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담은™ 님의 서재입니다.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담은™
작품등록일 :
2024.08.22 14:3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9,094
추천수 :
851
글자수 :
138,123

작성
24.09.09 20:20
조회
954
추천
33
글자
11쪽

싫은데요 (2)

DUMMY

백정문 회장은 누구보다 성화그룹을 아끼는 사람이다.

기업을 아직까지도 직접 살피며 보살필 정도로 그 애정이 크다.

자식들이 성화그룹의 지분을 가지고 다투는 걸 알면서도,

그는 ‘시끄럽게’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룹 이미지에 흠 잡힐 일 없게끔 처신하라는 뜻이다.


그토록 아끼는 그룹인데 조용히 살던 손자 하나가 갑자기 딴따라를 하겠단다.

수중에 있는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백정문이 알 바가 아니었으나 백재열의 행보는 그의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 기획사를 사질 않나, 돈과 인맥으로 밀어붙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드라마)에 끼어들었다고 하질 않나.

그 때문에 성화전자 기획전략실에서 언론과 대중 반응을 살펴야 했다.


백정문은 손자가 탐탁지 않았다.

그에게 백재열은 여태 두각 하나 드러낸 적 없는 그저 그런 인물이었으므로.


그랬는데.


“싫습니다.”

“재열아!”

“······너 방금 뭐라고.”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백정문은 백재열과 눈을 마주했다.

제 손자에게서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나?

분노로 단단히 뭉쳐 무슨 말을 해도 풀리지 않을 듯한 이런 눈빛.

가족모임에서 말없이 자리나 지키고 앉았던 아이가 가지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화였다.

백정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성화 이미지 망치는 데 일조할 생각인 거냐?”

“이미지를 망치다니요. 전 그런 적 없습니다.”

“기획전략실에서 네 기사 막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알고 하는 말이길 바란다.”

“애를 쓸 필요도 없이 쉬운 일이었겠죠. 그리고 어차피 추측성 기사였으니 그대로 나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허, 이 녀석 보게. 말이면 단 줄 알아?!”

“제가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성화의 자식이라면 무엇이 됐든 스스로, 능력으로 증명해라.

백정문이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백재열은 증명했다.

다 망해 간다는 SBC 드라마가 올해 처음, 1화 시청률 10%를 찍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백재열의 이름이 계속 올라왔다. 클릭하면 그의 연기를 칭찬하는 기사와 영상 클립이 뜬다.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백재열을 낙하산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낙하산이 아니었다.

그는 구원자였다.


구렁텅이로 처박힌 SBC 드라마 제작국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구세주!

우진환 감독이 입이 닳도록 말했고 이나리 작가가 소리 높여 노래했으며 곽동기 부장이 진심을 다해 미담을 퍼트렸다.


고작 하루.

어젯밤 1부의 방영이 끝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늘 저녁.

백재열은 벌써부터 모두의 열광을 사고 있었다.

당장 백제호텔로 들어오기 전에도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은 참이었다.


“저 잘합니다. 다들 저더러 천재라고 하더군요.”

“거긴 그 알량한 말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데가 아니야!”

“제 안위를 걱정하시는 게 아니잖습니까.”

“뭐라?”


성공과 명예를 코앞에 둔 손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

그건 백재열의 안위를 걱정한 게 아니다.


“감히 성화그룹의 일원이, 웃음 팔아 돈 버는 하찮은 일에 몰두하는 걸 보기 싫으신 거 아닙니까.”


백재열은 그래서 화가 났다.


“할아버지 옛날 분이신 거 잘 압니다. 그런데, 적어도 타인이 진심으로 대하는 일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되죠.”


그 알량한 시선과 말 한마디에 서연주의 커리어가 끝났다.

서연주가 사랑했던 일을 그만둬야 했다.

저 고집스러운 입 때문에. 그걸 말리지 못한 나 때문에.


“저 연기 계속할 겁니다. 막으시면 더 큰 소동 일으켜 드리겠습니다.”


이건 백재열 자신을 위한 분노가 아니었다.

과거에 이렇게 나섰어야 했다는 자신에 대한 분노,

지금 옆에 없는 서연주를 위한 분노였다.


그마저도 자기 위안인가.

자조한 그는 꾸벅, 묵례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쟤, 쟤가, 처제! 쟤 안 잡아? 뭐 해!”

“어머······ 재열이가 단단히 마음을 먹었나 보네.”

