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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4.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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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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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외전) 싱가포르에서 이오지마섬까지 39 (完)

DUMMY

태평양 전쟁때 만들어진 일본군의 흑백 영상에서 "군함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영상의 제목은 [창공의 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훈련 과정을 통과한 그들은 소년비행병 학교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조교와 함께 초보자용 연습기에 탑승해서 비행을 하다가 단독 비행이 가능하겠다 싶으면 단독 비행에 들어간다. 조교 없이 첫 단독 비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모든 소년비행병들의 일차 목표이다.


비행 훈련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소년비행병들은 훈련용 쌍엽기를 타고 자신의 마을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 자신이 다니던 소학교 운동장을 비행기로 한 바퀴 빙 돌기도 하는데, 그러면 학교 후배들은 운동장에 모여서 이 모습에 환호하고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흑백 화면에는 소학교의 어린 아이들이 운동장에 [창공의 신] 이라는 한자어를 만드는 모습이 나타났다. 자동차조차 거의 보지 못했던 어린 아이들에게 하늘을 날으는 조종사는 문자 그대로 창공의 신이었다. 그렇게 신참 조종사들은 자신이 살던 마을로 돌아가서 한 바퀴 빙 시범 주행을 하고, 대동아 전쟁을 위하여 자신의 후배들에게 하루빨리 소년비행병 학교에서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밥은 그 다음 영상을 틀었다. 가미카제에 관한 일본에서 제작된 다큐였다. 특공 작전에 선발된 조종사들이 술을 한 잔씩 마시는 장면이 뿌연 화면에 흘러나왔다. 일본 군가 "바다로 가면"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잠시 뒤, 특공기들이 한 대씩 이륙했고, 모두가 이들을 향해 모자와 일장기를 흔들었다. 한 조종사는 출격하면서 동료들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들은 특공하면서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을까?'


그 때, 동료 기자 로버트가 신나게 달려와서는 밥에게 말했다.


"이봐!! 좋은 기회가 왔어!!"


이오지마 섬이 일본 영토로 돌아가면서,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했던 미군과 일본군들이 가족들과 함께 회포를 풀기 위한 행사가 열리는 것 이었다.


"여기서 참전자들을 인터뷰할 수 있을거야!"


"미군 참전자와 일본군 참전자가 같이 회포를 푼다고? 패싸움 일어나는거 아냐?"


"그러면 기자 입장에서야 더 좋지!!"


결국 밥은 태평양 특집을 쓰기로 하고, 이오지마로 갈 준비를 했다. 이오지마로 떠나기 전에 밥은 태평양 전쟁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임팔 작전에 참전했던 일본군 참전자들의 전우회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밥은 일본어 통역사를 대동하고 전우회에 참석했다. 그 때 한 노인이 누군가에게 말했다.


"중대장님! 오랜만입니다!"


그 중대장이라는 노인이 말했다.


"그냥 오오타라고 불러주십시오."


전우회가 끝나고, 밥은 오오타 상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임팔 작전때 중대장으로 복무했던 그는 이후 필리핀에서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그 이후 오오타 상은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크게 성장했다가, 일본의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사업이 망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재기하고 다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오타 상이 입을 열었다.


"종전 이후 내 인생에는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소. 물론 태평양 전쟁 당시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치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소."


기자 밥은 자신이 준비한 임팔에 대한 자료들을 오오타 상에게 보여주며 질문했다. 오오타 상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별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오오타 상이 자료를 읽고 말했다.


"나는 장교였기 때문에 사병들의 접근 권한이 없는 문서들도 볼 수 있었소. 그래서 전황이 바뀌는 것은 알고 있었소. 그리고..."


오오타 상이 무언가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중대원들에게 돌격을 명령했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지.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소."


"혹시 무타구치 렌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오타 상이 갑자기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헉...허억...그 쳐죽일 놈을!!!"


갑작스러운 고함에 기자 밥은 깜짝 놀랐다. 오오타 부인이 오오타 상을 진정시켰다. 오오타 상이 부들부들 떨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사령부에 보고를 하러 갔다가 무타구치 렌야의 목소리를 들었소. 한 천 명 정도만 죽이면 이 위치까지 점령할 수 있다고 했소. 그리고 그 자는 오천 명을 죽이면 더 점령할 수 있다고 했소. 영국군을 죽이면 되는건가 했지만 그 자가 의미하는 것은 황군이었소."


