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독소전 이후 앙뚜완의 이야기
독소전이 끝나고, 502 중전차 대대 1중대장 앙뚜완 뤼팽(한스 파이퍼의 사생아)에게 편지가 우르르 도착했다. 앙뚜완은 편지의 발신자를 읽어 보았다.
[한스 파이퍼]
[에밀라 파이퍼]
[오토 파이퍼]
[요제프 파이퍼]
기타 등등 많은 사람들이 앙뚜완 뤼팽에게 잘못을 빌며 돈으로 많은 것들을 보상하겠다고 나섰던 것 이다. 참고로 피크는 미국의 수녀원에 보내져서 잘 살고 있었고, 딸 아나이스도 잘 있었다. (에밀라가 피크를 암살한 것은 실패하고, 독일 수녀원에서는 피크의 안전을 위해 미국으로 보낸 것 이었다.)
한스의 편지에는 앙뚜완과 그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에밀라의 편지에는 내가 죽어도 상관없으니 제발 속죄할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싹싹 빌고 있었다.
앙뚜완은 이들을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렸지만 다시 마주치기도 싫었다.
'이런 쓰레기들은 복수할 가치도 없다.'
앙뚜완은 이 편지들을 모조리 불태울까 하다가 편지 속에 있던 수표들을 꺼냈다.
'이런 망할 놈들이...'
참고로 전후에 한스 파이퍼, 오토, 스테판 등은 기사 인터뷰를 통해서 502 중전차 대대 1중대장이었던 앙뚜완 뤼팽의 전공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앙뚜완은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독일에서 앙뚜완 뤼팽은 전쟁 영웅 중에 하나였다.
앙뚜완은 이 수표들도 불태울까 하다가 은행에 간 다음, 절반은 피크가 있는 미국 수녀원으로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프랑스에서 운영하는 세계대전 전쟁피해재단과 독소전 참전 소련계 피해재단에 기부했다. 앙뚜완은 미국으로 가서 취직을 한 다음, 피크와 아나이스에게 계속해서 돈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앙뚜완은 프랑스로 가는 열차를 탔다.
트그덩 트그덩 트그덩 트그덩
앙뚜완은 엘랑 예거의 집에 방문했다. 엘랑 예거의 부인이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고, 앙뚜완은 매우 불편한 자리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이번 식사 자리는 엘랑 예거 부인이 엘랑에게 주장해서 이루어진 것 이었다. 부인은 이번 만남으로 엘랑 예거의 오랜 고통이 끝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엘랑 예거는 앙뚜완에게 미사카의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메르시(감사합니다.)"
엘랑 예거는 착잡한 표정으로 앙뚜완의 어깨를 두드리고 격려해주었다. 앙뚜완은 엘랑 예거에게 감사함을 느꼈지만 엘랑 예거 입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불편한 존재일지 잘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집을 나왔다. 엘랑 예거는 떠나가는 앙뚜완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의 부인의 손을 잡았다.
앙뚜완은 다시 기차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처리해야할 것이 많았고 서둘러야 했다. 이번에도 우체통에는 편지들이 있었다. 502 중전차 대대장이 앙뚜완에게 좋은 취업 자리를 알선해준다는 편지였다. 그 외에도 502 중전차 대대에서 같이 싸운 전우들, 오토 카리우스와 미하엘 비트만의 편지도 있었다. 앙뚜완은 이들에게 자신은 미국에 간다고 답장을 하기로 했다. 한참 답장을 쓰는데, 피크가 머무는 수녀원에서 온 편지도 있었다. 앙뚜완은 서둘러 봉투를 열어보았다.
'...'
