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1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지옥같은 전투였던 임팔 작전과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했던 종수, 영환, 와타루, 영무. 전쟁이 끝나고 조선은 해방되고, 종수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기로 한다. 하지만 전쟁의 여파로 그야말로 모든 것이 아작이 난 상황이었다. 종수는 태평양 전쟁때 막강했던 미군의 자본력을 떠올렸다.
'양키들은 좋겠다!'
그 때, 영환이 녀석이 와서 외쳤다.
"좋은 소식이 있어! 태평양 전쟁 참전 용사들이 프랑스에 가면 외인부대에 들어가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더군!"
"외인부대?"
솔직히 군대는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영환이 녀석이 외쳤다.
"어차피 전쟁도 끝났고 이제 평화의 시기일세! 그냥 외인부대 가서 대충 시간만 때우다 오면 되는거야!"
"프랑스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외인부대에 들어가냐?"
"프랑스어는 다 가르쳐준대! 태평양 전쟁 참전자들은 무조건 뽑아준다니까 걱정하지 말게! 와타루와 영무는 간다고 했네!"
결국 종수, 영환, 와타루, 영무 모두 태평양 전쟁때 모은 돈을 탈탈 털어서 프랑스로 가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유럽 땅을 한 번 밟아보고 싶었다.
"프랑스도 장난 아니겠지?"
와타루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외인부대는 어디서 입대하는거야?"
영환이 호언장담했다.
"외인부대 모병소에 가서 입대 신청을 하면 되네!"
영무가 말했다.
"모병소를 못 찾으면 어떻게 됩니까?"
"헌병 분견대나 프랑스 국경 검문소에 가면 되네!"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거쳐 종수와 동료들은 프랑스에 도착해서 외인부대 모병소에 입대 신청을 했다. 외인부대 모병소에는 한 사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멋있는 포스터가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멋드러진 흰색 모자를 쓰고 있는 외인부대원이 그려진 포스터도 있었다.
영환이 녀석이 말했다.
"저 모자가 외인부대의 상징, 캐피블랑일세!"
"캐피블랑?"
일본군 군복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멋있어 보였다. 모병소 안에는 캐피블랑을 쓰고 있는 위병들이 각잡힌 자세로 서 있어다.
'꿀꺽!'
종수와 동료들이 일본어로 쓰여진 입대 신청서를 냈더니 모병관이 귀찮다는 듯이 읽어보았다. 종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서...설마 인종차별하는건가?'
여태까지 모은 돈을 몽땅 털어서 프랑스까지 왔는데 설마 탈락이라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돈도 없었다. 모병관이 영어로 물었다.
"태평양 전쟁? 어디서 싸웠냐?"
종수가 외쳤다.
"말레이시아! 임팔!! 이오지마!!"
"이오지마?"
"에스!! 이오지마!! 우리 모두 이오지마에서 싸웠다!!"
모병관의 표정이 뭔가 변했고, 심지어 옆에 서 있던 위병 또한 종수 일행을 주목했다. 잠시 뒤 종수와 동료들은 소지품을 모두 제출하고 외인부대에 지원한 다른 병사들과 함께 커다란 강당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흑인도 있었고, 소련, 우크라이나에서 온 녀석도 있었고, 독일에서 온 녀석들도 있었다. 다들 덩치가 커 보였다.
그 때, 다케시라는 이름의 일본계 프랑스인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물어봤다. 다케시는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에서 자라서 프랑스어를 잘 할 수 있었다. 와타루가 외쳤다.
"다행이다! 앞으로 잘 좀 부탁할게!"
종수가 말했다.
"우린 태평양 전쟁 참전했어."
"아, 다들 일본이구나! 동양인 출신은 대다수가 중국계라고 들었는데."
영무가 외쳤다.
"전 조선인입니다!"
영환도 말했다.
"우리 셋은 조선인이고 와타루만 일본인일세!"
종수 일행을 흥미롭게 보던 흑인, 백인 외인부대 지원자들이 다케시에게 물었다.
"다들 중국인인가?"
아시아 출신 외인부대 지원자는 거의 중국계였던 것 이다.
"아니, 일본, 조선이다."
다케시가 종수 일행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지원자들 또한 대충 자기 소개를 했다.
"난 경찰 출신이네."
한 소련 출신 젊은이가 말했다.
"난 대독일전 참전했던 장교 출신이야."
'자...장교 출신?'
"하지만 외인부대에서는 이전에 경력, 계급 따위는 아무 소용 없지."