'!!!'


또 다시 10초간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오오타 상이 한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통곡하듯 내뱉었다.


"사령부에서 병사들의 목숨을 소총 한 자루보다 하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소!"


인터뷰가 끝나고 밥은 돌아와서 무타구치 렌야에 대해 찾아보았다. 무타구치 렌야의 음성 기록이 남아있었다.


"전후에 나는 수 많은 비난을 받았소! 무타구치 빠가야로!! 이러면서 말이오! 하지만 임팔 작전의 패배는 내 잘못이 아니고 &%$@"


한편, 마일즈는 자신의 부인인 올리비아가 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신청해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깜짝 놀란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하자!"


올리비아가 말했다.


"당신에게 이건 좋은 기회가 될거야."


마일즈는 다시 이오지마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손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 날, 마일즈는 잠이 오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 이후에 마일즈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정리 해고를 당하고 그 이후 다른 직업을 구하는 등 수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당시 전우들이 뭐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마일즈는 다시 이오지마에 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미국에서 마일즈는 전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대, 30대의 젊은 해병대원들이 이오지마 참전 용사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참전용사들 대다수가 허리가 굽었고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젊었던 시절이 생각나는지 다들 신난 표정이었다. 마일즈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오지마 참전 용사는 해병대원들에게 있어서 영웅이나 다를바 없었던 것 이다.


그리고 마일즈는 휠체어를 탄 덩치 큰 그 녀석이 자신의 동기였던 라이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피트가 넘는 미식 축구 선수의 라이언은 전투 초기에 포탄 파편으로 발가락이 절단되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라이언은 미식 축구는 계속하지 못했지만 건설 관련 기업에 취업해서 나름 잘 살고 있었던 것 이다.


"자네 살아 있었군!!!"


그렇게 마일즈와 참전용사들은 이오지마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이오지마는 나무를 심어둔 것 인지 예전처럼 민둥민둥하지 않았다. 한 참전용사가 외쳤다.


"여전히 포크찹 같이 생겼군!!"


그 악몽의 수리바찌 산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마일즈와 동료들은 미 해병대원들과 함께 펄럭이는 성조기를 들었고, 기자 밥은 이걸 촬영했다. 밥은 이오지마 섬에서 나는 유황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냄새를 맡으며 싸운건가?'


밥은 일본군이 토치카로 썼다던 녹슨 치하 전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본군이 파두었던 땅굴 속으로 들어가서 직접 취재를 해보았다. 순식간에 안경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맨이 외쳤다.


"여기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지?"


유황 냄새가 진동을 했다. 덩치가 카메라맨 녀석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수그리고 겨우 땅굴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덩치 크면 탈출 못하겠는데!"


밥은 땅굴 내부에서 여태까지 보존되고 있었던 일본군의 방독면을 발견했다. 방독면에는 굵은 호스가 연결되어있었고, 그 옆에는 일본군의 구급용 거즈가 들어있는 가방 또한 있었다.


그렇게 밥은 카메라맨과 함께 땅굴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수리바치 산에 움푹 패인 곳에 몸을 구겨넣고, 자신의 핸드폰을 이용해서 무전을 보내는 시늉을 해보았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카메라맨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자, 밥이 말했다.


"그 당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을지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아야 하네. 악! 저기서 총알 날아온다!!"


한 미군 참전 용사가 이오지마 해변에 바닷물을 보며 외쳤다.


"난 상륙정에서 빠져서 여기서 헤엄쳐왔지! 지금은 물이 맑군!!"


10대 후반, 20대에 해병대원들이 이오지마 참전 용사들에게 모두 경례를 했다. 마일즈는 이 지옥의 해안가에서의 전투를 기억했다. 아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간혹 그 때로 돌아갔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손을 뻗으면 총알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광경은 가끔 생생하게 VR처럼 떠오르곤 했다.


현재 이오지마 해변에는 피냄새도, 시체 썩은 냄새도 나지 않았다. 예전처럼 파리가 윙윙거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이오지마 특유의 해안가는 여전했다. 그리고 참전 용사 중에 대표가 나와서 이 섬에서 죽어간 전우들을 위해 연설을 시작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졸고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iberty(자유)]에 대한 가치만은 어린 시절부터 제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Liberty와 정신적 존엄성은 인간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입니다. 자유의 정신을 위해 싸웠던, 이 섬에서 돌아가지 못한 우리 형제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저는 이 자리에 왔습니다."


