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빗발친 팬들의 항의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2016시즌 컵스는 가공할 전력을 갖췄다. 103승 58패로 만든 승률 0.640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투수력은 물론 타력과 주루에 수비까지 야구 경기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우선 투수력을 보자.
컵스의 투수진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인 3.15를 기록했는데 중심축은 26승의 K1과 19승을 올린 론이 버티고 있는 선발진이었다. 3선발 아리에타의 15승까지 포함한 세 명의 중심 선발 합작 60승은 빅리그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울러 선발진의 ERA 2.96은 내셔널리그 평균인 4.34와 큰 격차를 보였으며 막강 선발을 자랑하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3.60이나 메츠의 3.61은 물론 자이언츠의 3.71과 다저스의 3.95를 가볍게 앞섰다. 게다가 리베라급 커터로 데뷔 첫해에 44세이브를 올린 대니의 문턱을 넘은 타선은 아직 없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것이 야구다. 화려한 선발진만큼이나 타선 또한 뜨거웠다. 코글란-리조-브라이언트-파울러-조브리스트-러셀로 이어진 중심타선의 득점력은 해발 1,600미터의 고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타자 천국 투수 지옥이라 불리며 파크 팩터 115의 악명을 떨치는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에만 뒤질 뿐이었다.
팀 타격에 파크 팩터를 적용하여 득점 생산력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wRC+ 수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106을 기록한 컵스는 평균값 94를 보인 내셔널리그에서 단연 1위이며 무시무시한 타선을 앞세워 여러 번 정상에 오른 카디널스의 104는 물론 피츠버그의 99와 다저스의 98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토록 다른 팀들을 압도하던 전년도의 전력에 변화가 생긴 것을 감지한 것은 개막전 이후 12경기를 치르고 나서였다. 선발진의 구위는 변함이 없었으나 허리 역할을 하는 불펜이 부실했고 득점력이 위축된 타선 또한 승보다 패가 늘어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었다. 이기는 경기가 별로 없다 보니 대니가 오를 일도 없었다.
“불만 지르는 불펜을 바꿔라!”
“타선을 몽땅 갈아치워라!”
최강의 컵스가 지구 최하위권을 맴돌던 4, 5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자 인내심이 바닥난 팬들이 들고일어났다. 성난 민심의 외침을 매든 감독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타선과 불펜의 보강을 요구하는 팬들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주어진 자원으로 작전을 짜고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감독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누구는 지고 싶어 이러는 줄 아는가? 코글란과 파울러를 놓친 것이 내 잘못인가 말이다. 솔로, 슈와버, 바에즈의 방망이는 나쁘지 않지만, 수비가 약하니 주전으로 쓰기 어려워. 게다가 해멀과 우드 그리고 채프먼의 공백을 메워줄 래키, 스트롭, 그림의 구위가 저렇게 떨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호주에서 온 티모시는......."
지난 2월 중순 비명단 초청 선수(NRI)로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에 합류한 티모시의 투구폼은 누가 봐도 해괴망측했다. 평균을 훨씬 밑도는 작은 키에 전형적인 오버핸드 스로 폼을 잡고는 머리 위 가장 높은 곳을 릴리즈 포인트로 잡아 손목을 과하게 꺾으며 던지는 모습은 좋게 말하면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인상적이었고 솔직히 얘기하면 20개도 못 던지고 제풀에 쓰러질 구위불이십의 자폭 폼이었다. 회전을 많이 먹고 들어오는 변화구에 비해 패스트볼은 형편없어 선발이나 마무릿감도 아니었다.
그런데 불펜 피칭을 마치고 라이브 피칭에 들어가 타자들을 세워 놓고 던지자 그를 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타자들이 그의 공에 방망이를 갖다 대지 못했다.
‘괴상한 투구폼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걸까?’
코치들의 이러한 추측은 타이밍에 천재라 할 수 있는 리조와 브라이언트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면서 틀렸음을 증명했다. 더욱 객관적인 평가는 3월 초부터 시작된 시범 경기를 통해 내릴 수 있었다.
“저 원주민 친구 말입니다. 변화구 중에 너클볼을 빼고는 못 던지는 구종이 없네요. 모든 종류의 커브에 종횡으로 떨어지는 고속과 저속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기본이고 손목을 비틀어 꼬아 던지는 스크루볼까지 능숙합니다. 손목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꺾이고 휘는 것이 고탄력 고무 막대 같아요. 단지......”
칭찬 일색이던 보시오 투수 코치가 잠시 끊은 후 말을 이었다.
“왼발을 내딛는 키킹 동작이 아직 부자연스럽습니다. 본인 말로는 크리켓 시절 뒤에서 도움닫기로 뛰어들어오며 던지던 습관에다 시카고 뒷마당에서 최근 익힌 새로운 투구 동작까지 섞여 자신만의 폼으로 완전히 소화해 내지 못한 상태라더군요.”