그리고 종수와 동료들은 IQ 테스트와 기타 체력 검정을 모두 통과하였다. 그 다음에는 면접이 있었다.
"의무와 충성심으로 프랑스를 위하여 복무할 수 있는가?"
"네!!"
면접도 합격하고, 종수와 동료들은 머리를 빡빡 밀리게 되었다. 존나 대충 밀었기 때문에 혹시 귀까지 베일까봐 종수는 자신의 양쪽 귀 윗부분을 접었다. 어깨 위로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그 때, 같이 머리를 밀리던 다케시가 일본어로 물었다.
"그런데 너네는 합격하면 몇 년 근무할거야?"
영환이 외쳤다.
"3년 정도?"
"난 4년!"
다케시가 물었다.
"뭔 소리 하는거냐? 최소 계약 단위가 5년인데?"
영무가 외쳤다.
"5년이 최소 계약 단위입니까?"
"5년 동안 복무하면 그 다음부터는 6개월씩 연장 가능하네. 이거 모르고 있었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솔직히 말해서 프랑스 구경도 재미있었지만 식단은 더럽게 입맛에 안 맞았다. 안 그래도 전쟁으로 고생했는데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5년이나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 땅에 있어야 한다니. 그 때, 와타루가 외쳤다.
"기왕 비싼 돈 들여서 왔는데 5년은 복무해야지!"
하긴기왕이면 오래 복무하고 돈 벌어서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4개월에 걸친 지옥의 외인부대 훈련이 시작되었다. 외인부대 훈련은 일본군에서 받던 훈련과는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이 실전 전투를 위해서 필요한 훈련들이었다. 종수와 동료들은 교전 경험은 많았지만 시가전 경험은 없었고, 이들에게 교관은 시가전 전술을 가르쳐주었다. 다케시가 교관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이건 독소전때 하이에 뭐시기라던 자가 개발한 시가전 전술이래!"
그리고 종수와 동료들은 작은 자택들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에서 시가전 실전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밧줄을 타고 가는 훈련, 낙하 훈련도 받아야 했다. 깎아지르는 듯한 계곡 위에 설치된 외줄을 타고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가던 종수는 계곡에 하얀 페인트로 해골 모양이 그려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팔과 이오지마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고작 훈련 받다가 실수로 뒤지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좆같은 내 인생!!'
다음 훈련은 낙하 훈련이었다. 교관이 낙하산을 직접 점검해주었지만 종수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이...이런건 공수 부대나 하는거 아니었나?"
이런걸 배울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영환이 녀석이 말했다.
"전투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배우는거지! 우린 전세계 최고의 전사가 되는거야!"
종수와 친구들은 프랑스 외인부대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엘리트 부대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 않는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훈련 받았다. 외인부대원으로서 긍지를 갖고 프랑스를 위해 전력을 다하여 싸우고 기꺼이 죽어야 한다고 교육 받았다. 종수와 동료들은 외인부대에 대한 뽕이 잔뜩 차오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황군때는 군복이 멋없었지만 캐피블랑과 붉은 견장, 푸른색 띠는 엄청나게 멋있었던 것 이다.
종수와 친구들은 다케시한테 프랑스어도 배우면서 기본적인 프랑스어도 익혔다. 그리고 외인부대 은퇴촌, 박물관에 훈련병들과 함께 견학을 가게 되었다. 외인부대원들은 프랑스에서 받는 복지가 생각보다 엄청났다. 생각해보니 프랑스에서 계속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외인부대원들 중에는 도저히 상종 못할 또라이 새끼들이 있었다. 도대체 왜 퇴소 시키지 않는지 이해가 안되는 정신나간 새끼들이 있었다. 황군으로 복무하면서 이상한 놈들은 많이 보았지만 양키 또라이들은 그 차원이 달랐다. 지난 기수 때는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 녀석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종수와 동료들이 성적도 좋고 대인 격투기 훈련때도 특유의 박치기 기술을 선보였기 때문에 딱히 시비가 걸리지는 않았다. 종수는 저격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6주의 스나이퍼 훈련을 추가적으로 받게 되었다.
종수는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사용되는 저격총을 실컷 쏴볼 수 있었다.
탕!! 타앙!! 탕!!
'조준경이 비교가 안되는군...'
프랑스는 유리 세공 기술이 뛰어난건지 황군 시절 쓰던 조준경보다 훨씬 품질이 좋고 깨끗하고 렌즈 왜곡 또한 없었다.