6피트 2인치가 넘는 미 해병대원, 미군 장성, 그리고 참전 용사들 모두 각잡힌 자세로 경례를 했다.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행사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섬 다른 쪽에서는 일본군 출신 참전자들이 가족과 함께 이 섬에서 전사한 수 많은 전우들을 기리고 있었다. 미군 출신 참전자들과 일본군 출신 참전자들이 만나서 회포를 푸는 행사가 남아 있었던 것 이다. 마일즈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저 편에서 일본군 출신 참전자들과 가족들이 걸어왔고 부인들이 먼저 인사하고 대화했다. 놀랍게도 10분 뒤 미군 참전자들과 일본군 참전자들은 준비된 식사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마일즈는 자신의 일장기를 원래 주인이었던 일본군의 유족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마일즈는 그제서야 수십년간의 응어리가 풀린 듯 환하게 웃고는 기자 밥의 인터뷰에 웃으며 응해주었다.


"다시 오는게 두려웠냐고? 그렇소. 솔직히 두려웠소.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는 법이지."


고등학교 시절 미식 축구 선수였던 라이언 또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내가 부상당한건 최고의 행운이었지! 나중에 알아봤는데 첫날 생존자 100명 중에 12명만이 한달 뒤에도 살아있었다고 하더군. 난 덩치가 커서 총알을 잘 피하지 못 했을걸세!"


이 행사에는 교수가 된 유이토도 참석했다. 유이토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태평양 전쟁 시절 전쟁 범죄를 비판하는 논문을 썼다. 유이토는 영어로 밥의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 당시 군대는 개인의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군 내부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군국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시대였습니다. 개인은 마땅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한다고 당연하게 여기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 당시 가치관을 지금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개인의 정신은 자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유이토는 잠시 눈을 굴리고 인터뷰를 멈추었다. 밥은 참전 용사들을 인터뷰할때마다 이런 광경을 많이 보았다. 참전 용사들이 잠시 인터뷰를 멈추는 것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이다. 이것은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때 그 당시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일본군 출신 교수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완전히 그 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30초 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유이토가 말을 이었다.


"일본군 중에 상당히 용감한 조선인 출신 친구가 있었습니다. 신병이었는데, 아직도 그 녀석이 기억이 납니다. 우린 수리바치 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 같이 자폭을 해야 했습니다."


유이토가 또 다시 말을 멈추었다. 유이토는 수리바치 산의 땅굴 속으로 다시 돌아간 상황이었다. 그렇게 1분 간 정적이 흘렀다가 유이토가 말했다.


"쾅!! 쾅!! 쾅!!! 수류탄이 계속해서 터지며 옆에서 뇌수가 튀었습니다. 저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강한 사슬 같은 것이 제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세뇌당한 가치관에 저 또한 자유롭지 못했던 겁니다. 그 당시 저는 지식인이었고, 자유주의에 심취해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망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선인 출신이 "어무이~!" 외치면서 용감하게 도망치는 것 이었습니다."


유이토가 웃음을 지었다.


"그 친구 덕분에 살았습니다."


기자 밥은 이 놀라운 인터뷰를 따내면서 자신이 가장 궁금해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혹시,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병사들은 뭐라고 외치며 죽어갔습니까?"


"사무라이는 죽어가면서 천황의 이름을 입에 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부 그들의 어머니, 부인, 자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누구도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밥은 이것이 실례가 되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기자로서의 사명에 참을 수 없었다.


"혹시 총으로 적을 사살해본적이 있습니까?"


또 다시 유이토가 말을 멈추고 눈을 굴렸다.


"전쟁에서는 내가 쏜 총알이 적을 맞추었는지 알기 힘듭니다. 내가 쏘았던 총알이...모두 빗나간 것 이었으면 좋겠군요."


밥은 일본어가 가능한 통역사를 대동했기에 일본군 참전자들을 계속 인터뷰하기로 했다. 일본군 참전자들 중에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간 이오지마 섬에서 버틴 야마모토와 히카루가 상당한 유명인사였다. 야마모토는 그 이후 야쿠자가 되었다가 사업을 해서 성공하여 이오지마 참전 용사들 전우회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었다. 야마모토가 워낙 바빴기에, 밥은 히카루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히카루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오지마에서도 싸우고 임팔에서도 싸웠지! 훌륭한 전우들과 함께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싸운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소! 인생에서 한번쯤은 그런 시기도 있어야지!"