그 편지에 따르면 한스 파이퍼와 에밀라 파이퍼가 수녀원에 거액의 기부금을 기부하고 앙뚜완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한스 파이퍼는 자신의 죄의식을 덜고자 뒤늦게 앙뚜완에게 사과를 하려고 나선 것 이었다. 앙뚜완이 프랑스에 가서 자신의 집을 비웠을때조차 그들은 찾아왔었다. 한스 파이퍼와 에밀라 파이퍼는 자신의 죄를 사죄하기 위하여 비가 오는데도 앙뚜완의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앙뚜완을 만나지 못한 것 이었다.
앙뚜완은 결국 남은 돈은 모조리 피크가 있는 수녀원에 보내고, 자신의 모든 기록을 지우기 위하여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가기로 했다. 혼혈로 태어난 녀석들이 어느 국가에 충성하고 어느 국가를 위하여 싸워야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흔했다. 보통 아버지쪽 핏줄이 더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희한하게도 이런 경우에 어머니쪽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다 떠나서 앙뚜완은 자신의 절반이 독일인이었음에도 독일에는 다시 충성하고 싶지 않았다.
앙뚜완은 다시 프랑스로 간 다음, 외인부대 모병소로 직행했다. 외인부대 모병소에서는 앙뚜완 말고도 지원자들 두 세명이 줄을 서 있었다. 모병관은 가장 1차적인 테스트로, 풀업을 시켰다.
"정자세로!!"
앞에 있던 지원자들이 가방을 내려놓고 차례대로 풀업을 했다. 앙뚜완 또한 풀업을 해서 손쉽게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테스트를 통과하고 앙뚜완은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강당에서 대기했다. 흑인, 동양인, 슬라브인 등 지원자들의 인종과 국적은 다양했다.
지원자들 대다수가 돈이 없고, 그 중 60프로는 심각한 전과가 있었고, 30프로 정도는 사회에서 기록이 완전히 말소되기를 원해서 외인부대에 온 것 이었다. 지원자의 대다수는 2~3일 동안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현금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30프로 정도는 프랑스 모병소에 오느라 모든 현금을 써버려서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던 그들은 외인부대에 합격해야 했다.
지원자들은 서로 눈치 싸움을 하면서 누가 합격하고 누가 떨어질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흑인은 팔다리가 길쭉하고 근육질에 운동선수 같은 체형을 갖고 있었다. 아까 풀업을 할때도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들 그 흑인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친구는 일단 붙겠군...'
나이는 20대가 많기는 했지만 30대 초중반, 40대 초반 또한 있었고, 팔뚝에는 문신을 한 녀석들도 있었다. 대충 엿들어보니 그 중에는 장교 출신도 있었다. 한 명은 영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으로 보였다.
지원자들 중에 프랑스어를 쓸줄 아는 녀석들끼리 수근거렸다.
"신체 능력 아무리 좋고 전과 없어도 면접때 떨어지는 녀석들도 있대."
"기준이 뭔데?"
"모르지. 근데 저들은 전문가니까 제대로 된 기준이 있는거 아닐까?"
"인종 차별 아냐?"
"부대 배치 때는 인종차별이 있지만 뽑을때 인종 차별은 특별히 없다던데."
"어지간한 폭행 전과 까지는 그냥 봐준대. 살인은 안되고."
"마약은?"
"마약 한 번 빠는건 전쟁때 다 하잖아."
"마약 거래는?"
"그건 모르겠다."
다들 조만간 있을 면접때문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몇 지원자들이 수근거렸다.
"나 한 푼도 없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좆되는데."
"초반에 훈련 받다가 부상으로 퇴교한건 다시 기회가 주어진대. 그런데 면접에서 영구적으로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받으면 다시 지원 기회조차 없는거야."
"내가 들은바로는 말이야."
모든 지원자들이 일생 일대의 결정을 하고 외인부대에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한 이탈리아 녀석은 프랑스에 여행을 하다가 경비가 다 떨어져서 외인부대에 지원한 것 이라고 했다.
"차비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원했지."
"차비가 부족한거면 일주일 정도 단기 일자리를 구하지?"
"사실 돌아가도 딱히 할 것도 없어."