외인부대가 황군과 달랐던 것은, 훈련 과정에서부터 실컷 총알을 쏴볼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기관총, 저격총, 소총 등 모든 종류의 총기를 맘껏 발사해볼 수 있었기에 종수는 새로운 총기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에는 자원이 넘쳐났던건지, 사격 훈련 이후 탄피는 대충 쓸어 담아서 수량을 확인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었다.
정글에서 주로 사용하는 카누 형태의 배를 사용하는 훈련도 받았는데, 태평양 전쟁 참전했던 종수와 동료들은 쉽게 카누를 다룰 수 있었다.
그렇게 4개월간 훈련을 받고, 마지막으로 종수와 동료들은 완전군장을 매고 100km 행군을 하게 되었다. 이 행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드디어 영광의 캐피블랑이 수여되고 레죠네얼, 즉 이등병이 된다. 종수와 동료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지옥의 행군을 떠올리며 최대한 에너지를 덜 쓰며 효율적으로 행군했다. 100km의 행군이 끝나고 종수와 동료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헉...헉..."
'내가 해냈다!!!'
종수와 동료들은 외인부대의 상징, 하얀색 캐피블랑을 받게 되었다. 4개월의 훈련 과정을 통과한 외인부대원들은 흰 캐피블랑을 왼쪽 어깨에 갖다대었다가 앞으로 내밀고 머리에 쓰는 동작을 하며 우렁차게 외쳤다.
"프랑스를 위하여!!!"
프랑스에서 5달도 안 살아봤지만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종수는 정확히 이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옥같던 태평양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또 다시 뽕이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 이다. 프랑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음에도 프랑스에 충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지식인 유이토 녀석이 이 꼴을 봤다면 자유주의가 어떻고 혼자 사색했을 것 이었다.
'뭐 어차피 싸울 일은 거의 없을테니까!'
종수와 동료들은 이를 자축하기 위하여 다 같이 외출하여 술집에 들어갔다. 술집에 하얀색 캐피블랑을 쓰고 있는 종수와 친구들이 들어가자, 엄청난 시선이 쏟아졌다.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이제 자랑스러운 외인부대다!'
종수가 어설픈 발음의 프랑스어로 바텐더에게 말했다.
"맥주 다섯 잔. 소세지 다섯."
그로부터 얼마 뒤, 종수와 동료들은 외인부대원으로서 첫 봉급을 받게 되었다. 외인부대원들은 캐피블랑을 손에 들고 줄을 서 있었다. 경리 장교가 외인부대원들의 캐피블랑에 봉급을 넣어주고 있었다. 잠시 뒤, 종수가 외쳤다.
"레죠네얼! 종수! 리!"
외인부대는 군기가 빡셌지만 나름 살만했다. 가장 좋은 것은 맥주와 포도주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이었다. 주말이 되어 외출을 준비하는데 흑인 동료인 샘이 물었다.
"이봐 자네들! 이오지마에서 싸웠다고 했지? 거긴 어땠나?"
종수가 말했다.
"화산재라서 발이 푹푹 빠지네."
한 백인 동료가 물었다.
"사람 죽일때 느낌 어때?"
종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에 얼버무렸다.
"총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확인 힘들어."
샘이 말했다.
"빨리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네! 기왕에 훈련을 받았으면 총을 써봐야지!"
영환이 말했다.
"싸우는게 뭐가 좋냐!"
샘이 말했다.
"전투 지역에 가야 봉급이 2배로 나오지. 나는 빨리 돈을 벌고 싶다고."
와타루가 말했다.
"태평양 전쟁때야 우리 무기가 미군에 비해서 부족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 우린 최고의 훈련을 받았고 좋은 무기를 쓸테니 이오지마 때보다는 훨씬 싸울만할거야."
종수가 말했다.
"난 편한게 좋아서 전투는 사양할래."
종수와 친구들은 외출한 다음 프랑스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한 서점에 들어갔다. 밀리터리 코너에는 온갖 책들이 있었다.
"세계의 명장들?"
영환이 흥미로운 눈으로 책을 뒤적이면서 사진만 보다가 한병태의 사진을 발견했다.
"한병태다!!"
프랑스어라서 읽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계속 책을 뒤적이는데 한스 파이퍼의 사진이 인쇄된 것을 보았다.
"오! 강철 사냥꾼이다!"
그 때, 다케시 녀석이 한스 파이퍼의 사진을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이 새끼 쓰레기야."
"쓰레기? 왜?"
하지만 다케시 녀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날 종수와 동료들은 펍에 가서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놀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인도차이나(현 베트남 지역) 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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