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티모시 와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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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이내 앞선 상황에서 등판하여 1이닝 이상 투구 혹은 점수 차에 상관없이 3이닝 이상 투구.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홀드의 조건이다.
선발과 마무리 사이 중간 계투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적용되기 시작한 홀드는 한국과 일본에서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만, 정작 중간계투로써 승리에 공헌한 투수들의 가치를 인정하자며 30년 전에 얘기를 꺼낸 메이저리그에서는 여전히 비공식 기록으로 남아있다.
세이브 조건을 만들어 놓고 물러나는 투수에게 부여되는, 하지만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는 구석 자리 기록인 홀드가 컵스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7시즌 5월 말이었다.
언론이 먼저 호들갑을 떨었다.
<신예 티모시 와룽가, 12연속 홀드 기록>
<붉은 별 대니의 길잡이 전문 티모시>
<호주 원주민 출신 티모시, 데뷔 이후 무실점 퍼레이드로 컵스 막강 허리 등극>
<ERA 0.00을 고수하는 링컨 뒷마당 출신 네 번째 투수>
<이사들의 마지막 비밀 병기, 신기막측한 변화구로 무장한 티모시>
<크리켓의 유망주가 빅리그를 주름잡다>
<홀드왕 타일러 클리퍼드를 뛰어넘을지>
그의 존재는 2016시즌 후반에 알려졌다. 컵스의 60년대 스타이자 107년 만의 우승을 달성한 직후 구단 이사로 위촉된 여섯 노인의 손을 거친 이른바 뒷마당 출신 선수들이 하나같이 데뷔와 함께 리그를 평정하는 넘사벽급 기량을 보이자 조용하고 평범했던 링컨 뒷마당은 버뮤다 삼각지만큼이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장소가 되었다.
K1과 그의 전담 포수이자 슬러거 죤, 특급 선발 론과 붉은 별 대니가 싹쓸이하여 뒷마당 진열장에 넣어둔 트로피가 차고 넘쳐 진열대 확장 공사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자 잔뜩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들과 팬들이 드론을 띄웠는데 카메라에 생소한 인물이 잡힌 것이다.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그의 이름이 알려지고 사장과 감독이 그를 직접 영입하여 2017년 스프링캠프에 합류시킬 때만 해도 팬들의 관심은 거의 없었다. 시범 경기에서 짧은 이닝을 소화해내며 무실점 호투를 이어가고 개막 엔트리에까지 이름을 올렸으나 K1과 론, 대니의 명성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K1의 눈부신 완봉승과 론의 파워피칭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9회에 올라 신속히 경기를 끝내는 대니에 정신이 팔린 팬들의 눈에 드디어 무실점 행진과 연속 홀드를 기록하는 신예 불펜투수가 들어왔다. 대니 앞에 올라 지저분한 베이스를 말끔히 정리하고 내려가는 그에게 ‘8회 전문’이니 ‘베이스 클리너’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 위원, 이기는 경기에서는 보통 클로저까지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셋업맨들이 8회까지 책임지지 않습니까?"
"그렇죠. 흔히 필승조라고 부르는데요. 도중에 타자에 따라 우완이나 좌완을 올리기도 합니다. 선발이 부진하여 일찍 들어가거나 승부가 일찌감치 갈리게 되면 2이닝 이상을 책임지며 다른 불펜의 소모를 막아주는 롱맨도 있고요."
중계진도 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짧은 이닝을 소화하고 들어가는 불펜의 제일 조건은 아무래도 위기 극복과 무실점 유지 아닐까요?”
“당연하죠. 그렇기에 구위가 뛰어난 패스트볼에 이를 뒷받침하는 변화구로 삼진을 잡고 안타를 맞더라도 장타는 허용하지 않아야 하고요. 그런데 저 티모시라는 투수는.......”
그는 여러 가지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우선 그의 투구폼은 전형적인 오버핸드 스로였다. 체중을 최대한으로 실어 가장 높은 릴리즈 포인트에서 공을 내리꽂듯이 던지는 오버핸드 스로는 수직에 가까운 궤적으로 던지므로 구속이 높고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유리하며 다른 투구폼보다 큰 낙폭을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키가 클수록 유리한 투구폼이기도 하지만 팔과 어깨는 물론 허리와 다리에 걸리는 부하가 커서 체력 소모가 크며 제구력 유지에도 불리하다.
그런데.......
티모시의 신장은 180cm. 그가 팔을 최고로 높이 들어 올려 던지는 릴리즈 포인트는 조금 과장하면 장신 투수의 사이드암 수준이다. 속도로 타자의 기를 죽이고 눈을 속일 정도로 빠른 패스트볼을 장착하고 있다면 그나마 이해할 텐데 그의 손에서 나오는 공은 한결같이 변화구였다. 결정구로 쓸 만한 속구도 없는 키 작은 투수가 그것도 아울리지 않게 오버핸드 스로 폼으로 던졌다.
