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3
종수와 동료들의 새로운 소대장이 된 샤를 예거는 전공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샤를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종수 일행과 독소전에 참전했던 동유럽 출신 외인부대원들을 흘끗 바라보고는 말했다.
"여기서 제군들의 상대는 미군도, 독일군도, 소련군도 아닌 베트민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썩어빠진 정글에서도 제군들은 훈장을 받고 전쟁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샤를이 다케시를 바라보며 물었다.
"훈장을 받고 싶나?"
"네!! 훈장을 받고 싶습니다!"
샤를은 샘에게도 물었다.
"영웅이 되고 싶나?"
"네!! 영웅이 되고 싶습니다!!"
"여기서는 막대기 하나를 노획할때마다 훈장에 가까워진다! 막대기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샤를은 자신의 총을 들어올렸다.
"베트민들의 근거지를 수색해서 총기류, 탄약, 포탄, 수류탄 등을 찾아내면 제군들은 빠른 속도로 진급해서 더 많은 봉급을 받을 수 있을 것 이다! 물론 베트민들의 근거지에서 쌀을 찾아내면 이 또한 전공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막대기(총기류)다!"
장교들은 어떻게던 전공을 내야 하기 때문에 베트민의 근거지에서 막대기(총기류)를 찾아내는 것에 혈안이라는 것을 종수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위관급 장교들은 재미있는 속임수를 쓴다는 괴이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부대 근처로 와서 병사들이 좋아할만한 물품들을 파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슬쩍 따라가면 이들은 병사들에게 베트민이 쓰는 총기류를 판매한다는 것 이었다.
참 어처구니 없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소문에 따르면 베트민들에게는 프랑스에서 배급하는 보급 식량이 무척이나 귀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대에서는 병사들이 먹지 않는 식량들을 그들에게 주어서 베트민들의 무기를 사들여서 자신들이 막대기(베트민이 쓰는 총기류)를 발견했다며 보고할 수 있다고 병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았던 것 이다.
물론 상부에서 전공을 세우라고 강하게 압력을 넣고 군기가 개판이라고 해도 이런 소문은 말이 안된다고 종수는 생각했다. 다른 부대에서 전공을 세운 것에 대해 시기해서 이런 말이 떠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새로운 소대장인 샤를 예거, 이 양반처럼 혈기왕성하고 열정 넘치는 하급 장교들은 어떻게던 막대기(베트민 총기류)을 노획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작전을 나갈 것 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신참 소대위 샤를 예거의 아버지, 엘랑 예거 대령은 현재 사령부에 참모로 있다고 들었다. 종수는 자신의 새 소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소대장이 제일 골치아픈데...'
샤를 예거는 인종도 제각각이고 국적도 제각각인 자신의 소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필요할 것 이었다. 샤를은 통역을 시키고는 새로 들어온 소대원들에게 물었다.
"이전 부대에서 수색 정찰과 매복 임무를 갔다왔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더군!"
"네!!"
"인도차이나에서의 전투가 태평양 전쟁, 독소전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샤를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름 교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 들었는데 배포도 없군...'
그 때, 종수가 입을 열었고 다케시가 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었다.
"이곳에는 전선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베트민이 들이닥칠지 모르고 사실상 모든 방향이 전선이기 때문에, 포병은 물론이고 보병들 또한 근접 개인 전투 시 360도 모든 방향을 경계하는 식으로 새로운 환경에서의 전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종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야간에 기지 주변에 설정된 수십개의 화집점으로 바로 화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야간 사격 훈련이 필요합니다."
종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등병이 이런 말을 지껄이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었다. 샤를이 물었다.
"아주 현명한 지적이군!"
그 말에 종수가 용기를 얻어 계속 말했다.
"중대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자재가 부족합니다! 기지 방호력을 높이기 위해서 자재가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군이 항공기나 포병 전력에서 적보다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빽빽한 정글 구역에서는 베트민과 근거리 교전을 해야할 것 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정확한 항공 지원이나 포병 지원이 힘듭니다."