밥은 히카루에게 전쟁 ptsd를 겪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히카루가 대답했다.


"그 때 워낙 못 먹고 고생했기 때문에 가끔 뼈가 쑤시긴 했지! 하지만 ptsd는 겪은 적이 없소!"


히카루가 잠시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히카루 또한 다른 참전자들처럼 과거의 그 시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 이다. 밥은 히카루의 회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침도 삼키지 않고 기다렸다.


'...'


히카루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말을 이었다.


"적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상관없었어. 그 누구도 그런걸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어. 난 추호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난 미국을 싫어하지 않아! 미국인도 싫어하지 않네! 그냥 나도 총을 들고 있었고, 그 자들 또한 총을 들고 있었지. 난 살아야 했네! 야생에서 날짐승이 살기 위해서 다른 짐승을 물어뜯는다고 죄책감을 가질 것 같나? 당치 않은 소리지! 뭐 굳이 따지자면 유감이지! 내가 총을 쏜 곳에 그 자가 있었던게 말이야! 하지만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는걸!"


그 날 행사가 끝날 즈음, 기자 밥은 마침내 야마모토의 인터뷰를 딸 수 있었다. 의자에 앉은 야마모토의 눈이 아래쪽으로 굴러갔다. 밥은 그가 태평양 전쟁 그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야마모토 이 자는 도대체 인생에서 몇 번이나 그 순간을 다시 살았던건가, 밥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야마모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자를 보았소! 미군 철모를 쓴 그 자들을 말이오!"


야마모토의 두 눈이 또 다시 굴러갔고, 그렇게 5초간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야마모토가 갑자기 외쳤다.


"퍼엉!!!"


야마모토는 그제서야 회상에서 빠져나온 듯 밥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수류탄으로 날렸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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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5

  • 작성자
    Lv.70 血天狂魔
    작성일
    23.03.04 13:44
    No. 1

    병태가 나와서 떠들면 좋았는데 아쉽네요
    나이가 나이이니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3:48
    No. 2

    하긴 저 때는 다른 참전자들도 90대에서 100세까지였을 시기라 병태가 나오긴 어려웠을거 같습니다! 병태는 제가 태평양 전쟁 더 공부하게 되면 등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때가 아니더라도 다큐멘터리나 인터뷰에 나왔던 적이 있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g5******..
    작성일
    23.03.04 15:53
    No. 3

    https://youtu.be/STLoPMETFmw 나중에 참전용사들이 이런거로도 출연하면 재밌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7:26
    No. 4

    하긴 이런건 전쟁이랑은 다른 재미가 있겠네요!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영화보면 미군 출신이 강도로 돈 터는 것도 나오던데 한번 써보면 괜찮을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7:29
    No. 5

    반자동을 자동사격 가능하게 불법개조 ㅎ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7:30
    No. 6

    베트남 참전 용사가 단속하던 경찰 사살하는 영상 봤는데 베트남 참전 용사가 무기가 더 좋아서 권총으로는 상대가 안 되더라구요 현실에서 저런 상황에선 무기의 위력이 중요하겠네요 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7:31
    No. 7

    총기 난사 데스캠 등 보면 경찰들도 권총 갖고 있으면 진입 못하더라구요 전쟁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써보는 것도 괜찮을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7:36
    No. 8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차 문 뒤에 엄폐해봣자 총알 다 뚫는다고 하더라구요 ㄷㄷㄷ와 범인들 엄청 멍청한데 저 수법이 통했군요 경찰차도 딱히 방탄기능이 더 특별하진 않았군요 자동소총의 위력!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7:46
    No. 9

    소말리아 내전 때도 그렇고 총알은 아무리 권총탄이고 위력 약해봤자 한 발 맞으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권총탄은 여러발 맞아도 교전 가능하군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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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3.04 17:51
    No. 10

    다만 그만큼 그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거기다 이들의 노획무기 문제며 미국의 총기문화도 생각해 보아야 할겁니다. 생각이상으로 복잡한 이야기인데...