앙뚜완은 티거 중전차 중대를 이끌때는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여기서 합격할거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독일군 장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스파이로 오인받아서 외인부대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수녀원에 돈을 다 부치지 말고 돈을 더 남겨둘걸 후회가 되었다. 지금 앙뚜완에게는 2일 정도 밖에서 버틸 수 있는 돈 밖에 남지 않았다.
'거짓말할까?'
잠시 뒤, 면접이 시작되었다. 앙뚜완은 프랑스어가 능숙했기에 프랑스어로 면접을 받게 되었다. 면접을 받으러 들어가는데, 다른 지원자가 면접을 받고 있었다.
"전과가 있습니까?"
"폭행 전과가 있습니다."
"형기는 어느 정도 였습니까?"
"1년 살다 나왔습니다."
"특기는?"
"요리를 잘 합니다."
옆자리에서 면접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면접관이 앙뚜완에게 물어보았다.
"전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프랑스에 능숙하군요."
"어린 시절 랭스에 살았습니다."
외인부대 지원자들 중에 완전히 신상이 말소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외인부대는 이들에게 새로운 신상을 주었다. 앙뚜완 또한 프랑스에서 새로운 신상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면접관이 앙뚜완에 대한 서류를 읽고는 물었다.
"독일군 장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왜 모든 기록이 말소되는 것을 원합니까?"
앙뚜완은 순간 고민했지만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제 아버지가 저를 찾고 있습니다. 미국에 아내와 딸이 있는데 아버지에게 발각되지 않고 가족을 부양하고 싶습니다."
그 뒤로 20분 넘게 긴 면접이 진행되었고, 앙뚜완은 면접에 통과해서 새로운 신상을 받았다. 면접관이 서류를 가져와서 말했다.
"새로운 이름은 뤼도빅입니다. 상병이 뤼도빅이라고 부르면 당신을 지칭하는 것 입니다."
그 외에도 서류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가짜 신상에 대해 적혀 있었다.
"이 내용을 모두 암기하십시오.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네."
그렇게 앙뚜완은 뤼도빅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면접을 끝나고 대기하는데, 면접에서 탈락한 녀석 하나가 당장 갈 곳이 없어서 당황한 눈치였다. 동유럽 출신의 한 녀석이 자신의 커다란 가방을 들며 말했다.
"여기 오느라 경비를 다 썼는데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군."
그 때, 면접에서 합격한 미군 출신의 존이 자신의 지갑에서 지폐 하나를 꺼냈다. 이 돈이면 식당에 가서 밥 한끼는 할 수 있을 것 이다.
"나 이 돈 있네."
존은 탈락자에게 돈을 주었다. 무슨 충동에서였을까 앙뚜완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탈락한 녀석에게 나누어 주었다. 독일군에서 복무하면서 받은 돈과 한스 파이퍼로부터 받은 돈은 이제 필요 없었다. 설령 훈련 도중에 탈락한다쳐도, 훈련했던 날만큼 계산해서 외인부대에서 돈을 주기 때문에 그 돈이면 노숙을 하는 한이 있어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 이다.
그렇게 면접에 합격한 지원자들은 강당에 모였다. 교관이 프랑스어로 외쳤다.
"전원 탈의!"
교관은 지원자들에게 새로운 팬티와 의복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지원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의복, 물품 등을 반납하고 갖고 있던 약간의 현금도 통장에 입금했다. 훈련을 무사히 마치게 되면 이 물품과 돈은 돌려받을 것 이다.
그렇게 앙뚜완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뤼도빅이라는 새로운 신상을 얻게 되었다. 훈련소에 들어오고나서 한 달 동안은 편지조차 보낼 수 없는데 피크가 잘 지낼지 그것만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아마 수녀원에서 잘 돌봐줄 것 이었다.