“정신 나간 놈······ 쯧!”

“개멋있다······ 아 씨 사인 아직 못 받았는데.”

“넌 지금 그게 문제냐?”

“너도 서연주 사인 못 받은 거 까먹지 마라.”

“에이씨, ······다음 모임 때 받으면 돼.”

“난 따로 연락할 건데.”


백재열은 소란스러운 영빈관을 빠져나왔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천천히 다가오는 여름의 끄트머리,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한시라도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제 드라마 재밌더라니까?”

“어휴, 형님, 저 어제 사장님 모시고 평창동 가느라 정신이, 정신이.”

“별별 얘기 많던데요. 재벌 수업 중에 연기 수업도 있었냐고들.”

“야, 근데 진짜 의심할 만하던데. 대단했어.”

“그래도 좀, 앞으로 계속은 무리지 않겠습니까? 아마 안에서 난리, ······.”

“야야.”


난데없는 백재열의 등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수행기사며 비서들이 일순 고요해졌다.


따로 떨어져 있던 문건우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바로 집으로 가자.”

“예.”


차가 떠나고, 모여 있던 엑스트라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깜짝이야.”

“쫓겨났나 보네요.”

“안 되죠. 성화그룹에서 배우? 안 되겠죠.”

“안타깝다, 안타까워. 1화만 봐도 천재인 거 다 알겠던데. 어쩌다 재벌로 태어나서······.”

“형님. 하고 싶은 거 못 하기, 우리나라 최고 재벌로 태어나서 먹고살 걱정 없기. 뭐가 좋으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전자지!”


우스갯소리가 작게 주차장을 울렸다.

백재열이 감히 그 백정문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을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


달리는 차 안에서 백재열은 서연주를 생각했다.

가족 모임만 다녀오면 온몸이 쑤시다던 서연주를.

이따금 들렀던 서연주의 집은 영빈관과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아휴, 백 서방 얼른 앉아요, 앉아. 오느라 고생 많았다. 안 그래도 온대서 백 서방 좋아하는 갈비찜 해 놨네 내가.’

‘엄마 내 거는?’

‘너는, 어휴, 배우가 무슨 갈비찜이야, 갈비찜은.’

‘배우도 사람이거든?!’

‘백 서방 먼저 먹고 먹어!’

‘엄마! 내가 엄마 딸이잖아!’

‘백 서방은 내 아들이다 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연주가 좋아하는 반찬을 죄다 앞으로 몰아주던 장모님,

화단에 물 주다가 딸과 사위가 왔다는 소식에 호스를 내팽개쳐서 온통 젖었던 장인어른,

오빠처럼 편하게 대하랬더니 정말 그렇게 했던 서연주의 동생까지.


백재열은 그들을 보며 왜 사람들이 그렇게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았다. 평생을 삭막하고 팍팍한 곳에서 지내다 처음으로 느꼈던 거다. 가족의 정을.


그러나 언제부터였더라. 찾아가지 않은 지.

그것도 아주 오래된 일이다. 백재열의 일은 점점 바빠졌으니까.

서연주도 홀로 본가로 내려가진 않았다. 갖은 핑계를 대면서. 다시 돌아보면, 아마 부모님이 걱정하실 걸 염려한 거다.


다시 뵐 낯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찾아가고 싶다.

그럴 명분만 있었다면 당장 차를 돌렸을 만큼.

있을 때 잘하라는, 그 뻔한 이야기는 왜 이렇게 늘 사람을 사무치게 하는지.


백재열은 핸드폰 액정을 한참 만졌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연락처 하나를 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연주······ 선배님.”

[재열 씨?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네가 보고 싶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서.


“······.”

[······재열 씨?]


백재열은 튀어나올 뻔한 진심을 꾹 눌렀다.

그리고 적당한 핑계를 찾았다.


“혹시 6부 대본 보셨습니까?”

[아, 봤죠. 그건 왜요?]

“저만 이상하게 느끼나 싶어서요.”

[음······ 어디가 그랬어요?]


밤이라 그런지 약간 잠겨 있는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다. 내일 촬영장에서 이야기해도 될 걸로 전화를 거느냐고 타박하는 일도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대본을 넘기는지 사락거리는 소리가 넘어온다.

전화한 사람이 아니라, 용건의 문제인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절로 미소가 났다.

이제 좀 속이 풀리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내일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쉬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 ······.”