감독의 눈에도 두 번 연속 밟는 이중 키킹은 문제가 있었다. 와인드업 동작에서 발을 움직여 타이밍을 임의로 조절하는 것으로 보였다. 시범 경기라 문제 제기가 되지 않고 있지만, 시즌에 들어가면 보크 판정을 받을 수도 있는 애매한 폼이었다.
“투구 전에 발을 저렇게 움직이면 보크가 됩니다. 하지만 투구 동작에 들어간 상태에서 왼발을 살짝 움직이거나 땅을 살짝 딛게 되면 고의적 동작이 아니므로 보크가 되지 않습니다.”
감독 또한 코치의 말에 동의했다. 무게 중심의 이동이 요구되지만, 발의 움직임을 조금만 더 늦추면 지적받을 리스크가 없는 데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데 아주 좋은 무기가 된다.
“그리고 티모시가 패스트볼에는 약합니다. 변화구에 주는 스핀은 기가 막히게 좋은데 속구에 그런 회전을 주는 것에는 낯설어하네요. 크리켓 공을 잡을 때부터 변화구 전문으로 훈련을 받은 모양입니다. 어깨는 아주 튼튼하던데요.”
코치가 그의 부실한 속구를 지적했지만, 감독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많은 변화구 전부 수준급으로 던질 수 있다면 굳이 속구로 대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슬로 커브–종 슬라이더–체인지업–싱커 조합 정도면 위기 상황에서도 충분히 삼진을 잡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른 건 걱정 말고 이제부터 키킹 타이밍을 최대한 늦추는 훈련을 시키도록!”
평생 던져온 폼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구로 전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중 키킹은 이제 걸음마 단계였다. 몸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인 만큼 한두 달이면 수정이 가능하리라 여긴 감독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구정한 위원, 요즘 뒷마당 출신의 네 번째 하우스 투수 티모시 와룽가가 화제의 인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팬들은 K1과 죤에 이어 특급 선발 론과 철벽 마무리 대니에 이어 티모시까지 등장하자 이들을 발굴하고 훈련한 것으로 알려진 컵스의 여섯 이사에 대한 관심까지 덩달아 높아지고 있어요. 거기만 들어갔다 나오면 리그를 뒤흔드는 초절정 투수로 변신하니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이해할 만합니다.”
“지난 시즌 데뷔한 대니가 신인상과 구원투수 상을 챙기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는데요, 그에 비교하면 티모시는 어떤 선수인가요?”
“다들 아시다시피 호주 원주민 티모시는 원래 크리켓 투수였습니다. 지난해 중반 뒷마당에 합류했고 지난 2월 스프링캠프에 들어가 시범 경기에서 좋은 변화구로 매든 감독의 마음을 훔쳤는데요. 시범 경기 후반에 들어 갑자기 마운드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계투진에 이름을 올렸더군요.”
“하지만 개막전은 물론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요?”
“지난 4월 25일, 그러니까 시즌 20번째 경기를 치른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원정 3연전 중 두 번째 경기 8회에 등판하며 빅리그 데뷔식을 치렀죠. 코치에게 슬쩍 물어보니 피칭에 남아있는 크리켓 투구폼을 제거하느라 등판이 늦어졌다고 하더군요.”
“그의 등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팬들이 많던데요.”
“그럴 만합니다. 컵스로서는 FA로 풀린 중심 타선 두 명과 채프먼을 포함한 불펜 셋을 놓친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했어요. 티모시의 등판 전까지 치른 19경기에서 고작 7승을 올리며 상당히 불안한 스타트를 보였죠.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인 선발이 잘 막아준 경기를 계투진이 계속 실점했고 기존의 강타자들까지 저조한 분위기를 타면서 신시내티 레즈와 지구 꼴찌 다툼을 벌이는 형국이 되고 말았죠.”
“컵스가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승률을 높여 간 것이 바로 그때였는데요.”
“맞습니다. 선발이 6회까지 책임지고 내려가면 래키와 스트롭이 마운드를 이어받아 8회까지 끌고 가다가 점수를 내주고 역전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무리 대니가 세이브를 올릴 기회도 없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티모시가 7회나 8회 실점의 위기에 올라 급한 불을 끄면서 대니가 9회에 오를 일이 많아진 거죠. 지난 시즌에 봤듯이 대니의 리베라급 난공불락 커터가 올 시즌에도 여전한 구위를 보이며 이때부터 승수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구 위원, 이제 6월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순위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개인 기록도 눈길을 끌고 있는데 티모시의 ERA 0.00이 단연 가장 돋보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중간계투인 데다 데뷔가 늦어 등판한 이닝 수가 적지만 4월 25일부터 지금까지 16경기 18이닝에 올라 산발 안타 몇 개를 허용하면서도 아직 실점이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런 기록이 오래갈 리는 없겠지만 18이닝 무실점 피칭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인 데다 주자를 둔 위기 상황에 오른 적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로 대단한 기록입니다.”
“타자들이 어째서 그의 공을 공략하지 못하는 걸까요?”
“바로 어제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가 그의 공을 분석한 리포트가 온라인에 올라왔습니다. 그 리포트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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