하는 타자들의 표정은 절실함을 넘어 애처로웠다.


마운드에 올라 로진백을 손에 잔뜩 묻힌 컵스의 투수. 리조의 타점이 어깨를 가볍게 해준 걸까, K1은 아껴둔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두타자 알바레즈가 몸쪽 포심에 얼어붙은 것을 시작으로 남은 이닝은 일사천리였다.


“구 위원, 4회부터 팔을 내리더니 7회 들어와서는 다시 올려 특유의 강속구를 뿌려대기 시작하는군요. 로봇이 팔을 띠었다가 붙이듯 저렇게 내렸다가 올려도 되는 겁니까?

“팔의 각도를 달리한 피칭은 이미 여러 번 봤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요.”

“컵스 팬들에게는 7회부터 사이다 이닝으로 불러도 될 만큼 시원하군요. 그런데 K1이 오늘 또다시 진귀한 기록을 세우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7회에 9개를 던져 삼진 세 개를 기록했는데 이건 통계상으로 볼 때 노히트 만큼 보기 어렵습니다. 저희 기록으로는 K1이 재작년 데뷔 초에 한 번 보인 이후 지금까지 다섯 번을 기록했네요”

“투수를 너무 믿어서 그런가요, 외야수들은 아예 허리를 펴고 서 있군요. 이 정도라면 수비수들은 월차를 써도 될 것 같은데요.”


7회에 들어서자 미트에 들어와서도 돌 만큼 회전수를 최고치로 올린 K1은 파이리츠의 간판타자 알바레즈를 시작으로 타자들을 도마 위의 생선처럼 요리하기 시작했다. 각오를 다지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은 회초리 앞에 종아리를 걷어 올린 학생이 되어 투수의 공에 처참하게 당했다.


2루 베이스를 밟아본 타자는 없었고 운 좋은 3명이 산발적으로 1루에 서성대다 이닝을 마쳤다. 7회 이후 유일하게 빗맞은 공으로 안타를 만든 워커가 9구 3삼진 퍼레이드에 제동을 걸어 파이리츠를 불지옥 입구에서 꺼내준 영웅으로 떠올랐을 뿐이다.


K1은 볼넷 없이 단 3개의 안타를 내주며 13개의 삼진을 잡았고 컵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에 버금가는 찬사를 받아가며 시카고로 금의환향했다.


<컵스, 파이리츠를 밟고 디비전으로>

<K1 3피안타 13삼진, 첫 포스트시즌 완봉승>

<기다려라, 카디널스. 컵스가 간다>


요란한 기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미소로 흥한 투수, 미소로 망하다>


이날의 경기로 콜이 더이상 컵스 타자를 향해 그 괴이한 미소를 날려 보낼 일은 없겠지만, 뒷마당으로 돌아온 K1은 이와 비슷한 일로 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 미소 말이야. 솔직히 자백하면 조용히 넘어갈게."

“그게......."


새터민 지현은 수습 기간을 마치고 강원 리틀야구단 본부 사무직에 정식 채용되었다. 춘천에 정착한 할아버지 내외는 수시로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는 고향 처녀가 고마웠고 순우와 통화할 때마다 지현을 언급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지현에게 마음이 쏠린 순우는 본부 홈페이지 조직표에 붙은 직원 사진을 보며 남몰래 그리움을 달랬는데, 특히 이런 영역에 눈치 9단 죤의 레이더를 피해 가는 건 불가능했다. 시즌이 시작되고 얼마 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죤이 본부 직원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친구의 마음을 읽었고 프레드를 통해 곧바로 본부로 전달되었다.


“껄껄, 난 이미 알고 있었지. 이봐, 프레드. 자네도 리그만 붙잡고 이럴 게 아니라 K1 좀 본받게나.”

“참, 감독님도. 그런데 야구밖에 모르던 그 친구가 그런 면이 있었군요.”

“원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제 우리가 잘 엮어줘야겠지.”


말을 마친 이 감독이 고개를 돌려 문서 작성으로 바쁜 지현을 불렀다.


“ 이봐요, 지현 씨. 5월 중, 고등부 감독 코치진이 미국 연수 갈 때 같이 갑시다.”

“예? 갑자기 미제는, 어머 죄송해요. 미국은 왜요?”

“본부 직원은 의무적으로 한 번은 다녀와야죠.”

“어머, 그 먼 미국까지. 전 여권이 없는데요. 국정원에서......."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오래 한 새터민의 경우 여권 발급이 정착 1년 후로 제한되는 경우가 있지만 지현의 경우는 달랐다. 더구나 당당히 취직되어 출장을 간다는 말에 국정원 직원은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왔고 신청한 여권은 며칠 만에 나왔다.


5월이 되어 미국에 온 연수팀을 뒷마당으로 초청한 순우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 지현?”

“예. 저에요, 오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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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쓸쓸한 뒷마당 +6 16.12.08 7,184 16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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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하우스 투수 4인방 2 +8 16.12.04 7,037 173 11쪽
158 하우스 투수 4인방 1 +7 16.12.02 7,094 16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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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시카고 컵스 구단 이사 +11 16.10.28 9,601 223 10쪽
136 2015년 11월 4일 밤 10시 39분 +17 16.10.27 9,325 229 10쪽
135 공에 모든 것을 거는 투수 +9 16.10.25 9,369 212 9쪽
134 소문으로만 들어온 K1 +11 16.10.24 9,551 190 12쪽
133 리조가 번트를 +9 16.10.23 9,264 189 11쪽
132 할아버지, 고맙고 사랑해요 +8 16.10.21 9,021 20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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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어둠 속에 웅크린 늑대 +6 16.10.18 9,019 19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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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눈에는 눈, 홈스틸은 홈스틸로 +7 16.10.02 9,844 2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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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계투진 모두 올려 보내더라도 +8 16.09.26 9,548 189 12쪽
112 구속보다는 코스 그리고 콘트롤 +9 16.09.24 9,466 185 10쪽
111 너를 K1급 클로저로 만들어 주마 +4 16.09.23 9,631 196 10쪽
110 내 이름은 대니 웡 +6 16.09.22 9,435 186 10쪽
109 10월의 사나이 +7 16.09.20 9,602 20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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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가족을 위해 던졌습니다 +8 16.09.17 9,487 204 12쪽
106 자네가 받아줘야 든든해 +8 16.09.16 9,452 194 9쪽
105 명성이 실력을 덮는다면 +6 16.09.15 9,468 206 9쪽
» 미소로 흥한 투수, 미소로 망하다 +7 16.09.13 10,520 207 9쪽
103 하이브리드 +6 16.09.12 9,850 202 9쪽
102 수줍음 띤 환한 미소 +6 16.09.10 9,965 19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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