[아뇨, 아뇨. 괜찮아요. 궁금해졌어요. 얘기해 줘요.]


봐, 용건의 문제라니까.

잠도 안 자고 대본만 읽던 과거의 서연주는 지금도 여전했다.

백재열은 창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주인공들 구도 말입니다. ······.”

[아, 그 부분······ 안 그래도 저도 조금 의문이었어요. 그러니까, ······.]

“예, 동의합니다. ······.”


화제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대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배우는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좀 듣고,


[재열 씨는, 괜찮죠? 긴 촬영은 처음이잖아요.]

“할 만합니다. 선배님이 도와주셔서 더 잘 적응하고 있고요.”

[내가 뭘 했다고. 그거 다 재열 씨가 혼자 해낸 거잖아요.]

“아뇨, 선배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그러니까 선배님도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세요.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요.”


서로의 안부도 묻고.

남은 촬영 기간도 힘내자고 의지를 다지기까지.


차 안에서부터 시작된 통화는 집에 돌아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뜨끈해진 핸드폰을 보니 2시간에 가까운 통화 시간이 찍혀 있었다.

백재열은 텅 빈 방에 누워 자꾸만 실실 웃었다.


답답했던 가족모임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머릿속에는 서연주만 남았다.

서연주가 좋았다.

도무지 그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


······.

······.

······.


연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서연주는 별것도 아닌 그 호칭을 곱씹었다.

침대에서 자꾸만 몸을 뒤척이면서,


“연주······ 선배님.”


중얼중얼, 중얼중얼.


“아,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는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맨날 선배님이라고만 부르던 사람이 어쩐 일로 이름을 붙였지만 별 의미는 없을 거다.


그래, 의미가 있겠어?

그냥 편한 선배님이니까 이 시간에 전화도 하고, 같은 소속사 선배님이니까 응, 친하게 지내면 좋아서, 응, 대표님이 말했겠지. 한식구니까 편하게 대하라고. 그래, 그런 거다.


서연주는 조금만 넋을 놓으면 백재열이 생각났다.

사고의 흐름을 제대로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대본을 펼쳤다.


“확실히······ 이대로 가면 도준우가 너무 아쉬워질 것 같은데.”


결국 백재열과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게 되었음은 깨닫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날 서연주와 백재열은 그러느라고 나란히 2부 방영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SBC 측에서 미친 듯한 재방송 편성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연주는 다음 날 촬영 직전에,

백재열은 다음 날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2부 방영본을 확인했다.


그야말로 풋풋하고 달달해서 이가 다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 제작 후원 명단(24.09.04) 24.09.04 75 0 -
공지 작품명 변경 공지(24.09.11) 24.09.02 73 0 -
공지 연재 주기 및 시간 공지(24.08.30) 24.08.26 626 0 -
26 재벌 3세의 망나니 재벌 연기 (1) NEW 9분 전 20 1 13쪽
25 그 사람은 안 됩니다 (3) 24.09.17 299 18 11쪽
24 그 사람은 안 됩니다 (2) 24.09.16 394 25 11쪽
23 그 사람은 안 됩니다 (1) +1 24.09.15 535 28 12쪽
22 너 누구랑 사귈 거야 (2) +1 24.09.14 685 33 12쪽
21 너 누구랑 사귈 거야 (1) +1 24.09.13 789 30 13쪽
20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3) 24.09.12 831 30 12쪽
19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2) 24.09.11 842 28 13쪽
18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1) +1 24.09.10 918 29 11쪽
» 싫은데요 (2) +1 24.09.09 955 33 11쪽
16 싫은데요 (1) 24.09.08 950 31 15쪽
15 고대하던 첫 방송 (2) 24.09.07 971 29 12쪽
14 고대하던 첫 방송 (1) +1 24.09.06 985 33 12쪽
13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24.09.05 987 32 12쪽
12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1) 24.09.04 1,032 30 11쪽
11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4) +1 24.09.03 1,094 28 12쪽
10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3) 24.09.02 1,104 35 11쪽
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139 26 11쪽
8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2 24.08.31 1,236 30 12쪽
7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24.08.30 1,263 36 11쪽
6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2) 24.08.29 1,382 39 13쪽
5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1) 24.08.28 1,501 47 11쪽
4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3) 24.08.27 1,602 43 12쪽
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887 46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636 52 12쪽
1 이혼 후 전여친을 만났다 +2 24.08.26 3,045 59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