종수는 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애써 억눌렀다. 행정반 녀석들이 이 지역 여자들이랑 시시덕거리던데 그렇게 하다가 정보 다 세어나갈 것 이었다. 하지만 괜히 이 이야기를 꺼내서 적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이었다. 샤를이 다케시의 통역을 듣고는 외쳤다.
"더 건의사항 있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해산!"
샤를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소대장용 호에 들어가서 자신의 침대에 앉아서 종수에 대한 서류를 읽어보았다.
'이오지마전 참전? 상등병 출신? 아주 장교 납셨군!'
어느덧 밤이 되었다. 마침 종수가 경계를 서는 날이 아니었기에 종수는 자신의 호에서 취침 준비를 했다. 혹시나 베트민 들어오면 수류탄 바로 까던져야했기에 종수는 자신의 머리맡에 수류탄을 놓아두고 자기로 했다. 잠을 자기 전 오줌을 싸러 변소 쪽으로 가는데, 덩치 큰 흑인 샘이 자신의 참호에서 멍하니 자신의 발가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샘은 자신의 소총을 발가락에 겨눌 준비를 했다.
'???'
"어이!! 샘!!"
종수는 최대한 샘을 자극시키지 않으면서 태연히 말했다.
"담배! 담배 태울래?"
그렇게 종수는 샘과 같이 담배를 피웠다. 덩치가 크고 빨리 교전을 하고 싶다던 녀석이 자신의 발가락을 소총으로 겨누다니. 하지만 저렇게 덩치도 좋고 정신적으로도 문제 없어 보였던 녀석들이 돌발 행동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 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어떻게 대처할지는 막상 그 상황이 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모른다. 샘이 물었다.
"태평양 전쟁. 어땠냐?"
종수는 불어를 잘 하지 못했기에 대충 자신이 아는 단어들로 짜집기해서 대답했다.
"좆같았어! 여기가 훨씬 나아! 여기는 천국이야!"
그 때, 다케시 녀석이 왔고 다케시가 통역을 해주기 시작했다. 샘이 종수에게 물었다.
"이봐. 너는 전쟁터에서 몇 년간 살아남았잖아. 살아남는 팁 좀 가르쳐줄래?"
종수는 뭔가 자부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어쨋거나 여기서 종수는 몇 년간 생존한 베테랑이었던 것 이다. 덩치 큰 샘 녀석한테 종수는 자신이 아는 팁을 모조리 가르쳐주기로 했다. 다케시 녀석 또한 집중해서 들었다. 종수가 말했다.
"행정반 녀석 중에 베트남 민간인 여자랑 시시덕거리는 녀석 있는데, 그렇게 했다간 관련 정보 다 세어나갈 수 있네! 분위기가 흘러빠졌어!"
샘이 말했다.
"여기선 민간인들도 조심해야겠군."
"밀짚모자 쓰고 검정색 하얀색 옷 입은 그 작자들 중에 누가 우리 정보를 빼돌릴지 모르네. 아무턴 조심하는게 좋아. 꽁까이도 안 가는게 좋을거야."
"하긴 꽁까이가 베트민이랑 한 편일 수 있으니까."
"그것 뿐만이 아닐세. 임질이나 매독 제대로 걸리면 고름이 질질 나오고 사내 구실을 못한다고!"
샘이 질겁을 했다.
"내 소중한 아나콘다 코브라를 못 쓰게 되어서는 안되지!"
그렇게 종수, 다케시, 샘은 담배를 피우며 잠시 노가리를 깠다. 샘이 말했다.
"유럽에서 흑인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드네."
다케시가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경찰이었잖아."
"계속 진급에서 불이익을 당했네. 어떻게 해서든 5년 채워서 돈을 번 다음 내 가게를 차릴거야."