앙뚜완과 동료들은 모두 머리를 삭발하게 되었다. 그동안 길렀던 머리가 귀 옆으로 앞뒤로 수북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4개월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첫 훈련이 끝나고, 앙뚜완과 동료들은 팬티만 입은 상태로 내무반에서 정자세로 서서 관물대 검사를 받았다. 얼굴이 벌겋고 딱봐도 성격 드러워보이는 앙뚜완과 비슷한 나잇대의 꺄프랄 쉐프는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이 곳은 난민 캠프가 아니다!!"
외인부대의 분위기, 규율은 독일군보다 훨씬 빡셌다. 아마 인종도 다르고 국적, 언어도 다르고 전과가 있는 녀석들을 잘 다루기 위해서일 것 이다. 검사가 끝나고, 꺄프랄 쉐프가 불을 끄고 외쳤다.
"취침!"
"안녕히 주무십시오 꺄프랄 쉐프!(병장, 부사관 중간 계급)"
외인부대의 분위기는 독일군보다 빡셌다.
"자, 알겠냐?"
"위! 꺄프랄 쉐프! (네! 병장님!)"
대다수의 훈련병들이 프랑스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교관들은 일부러 쉬운 단어로 가르쳤다. 교관이 총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장전!! 이렇게!!!"
그리고 교관은 매복하는 법 또한 가르쳐주었다.
"이건!! 좋은 매복!!! 이건 나쁜 매복!!!"
앙뚜완은 장기간 독소전에서 싸우면서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모두 다 할 수 있어서 다른 훈련병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꺄프랄 쉐프가 앙뚜완에게 외쳤다.
"이봐!! 뤼도빅!! 저 새끼 도와줘!!"
"위! 꺄프랄 쉐프! (네! 병장님!)"
앙뚜완은 프랑스어를 잘 못 알아듣는 녀석들에게 총기 관련된 모든 정보를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장전하고, 총기 손질은..."
"뤼도빅!!! 저 녀석 도와줘!!"
"위! 꺄프랄 쉐프! (네! 병장님!)"
며칠 뒤 야간 훈련 때, 사이코패스 같은 인상의 얼굴이 벌건 20대 중반에 꺄프랄 쉐프가 외쳤다.
"네 놈들은 징집병이 아니다. 다 자신의 선택으로 온 것 이다. 관두는 것도 네 놈들 선택이다! 가장 멍청한게 한참 훈련 받다가 퇴소하는 놈이다! 안되겠다 싶으면 빨리 퇴소하는게 좋을거다!!"
꺄프랄 쉐프가 훈련병들의 얼굴을 노려보며 외쳤다.
"외인부대에 계속 있고 싶은가?"
"위! 꺄프랄 쉐프! (네! 병장님!)"
"외인부대는 자네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를 망치지 말도록!"
"위! 꺄프랄 쉐프! (네! 병장님!)"
"구호!!"
"우리는 명예와 성실함으로 프랑스에 충성을 다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는 프랑스의 혁명기념일 7월 14일로 축제가 열렸고, 훈련병들도 이 축제에는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앙뚜완은 수 많은 불꽃이 쏘아올려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뚜완은 독일에 충성했다. 하지만 이걸 보니 프랑스에 충성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4개월의 훈련이 끝나고, 앙뚜완은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외인부대의 상징, 캐피블랑을 받게 되었다. 어깨에 붉은색 술이 달린 정복을 입고, 오른손에는 흰 캐피블랑을 들고 동료들과 오와 열을 맞추어 줄지어 서 있었다. 앙뚜완과 동료들은 흰 캐피블랑을 왼쪽 가슴에 댔다가 팔을 뻗고, 머리에 쓰면서 외쳤다.
"Legio! Patria! Nostra!!"
"외인부대는 나의 조국!!"
앙뚜완은 그 지긋지긋하던 독일이 아닌 프랑스에서 새로운 직업과 자신이 있을 곳을 구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태어나는 방식은 스스로 정하지 못했으나 그 이후 인생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앙뚜완은 인도 차이나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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