그리고 데뷔한 지 2달 가까이 지나며 특급 마무리 대니 바로 앞에 올라 가벼운 안타 몇 개 맞았을 뿐 아직 실점이 없다. 비록 투구 이닝 수는 적지만 ERA는 0점대 정도가 아니라 그냥 0이었다. 0.00!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굳이 원인을 찾으라면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연결 동작이 물 흐르듯 부드럽고 모션이 유연하여.......”
해설가의 억지 추측보다는 본인의 말을 통해 듣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의 투박하지만 솔직담백한 자기소개서를 함께 들여다보자.
* * * *
나는 티모시 와룽가.
나의 이름을 듣거나 외모를 본다면 대충 추측하겠지만 나는 애버리지니, 즉 호주 원주민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인들이 몰려오기 훨씬 전부터 호주에 살았던 최초의 종족이자 19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국인 이주정책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종족이기도 하다. 집단학살에다 백인들이 갖고 들어온 질병과 전염병으로 거의 멸종된 슬픈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넋두리하기는 싫다. 무식하고 힘이 없어 당한 거니까. 이 말은 아버지가 술 한잔을 걸치면 아들 셋을 앞에 앉혀 놓고 수시로 내뱉는 투정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s) 출신이다. 그게 뭐냐고? 잘 알려진 미국 인디언에 비해 호주 원주민의 비극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안타깝다. 20세기 초부터 70년간 호주 정부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호주화’한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부모에게서 강제로 분리해 백인 가정에 입양시켰지. 말이 입양이지 수용소 감금과 같았어. 이런 잔인한 인종 말살 정책으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와 떨어져 살며 이름을 백인 식으로 바꾸고 원주민어 대신 영어만 배워야 했던 이들을 일컬어 잃어버린 세대라 부른다.
그 후 정책이 바뀌고 강제입양은 사라졌지만, 피해자 상당수는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높은 자살률까지 보였다고 하더군. 20대 초반의 나이로 수용소에서 나온 아버지는 그나마 원주민 정체성을 놓지 않은, 의식이 깬 분이었지.
"우리가 호주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버리지 말아라. 이 나라에서 이방인처럼 살지 말란 말이다. 이 땅의 진짜 주인은 우리라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룬 아버지의 정체성은 날이 갈수록 확고해졌다. 꿈을 갖고 장기 계획을 세운 그는 우선 형과 동생에게 공부를 강조했다. 마침 애버리지니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이루어지던 때라 특혜가 많았다. 형은 사회학을 전공하여 정부가 운영하는 원주민 보존센터 연구원으로 들어갔고 머리가 좋은 동생은 법대에 들어갔다. 케빈 러드 총리가 호주정부와 국회를 대표해 공식적인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그는 졸업 후 원주민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한편 그간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호주 원주민 학대와 차별대우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사죄한 총리의 용기는 훌륭하고 대단했으나 아버지의 굳은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한 번의 사과로 풀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끊임없이 형과 동생에게 원주민 인권과 주체성 회복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강요했다.
이제 내 얘기를 할 차례인가?
일찌감치 책을 멀리한 데다 공부하기 아까운 체력을 다져온 나를 향해 아버지는 머리 대신 몸으로라도 호주의 주인임을 보이라며 어릴 때부터 크리켓을 시켰다. 혹시 크리켓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축구 종주국 영국의 국기인 크리켓 말이야.
처음 들어 본다고? 헐, 세상에! 나는 지구상에 스포츠라고는 오로지 크리켓 하나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나라에 가 본 적이 없는 호주 토박이니까. 크리켓은 호주를 대표하는 대중적 스포츠야. 아이들은 태어나며 크리켓 공을 만지고 커가면서 크리켓 배트를 휘두르지.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는 주말에 가족과 크리켓을 즐기고 말이야.
야구의 도루를 치사한 도둑질로 보고 벤치 클리어링을 야만적인 행위라며 고개를 젓는 백색 신사 스포츠 크리켓은 영국의 영향을 받은 호주와 가이아나, 남아공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특히 호주인의 크리켓 사랑은 내가 봐도 유별나지. 크리켓 경기가 많이 펼쳐지는 여름이면 호주는 난리가 난다구. 그야말로 국가 전체가 크리켓 광팬으로 돌변하지. 이민자들로 구성된 호주의 다양한 사회 계층이 모두 함께 어울려 즐기는 백 년 전통의 신사 경기가 바로 크리켓이야.
죤으로부터 들으니 컵스 팬들도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애착과 충성도로 따진다면 절대로 호주를 따라올 수 없을걸. 길어야 4시간이면 끝나는 야구에 비해 사흘을 끄는 경기가 적지 않은 크리켓에 열광하고 도널드 브래드만이나 리치 베나우드, 샤펠 형제 같은 선수가 국가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곳이 호주거든. 연속 0점대 방어율로 미국을 들었다 놨다 한 호주 출신 K1이 여기서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아. 야구가 호주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지?
어떻게 보면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해. 공을 던지는 투수(Bowler)와 이 공을 받아치는 타자(Batman), 그리고 포수처럼 타자 뒤에서 글러브를 착용하고 서 있는 포수(Wicket Keep)가 있거든. 물론 구성원이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만.
그리고 말이야, 난 볼러. 야구로 말하면 투수였어. 꽤 잘 나가는 볼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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