    차문의 경우 철갑탄을 써야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의 경우 충돌등에 대비해 철의 두께등이 두껍기에 이런 엄폐가 가능하였고 일반 차량들의 경우도 어느정도 가능합니다. 당연히 경찰차등도 방탄 기능이 있다 들었죠. 자세한 건 모르지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8:20
    No. 11

    네 생각보다 미국 총기문화가 많은 문제가 있더라구요! 네 영상보니 그 이후로 바뀌긴 했다고 하더라구요 군대는 철의 두께가 두꺼워서 엄폐가 가능하군요! 아 엄폐가 약간은 되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3.04 17:54
    No. 12

    그렇기에 요즘 미국 SWAT등을 보면 거의 군대와 다를바 없을 정도입니다. 방산업체 로비와 중앙정부의 권력 강화등이 있지만 그만큼 민간에서 풀린 무기 성능이 올랐다는 뜻이죠.

    이런 권총탄 문제로 미군이 유독 구경이 큰 권총탄을 쓰는것이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호신용으로 엄청 작은 탄도 충분히 사살할 수 있으며 각 권총탄마다 방탄복 관통 가능한 관통력이 높거나 인체타격이 크는등의 장단점이 있으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8:21
    No. 13

    아하 민간에서 풀린 무기 성능이 올라서 미국SWAT도 군대 수준으로 높아졋군요
    아 권총탄도 구경 큰거 쓰는군요! 작은 탄도 사살할 수 잇군요! 아하 권총탄도 방탄복 관통 가능하군요 상당히 복잡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3.03.04 19:28
    No. 14

    미국 총기문화도 복잡한게 총이 독립전쟁 당시 개인의 자유와 관련된 역사가 깊기도 했고 서부시대등 미국의 확장시기 당시 중앙정부 영향이 적어 민병대의 의존도가 컸다는 점등 이걸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 봅니다.

    그래도 워낙에 문제가 많고 좋은 제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거나 시대에 맞추어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통제해도 문제는 문제고 총기협회도 상상 이상으로 이익을 위한 집단이란 점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4 di******..
    작성일
    23.03.04 19:43
    No. 15

    네 미국에서도 나름 총기를 허용하게 된 역사적 원인이 있긴 하죠 아예 헌법에까지 명시되어있으니 ㅎㄷㄷ 여러모로 연구할게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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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37 외교 상황 브리핑 +18 24.01.31 80 3 12쪽
936 전쟁을 즐기는 자 +550 23.06.02 415 4 12쪽
935 카를 파이퍼 징병되다 +56 23.06.01 142 3 14쪽
934 우라늄 프로젝트 +18 23.05.31 117 3 16쪽
933 CQC 전투 +5 23.05.30 108 3 13쪽
932 짝퉁 전차 +11 23.05.29 116 3 12쪽
931 러시아 해방군 +16 23.05.28 158 4 12쪽
930 스페츠나츠 +103 23.05.27 149 4 12쪽
929 특수부대가 된 나타샤 3 +152 23.04.26 247 3 12쪽
928 특수부대가 된 나타샤 2 23.04.25 90 2 15쪽
927 특수부대가 된 나타샤 +6 23.04.24 101 2 11쪽
926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9 (完) +19 23.04.18 146 2 15쪽
925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8 +8 23.04.17 102 2 12쪽
924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7 +14 23.04.16 179 3 13쪽
923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6 +2 23.04.15 86 2 13쪽
922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5 +16 23.04.14 89 2 13쪽
921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4 +7 23.04.13 101 2 14쪽
920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3 +24 23.04.12 107 3 14쪽
919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2 +6 23.04.11 93 3 16쪽
918 지크프리트 4인조 굴라크 탈출기 +3 23.04.10 144 2 13쪽
917 유보트에 탄 밀리나 3 (完) +6 23.04.09 109 2 15쪽
916 유보트에 탄 밀리나 2 +5 23.04.08 94 2 17쪽
915 유보트에 탄 밀리나 +4 23.04.07 119 3 13쪽
914 외전) 독소전 이후 앙뚜완의 이야기 2(完) +333 23.03.19 311 4 16쪽
913 외전) 독소전 이후 앙뚜완의 이야기 +11 23.03.18 99 2 15쪽
912 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10 (完) +12 23.03.16 90 1 12쪽
911 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9 +3 23.03.15 73 2 15쪽
910 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8 +5 23.03.14 85 2 13쪽
909 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7 +6 23.03.13 84 2 15쪽
908 외전) 조선인 프랑스 외인부대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6 +7 23.03.12 84 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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