다음 날, 샤를 예거의 소대는 인근 늪지대로 주간 정찰 임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얼마 전 2중대가 이 곳으로 정찰을 갔다가 큰 피해를 입었기에 샤를 예거의 소대가 처음으로 이 인근을 정찰하러 가게 된 것 이었다. 샤를 예거는 총을 들고 앞장서서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종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무슨 일인가?"
"제가 첨병으로 가겠습니다."
"그러게."
그렇게 종수가 첨병으로 조심스럽게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2~3m 높이의 덤불에서 얼마 전 베트민이 지나간 흔적이 있는지, 물방울이 맺히지 않았거나 꺾인 흔적이 없는지 눈으로 빠른 속도로 훑었다.
'!!!'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곳은 천국일 것 이다. 나뭇잎과 색깔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시퍼런 원색의 도마뱀, 각양각색 온갖 종류의 나방, 엄청나게 다양한 개미, 장수풍뎅이, 가끔 내 발목을 휘감듯이 지나가는 굵은 뱀, 새끼 손가락 굵기의 가느다란 뱀 등이 가득했다. 이미 외인부대원들의 얼굴 곳곳은 벌레에 물려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손과 총기에도 개미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종수는 첨병으로서 맨 앞에서 나아가다가, 지도 상에 있던 늪을 발견했다. 종수는 덤불 속에 엎드려서 늪지대를 관찰했다. 총을 들고 있는 베트민 셋이 등을 보이고 있었다.
'!!!'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샤를 소대가 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베트민들은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등을 보인 채로 유인을 하고 있었던 것 이다. 저 셋을 따라서 늪으로 뛰어든다면, 준비되어있던 베트민들의 십자 사격에 전 소대원들이 전멸할 것 이었다. 종수는 뒤돌아가 샤를에게 이를 보고했다.
"전형적인 유인전술로 보입니다."
만약 종수가 첨병이 아니었다면 샤를은 바로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베트민들을 뒤쫓았을 것 이었다. 하지만 샤를은 종수의 말이 옳다는 것을 내심 직감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이 인근을 정찰해서 지형에 능숙한 2중대 또한 얼마 전 교전때 큰 피해를 입었던 것 이다. 선임 하사관이 물었다.
"적 규모를 모르는데 지원 요청할까요?"
하지만 샤를은 어떻게던 전공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눈에 불을 키고 있었다.
'정글 너머 수목 안쪽에 적들이 기관총을 거치해두었을 것 이다! 반드시 이를 잡아야 한다.'
샤를은 자신의 소대를 둘로 나누고, A팀은 늪 지대를 우회해서 가는 동안 B팀은 늪을 건너지 않고 반대편으로 엄호 사격을 해주기로 했다. 이전에 이 구역을 정찰한 정보에 의하면 늪을 우회하는데는 대략 10분이 걸릴 것 이었다. 그렇게 종수는 B팀에 남아서 저격 소총으로 늪 반대편을 주시하고 있었다.
'...'
늪 지대에서 밀짚모자를 쓴 베트민들은 여전히 등을 보인 채로 눈치를 보며 쏘다니고 있었다. 놈들은 총알이 날아오면 바로 빽빽한 정글 속으로 들어갈 태세였다. 종수는 M1 카빈의 스코프 속으로 보이는 베트민의 밀짚모자를 향해 총알을 박아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M1 카빈 방아쇠울에 들어간 손가락이 덜덜 떨렸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 때, 어디선가 아군 총성이 울렸다.
탕!! 타앙!!
드드득 드드득 드득
그 틈을 타 종수는 늪 지대에 있던 베트민들의 가슴팍을 향해 총알을 박아 넣었다.
탕!!
탕!!
탕!!
기가 막힌 솜씨였다. 늪 지대에 있던 베트민 셋이 모조리 쓰러졌다. 한편 샤를 예거는 매복해있던 베트민 기관총 조를 향해 MAS-37 탄환을 쏟아부었다.
타닥!! 타닥!! 타다닥!!
치열한 교전 끝에 샤를 예거 소대는 9명의 베트민을 사살하고 2명의 베트민을 포로로 잡고 기관총 두 정, 소총 7정을 노획하는 전공을 세웠다. 샤를은 베트민을 사살한 것을 어떻게 증거로 잡을지 고민했다. 이렇게 험난한 정글에서 시신을 모조리 회수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샤를 예거는 포로로 잡은 베트민도 사살하고 베트민들의 귀를 잘라서 보고하기로 했다.
포로로 잡힌 베트민 중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여자였다. 샤를 예거의 소대원들은 이들의 눈을 가린 다음 총살하기로 했다. 눈을 가리기 위해서 여자의 윗옷을 위로 올려보니 베트민 여인은 브라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 병사가 말했다.
"여자 베트민들은 속옷도 보급받습니까?"
샤를 예거가 말했다.
"여자 베트민들은 피임약과 속옷을 배급받네! 팔자도 좋지!"
소련군 출신의 아르티욤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우리 때 여군들은 생리대나 속옷 보급도 못 받았는데..."
"생리대 없이 어떻게 싸우는데?"
"행군하다가 피 흘리면 대충 우리가 뒤에서 가려줬지."
그 때, 남자 베트민이 미친듯이 수목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종수는 반사적으로 남자 베트민의 등에 M1 카빈을 발사했다.
탕!!
눈을 천으로 가린 여자 베트민은 이미 팬티에 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여기서 지체했다간 베트민들이 더 몰려올 수 있었기에 샤를 소대는 여자 베트민도 잽싸게 총살하고 노획품을 가지고 중대 진지로 복귀했다.
그렇게 샤를 소대가 노획한 기관총, 소총들이 중대 진지 가운데 진열되었다. 샤를 예거와 그 소대원들은 자랑스럽게 이 전리품을 바라보았다. 마침 중대 진지에 수도 시설 또한 설치되어서 병사들은 샤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는데 정말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며칠 뒤, 종수는 또 다시 영무 녀석과 함께 청음초에서 보초를 섰다. 얼마 전 비가 왔기 때문에 바닥은 질퍽질퍽했다. 철조망이 설치된 곳에 패인 웅덩이들에는 물이 고여있기 때문에 베트민이 침입하려면 그 물웅덩이를 지나와야 할 것 이었다. 얼마 전 비가 올때 3소대 쪽으로 베트민이 철조망을 절단하고 침입을 시도했던 적이 있기에 종수는 최대한 신경을 집중했다. 그 때, 한 수십미터 앞에서 야전삽으로 젖은 땅을 파는 듯한 소리가 살짝 들렸다.
'!!!'
종수는 조심스럽게 끈을 세 번 잡아당겼다. 이건 전방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신호였다. 잠시 뒤, 중대에 조용하게 전투 배치 명령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소리 없이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종수는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우려했다. 만약 잘못 들은거였다면 왜 오밤 중에 귀찮은 일을 만들었냐고 혼날 것 이었다. 그 때, 2소대 쪽에서도 뭔가 소리를 들었다는 신호가 들어왔다.
'꿀꺽!'
한 번 잘못 들을 수는 있지만 두 번 잘못 들을 수는 없다. 1소대쪽이 주공일까 2소대쪽이 주공일까 종수는 알 수 없었다. 제발 1소대쪽으로 주공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랬다.
'적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거지? 두 방향에서 온다면 대규모 공세일수도!'
잠시 뒤, 중대 전체에 불빛이 켜졌다.
퍼엉!!
그리고 외인부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철조망을 끊고는 물 웅덩이를 건너 기어오고 있던 베트민을 발견했다. 베트민들은 철모와 군복에 나뭇잎을 잔뜩 꽂아둔 상태였다.
"베트민이다!!!"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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